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학주의 춘천 이야기20
춘천 기와집골과 서부시장의 기억
<옛 춘천의 번화가, 소양동>
춘천에서 가장 많은 변화를 겪은 지역은 기와집골이 있었던 소양동이다. 춘천관아부터 요선당이라는 객사, 강원도청과 서부시장, 춘천시립문화회관 등 온갖 관공서와 언론사 및 술집과 위락시설이 갖추어진 장소이다. 미군부대 캠프페이지까지 있었으니, 그 사정을 알만하다. 사람이 많으면 자연스럽게 시장이 생기고, 시장이 활성화되면 식당이나 술집이 생긴다. 하기야 극장이 다섯 개나 있었다니, 소양동의 문화가 어떻게 진행됐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그래서 소양동 일대는 밤낮이 다른 문화를 이뤘다. 낮에는 관공서, 언론사, 학교, 시장 등이 형성돼서 일하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밤이면 다방과 술집을 중심으로 하는 비즈니스를 비롯한 사교 등의 놀이문화가 이뤄졌다. 그야말로 환락가였다. 일과 놀이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동네였다.
<기와집골의 사연>
소양동에 기와집골이 생긴 이유도 먹고살기 좋은 분위기가 형성됐기에 가능했다. 옛날 기와집골은 백석동으로 불렀다. 백석은 소양동 주민에 의하면 일백 섬을 지칭하는 말이라 한다. 일백 섬이나 되는 부자들이 이곳에 많이 살아 백석동이라 불렀다. 그러다 보니 초가집이 없고 기와집이 지어졌고, 기와집이 많이 형성되자 사람들은 원래의 뜻을 가진 백석동을 잊고, 기와집골이라 부르게 되었다.
한강을 따라가던 뗏목이 잠시 쉬어가는 곳이었고, 소금배가 머물던 장소였다. 소양강과 신연강을 사이로 강북인 우두동과 신북읍, 그리고 강서인 서면 지역의 농산물이 모두 모이는 지역이었다. 재래식 옛 서부시장이 형성된 원인이다. 아침이면 사람들이 싱싱한 물건을 가지고 와서 번개같이 모여 장이 형성되었고, 하루 내내 상가에서 물건을 파는 아주 큰 시장이었다. 훗날 상설시장이 되면서 가게를 가진 사람이 많았고, 급기야 1992년에는 주상복합 상가형 시장이 만들어졌다. 이로 인해 봉의산 아래 근화동에는 번개시장이 형성됐다.
기와집이 형성된 탓에 그와 어울리는 드라마와 영화 제작도 많이 이뤄졌다.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첫사랑>과 <겨울연가> 등의 작품이다. 특히 <겨울연가>에 나오는 준상이의 집은 인기가 많았다. 일본과 중국 그리고 동남아 사람들이 이 드라마를 보고 우리나라를 방문해서 한때 한국 관광의 가장 큰 붐을 조성할 정도였다. 우여곡절 끝에 준상의 집 관광 붐은 금방 사그라졌지만, 정말 한 시대를 떠들썩하게 했던 적이 있다.
<잊혀진 요선터널>
기와집골을 연결하는 도로 중에는 요선터널도 있었다. 봉의산 자락이 낙원동 미미기고개까지 이어졌던 시절이다. 요선터널은 1971년에 관통되었는데 폭 12미터 길이가 150미터였다. 터널 위에는 집들이 옹기종기 들어서서 또 다른 낭만이 있었다. 터널로 이어지는 길가에는 상가가 빈틈없이 늘어서서 물건을 팔았다. 이때만 해도 인도 차도가 따로 형성되지 않았으니, 언제나 사람들로 붐볐다. 터널을 지나면 물이 뚝뚝 떨어지고, 겨울이면 고드름이 가득 달렸다. 아파트가 가득 들어선 지금 그곳을 지날 때마다 요선터널이 그리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