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군세기.(114)
[44세 단군 구물 재위 29년].-2
四十四世檀君丘勿 在位二十九年
사십사세단군구물 재위이십구년
丁巳二年禮官請行三神迎鼓祭乃
정사이년예관청행삼신영고제내
三月十六日也帝親幸敬拜初拜叩
삼월십육일야제친행경배초배고
再拜六叩三拜九叩禮也從衆特爲
재배육고삼배구고례야종중특위
十叩是爲三六大禮也
십고시위삼육대례야
壬申十七年遣監察官于州郡糾察吏民擧孝廉
임신십칠년견감찰관우주군규찰리민거효렴
戊寅二十三年燕遣使賀正
무인이십삼년연견사하정
甲申二十年帝崩太子余婁立
갑신이십년제붕태자여루입
정사 2년(B.C. 424년) 禮官(예관)이 청하여
三神迎鼓(삼신영고)의 제사를 지냈다.
곧 3월 16일이었는데 단제께서 친히 행차하시어 경배하시니
첫번째 절에 세번 머리를 조아리고
두번째 정에 여섯번 머리를 조아리고,
세번째 절에 아홉번 머리를 숙여 예를 올리는데,
무리를 거느리고는 특별히 열번 머리를 조아렸다.
이를 三六(삼육)의 大禮(대례)라고 한다.
임신 17년(B.C. 409년) 감찰관을 각 州(주)와 郡(군)에 파견하여
백성들을 살펴보아 효도를 잘하는 자와
철렴결백한 관리를 천거하도록 하였다.
무인 23년(B.C. 403년) 연나라에서 사신을 보내와
새해 문안인사를 올렸다.
갑신 29년(B.C. 397년) 단제 붕어하시고
태자 余婁(여루)가 즉위하였다.
1. 삼신영고 : 부여의 영고제도.
삼신을 섬기는 영고라는 뜻이다.
영고의 전거는 다음의 <삼국지> 위지 부여전의 기록이다.
“以殷正月祭天 國中大會 連日飮食歌舞 名曰迎鼓”
이은정월제천 국중대회 연일음식가무 명왈영고
“은에서는 정월에 하늘에 제지내는 국중대회가 있는데
연일 마시고 먹으며 노래하고 춤춘다 이름하여 영고라 한다.”
영고는 다른 말로 바꾸면 <맞두들이>라 할 수 있다.
북 鼓(고)의 북은 본래 두들이라고 하는 까닭인데,
뒷날 <맞두드리>가 일본말 <마쯔리(祭刂,제도)>의 어원이 되었으니,
오늘날 일본인들이 바로 고대 조선인이었다는
언어학적 근거가 되는 것이다.
2. 삼육의 대례 : 세번 절을 한다는 것이 三拜(삼배)이고,
六叩(육고)라 하면 머리만 여섯번 조아리는 것을 말하니
삼육대례는 세번 절하고 여섯번 조아리는 것을 뜻한다.
天祭(천제) 때 天壇(천단) 앞에서만 행하는 배례법이다.
앞의 3세 가륵 편에서도 설명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