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주님이 계십니다. 주님은 나의 주인이십니다. 오늘도 나는 주님을 나타내는 그릇으로 살아갑니다.”
-오늘의 말씀-
빛의 세계를 열어라
05/04목(木)창 39:19-23/ 요 12:44-46
“주님께서 요셉을 돌보셔서 그가 하는 일은 무엇이나 다 잘 되게 해주셨기 때문이다”(창 39:23)
이 세상은 영적으로 보면 어둠과 빛이 공존합니다. 우리가 똑같은 상황에서 무엇을 보고 사느냐에 따라 삶의 승패가 결정됩니다. 만일 우리가 목이 말라 물을 찾았을 때 물병에 물이 반 정도 담겨 있다면 어떤 사람은 물이 반 밖에 안 남았다고 할 수 있고, 어떤 사람은 물이 반이나 남았다고 반응할 것입니다. 우리는 환경 속에서 긍정할 수 있어야 하나님을 만날 수 있고,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처해 있는 상황이 어렵더라도 하나님을 바라보며 빛의 세계를 열어가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역사할 수 있게 됩니다.
빛의 세계를 열어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생각해 보겠습니다.
▣이 세상은 항상 빛과 어둠이 공존하고 있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요셉은 노예로 팔려와 천신만고 끝에 보디발의 집에서 가정 총무가 됩니다. 이것은 파격적인 일입니다. 요셉이 빛(하나님)의 복을 받으니 보디발의 집이 점점 잘됩니다. 그런데 빛이 있는 곳에 어둠이 독버섯처럼 피어있습니다. 보디발의 아내가 유혹을 합니다(창 39:6-7). 이 세상에는 항상 빛과 어둠이 공존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만든 세상의 역사입니다. “나는 빛도 만들고 어둠도 창조하며 평안도 주고 재앙도 일으킨다. 나 주가 이 모든 일을 한다”(사 45:7). 잘된다고 교만해서도 안 되고, 무엇이 잘못된다고 실망해도 안 됩니다.
▣이 세상은 어둠속에 빛도 있다는 것을 알고 소망을 가져야 합니다.
이 세상에는 100% 어둠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잘못되고 어려워도 그 속에 빛이 있습니다. 그 빛을 찾아가면 살 수 있습니다. 요셉이 억울하게 보디발의 아내를 지켜주려고 했는데 오히려 간음죄를 뒤집어쓰고 감옥에 갇히게 됩니다(창 39:19-21). 하나님을 잘 믿은 요셉에게 참으로 억울한 일입니다. 이것은 어둠입니다. 그러나 그 어둠 속에 빛이 들어 있습니다. 감옥에서 하나님이 요셉과 함께하시니 간수장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게 됩니다. 간수장이 모든 일을 요셉에게 맡기어 옥중에서 형통이 일어납니다. 이것은 빛의 역사입니다(창 39:22-23). 아무리 어려워도 어둠에서 빛만 쫓아가면 길은 열리게 됩니다. 그 길로 나가니 결국 총리가 된 것입니다.
▣이 세상 속에서 빛을 여는 길은 예수를 믿는 것입니다.
“나는 빛으로서 세상에 왔다. 그것은 나를 믿는 사람은 아무도 어둠 속에 머무르지 않도록 하려는 것이다”(요 12:46). 어떤 절망 속에서도 주님을 찾고, 그분의 인도함을 받으면 그 길이 빛이 됩니다. 베드로는 밤새도록 그물을 던졌지만 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했습니다. 어둠입니다. 그런데 주님을 만나 말씀에 은혜를 받습니다. 그때 주님이 “깊은대로 그물을 던지라”라고 합니다. 깊은 곳에는 고기가 없습니다. 베드로는 어부로서 전문가입니다. 이미 수없이 던져보았지만 한 마리도 못 잡았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그물을 던집니다. 그물이 터지도록 고기가 잡혀 친구의 배까지 채워지게 됩니다. 어둠 속에서 빛의 길이 열립니다.
And...
미국의 정치가였던 벤자민 프랭클린은 자신이 사는 필라델피아 시민들에게 선한 일을 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아름답고 좋은 등 하나를 준비해서 집 앞 선반에 올려 두었습니다. 그러자 동네 사람들은 이상하게 생각했습니다. 등불은 집 안에 두어야 하는 것으로 이해했기 때문에, 집 밖에 두는 것은 낭비라고 여겼습니다. 그러나 한 주가 지나고, 한 달이 지나자 사람들은 뭔가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집 밖에 등불이 있으니 밤에 지나가는 사람들이 넘어지지 않고, 멀리서도 방향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것을 좋게 생각한 사람들이 하나둘씩 자신의 집 밖에 등불을 켜두기 시작한 것입니다. 길거리가 환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가로등의 시작이었습니다. 만약 길거리에 가로등이 없다면 온통 암흑과 같은 길이 될 것입니다. 세계적으로 가로등이 생기게 된 것은 벤자민 프랭클린이라는 한 사람이 주변 사람들을 위하여 집 밖에 등불을 둠으로써 생기게 된 것입니다. 한 사람의 선한 행동이 많은 사람에게 감동과 감화를 준 것입니다.
헬라의 유명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날 한 맹인이 등불을 켜 들고 밤길을 나섰습니다. 자신은 비록 불빛을 보지 못하지만 다른 사람이라도 자신이 들고 있는 등불 빛을 보고 부딪치지 말라는 의도였습니다. 그렇게 하고 한참을 가는데 어떤 사람과 그만 ‘탁!’하고 부딪치고 말았습니다. 맹인은 상대에게 “당신은 눈도 없소? 나는 맹인이라 앞을 못 보지만 당신은 내가 들고 있는 이 등불도 보지 못하시오?” 하고 화를 내었습니다. 그러나 부딪친 사람이 맹인의 손에 등불이 있는 것을 확인하고 “자네가 들고 있는 등불은 이미 꺼졌네.”라고 말했습니다. 등불은 들고 있지만 이미 꺼진 줄 모르고 들고 다닌 것입니다. 불이 꺼진 것을 모르고 사니 세상이 어두워지는 것입니다. 십자가 복음을 깨달은 사람은 자신이 죽어 주님이 나타나기에 빛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성도는 늘 영적으로 깨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평탄한 삶 속에서 어둠을 발견하여 어둠을 물리칠 수 있습니다. 삶이 어려운 사람은 고난 때문에 주님 가까이 갈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사람은 그래도 영적으로 깨어 있기에 그나마 다행입니다. 그러나 배부르고, 내게 아무런 일도 없어 너무나 평안하다고 느끼고 있는 사람은 그 뒤에 있는 어둠을 보지 못합니다. 우리가 준비하고 맞는 어둠은 그리 큰 충격으로 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대부분 준비 없이 맞는 어둠 때문에 충격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삶이 어렵다면 어둠 속의 빛을 보며 소망을 갖고, 삶이 평탄하다면 그 뒤에 있는 어둠을 바라보며 더욱 겸손함을 지켜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는 성도는 항상 교만하지도, 좌절하지도 말아야 합니다. 주님은 100% 빛이십니다. 내게 작은 어둠만 있어도 주님과 하나 될 수 없습니다. 성경에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것은 내게 미움이 있으면 주님과 하나 될 수 없기에 주님은 원수까지도 사랑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환경은 사단이 지배하고 있기에 늘 어둠이 있습니다. 그러나 빛이신 주님을 바라볼 때 우리의 삶은 소망이 있습니다. 주위를 둘러보면 참 어려운 상황이 많습니다. 안타깝지만 그분들이 환경 너머에 계시는 주님을 바라보며 소망을 갖기를 기도합니다. 어둠의 환경을 긍정할 때 소망의 삶이 다가옵니다. 어둠 속에서 빛의 세계를 열어가는 우리 모두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참 빛
https://youtu.be/K4HeOtn-8e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