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결혼
이성원
뜨겁던 여름 길 위에서 피어난 인연이
이제 '부부'라는 이름으로 한 지붕 아래 깊은 뿌리를 내리는구나
익숙함이라는 안개에 가려 서로의 귀함을 놓치는 일 없도록
어제보다 오늘 더 지극한 마음으로 서로를 보듬어라
처음 가졌던 그 떨림을 등불 삼아 어둠이 올 때는
스스로 별이 되고 달이 되어 서로의 앞길을 환히 밝혀주려무나
살다 보면 비바람에 마음 시린 날도 있겠지만
둘이 마주 보는 눈 길이 곧 햇살이고 정원이니
꽃 한 송이 피우듯 귀하고 귀하게 살아가거라
세상이 가끔 고약한 심술을 부리더라도
뙤약볕 아래 함께 흘린 그날의 땀방울을 기억하며
서로의 기운이 되어 당당히 걸어가거라
대견한 나의 아들아
사랑스러운 며느리야
너희의 눈부신 새 출발을 엄마는 온 마음 다해 축복한다.
Ⅱ. 집으로 가는 길
이성원
누군가에게 이 길은
가족이 있는 집으로 돌아가는
따뜻한 흔적이였다
오래전
바람과 나무가 너의 이름을 기억하던 시절
너 또한 가족과 발자국을 남기며
집으로 돌아가던 행복한 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곳은 이제
아스팔트 무덤 아래에서
한때 풀잎이 흔들리고
작은 숨결들이 오가던 순간들을 품은 채
조용히 잠들어 있다
잠시 옛날의 향기가 너를 부른 걸까
아니면 가물한 기억과 현실이 혼란스러웠을까
그것도 아니라면 견뎌내기 힘든 현실앞에
잠시 짐을 내려놓고 싶었던 걸까
미처 감지 못한 너의 눈동자엔
슬픔과 기쁨이 한 줄기 빛처럼 빛났다
마지막 인사도 건네지 못한
남겨진 아쉬움
그리고 이제
더는 아파하지 않아도 되는
너의 작은 몸이
마치 너의 집 인양 편안히 누워 있다
너는 한때
햇살 속에서 조용히 행복했을 것이다
누군가의 품에서 숨을 고르고
어미로서 작은 생명을 품고 나누던
따뜻한 날들도 있었겠지
추위와 배고픔
그리고 아픔을 견디면서
기어이 삶을 이어오던
너의 계절들이 분명 있었을 것이다
이제 너는 너의 옛 길 위에 누워
바람 속에 잠들었지만
그 멈춘 몸 위로 달빛이 찬란하고
바람은 너의 부서진 몸을 고이 안아 별빛 너머로 들어 올린다
너는 비록 숨이 멎고 온몸이 꽃잎처럼 흩어졌지만
너의 생은 끝나지 않았다
너를 기억하고 너의 다음 생을 기도하는
착한 인연들 있으니 너무 슬퍼하지 않아도 된다.
Ⅲ. 지금 나는
이성원
지금 나는 흘러가는 중
큰 바위에 부딪혀 조각나기도 하고
깊은 여울을 만나 잠시 숨을 고르기도 하며
산기슭 너른 품에서 하늘과 친구가 되기도 한다
지금 나는, 씻기는 중
살아오며 나도 모르게 얻은 상처들
덧나지 않게 살살 어루만지며
조금씩 낫는 시간을 배우는 중이다
지금 나는, 기도하는 중
내 발걸음 아래에서 스러진
작고 여린 생명들을 떠올리며
조금 더 천천히 걸었더라면 하는
후회의 마음을 담아 기도하는 중이다
지금 나는 돌아가는 중
너무 멀리 와 버린 길 앞에서
잠시 멈춰 서 보았으나
결국 갈 수 없음을 알아차리고
멀고 멀지라도
돌아가는 길을 선택해 뒷걸음질 중이다
지금 나는, 겨울나무 아래서 봄을 노래하는 중
기다림에 익숙한 꽃나무라지만
혹독한 겨울은 때로 두렵기도 하니
꿈이 얼어붙지 않도록
봄의 향기를 모아 흥얼거리는 중이다
지금 나는, 시를 쓰는 중
아프고 슬프고 고통스럽다
그 모든 시린 마음을 모아 빚은
가장 아름다운 시는 그래도 살아있는 것
그러니 부디 살아라 살아있어야만 하는 이유는 별처럼 많으니
Ⅳ. 꽃신
이성원
자는 듯 누워 있던 그녀의 삶이 싱거워 웃음이 나왔다
예순 해의 분주함이 이리도 고요할수 있다니
그녀는 봄 끝자락 꽃잎처럼 날아 하늘로 녹아들었다
스며들지 않던 젖은 화장은
남겨진 이들을 향한 마음 같았고
단정한 옷자락은 그녀의 힘들었던 삶을
대신 접어 두고 있었다
세 아이를 위해 쉼 없이 움직였던 작은 발에
슬프도록 아름다운 꽃신이 머물러 있었다
이제 그 꽃신이
그녀를 천천히 걷게 할 것이다
평생 뛰어다니던 발이
처음으로 쉬어가는 길
그녀는 꽃신을 신고
마지막 봄을 그렇게 건너갔다.
Ⅴ. 어느봄날
이성원
피는 꽃보다 지는 꽃이 더 눈부신날
급은 허리로 횡단보도를 건너는
어르신의 전력질주에서
생의 의지를 읽고
도로위에서 스치는 영구차앞에
누군가의 지나온 시간을 그리며
마지막 떠나는 길 위로 나지막한 안부를 보낼때
비로소 알게 된다
꽃이 피었다고 다 봄은 아니니
그대 꽃나무 밑에서 너무 크게 웃지 말아요
첫댓글 유명한 시인들이 많지만 성원시인님의 글은 매우 현실적이어서 읽고 난 뒤 가슴에 오래 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