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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재 ;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원저 ; 12연기 강론 -모곡 사야도 / 강의 ; BBS불교방송 -상좌 불교 한국 명상원 원장 묘원 |
0. 12연기 도표를 보는 방법
12연기는 부처님께서 현재의 자신의 모습에 대한 바른 이해를 할 수 있도록 설명하신 내용입니다.
과거의 하나의 물질적 정신적현상(신구의 3업)이 원인이 되어 그것이 익으면 현재에 어떤 한 결과를 만듭니다. 그리고 그 결과가 사라지면서 그 다음 순간의 새로운 원인이 됩니다. 이 원인은 미래에 새로운 한 현상으로서의 결과가 만듭니다.
즉 우리가 '나'라고 알고 있는 물질과 정신의 흐름을 원인과 결과로 표시한 것으로, 일생의 윤회와 매순간의 윤회를 중층적으로 설명하신 것입니다.
우선 12개의 12연기의 요소를 네 부분으로 나눕니다.
도표에서 1. 2. 3. 4.번 칸으로 나누어보면 각각의 칸마다 특성이 있습니다.
1번 칸은 과거의 원인입니다.
과거에 이미 무명이 바탕이 되어 업을 지었고, 그것이 다시 현재의 원인이 되는 무명과 행이 있는 칸입니다.
2번 칸은 현재의 한 결과의 모습입니다.
즉 1번 칸의 원인에 의한 현재의 한 결과로서의 모습인 식, 명색, 육입, 촉, 수가 있는 칸입니다. 이 다섯요소는 12연기적 오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현재 자신의 몸과 마음을 표현하기 때문입니다.
3번 칸은 현재의 새로운 결과이면서 미래의 원인이 되는 칸입니다.
즉 2번 칸의 몸과 마음을 나의 것으로 집착하여 새로운 업을 일으키는 칸입니다. 다시 말하면 2번 칸의 현재의 결과에서 다시 새로운 물질적 정신적 현상으로 갈애(愛), 집착(取), 업을 생성하는 유(有)로 진행하는 칸입니다. 이 업의 생성이 다시 미래 생의 원인이 됩니다. 또한 이생에서는 다음 순간의 원인이 됩니다.
4번 칸은 미래입니다.
3번 칸의 애 취 유가 원인이 되어 미래의 생과 노사가 있는 것을 표현하는 칸입니다. 3번 칸에서 4번 칸으로 가는 것은 이생에서 다음생의 윤회이고, 3번 칸인 지금 이 순간의 애 취 유가 원인이 되어 다음 순간의 새로 일으키는 마음인 식으로 진행하는 것은 현생에서의 매순간의 윤회입니다. 다시 생긴 새로운 식은 즉시 명색, 육입, 촉, 수로 진행되어 매순간의 윤회를 이끌어갑니다.
이 도표는 윤회의 원리를 중층적 구조로 설명하고 있으며, 고성제와 집성제의 연기를 설명하며. 그 이면에 도성제와 멸성제를 보여줍니다.
이와 같이 윤회는 한 생의 윤회가 있고, 찰나생멸하면서 흐르는 매 순간의 윤회가 있으며, 이 도표에서 윤회를 벗어나는 지점이 표시되어 있습니다.
1. 연기의 중심 축은 무명과 갈애
12연기 도표의 중앙에 자리 잡고 있는 무명과 갈애를 보라.
우리는 하루하루 순간순간을 무엇을 하며 살고 있는가? 여섯 감각기관이 여섯 대상을 만나면 대상을 인식하고, 좋아하고 싫어하고, 그것이 어떤 것이라고 판단분별하고, 그래서 나에게 이익이 있으면 좋아하는 마음을 일으키고, 이익이 없을 것 같으면 싫어하는 마음을 일으켜, 즉시 신구의(身口意)로 업을 지으면서 매 순간을 이어가고 있다.
그러므로 이것은 내가 사는 것이 아니다. 오온의 상호 연기적 작용으로, 한 순간의 물질적 현상과 정신적 현상이 일어났다 사라지는 오온의 생멸의 연속으로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것을 “나의 삶”이라고 처음부터 잘못 알고 있다. 시작부터 무명이다.
여기에서 분명한 것은 우리들은 몸과 마음을 나, 나의 것, 나의 자아라고 알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온 근본 무명이다.
이 무명은 우리의 눈을 가려 좋은 것을 안 좋은 것으로 알게하며, 오히려 나쁜 것을 즐겁고 좋은 것으로 알게 하며, 끊임없이 나의 만족감을 위한 갈애를 일으키도록 부추기고 있다. 다시 말하면 바른 견해(지혜)가 없기 때문에 갈애를 일으킨다. 눈을 뜨지 못해 잘 몰라서 그런 것이다.
이렇게 무명과 5관으로 추구하는 갈애가 한 순간을 만들고, 다시 그 과보로 다음 순간이 다시 일어난다. 그러니까 12연기를 돌리는 윤회의 핵심은 무명(어리석음. 컴컴함. 잘못알고 있음. 모르는 것)과 갈애이다.
12연기의 시작은 무명인데 이 무명은 과거 언제인지도 모르는 그때부터 이 순간까지 나의 몸과 마음을 지배하고 있다. 이 무명을 우두머리로 하여 갈애가 작동되고 그래서 행한 업이 다시 어리석음을 키우고 다시 갈애를 불러들인다.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끊도록 부처님께서는 12연기 법을 설하신 것이다.
그러니 우리의 윤회의 주범은 무명과 갈애이며, 그 심부름꾼은 업이다. 만일 무명과 갈애가 지혜와 집착 없음으로 바뀌면, 이어서 심부름꾼인 업이 소멸되고, 그래서 윤회를 벗어나는 열반에 들어가게 된다.
다시 말하면 무명과 갈애의 소멸을 위해서 지혜를 일으키는 수행을 하여 지혜가 생기면 자연스럽게 제법(오온)의 무상, 고, 무아를 통찰하고, 쓸데없는 집착을 놓게 된다.
이렇게 지혜를 일으키는 과정을 몸소 닦아나가고, 집착 없음을 직접 체험할 때 부처님의 가르침이 완성되는 것이다. 이런 실천이 따르지 않는 부처님의 가르침은 언어나 관념일뿐, 화려하고 고상한 장식품일 뿐, 우리들에게 실재하는 진리가 되지 못하고, 번뇌를 소멸하는데 힘이 되지 못한다.
2. 과거[무명. 행] : 1번칸
12연기 도표의 1번 칸은 시간상으로는 과거이며, 과거에 지어 놓은, 그래서 현재를 만드는 원인이다. 또한 4성제의 측면에서 보면 괴로움의 원인인 집성제(集聖諦)에 해당하는 칸이다.
1번 칸의 구성요소는 무명과 행(업의 형성)이다. 그러나 그 바탕에는 갈애(愛)와 집착(取)과 업의 생성(有)이 깔려있다. 이것은 전생의 일도 되고, 또 이생에서는 이 순간 이전의 일로 과거에 뿌려놓은 씨앗들이다. 과거의 일이므로 현재에는 실재(實在)하지 않지만, 그 과거가 원인이 되어 현재가 된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이미 엎어진 물을 주워 담을 수는 없지만, 현재를 수용해야만 하는 이유를 찾을 수 있는 곳이 1번 칸이다. 그래서 1번 칸은 과거이며, 현재를 있게 한 원인이며, 괴로움의 원인인 집성제이다.
그럼 무명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자신이 어리석다는 말을 듣거나 스스로 어리석음을 인정해야 할 일 있으면 대단히 자존심이 상한다. 그리고 “내가 뭐 그리 어리석다는 말인가?”하고 화를 낸다. 그러나 알고 보면 이 세상에는 부처님과 아라한을 빼고는 무명이 없는 존재는 존재하지 않는다. 무명이 몸과 마음을 만드는 원동력이기 때문이다.
무명은 어리석음으로 컴컴한 것, 밝지 못한 것, 업의 인과를 모르는 것, 삼법인을 모르는 것, 고집멸도 4성제를 모르는 것이다. 사실 이렇게 모르는 것밖에 없는 것이 우리들의 본래 모습이다.
우리가 업의 인과를 철저히 알았다면 왜 감각적 욕망에 휘둘려 탐심과 진심을 낼 것인가?
우리가 무상, 고 무아를 철저히 알았다면 왜 매사에 내 것이라고, 나라고, 나의 자아라고 집착을 한 것일까?
우리가 오온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苦라는 고성제(苦聖諦)를 명확하게 알았다면 왜 지금보다 좀더 나은 다음 생을 은근히 기대하겠는가?
우리가 모든 괴로움의 원인이 갈애라는 집성제(集聖諦)를 알았다면 왜 매순간 갈애를일으키고 집착을 일으키는 것일까?
또한 괴로움을 완전히 소멸하는 멸성제가 있다는 것을 반신반의 하고 있지는 않은가? 열반은 부처님이나 실현하는 남의 나라 이야기쯤으로 미리 멀찍이 두고 있지는 않은가?
또한 괴로움을 소멸하는 길인 8정도를 이해하면서도 왜 열심히 수행을 하지 않는가?
그 이유는 단 하나! 무명 때문이다. 지혜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아직 지혜가 완성되지 못하고, 아직 어리석기 때문에, 무명이 그렇게 하도록 조정하기 때문에, 몰라서 그런 것이다. 아직 밝은 안목을 얻지 못하고 컴컴하기 때문에 길을 잃은 것이다. 그러나 지금부터 컴컴한 곳에 불을 밝히는 일을 시작하면 언젠가는 훤하게 밝힐 수 있을 것이다.
그럼 행은 무엇인가?
이와 같이 아직 이런 무명이 남아있는 한 우리는 갈애를 일으켜 다시 오온을 만드는 업을 형성할 수밖에 없다. 업의 형성이라는 행은 과거에 이미 지어서 쌓아놓은 자신만의 업력이다. 1번 칸의 무명과 행은 이 순간 직전부터 수없는 과거 생으로 거슬러 올라가서 이미 지어놓은 업이며, 형성된 그 업이 지금의 내 모습(오온)을 만드는 원인이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당장 이 업을 캐내거나 바꿔치기 할 수는 없다. 단지 지금 과거 업의 결과로 온 이 순간의 괴로움이나 행복을 나의 책임이라고 인정하는 일만 지금 할 수 있는 유일한 선업의 행(업의 생성. 3번 칸의 業有)이 된다.
만일 이때 지금의 괴로움에 싫어하고 화내거나, 또는 지금의 행복감에 너무 좋아하고 즐기려는 것은 지금 가장 잘못하는 행으로, 불선업의 씨앗을 다시 심고 있는 것이다.
그냥 있는 그대로 '지금 괴로운 느낌이 있구나!" 또는 "지금 행복한 느낌이 있구나!"하고 현재를 알아차려주는 것이 가장 선한 업의 씨앗을 심고 있는 것이다.
만일 누군가가 나에게 “아이쿠!, 이 어리석은 놈”하면 “그래 나에게 어리석음이 있었지” 하고 자신을 알아차리면, 그 순간 알아차린 만큼 어리석음에서 벗어나고, 그 자리에서 최고의 선업의 씨앗을 심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알아차림이 밝은 안목을 얻는 행이며, 바른 길을 찾아가는 것이며, 지혜가 성숙되어가는 과정이다.
3. 현재[식. 명색. 육입. 촉. 수] : 2번 칸
12연기 도표의 2번 칸은 현재입니다. 과거가 원인이 되어 생긴 현재의 결과로 지금 자신의 모습입니다. 사성제의 측면에서는 고성제(苦聖諦)에 해당합니다.
즉 과거(1번 칸)의 집성제가 원인이 되어 현재의 고성제로 나타났습니다. 과거의 무명과 행이 원인이 되어 식(識)이 생기고, 이 식이 원인이 되어 명색이 생기고, 이 명색이 원인이 되어 6입이 생기고, 이 6입이 원인이 되어 대상과 부딪치는 촉이 생기고, 촉이 원인이 되어 느낌인 수(受)가 생긴다는 것이 2번 칸의 개요입니다.
이것은 1번 칸의 무명과 행이 원인이 되어 2번 칸의 결과가 생기는 것으로, 이렇게 식(識) 명색(名色), 육입(六入), 촉(觸), 수(受)의 다섯 요소는 12연기적 오온이며, 이런 다섯 요소를 가진다는 것 자체가 괴로움인 고성제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2번 칸의 시작은 식(識)입니다. 이 식(識)은 아주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이 생을 처음 시작하는 재생 연결식의 식(識)일 경우도 있고, 이 생이 시작된 뒤에 일생동안 매순간 자신의 몸과 마음을 이끌어가는 선행하는 마음으로서의 식(識)일 경우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 식(識)의 질에 따라 몸과 마음이 매 순간 새롭게 생성소멸 되면서 흐릅니다.
재생연결식이 선심(善心)이면 인간이나 천인의 몸과 마음(名色)을 받게 되고, 불선심이면 그와 같은 세계인 4악도의 몸과 마음(名色)을 받게 됩니다. 재생연결식은 전생의 마지막 마음인 사몰심(死沒心. 전생의 무명과 행으로 결정되는 마음)의 과보로 일어나는 현생의 최초의 마음을 말합니다.
이런 내용은 아비담마 논장에 근거하여 말씀드립니다. 아비담마에는 몸과 마음을 완벽하게 분석하신 부처님의 가르침이 있습니다. 정신 세계는 비 물질이라서 쉽게 증명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부처님의 혜안으로 보신 몸과 마음에 대한 분석을 근거로 실제로 자신의 오온을 직접 알아차려 그것을 증명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아비담마에 근거를 두고 이어가 보겠습니다.
한 생의 시작을 일으킨 재생연결식도 찰나에 소멸하고, 즉시 존재지속심인 유분심이 일어납니다. 이 유분심도 찰나 생멸하면서 흐릅니다. 유분심이 흐르는 중에 6입과 6경이 촉하면 유분심은 잠간 끊기고, 현재의 대상을 아는 6식이 일어납니다.
이때 이 식(아는 마음)과 함께 일어나는 수상행의 질에 따라 그 순간의 마음의 질이 결정되고, 이 마음의 질에 따라 그 다음 순간에 일어나는 명색의 질이 결정됩니다. 그러므로 이 마음(識)은 이 생에서 매 순간을 오온을 생성하는 선행하는 마음이 되는 것입니다.
이생을 시작하는 재생연결식은 바로 전생의 마지막 마음인 사몰심이 원인이 되어 그 과보로 즉시 일어나는 마음입니다. 그러므로 새로운 한생을 결정하는 중요한 인자는 전생의 사몰심입니다. 그러나 이 전생의 사몰심도 전생의 일생동안 지은 업을 원인으로 일어납니다.
이와 같이 윤회를 거듭하는 이 삶은 끝없이 업의 원인과 결과로 이어지면서 흐르는 것일 뿐, 그 안에 ‘나’라는 것이 없습니다. 조건이 이것들을 일으키는 것이지 내가 일으키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이 순간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매순간 마다 선행하는 마음의 질을 탐진치에 물들지 않는 수상행을 일으켜서 계속 선심으로 유지하는 조건을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매순간 깨어있어 대상을 있는 그대로 보면, 마음(識)에 탐진치가 없고, 자연히 선한 명색이 만들어지며, 또한 선업을 행하게 됩니다. 이것이 이어지면 이생의 사몰심도 선심일 것이고, 그래서 그 과보인 다음 생의 재생연결식도 선심이 되는 것입니다.
부처님의 아비담마(논장. 법에 대하여, 몸과 마음에 대한 완벽한 분석)는 중생의 괴로움을 분석적으로 밝히셔서, 오직 중생들의 괴로움을 치유하실 목적으로 설하신 것입니다. 수행자는 직접 수행으로 몸과 마음에서 법(담마)을 확인하여 탐진치의 번뇌에서 벗어날 때 아비담마의 혜택을 보는 것입니다.
4. 현재[식. 명색. 육입. 촉. 수] : 2번 칸
식(識)은 명색(물질과 정신)의 원인이 됩니다. 매순간을 선행하는 마음이나, 한 생을 시작하는 최초의 마음인 재생연결식이나, 모두 그 마음에 의해 즉시 새로운 몸과 마음(名色)이 만들어집니다.
한 순간의 선행하는 마음이 즉시 새로운 몸과 마음을 만드는 예를 들어보면, 지금 어떤 대상에 대하여 화가나면 즉시 몸에서는 아드레날린이 분비되고 얼굴은 붉어지고 혈압은 올라갑니다. 이것은 화를 낸 마음이 즉시 새로운 몸을 만든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입니다.
또한 선한 마음으로 남에게 한잔의 차라도 대접하면 즉시 발걸음이 가볍고 기분이 상쾌해져 몸과 마음이 평온해집니다. 이것도 선행하는 마음에 의해서 새로운 명색(물질과 정신)이 결과로 나타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한 전생의 마지막 마음(사몰심)에서 집에서 키우는 귀여운 강아지를 생각하는 마음으로 죽으면, 사몰심을 원인으로 일어나는 재생연결식은 강아지를 좋아하게 되고, 그래서 강아지의 삶이 좋은 것이라는 무명이 일어나, 스스로 강아지의 삶을 선택하여 강아지의 몸과 마음을 받게 됩니다. 즉 강아지를 생각하는 마음이 강아지의 몸과 마음을 만드는 원인이 됩니다.
또한 죽을 때 색계 선정의 마음을 유지하면서 죽으면 그때의 사몰심은 색계 선정의 마음상태이므로 색계 천인의 몸과 마음을 결과로 받게 됩니다.
이렇게 식(識)은 12연기에서 아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합니다. 우리가 수행을 하는 것도 매 순간 알아차림으로 선심을 유지하여 선한 몸과 마음으로 계속 선업을 쌓아가는 것에 의미가 있습니다.
그 결과로 이생에서도 선한 몸과 마음을 유지하고, 죽을 때도 선한 사몰심으로 선한 재생연결식을 가질 수 있는 힘을 키우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생의 수행의 힘이 미래의 생을 이생보다 높은 질을 가질 수 있게 합니다. 이것이 수행의 이익이며, 열반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입니다.
이렇게 생긴 명색(정신과 물질)에는 당연히 6입이 있습니다. 이 6입은 안이비설신의(眼. 耳. 鼻. 舌. 身. 意)의 여섯 감각기관을 말합니다. 즉 명색을 원인으로 6입이 있습니다.
이 여섯 감각기관은 외부의 정보를 받아들이는 문(門)이지만, 보통의 경우 번뇌(탐진치)를 받아들이는 문이 됩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6입(6문)을 몸의 상처로 비유하셨습니다. 6입으로 들어온 번뇌는 상처를 덧나게하여 몸과 마음을 병들게 합니다.
그러므로 수행자가 6문을 알아차림으로 지키는 것은 상처가 덧나지 않게 막는 것으로, 번뇌를 차단하여 몸과 마음을 보호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6입이 있는 한 6경과 촉할 수밖에 없고, 그때 대상을 아는 마음과 함께 느낌이 동시에 일어납니다. 6입을 가지고 살아가는 존재는 6경의 대상과 촉하지 않고 살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6입이 원인이 되어 6경과의 접촉이 있고 6식과 더불어 느낌(受)이 있습니다.
5. 현재 [식. 명색. 육입. 촉. 수] : 2번 칸
이렇게 6입과 6경이 접촉하면 대상을 아는 마음과 동시에 반드시 느낌이 함께 일어납니다. 즉 촉을 원인으로 수(受. 느낌)가 일어납니다. 이 느낌은 덤덤한 느낌, 좋은 느낌, 싫은 느낌, 갈애와 혐오의 느낌 등등이 생깁니다.
이 느낌은 바로 괴로움입니다. 우리들은 보통 느낌의 노예로 살고 있습니다. 좋은 느낌은 반드시 추구하려고 하며, 만일 얻게되어도 사라지며, 다시 더 좋은 느낌을 추구합니다. 만일 얻지 못하면 그것 자체가 괴로움입니다.
즉 느낌의 추구는 만족이 없기 때문에 모든 느낌은 괴로움입니다. 생멸하기 때문에 괴로움입니다. 내가 조절할 수 없어 괴로움입니다.
그러나 알아차림을 하는 수행자는 6입과 6경과 6식의 접촉으로 일어나는 느낌을 단지 느낌으로 있는 그대로 알아차립니다. 이 말은 느낌을 내가 느낀 것이 아닌, 그 순간 감각기관이 느낀 느낌으로 객관적으로 알아차립니다. 다시 말하면 나의 느낌이라고 집착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이 느낌도 오온과 함께 생멸하므로 알아차림이 붙으면 즉시 그 느낌의 변화나 사라짐을 알 수 있어 느낌을 집착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느낌을 객관화해서 단지 느낌으로 본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동안 살아온 습관과는 아주 반대의 습관을 들여야 하는 것이므로 강한 노력이 뒤따르지 않으면 실패하고 어느새 느낌을 집착하게 됩니다. 그래서 신수심법 4념처를 반복하는 위빠사나 수행이 필요합니다.
만일 이미 느낌에 넘어가서 괴로워진 뒤에라도, 지금 그 느낌을 좋아하고 있었구나 하고 알아차려 빠져나오기를 수없이 반복해야, 느낌을 있는 그대로 보는 지혜가 성숙되고 웬만한 좋은 느낌에도 그 느낌이 나의 것이 아닌 줄 알아, 그냥 느낌자체로, 있는 그대로, 느낌의 생멸을 볼 수 있는 힘이 생깁니다. 이때 느낌의 생멸을 보고 무상의 지혜가 싹트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 2번 칸은 누구나 공통으로 가지고 있는 현재의 우리모습입니다. 이생에 사람으로 태어났으면 여기까지는 바꿀 수 없는 멍에입니다. 누구라도 예외는 없습니다.
매순간 일어나는 식(識)에 의해 몸과 마음(名色)이 영향을 받고, 다시 오관이 작용하여 새로운 번뇌거리를 받아들이는 일은 누구에게나 공통으로 일어나는 일입니다. 또한 2번 칸의 다섯 요소는 자꾸 3번 칸의 갈애와 집착과 업을 생성 하도록 요구합니다. 12연기적 오온인 식, 명색, 육입, 촉, 수는 알아차림이 없는 순간 이미 느낌에서 갈애로 넘어가 애, 취, 유로 만족을 취하도록 자꾸 채찍질을 합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12연기를 이해한 사람들과, 대상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는 위빠사나 수행자들은 느낌을 그냥 느낌이라고 있는 그대로 보는 수행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느낌에서 다음 과정인 갈애로 넘어가는 것을 차단하고, 느낌의 무상과 괴로움과 실체 없음을 통찰하여 깨달음으로 가는 8정도 수행을 하는 것입니다.
이런 알아차림의 힘으로 모든 번뇌를 소멸한 깨달음인 열반에 들어가려는 작업을 하는 것이 위빠사나 수행이며, 8정도를 실천하는 것입니다.
12연기 도표를 참조해보십시오. 느낌과 갈애사이에 “윤회에서 벗어나는 길”로 난 화살표가 있습니다. 위빠사나 수행자는 이 방향을 향해 자신을 다스려 갑니다.
6. 현재 [갈애. 집착. 업의 생성] : 3번 칸
12연기 도표의 3번 칸은 시제로는 현재이며, 2번 칸의 식, 명색, 육입, 촉, 수(오온 - 고성제)가 원인이 되어 새로운 집성제를 일으키는 칸입니다. 3번 칸의 요소는 애, 취, 유로 세 개이지만 그 바탕에는 무명과 행이 받쳐주고 있어 사실은 다섯 요소가 3번 칸을 만들어갑니다.
2번 칸의 식, 명색, 육입, 촉, 수는 가만히 있지 않고 자동적으로 갈애와 집착과 업을 생성하도록 무명과 행이 부추깁니다. 그래서 2번 칸의 오온을 나의 것으로 집착하여 현재의 대상에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것으로 반응하며, 그것을 꼭 이루려는 집착을 하고, 그런 마음에 의해 말과 행동으로 업을 지어 현재에 다시 새로운 업을 만듭니다.
갈애는 현재의 대상에 단지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것으로 대상을 추구하는 마음입니다. 그러나 집착은 현재의 대상을 자신에게서 떨어지지 못하도록 자신에게 묶어두는 것입니다. 마치 뱀이 파리를 채가듯이 그 대상을 취착하는 것입니다. 이런 집착은 어느새 말과 행동으로 표현되며 신업과 구업을 짓게 됩니다.
일단 이렇게 업을 지으면 그 업을 일으킨 마음은 사라졌지만, 그 업의 힘은 미래를 만드는 씨앗이 되어 과보의 원인으로 저장됩니다. 즉 나의 것이 되어 과보로 나타날 준비를 하고 있다가 때가 되면 익어서 어느 날 나에게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죽을 때 몸만 버리고 마음을 가지고 가는 것이 아닙니다. 이 생에서 함께했던 몸은 물론 마음도 함께 소멸되고, 3번 칸의 업이 원인이 되어 새로운 몸과 마음으로 4번 칸인 미래(생. 노사)로 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음 생으로 나를 따라가는 것은 이생동안 쌓은 선업과 불선업의 업력만 따라 간다는 것입니다. 즉, 죽을 때 가져가는 재산은 이 생에서 지킨 계율을 가지고 간다는 것입니다. 가져가는 계율의 양이 많으면 다음 생은 그만큼 풍부해질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알아차림(8정도 수행)을 하면 이미 그 순간 계율을 지키고 있는 것입니다. 알아차림은 현재의 대상을 있는 그대로 보게하는 마음의 작용이므로 알아차림을 하는 순간 정어, 정업, 정명이 함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알아차림이라는 미래의 행복을 가져오는 심소를 누구나 가지고 있습니다. 다만 이것을 계발하느냐, 잠자게 두느냐의 차이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생의 업력에 의해 저절로 다음 생을 받게 됩니다. 여기에는 전혀 어떤 다른 절대자의 힘이 미칠 수 없는 것이며, 오직 원인과 결과, 씨앗과 열매라는 자연 법칙(法. 담마. 佛法)만이 존재합니다.
7. 현재 [갈애. 집착. 업의 생성] : 3번 칸
또한 3번 칸의 애, 취, 유는 2번 칸의 현재의 오온에도 즉시 영향을 줍니다. 2번 칸과 3번 칸에는 양방향 화살표가 있습니다. 지금 일으킨 애, 취, 유에 의해 즉시 다음 순간 새로운 몸과 마음이 일어납니다.
예를 들면, 6입에 어떤 대상을 촉하는 순간 좋은 느낌이 일어나고 갈애에 의해 집착이 일어나고 그것을 이룰 수 없어 화를 내는 업을 생성하였다면, 화를 낸 마음은 즉시 2번 칸의 식(선행하는 마음)이되고 이 식은 화로 인한 명색을 만듭니다.
그래서 혈압이 오르거나 신경성 소화불량이 나타날 것입니다. 이와 같이 2번 칸의 오온은 3번 칸을 만들고, 다시 3번 칸의 애, 취, 유는 다시 2번 칸의 오온이 생기도록 영양을 공급하여 2번 칸을 활성화 시킵니다.
이렇게보면 이생에서는 2번 칸은 등잔불의 심지이며 3번 칸은 등잔불의 기름입니다. 심지와 기름은 서로를 활성화해서 불을 계속 생성합니다. 만일 3번칸의 기름이 떨어지면 2번칸의 심지만으로는 등잔불을 만들 수 없습니다.
이와 같이 2번 칸과 3번 칸이 양 방향으로 서로 영향을 주며 윤회를 매 순간 이어가기도 하지만 2번 칸과 3번칸 사이에서 윤회를 끊을 수도 있습니다.
수행자는 2번 칸의 느낌에서 알아차림을 하여 갈애로 넘어가지 않으면 매우 좋겠지만, 이미 알아차림을 놓치고 갈애로 갔더라도 집착으로 가지 않아야 하고, 이미 집착으로 갔다면 행위를 하기 직전에라도 알아차려 불선업을 제어해야만 합니다. 그래야 선한 미래를 만들 수 있습니다.
알아차림의 힘은 불선심(탐진치)을 빨리 알아차려 불선업을 막아주고, 선심(관용, 자애, 지혜)으로 선한 행위를 하게 합니다. 그러나 수행자는 그 선업조차도 다시 알아차려 나의 것이 아님을 통찰 할 수 있어야 최고의 선업인 윤회의 원인을 제거하게 됩니다. 이런 과정을 말로 풀어서 쓰니까 복잡해졌습니다.
사실은 최고의 선업을 행하는 것이 매우 간단합니다. 수행자가 알아차림을 제대로 하고 있으면, 그 순간은 대상과 아는 마음만 있는 상태로, 이미 업이 되지 않는, 작용만 하는 마음의 상태, 최고의 선업의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선심도 불선심도 찰나 생멸하는 것일 뿐, 거기에는 나(我)라는 유신견이 붙어있지 않는 상태입니다.
이와 같이 수행이라는 것은 알아차림(sati. 正念)으로 3번 칸의 갈애(愛), 집착(取), 업의 생성(有)을 선업으로 정화하는 것입니다. 비록 2번 칸의 오온이 있더라도 3번 칸으로 진행되지 않도록 알아차리는 것이 3번 칸을 정화하는 것입니다.
수행자는 최소한 3번 칸에서 애, 취, 유의 불선업을 미리 알고 제어만해도 그 다음에 일어나는 4번 칸의 생(生)이나 2번칸의 식(識)은 선한 몸과 마음을 만들어 주는 원인이 됩니다.
8. 미래 [생. 노사] : 4번 칸
12연기 도표의 4번 칸은 시제로는 미래입니다. 12연기 도표는 과거, 현재, 미래가 어떤 인과로 이어지는가를 설명한 것입니다. 3번 칸에서 지금 업을 생성하면 반드시 그 과보로 미래가 나타날 준비를 지금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4번 칸은 미래에 갖게 되는 결과로서 식, 명색, 6입, 촉, 수가 4번 칸에 함께 들어있습니다.
도표에서 4번 칸을 보면 생과 노사가 요소로 들어있습니다. 3번 칸의 업의 생성이 원인이 되어 생이 있고, 생이 있으므로 반드시 노사가 뒤따라옵니다. 다음의 생이 있다는 것은 식, 명색, 6입, 촉, 수라는 오온을 가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온을 받는다는 것 자체가 괴로움입니다. 왜냐하면 4번 칸의 생과 노사사이에 항상 우비고뇌가 오온과 함께 따라다닙니다. 이것이 일생의 윤회입니다.
그러므로 4번 칸은 고성제입니다. 12연기를 공부하는 것은 이런 원리를 알아 윤회의 원인을 심지 않고 윤회라는 결과를 받지 않는 지혜를 키우는데 목적이 있습니다. 윤회의 원리는 원인과 결과라는 조건에 의해 이어집니다.
이처럼 원인과 결과라는 조건을 분명하게 인식할 때, 이 조건들의 속박에서 벗어나는 길을 분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원리를 알지 못하면 초월적인 힘을 가진 존재를 설정하고 그곳에서 행복을 얻으려는 어리석은 욕망을 가지게 됩니다.
우리가 말하는 과거 현재 미래는 매순간 자리를 바꿉니다. 이순간의 현재는 즉시 과거가 되고 미래가 현재로 이 자리에 나타납니다. 수행자에게는 과거나 미래는 만날 수 없는 것으로 실재가 아닙니다. 오직 이 순간이라는 현재만 실재하는 것입니다.
즉 알아차림이 있는 순간의 현재만이 실재입니다. 그러므로 현재라는 순간에 알아차림이라는 행을 일으켜 깨어있음을 유지하는 것만이 현재를 온전히 소유하는 것이며 가장 잘 사는 것입니다. 그리고 윤회의 씨앗을 심지 않는 것입니다.
보통은 마음이 무명에 가리고 갈애에 휘둘려 현재를 놓치고, 과거나 미래에 마음을 두어 실재하지 않는 과거 미래를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과거를 후회하거나 미래를 근심 걱정하거나 또는 헛된 망상으로 항상 들떠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수행자는 마음을 오직 현재에 두고 사는 사람입니다. 마음이 현재의 자신의 몸과 마음을 알아차립니다. 그럴 때 마음이 평온하고 안정되어 지혜가 일어나 불선업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수행자는 현재를 놓치지 않고 실재하는 현재를 대상으로 살아갑니다.
1번 칸과 2번 칸 사이, 2번 칸과 3번 칸 사이, 3번 칸과 4번 칸 사이에는 양 방향 화살표가 있습니다. 서로 찰나의 간격으로 영향을 주고받는 것입니다. 그러나 4번 칸과 1번 칸 사이에는 양방향 화살표가 없습니다.
4번 칸의 노사에서 이생의 마지막 마음인 사몰심이 사라지는 순간 완전히 새로운 몸과 마음을 일으키는 재생연결식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개체의 동질성이 유지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6도를 윤회하는 것입니다.
재생연결식이나 사몰심은 일생에 한 번만 일어나는 마음입니다. 재생 연결식의 마음은 새로운 생으로 윤회할 때 찰나에 일어났다 사라지고 나머지 일생동안은 유분심(바왕가)이 생멸하면서 상속됨으로서 개체의 동질성이 유지됩니다.
만일 재생연결식이 사람이라면 이 생의 사몰심이 일어날 때 까지 일생동안 유분심은 사람의 형태와 사람의 마음을 유지합니다. 만일 축생이라면 축생의 형태와 축생의 마음을 유지하는 유분심이 죽을 때까지 생멸하면서 흐릅니다.
9. 세 가지 굴레
12연기를 돌리는 세 가지 굴레
12연기 도표를 보면 윤회를 돌리는 원리를 굴레의 측면에서도 보여줍니다. 그것이 세 가지의 굴레입니다. 번뇌의 굴레, 업의 굴레, 과보의 굴레입니다.
도표에 번뇌의 굴레와 연결된 화살표를 따라가 보면 과거인 1번의 무명과 현재인 3번의 갈애(愛)와 집착(取)이 함께 연결되어있습니다. 즉 번뇌의 굴레라는 것은 과거의 무명을 우두머리로 하고 현재의 갈애를 동반자로 집착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업의 굴레는 도표에서 보면 과거인 1번의 행(업의 형성)과 현재인 3번의 업의 생성(업유, 有)입니다. 이것은 번뇌의 굴레가 원인이 되어 업의 굴레로 발전하는 것입니다.
과보의 굴레는 4번 칸인 미래의 결과 칸에 있는 8가지입니다. 생, 노사. 생유. 식, 명색, 6입, 촉, 수는 과보로 일어나는 요소입니다. 즉 번뇌의 굴레로 인해 업을 형성하고, 그 업의 굴레가 익어서 과보로 나타나는 것이 오온이라는 몸과 마음으로, 즉 2번칸과 4번칸은 과보의 굴레입니다.
12연기 도표의 핵심은 윤회를 벗어나는 곳인 2번 칸과 3번 칸 사이의 윤회에서 벗어나는 길이라는 화살표입니다. 그곳에 4성제가 들어있습니다. 즉 사성제의 네 번째 도성제인 8정도 위빠사나 수행만이 윤회에서 벗어나는 길로 안내를 한다는 것입니다. 2번 칸의 느낌(受)에서 3번 칸의 갈애(愛)로 넘어가지 않고 그 사이 길로 빠진다는 것이 12연기의 핵심입니다.
이런 12연기는 불교 서적이나 도표안에만 있는 관념적인 것이 아닙니다. 실제 우리생활에서 매 순간 원인과 결과로 12요소가 흘러가면서, 어떻게 번뇌가 일어나고, 업이 일어나고, 과보로 굴러가는지, 조금만 자신을 알아차리면 확인 할 수 있는 실재(實在)입니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공덕이 없는 탐진치의 행위를 하면 그 과보로 4악도에 윤회하고, 공덕이 있는 선업을 행하면 인간계나 욕계 천상으로 윤회하고, 색계선정이나 무색계 선정을 닦는 사마타 수행을 하면 더 높은 천상인 색계천상이나 무색계 천상으로 윤회를 합니다.
물론 4악도보다는 인간계나 천상이 좋지만 이것도 윤회를 끊지 못한 것으로 생노병사의 고통이 있습니다. 더구나 사마타 수행으로 더 높은 천상인 색계나 무색계 천상에 태어난다 해도 윤회를 끊지 못한 것은 마찬가지 입니다. 그래서 어디에든 태어난다는 것은 노사(老死)의 원인이 됩니다. 천상에서의 생을 마친 뒤에 다시 태어나는 곳이 4악도가 아니라고 장담할 수 없습니다.
오직 위빠사나 수행으로 수다원 도과를 성취한 경우에만 4악도를 면합니다. 또한 아라한의 지혜를 성취하면 완전히 윤회를 벗어납니다. 그러므로 윤회를 벗어나는 길은 반드시 위빠사나 수행을 해서 통찰지혜가 생겨야 가능한 것입니다.
위빠사나 수행은 12연기의 중심축인 무명과 갈애를 몸과 마음을 있는 그대로 통찰한 지혜에 의해 제거하므로서, 윤회를 돌리는 수레의 중심 축을 부수고 윤회의 수레바퀴를 멈추어 윤회를 돌리지 못하게 합니다.
부처님께서는 오온을 가진다는 것이 괴로움임을 설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원인은 1번 칸과 3번 칸의 집성제인 무명, 행, 갈애, 집착, 업의 생성임을 가르쳐주셨습니다.
그리고 4념처 수행으로 느낌에서 갈애로 넘어가지 않는 도성제(8정도 위빠사나 수행)를 닦을 것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래서 누구라도 완전한 궁극의 행복인 열반을 성취하여 멸성제를 완성하라는 것이 부처님 가르침의 핵심입니다.
그러나 이미 태어날 때부터 무명을 가진 우리는 연기(緣起)를 이해하지 못하고, 유신견과 상견과 단견을 가지고 있어서 도성제인 위빠사나 수행을 바르게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12연기는 자신의 몸과 마음을 나의 것으로 아는 유신견에서 벗어나 바른 견해를 갖게 해줍니다. 수행자는 유신견이 없어야 몸과 마음의 성품을 있는 그대로 통찰할 수 있고, 그 결과로 법을 보고, 집착을 끊어 열반에 이를 수 있습니다.
이상으로 12연기에 대한 개략적인 설명을 말씀드렸습니다. 이 내용은 모곡 사야도의 12연기 법문집인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와 우 소바나 사야도의 법문집인 “12연기와 위빠사나”라는 책을 근거로 작성한 것입니다. 좀더 연기에 대한 공부를 원하시는 분은 위의 두 가지 책을 참고삼아 수행과 더불어 더 깊은 공부를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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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初期佛敎 - 12緣起와 위빠싸나 12연기 도표 & 해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