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2년 총독부, 금속 회수에 강제권 발동. 🌱1945년 미육군 제24군단, 제7보병사단, 한국 도착-하지 장군의 지휘를받는 미군 인천상륙 🌱1945년 한글학회가 일제에게 압수 당했던 큰사전 원고, 서울역 창고에서 발견 🌱1948년 국회, 연호를 단기로 결정 🌱1950년 미 국방부, 인천상륙작전을 승인 |
🌱1955년 9월 8일 아데나워 서독 수상, 2차대전 후 처음으로 소련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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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데나워(Konrad Adenauer) |
🌱1966년 도덕재무장(MRA) 아시아대회 개막 🌱1971년 국토종합개발계획 발표 🌱1972년 국립과학관 준공 🌱1979년 서울 민사지방법원, 신민당 총재단 직무 정지 가처분 결정 🌱1979년 한글학회에서 '한글 글자꼴 연구모임' 열어 🌱1982년 부산대, 경남 합천군 쌍책면 사양리에서 세계 최대의 이암 자연동굴 발견(460m) 🌱1983년 제118회 임시국회, 소련의 KAL기 격추 만행에 대한 규탄결의 🌱1984년 보건사회부, 보신탕 판매금지 지시 🌱1987년 바르코 콜롬비아 대통령 내한 🌱1988년 북한 김일성, 고려연방제 통일 안을 논의 하기 위해 평양서 남북정상회담을 개최 제의 🌱1988년 교통부, 올림픽 기간 중 KAL기 소련영공 통과 소련정부와 합의 🌱1988년 국방부, 방위성금 폐지 결정 🌱1989년 헌법재판소, 국회의원 후보 기탁금제도 위헌 결정. 14대총선부터 폐지 🌱1989년 6·25 휴전회담 북한측 부대표 지낸 이상조씨 서울 방문 🌱1989년 안기부, 임수경양 밀입북 사건 수사결과 발표. 북한에서 조종-관련자 63명검거, 19명구속, 4명 수배 🌱1989년 MBC노조 전면 파업에 돌입 🌱1989년 한미 유자망 어업협상 타결. 한국어선에 미국 감독관 승선 허용 🌱1989년 제주에 250mm 폭우, 고교생 5명 사망 실종 🌱1990년 영국의 세기적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박사(48·영국 캠브리지대 교수) 방한. - 전체 물리학자. 🌱1991년 호화 별장 전국 확산 파문 🌱1992년 대법원, 14代총선 서울 노원을구 민자당 김용채 당선무효와 함께 임채정 후보의 당선확정 선고 🌱1992년 대전지검, 마포구 용강동 민주당사에 경찰투입 한준수 전 연기군수를 강제로 구인. 🌱1993년 한국에너지기술연구소, 북제주군 한림읍 월령리 해안가에 바람 이용한 풍력발전 시범단지 착공식 🌱1995년 경부선 옥천-세천 삼거리 철도건널목 사고 사망 1명, 부상 43명 🌱1997년 진로 그룹 6개 계열사, 일제히 부도 |
🌱1998년 9월 8일 ‘메조소프라노 대모’ 성악가 이정희씨 별세
광복 후 제1세대 외국유학파 성악가 이정희씨. | 1998년 9월 8일 한국 메조소프라노의 대모 이정희씨가 별세했다.
광복 후 외국유학을 다녀온 1세대 성악가로, 1950∼1970년대 한국을 대표하는 메조소프라노로 활약했다.
1950년 현제명 오페라 ‘춘향전’을 시작으로 국립오페라단원 시절 한국초연 오페라 메조소프라노 배역 70% 정도를 그가 소화해냈다.
이씨가 출연한 주요 오페라는 ‘카르멘’ ‘춘향전’ ‘가면무도회’ ‘리골레토’ ‘파우스트’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 등이다.
연간 20편씩 오페라 무대를 누비는 외에 베토벤 합창교향곡 솔리스트, 가곡 무대서도 이름을 날렸다.
이씨는 서울대 음대를 거쳐 미국 줄리아드음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1961년 서울대 음대 전임강사를 시작으로 32년간 교수로 재직하면서 메조소프라노 윤현주, 백남옥, 소프라노 박정원, 김인혜 등 제자를 길러냈다.
재미 소프라노 신영옥도 이씨에게 배웠다. 이씨는 타계를 앞두고 소장 악보와 음악서적 일체를 서울대 음대 성악과에 기증했다. |
🌱2002년 9월8일 ‘오아시스’ 이창동 감독 베니스영화제 감독상 수상 한국의 영화감독인 이창동은 1954년 대구에서 출생했다. 그는 경북대 사범대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1981년부터 1987년까지 교단에서 국어선생님으로 학생들을 가르쳤다. 교사 재직시절 소설 <전리>가 198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면서 소설가로 활동하면서, 10여편의 연극도 무대에 올리는 등 다양한 장르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였다.
소설가로 주목받던 이창동은 1993년 박광수 감독의 <그 섬에 가고 싶다>(1993)에 연출부와 시나리오 작업에 참여하면서 영화계에 입문하였다. 이 영화에 참여하면서 이창동은 박광수 감독에게 영화 연출의 기본기를 배우면서, 박광수의 다음 작품인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1995)에도 함께 작업을 하였다. | 그는 이 영화에서 시나리오 작업에 참여하였고, 이것으로 제32회 백상예술대상에서 영화부문 시나리오상을 수상하였다.
이창동은 영화를 찍고 싶어서라기보다는 소설을 쓰면서 느끼던 회의감에서 탈출하고 싶어서 영화 현장에 들어갔다. 그래서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의 시나리오 작업을 마치고 첫 영화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원래는 <박하사탕>(1999)을 첫 영화로 구상하고 있었으나 주변의 만류에 의해 자작 시나리오 <초록물고기>(1997)를 가지고 1997년 감독 데뷔를 하게 되었다.
그리고 자신이 각본을 쓰고 연출했던 <초록물고기>를 통해 데뷔작부터 평단의 주목을 받는 감독이 되었다. |
🌱2002년 9월8일 완벽하게 보존된 미라상태의 436년전 사대부 부인 사체 발굴 공개
▲경기도 파주시 교하읍 당하리 파평 윤씨 묘역에서 436년만에 환생한 `미라여인` 발굴 모습. | 경기도 파주시 교하읍 당하리 파평 윤씨 정정공파 묘역에서 태아와 함께 미라가 된 사대부 부인의 사체가 발굴돼, 2002년 9월 8일 처음 공개됐다.
미라여인은 첩의 딸로 태어나 첩으로 시집간 것으로 추정됐다. |
🌱2004년 9월 8일... 1909년 일본이 제작한 지도에서 ‘간도는 조선땅’ 증거 발견국사편찬위원회 1909년 일본이 제작한 지도서 두만강이북 '간도는 조선 땅'증거 찾아내 공개
| 일본이 간도(間島)지역을 중국에 넘겨준 ‘청·일 간도협약’의 바탕이 됐던 ‘토문강=두만강’설을 정면에서 반박하는 지도가 발견됐다.
‘토문강(土門江)’을 두만강(豆滿江)이 아닌 별개의 송화강 지류로 분명히 밝힌 이 지도는 1909년 ‘청·일 간도협약’ 당시 일본측이 만든 것으로 ‘조선과 청의 국경인 토문강은 두만강의 또 다른 이름’이라고 줄곧 주장해온 중국에 대한 중요한 반박자료일 뿐 아니라 간도가 조선 땅이었음을 밝히는 결정적 자료로 주목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