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여정의 수상소감
지난 4월 미국의 할리우드에서 열린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윤여정은 63년 만에 동양인으로는 2번째로 여우조연상을 수상하는 역사적 장면을 연출했다. 그리고 이어진 그녀의 수상소감은 세상을 깊은 감동에 잠기게 했다.
하얀 바탕에 하양 계통의 모습은 묻혀보이듯 윤여정에 익숙해진 우리의 눈에는 그녀가 그냥 자연스러울 뿐이었다. 그러한 그녀의 모습이 서양인 눈에는 강렬한 충격으로 박힌 것이다. 그동안 알아보지 못한 윤여정의 연기 인생을 휘둥그레 돌아보면서 그녀에 대한 세계적 찬사에 우리는 겸연쩍어한다.
윤여정의 수감소감과 인터뷰에서 우리는 지식이나 경험을 넘어선 깊은 울림이 있음을 느끼게 된다. 평범하면서도 핵심을 꿰뚫는 힘과사람들의 마음을 해방시키는 힘의 정체는 무엇일까. 그것은 마음의 심연에서 작용하는 의식에서 나오는 힘일 것이다.
세계적인 영성철학자 데이비드 홉킨스 박사는 그의 저서 ‘의식혁명(Power vs. Force)’에서, 인간은 하위의식인 수치심, 죄의식, 무기력, 슬픔, 두려움, 욕망, 분노, 자존심이라는 8단계를 차례로 거쳐서 상위의식인 용기, 균형(중용), 긍정, 포용, 이성, 사랑, 기쁨, 평화, 깨달음의 17단계로 진화해간다고 밝히고 있다.
하위의식은 쾌락과 재미를 추구하는 반면 상위의식은 가치와 의미를 추구하는데, 똑같은 여건이라도 의식수준이 높고 낮음에 따라 행복과 평화가 달라진다. 그의 통찰은 깊은 울림으로 많은 세계인으로부터 지지를 받고 있다.
인간의 의식은 생을 바꿔가며 진화를 계속한다. 의식은 선천적인 삶의 바탕으로서 삶이 가지는 가능성의 한계를 보여준다. 위인이나 성인은 어린 시절부터 미숙하기는 하지만 남다르게 성장하다가 고난의 과정을 거치면서 타고난 의식의 단계를 온전히 성취한다.
윤여정의 수상소감과 수상을 전후한 그녀의 말들을 의식수준의 관점에서 관찰하면 그녀의 한마디 한마디가 비로소 깊이 납득된다.
윤여정은 앞서 열린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BAFTA)에서여우조연상을 받았다. 수상소감의 첫머리에서 그녀는 최근 99세로 별세한 여왕의 부군인 필립 공을 추모하며 시상식장의 분위기를 정중하게 위무하더니 마지막에 솔직하고 뜨끔한 한 마디로 좌중을 휘어잡았다.
“모든 상이 의미가 있지만 이번 상은 특히나 무척 ‘점잖 뺀다고(snobbish)’ 알려진 영국인에게 좋은 배우라고 인정받아서 정말 기쁘고 영광스럽다.”
‘솔직’과 ‘용기’는 동의어이다. 만일 그녀가 ‘snobbish’ 대신 ‘gentle’과 같이 점잖은 단어를 선택했다면 그날의 수상소감은 무난히 넘어갔을 것이다. 그런데 ‘snobbish’라는 말의 앞뒤에 미묘한 전제와 결말을 배치하자 그 말은 어여쁜 유머로 바뀌었다.
뜻 깊음과 가식적임, 영광스러움이 어울려 빚어낸 모순과 조화에 영국인들은 체면을 벗어던지고 폭소했다. ‘점잖 빼는’이라는 어휘는 정중한 자리에서 수상자가 꺼내기 힘든 말이다. 위험한 단어를 솔직하게 구사하는 그녀의 태도에서 ‘용기’ 수준의 의식이 느껴진다.
윤여정은 이어 4월 25일 할리우드에서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후 제작자인 브레드 피트에게 영화를 찍을 때는 어디 있었느냐고 살짝 꼬집는가 싶더니 ‘만나 뵙게 돼 영광’이라는 말로 상대방의 민망함과 뜨끔함을 감싸는 배려심을 보여주었다.
이어서 자기의 이름을 분명히 소개한 다음 이제까지 자기 이름을 잘못 불렀던 사람들을 모두 용서하며 그들에게 웃음과 안도감을 선사했다. 상대방의 잘못을 너그러이 품어주는 마음에서 우리는 ‘포용’ 수준의 의식이 느껴진다.
윤여정은 함께 경쟁했던 다섯 명의 후보들에게 감동의 멘트를 선물했다.
“저는 사실 경쟁이라는 말을 믿지 않아요. 다섯 명의 후보들은 서로 다른 영화에서 각자 승자입니다. 우리는 각자 다른 역할을 했고 그래서 우리에게는 경쟁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오늘밤은 제가 운이 더 좋았나봅니다. 어쩌면 한국 배우에 대한 미국식 환대가 아닐까요? 그래서 제가 이 자리에 선 것 같습니다.”
이것은 머리에서 짜낸 생각이 아니었다. 함께 경쟁했던 참가자들과 공로를 공유하는 순간 다섯 경쟁자는 모두 승자가 되는 감동을 누렸고, 삶의 경쟁에서 밀려난 모든 세상 사람들은 깊은 위로와 평화를 선물 받았다.
그녀는 운이 좋아서 수상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녀의 말대로 윤여정은 운이 좋았다. 그리고 운이란 준비된 사람에게 불시에 찾아오는 필연이기도 하다. 패자에 대한 그녀의 따뜻한 배려에서 ‘포용’ 수준의 의식이 느껴진다.
윤여정은 자기가 그 자리에 있기까지 기여한 모든 이들의 이름을 빠짐없이 부르며 감사했다. 그리고 그녀는 자기를 생활전선에 뛰어들게 한 두 아들에게도 감사하는 모습을 빠뜨리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의 첫 감독이었던 고 김기영 감독에게 그날의 상을 헌정하며 수상소감을 마무리 지었다.
감사와 긍정은 동의어이다. 긍정적이란 잃은 것과 없는 것이 아니라 남은 것과 가진 것을 소중히 끌어안고 그것을 키워가는 삶의 태도가 아닐까. 삶이 주는 모든 여건에 감사하는 그녀의 태도는 ‘긍정’ 수준의 의식을 느끼게 한다.
시상식이 끝난 후 한국기자와의 인터뷰가 열렸다. 지금이 최고의 순간이라고 말할 수 있겠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윤여정은 이렇게 답했다.
“최고의 순간인지는 잘 모르겠는데, 난 최고, 그런 말이 참 싫어요. 그냥 ‘최중(最中)’ 하면 안 돼요? 같이 살면? 최중만 되면서 살면 되잖아요?”
그녀는 공자가 말한 ‘중용’과 붓다가 말한 ‘중도’를 아우르는 ‘최중’이라는 신조어를 창조했다. 그리하여 그녀는 지금껏 ‘최중’이 되려고 살아왔지만 세상은 한사코 그녀를 ‘최고’의 자리에 올려놓았다.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라는 격언의 의미가 비로소 다가오는 순간이었다. ‘최고’를 내려놓고 ‘최중’을 지향하는 그녀의 자세는 ‘균형’ 내지는 ‘중용’ 수준의 의식을 느끼게 한다.
앞으로의 계획을 묻는 기자에게 윤여정은 아주 편하고 쉽게 대답했다.
“없어요. 오스카상 탔다고 윤여정이 김여정이 되는 건 아니지 않아요? 그냥 살던 대로 살 거예요.”
그녀는 ‘앞으로 더 멋진 모습을 보이는 배우가 되겠다’는 식으로 자신에게 짐을 지우지 않았다. 이미 목적지에 도착했는데 더 이상 어디를 가느냐며, 현재는 항상 출발점이니 심장이 멎을 때까지 낙타처럼 이대로 걷겠다는 것이다.
평상심을 보이는 그녀의 마음에서도 ‘균형’ 내지 ‘중용’ 수준의 의식이 느껴진다.
이혼 직후 연기자로서 현업 복귀의 어려움에 대해서 윤여정은 언젠가 이렇게 고백한 적이 있다.
“세상은 서러움 그 자체고 인생은 불공정, 불공평이야. 그런데 그 서러움은 내가 극복해야 하는 것 같아.”
그녀가 발산하는 행복에너지와 위트 또한 이러한 ‘긍정’의 의식에서 나올 수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녀가 삶에서 부딪친 고난은 그녀를 뒤로 당기는 부정의 힘이 아니라 앞으로 이끄는 긍정의 힘으로 작용했다.
인생을 이렇게 바라보는 그녀의 의식은 ‘균형’의 다음인 ‘긍정’의 수준에 이르렀음을 느끼게 한다.
미나리는 태생적으로 주연급이 아닌 조연급 식물이다. 시궁창 같은 밑바닥 환경에서도 풋풋이 자라고, 베어도베어도 불사신처럼 꿋꿋이 치솟는 식물이 미나리다. 우리는 영화 ‘미나리’의 윤여정을 보면서 우리가 세상의 주연이 아니라도 의젓하고 당당히 살아갈 수 있음을 깨닫고 자존감이 충만해짐을 느끼게 된다.
윤여정의 수상소감과 인터뷰는 지식이나 경험을 넘어서 생각의 배후에서 삶을 지배하는 높은 의식 수준을 느끼게 한다. 그녀의 의식은 중용과 긍정, 포용을 두루 보여주면서 세상의 시린 영혼들을 은은히 위로한다.
우리는 비로소 느낀다. 삶의 가치는 여건의 호불호가 아니라 여건을 받아들이는 의식의 높낮이에 있다는 것을. 그리고 의식이 높은 사람은 무슨 말을 해도 뭉클하고 무슨 일을 해도 의미롭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