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 미륵사지석탑 복원 '20년 대장정'
지난 22일 찾은 전라북도 익산 미륵사지(彌勒寺址)는 고즈넉했다.
백제 무왕(재위 600~641년)이 7세기 초 창건한 동아시아 최대 사찰 미륵사는
그 터만 남았을 뿐, 미륵산 아래 펼쳐진 넓은 평야에는 옛 백제의 영광을 지켜본
석탑만이 조용히 바람을 맞고 있었다.
백제 건축술의 정수를 담은 미륵사지석탑(국보 제11호)이 여기 있다.
한국사를 통틀어 최고(最古)·최대(最大)를 자랑하는 미륵사지석탑은
우리 석조 문화재의 백미로 꼽힌다.
수천 개의 크고 작은 돌을 얇게 조각해 9층(추정)까지 쌓아올린 기술력도 대단하지만,
하늘을 향해 뻗은 '귀솟음' 양식의 지붕돌은 후대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독보적인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천 년이 넘는 모진 세월의 풍파 속에 허물어졌던 미륵사지석탑이
마침내 창연히 일어섰다.
20년 동안 이어진 복원 작업이 곧 마침표를 찍는다.
①1910년 ‘조선고적도보’에 남은 미륵사지석탑 동쪽 면의 모습.
반대쪽 면은 이미 절반 이상 파손된 상태다.
②1915년 일제에 의해 콘크리트로 임시 보수된 석탑.
③2010년 석탑 해체가 완료된 기단부 모습. ‘금제사리봉영기’ 등
다양한 문화재가 발견됐다.
④2017년 10월 국립문화재연구소 보수팀 직원들이 6층 지붕돌을 조립하는 모습.
/국립문화재연구소 제공
◇일제가 콘크리트 발라 망가트린 국보, 100년 만에 제 모습 찾아
"공정률은 99.99%입니다.
지난해 11월 조립을 마쳤어요.
이후 약해진 기존 부재(部材·건물을 이루는 재료)를 특수 약품으로
강화·발수 처리하고, 조치한 부분의 색이 주변과 조화를 이루도록 하는
'색 맞춤'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이달 말이면 모든 작업이 끝납니다."
지난 2000년 미륵사지석탑 해체·보수팀에 막내로 들어와
지금은 팀장으로 작업을 이끄는 김현용(42) 국립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사가
거대한 덧집(문화재 보호를 위해 임시로 지은 건물)으로
둘러싸인 미륵사지석탑을 가리키며 말했다.
높이 14.2m에 무게 약 2000t에 달하는 미륵사지석탑은 웅장했다.
대부분 무너져 내렸던 기단(빗물이 내부로 차오르는 것을 막기 위해 터 위에
먼저 쌓은 단)은 다시 일어서 탑을 떠받치고 있었고,
파손됐던 1~2층 탑신(탑의 몸통 부분)도 복구돼 부드러운 곡선의 미를 뽐냈다.
미륵사지석탑은 지난 639년 첫 번째 심주석(탑의 중심축이 되는 돌)을 놓은 뒤로
1400여 년 가까이 이곳에 서 있었다.
하지만 부서지고 깎이길 반복하면서 점차 원래의 모습을 잃어갔다.
보다 못한 17~18세기 조선인들이 석탑 주변에
축대를 쌓아 붕괴를 막으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일제강점기였던 1900년대 초 조선총독부가 펴낸 '조선고적도보'에는
1910년 당시 원형을 유추하기 어려울 정도로 훼손된 미륵사지석탑의 모습이 남아 있다.
①지난 1998년 시작된 미륵사지석탑 복원 작업이 이달 말 완료된다.
오는 10월 덧집 철거가 마무리되면 자연 속 석탑 본연의 모습을 감상할 수 있다.
②복원된 미륵사지석탑은 70%의 원부재(원래 재료)와
30%의 신부재(새로 쓰인 재료)로 이뤄져 있다.
누런빛을 띠는 게 원부재고, 흰빛을 띠는 게 신부재다.
③깨져 있는 돌에 충전재 겸 접착제를 주입해 이어 붙이는 모습.
④미륵사지석탑은 동서남북 사방에 문을 내고 기단에는 계단을 설치해
사람이 내부를 드나들 수 있게 만들었다.
이는 주로 목탑 건축에서 발견되는 형태다. /익산=김종연 기자
◇9층 추정 석탑, 6층까지만 복원한 이유는 "원형 지키기 위해"
일제에 의해 '임시 보수'된 미륵사지석탑은
지난 1998년 구조안전진단을 한 문화재위원회가 더는 복구를 미룰 수 없다는
결론을 내놓으면서 해체·보수에 돌입했다.
조사를 거쳐 2001년 작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하나씩 돌을 떼어내는 데에만 꼬박 10년이 걸렸다.
"워낙 오래된 석탑이다 보니 부재의 강도가 50%나 약해져 있었어요.
신중할 수밖에 없었죠.
콘크리트를 제거할 때는 행여 부서질까 봐 조그마한 치과용 드릴로
일일이 갈아내야 했어요."
해체하고 나니 돌이 2500개 정도 됐다.
70개 정도의 돌로 이뤄진 석가탑과 비교하면 엄청난 양이었다.
"3D스캐너 등 특수장비를 이용해 모든 돌의 특성을 하나하나 파악했어요.
모양과 크기, 강도, 훼손 정도에 따라 '맞춤형 처방'을 하기 위해서였죠.
덕분에 원래 부재의 70% 이상을 재활용할 수 있었어요.
부재 보수에 2년이 걸렸고, 조립하는 데 또다시 4년이 걸렸습니다."
'원형의 보존'은 미륵사지석탑 복원의 제1원칙이기도 하다.
석탑 서쪽 면 3~6층 탑신을 복구하지 않은 것은 원래의 모습을 추정할 수 있는
신뢰할 만한 사료가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다.
원래는 9층이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6층까지만 복원한 것도 같은 이유다.
원형
김현용 학예연구사는 "언젠가 미륵사지석탑이 탑첨(탑 꼭대기의 뾰족한 부분)까지
복원되는 날이 올 것"이라며
"후손들이 석탑의 원형을 추정할 수 있는 자료를 발견해주리라 믿는다"고 했다.
"미완성으로 남은 현재의 미륵사지석탑의 모습도 나름의 멋과 가치가 있습니다.
상처 입은 석탑의 현재를 보면서 과거 찬란했던 모습을 상상해 보는 것도
재밌지 않을까요?"
이상 소년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