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대한 로마제국의 위용이 이탈리아 반도라는 작은 영토에 묶여 있지만, 프랑스나 독일이 로마제국의 역사가 자신의 땅에서 벌어졌으므로 자신만의 역사라 주장한다는 소리를 들은 바 없다.
마케도니아가 발칸반도 한쪽 구석에 찌그러져 유고내란의 참화를 겪었지만 그들은 여전히 알렉산더 대왕의 후손임을 자랑으로 여기고, 주요 기차역을 알렉산더 역이라고 개칭할 때 그리스와 알렉산더 계승국으로서의 지위 승계를 위한 치열한 외교전을 치뤘다.
중국 요하문명과 북방계열 역사는 그 본류대로 주소를 찾아주어야 한다. 유라시아 공통의 뿌리이기도 한 고대사 연구에 관련국가를 참여시키고 공통의 작업을 허용하는 것은, 중화 일원주의, 중화 제국주의의 위험성과 배타성을 견제하고 주변국과 평화공존을 할 수 있는 기반의 첫 발걸음이다.
***아래 사진은 2011년 중국 요녕성 박물관의 사진.
당시는 홍산문명이나 요허문명(BC 8000~BC 1500)이라는 소리조차 듣지 못한 터라 봐도 보이는 것이 없었으나, 진기해서 무심결에 캠에 손이 갔는데,,
상나라(은殷. BC1600-BC1100 ) 은허 유적에는 이와 동일한 형태의 것이 있다. 중국 안양 은허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는, 순장 유적지의 사모무정(司母戊鼎 ).
<삼국지> '위서 부여편'에는 부여(~AD 494. 고구려에 복속됨)도 순장 풍습이 있었다고 기록한다.
부여의 동명왕과 고구려 주몽, 벡제의 온조는 모두 단군의 후손임을 밝히고 있는데, 부여는 소를 죽여 소발굽의 모양으로 길흉을 점치는 풍속을 가지고 있었다. 고조선과 동일하다.
돈황문서(敦煌文書) 내 토원책부(兎園策府) 주석에는 동예의 제천행사로 알려졌던 무천은 고조선의 풍속으로, 고조선은 10월에 제천행사인 무천이 열렸고, 출정에 앞서 소를 잡아 발굽의 형상으로 길흉을 점치던 우제점(牛蹄占)이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