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왕의 지명유래 의왕시의 유래는 광주목에 속했을때 의곡면의 의자와 왕륜면의 왕자를 따서 의왕면이라 하였습니다.
01 - 청계동 <여지도서>의 광주 의곡면은 1리와 2리로 구분되어 있고 더 이상 세분된 마을명이 나타나지 않으나 그후 광주 의곡면은 손동, 갈산동, 포우동, 청계동, 학현, 어일리로 되어 있어 '청계동'이 등장된다. 이 청계는 아마도 현재 청계산을 옛날에는 <동국여지승람>이나 <남한지>등 문헌이나 청계사사적기비의 기록에서 보듯 '일명 청계산'이라 하여 과천 관악산을 '우백호'라 칭한다면 '우청룡산'에 해당하므로 이 청룡산 계곡을 따라 이루어진 마을이 靑溪 또는 淸溪가 된 것으로 여겨진다
02 - 농골 청계마을의 '농골'은 봉담→의왕→과천고속도로 중 과천터널 바로 옆의 남동쪽에 위치한 마을을 말한다. 고속도로가 나고 터널이 뚫려 마을이 둘로 갈라지게 되었으나 서쪽보다는 동쪽 남은 집들이 훨씬 많다. 이곳은 조선초기 음성박씨 후손인 박연 (진안 현감 역임)이 관직에서 물러난후 여기서 은둔 생활을 하던 곳으로 아호가 노은이므로 '노은골'로 칭했던 점차 음운탈락과 변동으로 '농골'로 변한 땅이름으로 여겨진다.
03 - 옥박골 '옥박골'은 한직골에서 청계사로 가는 초입길 왼쪽에 오목하게 들어간 마을 이름이다.<始興郡誌>下(p. 986) 지명유래 자료에 따르면 조선시대에 이곳에 죄인을 가두는 '옥(獄)'이 있었으므로 '옥박골'이라 했는데, 그후 옥이 철거되면서 그 주변 일대를 '옥터밭'이라 부르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04 - 한직골 일석 선생께서 들려주신 바에 의하면 '한직골'은 '한적골'이 변한 이름이라 하였다. 이곳이 옛날에는 마을이 없었던 곳으로 인덕원에서 광주쪽으로 가는 길목으로 한적한 곳이라는 의미로 '한적골'이었는데, 발음의 편의상 '한직골'로 부른다는 것이 다. 현재 청계동 사무소가 위치한 곳의 동남쪽 부근 망르이 바로 이 마을로 이곳에 전해지는 지명유래는 이곳은 예로부터 지대가 높아 논은 별로없고 들판이 사질토(沙質土)이므로 어떤 곡식도 잘되지 않고 가물면 이내 작물이 旱災를 입어 시들고 말라죽어 '한재골(旱災洞)'이라 흔히 불리어 왔는데 현재는 '한직골'로 통칭한다고 밝혀 있다.
05 - 하우개(원터마을) '하오개'는 이 고개가 '학고개' 였으나 '학고개>하오개>하우개'로 음운변천에 따라 '하오개'또는 '하우개'개 되고 이를 바탕으로 성당이 있는 마을(청계13통)을 흔히 '하우개'마을로 지칭되기도 한다.
06 - 벌모루 넓은 들판 모퉁이 마을이란 뜻에서 한자지명으로 '포우리(浦隅理)', 고유어로는 '벌모루'라 칭한다.
07 - 성고개 벌모루와 이미 사이에 자리잡은 마을로 마을 주위가 마치 성을 에워싼듯한 형상으로 되어 있어 '성고개'라고 불렀을 듯하다. 이미 이 마을은 서울구치소와 성고개 마을 동북으로 자리잡은 마을로 이 말을에 큰 나무(느티나무) 두그루가 있어 마치 숲을 이룬 것과 같으므로 '임이(林二)'라 칭했다는 것이다.
08 - 학의동 1914년 4월 1일 부령 제111호에 의하여 일제가 행정구역 통폐합하기 전에는 두 개의 큰 자연부락명인 학현동과 의일외동이 있었는데 통폐합하는 과정에서 두 지명의 첫글자를 각각 취하여 '학의리'로 개칭하게 되었다. 학현동은 크게 샛터말(미나리 골), 학현(웃말), 점말(아랫말)의 자연마을이 있고 학의2리에 해당하는 의일동은 '오른계, 속말, 북골, 양지말'로 자연마을을 이루고 있다.
09 - 의일 현 의왕시 학의2동을 지칭하는 전통적 명칭은 '의일'이다. '의'를 발음할 때 단모음화시킨 발음을 대충 한자 '어'자로 취음 하여 표기한 결과라 할 수 있다.
10 - 능안마을(내손1리) 능안은 백운호수 서남쪽 모락산 아래에 자리잡은 마을로 세종의 넷째아들인 임영대군의 묘지가 있는 마을이다. 구전에 의하면 "조선 제17대 임금인 효종이 승하하자 현재의 임영대군 묘자리가 묘지 후보지로 선정되기에 이르렀는데 효종과 임영대군은 같은 왕족인 관계로 효종의 묘소를 여주로 다시 정했다고 한다. 그때부터 이 마을을 능 후보지였다 하여 '능안말'이라 일컬어 오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