달동네
찬란한 개발을 꿈꾸는 가파른 산꼭대기
조갑지를 엎어 놓은 듯 납작코 같은 집들의
경계선 위로 지렁이 같은 골목이 꿈틀 꿈틀 기어간다
콘크리트 벽처럼 딱딱한 얼굴
웃으려 하면 울음이 달려들어 웃음을 막고
시장기를 느낀 웃음 기력을 잃고
푸석해진 흙벽 균열을 더해 간다
거북이등짝 같은 집들은 낮 보다
밤에 더욱 몸집을 크게 부풀리고
서로 이마를 맞대고 소곤 거리며
인간의 깊은 우물 속만 빼고 모든것을
공유한다
이마가 터져 반창고를 붙인 집들이
천식을 앓아 그르륵 쿨럭 썪은 가래를 뱉을 때 마다
지붕 위에 꾹 눌러 놓은 돌들이 까무러 치며
경끼를 한다
자기 집 보다 더 큰 사연 끌어안고 사는
이심 전심 동병상련
빚보증 잘못 선 알콜 중독자
뺑소니에 치인 외발이
20년 근무 정리 해고자
전 재산 사기당한 정신이상자
새벽일 나가는 아내들의 마른 시래기같은 삶이
깃발처럼 나부끼는 골목 어귀에
길고양이들의 슬픈 행진
아랫말 부촌에서 내다 버린 의자들을 하나씩 가져 와
느티나무 아래 모여 앉아 기막힌 세월을 엮어가는 동태 코다리처럼
줄줄이 꿰인 인생들
자기보다 더 큰 고물 수레를 끌다 새우잠 자는
김노인 지붕에서 찬 바람이 널 뛰기를 할 때
엎어진 쓰레기통에서 부자들이 버린 구겨진 돈이 날아 다니고
가면을 쓴 도둑처럼 검은 비닐 봉지가 담없는 집들을 기웃 거리는 그 밤을
눈없는 어둠이 기록을 하고 있다
굴곡진 삶 구부러진 골목 끝에
눈을 사납게 부릅 뜬 찬 새벽이
허수아비 같은 노인을 막아서는 뒤로
'달동네 강제철거' 현수막이 가난을 비웃 듯
펄럭 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