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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강 절차탁마
1. 악수의 문제
설을 잘 지내고 오셨나? 설이 지났으니깐, 새 기분으로 진짜 21세기를 출발해야 되는 아주 중요한 시기 같다. 강의도 이제 벌써 30강이 넘어갔다. 우리가 정말 도덕적으로 서로 잘 살 수 있는 민족인데, 제 강의를 통해서 우리 안에 잠재되어 있던 많은 능력을 다시 한 번 발현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기만을 간절히 빈다.
강의 들어가기 전에, 간단히 제가 일상생활에서 부닥치는 것을 말씀 드리려 한다. 제가 요즘 유명해졌다. 여러분들이 다 알아보는데, 저한테 3가지 일로 무안을 당한다. 사실 저도 무안을 당하는 것이다. 서로 간에 좋은 약속이 될 거 같아서 가볍게 말씀드리겠다.
우선 마주치면, 바쁘게 제가 지나칠 때도 있지만 서로 아는 사람끼리 인사를 하는 것은 좋은 것이다. 얼마 전 국내선을 탔는데, 스튜어디스들이 뒤에서 수군거리면서 인사는 안 했다. 그래서 ‘알아보는 순간에 인사를 하지, 왜 뒤에서 수군거리기만 하냐? 보는 순간에 아는 사람이면 인사를 하라.’고 그렇게 이야기를 한 적도 있다. 서로 인사를 하는 것은 참 아름다운 풍습인데, 와서 악수를 하자고 한다. 악수도 우리 사회의 좋은 인사방식일 수 있다. 그러나 길거리에서 전혀 모르는 사람이 나한테 악수를 하자고 하는 것은 실례다. 그건 실례다.
예를 들면, 캠퍼스에서 내가 교육자 입장인데, 학생이 나를 만난다고 해서 ‘악수한번 합시다.’라고 하면 있을 수가 없는 일이다. 이게 가만히 생각해보면 될 일이 아니다. 나보다 어린 사람들이 전부 나보고 악수를 하자고 덤비면, 내가 왜 그런 악수를 하겠나? 나는 악수를 하자고 덤벼도, 그냥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한다. 이런 우리 예법이 좋다. 악수는 우리 식이 아니다.
제일 좋은 건 목례다. 눈이 부딪치면 목례로 ‘안녕하세요.’라고 하면 얼마나 좋은가? 멀리 있어도 할 수 있고 얼마나 효율적인 방법인가? 그런데 왜 와서 악수를 하자고 하는지 모르겠다. 악수를 안 한다고 하면, 욕을 하고 지나간다. ‘유명하다고, 악수도 안 받아 주냐?’고 한다.
하지만 그런 행위는 실례다. 내가 악수를 청할 수는 있어도, 전혀 모르는 사람이 나한테 악수를 청할 수 없다. 위생적인 방법도 아니다. 그건 우리 사회에서 조금 더 생각을 해야 할 문제다. 우리가 더 아름답게 얼마든지 더 서로 간에 좋게 마음을 나눌 수 있다.
나는 인사를 하는데, 어떤 아낙네는 와서 와락 내 손을 잡는다. 그러면 그건 거의 폭력에 가까운 것이다. 그런 걸 제가 여러 번 당했다. 그분들도 내가 악수를 안 한다고 할 적에 무안했겠지만, 이건 우리 사회에서 개선되어야 할 부분이다. 악수만이 유일한 인사 방법이 아니다.
2. 사인의 문제
두 번째는 길거리를 지나다니면 무조건 사인을 해달라고 한다. 배우나 연예인들은 그런 걸 좋아할지 모르겠으나, 우리 선비는 사인을 하고 다니는 그런 사람들이 아니다. 사인을 하더라도, 내가 쓴 책을 마침 손에 들고 있다가, ‘선생님, 제가 선생님 책을 이렇게 읽고 있는데, 사인을 해주시겠습니까?’ 그러면 기꺼이 하겠다.
그러나 종이쪽지 같은 곳에 마구 사인은 안 한다. 우리 선비가 쓰는 글 하나는 역사적으로 퇴계 선생이 어디다 글 하나를 남겼나? 그게 하나 남아있으면 국보가 되는 것이다. 우리는 손으로 글을 써서 먹고 사는 사람이다. 원고지 하나 다 역사에 남을 것이기 때문에 어디다 함부로 글을 안 쓴다. 왜 내 필체를 마구 흘리고 다니겠는가?
제대로 나한테 그런 것을 받고 싶으면, 그런 자리를 만들기 어렵겠지만, 제대로 지필묵이 깔린 자리라면 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어디 술집을 가서 술을 먹다가 지필묵이나 가져오라고 하면, 갖고 올 수 있는 데가 없다. 그렇게 준비된 데가 없다. 길거리 지나가다가, 아무 종이에다가 사인해달라고 그러는 건 잘못된 것이다. 난 사인을 안 한다. 난 사인하는 게 아주 불쾌하다. 그것이 나한테 무안을 당하는 또 하나의 이유다.
3. 팬의 문제
세 번째로, 사람들이 나한테 와서 존경을 표현하는 말이, 대부분 와서 하는 말이, ‘저는 선생님 팬이에요.’ 이러는데, 나는 팬이라는 말이 아주 듣기 싫다. 이게 연예인들한테는 좋은 말인지 모르겠으나, 저는 누가 저한테 팬이라고 하는 말을 제일 싫어한다.
나한테 자기를 표현하고 싶으면, ‘제가 선생님 강의 잘 듣고 있습니다. 선생님 평소 존경합니다. 선생님 말씀 잘 들어서, 제가 실천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인사를 하면, 같은 말이라도 서로 오죽 좋겠나? 왜 팬이라는 말을 쓰냐는 것이다. 그런 천박한 말은 될 수 있는 대로 삼가자.
그리고 좀 아는 사람이라고 와서, 자기가 고려대 나왔다고, 보성고를 나왔다고, 선배님, 후배님 하는데, 이런 말도 될 수 있는 대로 안 쓰는 게 좋다. 그렇게 좁은 울타리 의식을 나타내는 말은 안 쓰는 게 좋다. 선생님이라고 그러고, 교수라고 그러면 된다. 엄밀히 내가 사회적 지위가 있는데, 와서 선배님이라고 그러는데 아주 듣기가 싫다.
저도 그렇다. 가급적이면 선생님이라고 서로 높이는 말을 쓰자. 편지 봉투에 쓰더라도 그냥 선생님이라고 쓰면 되는데, 그것도 아끼느라고 무슨 님, 무슨 씨라고 하는데, 선생님이라고 다 쓰자. 어린 사람한테 써도 뭐 잘못될 게 없다. 서로 간에 가급적이면 상대방을 높이는 말씀을 쓰자. 길거리를 지나갈 때도 서로 에티켓을 지키며 인사하고, 말을 해도 ‘선생님 강의 잘 듣고 있습니다. 존경합니다.’ 이러고 지나가면 얼마나 아름답나.
이 말씀은 매일매일 부닥치는 문제라서, 우리가 신년을 시작하면서, 새로운 기분으로 우리 사회의 도덕적 기풍들 바꿀 필요가 있다. 이런 작은 것부터 부드럽고 아름답게 끌어가자는 의미에서 그저 소박하게 말씀드렸다.
이해해주시기 바란다.
4. 학이편 15장
우리가 학이편을 다 끝내고, 이어서 위정편으로 들어갈 텐데, 지난주에 빼놓고 지나갔던 15장을 하겠다. 학이편 중에서 가장 무게 있고 드라마틱한 15장을 공부하겠다.
子貢曰 : 貧而無諂, 富而無驕, 何如?
子曰 : 可也. 未若貧而樂, 富而好禮者也,
子貢曰 : 詩云; 如切如磋, 如琢如磨, 其斯之謂與?
子曰 : 賜也, 始可與言詩已矣, 告諸往而知來者.
유명한 절차탁마라는 유명한 말이 나오는 장인데, 보통 절차탁마장이라고 이야기 한다. 절차탁마라는 말은 우리가 일상 생활에서 쓴다. 어떤 의미로 쓰나? 자기를 연마하고, 인격적으로 완성을 해 간다. 보통 그런 의미로 쓴다. 절차탁마해서 훌륭한 사람이 되라는 말을 쓴다.
하여튼 뭔가 잘 갈고 다듬어서 모나지 않고, 아름다운 형태로 깎아서, 옥석을 가지고 어떠한 작품을 만들듯이, 우리 인격을 그렇게 아름답게 만들어 가는 것이다. 우리의 삶을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생각해서, 도덕적으로 완성된 인격자를 만드는 것이다. 그런 의미로 쓴다.
우리 일상 언어에서 ‘절차탁마’는 옥을 갈아 예술 작품을 만드는 것처럼, 내 몸을 연마하여 도덕적 인격을 완성한다는 의미로 쓰이고 있다.
오늘 강의는 이러한 여러분들의 상식을 여지없이 깨는 강의다. 반전에 반전이 일어나는 강의다.
여기 자공왈이라고 했다. 자공은 어떤 사람인가? 공자의 제자 중에서 엄청난 부자라고 했다. 돈이 많은 사람으로, 공자에게 자금줄을 댄 사람이다. 자공은 공자학단에 자금을 댄 사람이다. 열심히 돈을 벌어 자금을 댄 사람이다.
자공(子貢) : 성이 단목(端木), 이름이 사(賜). 위나라 사람. 31세 연하. 공자 학단 초기부터 줄곧 같이 있었던 대제자. 탁월한 외교관이며 큰 부자였다.
자공은 훌륭한 제자였다. 인간적으로도 공자를 아주 사랑했고, 그래서 공자님한테 와서 자기 삶에서 평소 느끼는 것을 한 번 표현한 것이다.
貧而無諂, 富而無驕, 何如?
선생님, 가난하되 아첨하지 않는 인간이 되고, 돈이 많은 부자가 되었는데 교만하지 않은 인간이 되면, 어떠하겠습니까?
요즘은 우리 사회에 부자라도 교만한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요즘은 돈 많은 사람이 여러 가지로 시달리는 세상이라서 교만하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옛날에 돈이 많으면 무척 교만했다.
자공이 공자에게, ‘제가 인생을 살면서 이런 모토로 살고 있습니다. 제가 가난해도 비굴한 인간이 되지 않았고, 돈을 잔뜩 벌어 부자가 되었어도 교만한 사람이 되지 않았습니다. 이 정도면 어떻겠습니까? 이거 대단한 거 아닙니까?’라는 식으로 말한 것이다.
그럼 공자가 있다가 ‘너 참 훌륭하다.’라고 답하리라 기대했을 것이다. 자공의 입장에서는, 자공은 귀여움을 받았으니깐, 그렇게 기대를 하고, 이렇게 자랑스럽게 ‘어떻겠습니까?’하고 공자한테 이야기를 했던 모양이다.
그러니깐 공자가 그때에 ‘너 정말 대단하다.’고 그럴 줄 알았는데, 딱 나온 말이 ‘가야.(可也.)’였다. ‘괜찮구나.’하는 정도의 답을 한다. 내 생각에 가야(可也)는 요새말로 하면, ‘차뿌뚜어’ 정도의 말을 한 거 같다.
차뿌뚜어(差不多) : 중국 사람들이 일상생활에서 매우 광범하게 쓰는 말로 ‘그저 그렇다.’(so so)는 의미
자공이 볼 때는 김이 팍 샜을 것이다.
그리고 공자가 말하길, 未若貧而樂, 富而好禮者也라고 한다.
未若貧而樂, 富而好禮者也.
‘사람이 빈곤해도 즐길 줄 알고, 돈이 많아도 예(禮)를 좋아하는 것만 같지 못하다.’고 한다.
앞에 자공이 제시한 언어에는 무(無)가 들어갔다. 무첨(無諂)하고, 무교(無驕)하다는 말이 들어간다. 여기서 무(無)는 부정적인 것이다. 아첨하지 않고, 교만하지 않는다는 부정적인 인생관을 이야기한 것이다.
그런데 공자는 그것을 긍정적인 인생관으로 바꾼다. 가난하지만 그 가난한 속에서 인생의 즐거움을 발견할 줄 알아야 하고, 부(富)하지만 부(富)한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진정으로 예(禮)를 사랑하는 그러한 인간이 되라고 한다. 얼마나 멋진가?
우리나라 부자들은 돈을 벌면 세금을 피하기 위해서 재단을 만든다. 재단 운영하는 것을 보면 제대로 운영하는 재단이 별로 없다. 카네기 같은 사람은 엄청난 착취를 해서 돈도 벌었지만, 카네기 재단을 만들어서 어마어마한 규모의 도서관을 1,800개나 지었다. 그것이 미국 사회의 굉장히 무서운 기초가 된 것이다.
발상을 해도, 그 사람들은 돈을 벌어서 그렇게 사회투자를 하는 것이다. 그러니깐 거의 전폭적으로 하는 것이다. 자기 개인을 위해 쓰는 게 아니라, 돈을 벌면 버는 만큼 그야말로 적극적으로 자기가 좋은 것을 한다. 이런 걸 보여줄 필요가 있다.
돈 버는 게 잘못은 아니다. 아무나 버는 게 아니다. 훌륭한 뭐가 있어서 버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돈을 벌어도 교만하지 않는다.’고 하는 이런 소극적 생각에 머물러서는 인간 구실을 못한다. 뭔가 적극적으로 이 돈을 가지고 무엇을 할 것인가? 정말 고민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정말 돈을 멋있게 쓰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우리 사회는 문제다. 우리 사회에서 돈을 벌었던 사람치고, 정말 가슴으로 존경받는 도덕적 인격자라든가, 우리 사회의 정신적 리더가 있었나? 그게 있고 없고는 큰 차이가 있다. 그런 면에선 우리나라 자본주의는 실패한 것이다.
그러니깐 자공이 공자님 말씀을 듣고, ‘아, 시경에 이런 말이 있죠.’라며 시(詩)의 구절을 인용한다.
如切如磋, 如琢如磨, 其斯之謂與?
절(切)이라고 하는 것은 자르는 것이고, 차(磋)는 다듬는 것이다. 탁(琢)은 쪼는 것이고, 마(磨)는 가는 것이다.
‘자른 듯, 다듬은 듯, 쪼은 듯, 간 듯’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바로 이것을 두고 한 말이겠군요. 이렇게 자공이 말한다.
其斯之謂與라고 할 적에 원래는 其謂斯與이다. 즉 ‘그것은 이것을 두고 한 말이겠군요.’가 된다. 斯를 앞으로 도치시키면서, 갈 지(之)자가 앞으로 나온다. 여(與)는 의문을 나타내는 어조사로 가벼운 반문을 나타내는 것이다.
‘如切如嗟, 如琢如磨라고 하는 것이 이것을 두고 한 말이죠?’라는 뜻이다.
如切如嗟, 如琢如磨은 시경(詩經)의 노래에 나오는 구절이다. 자공은 위나라 사람인데, 위나라의 노래인 위풍(衛風)에 나오는 구절이다. 지금 시경에 있는 노래다.
膽彼淇奧(담피기오) 저기 저 기수의 물구비를 보라
綠竹倚倚(녹죽의의) 푸른 대나무 숲이 하늘하늘 우거졌구나
有匪君子(유비군자) 아 문채나는 군자여!
如切如嗟(여절여차) 자른 듯 다듬은 듯
如琢如磨(여탁여마) 쪼은 듯 간 듯
군자의 모습을 형용한 것이 ‘자른 듯, 다듬은 듯, 쪼은 듯, 간 듯’이라고 되어 있다.
위풍은 위나라의 민요로 내려오는 노래인데, 위나라에 무공(武公)이라고 하는 아주 훌륭한 군주가 있었는데, 이 사람이 아주 대단한 문채가 나는 군자였기 때문에 국민들이 그를 찬양하여 이 노래를 지었다고 한다.
이 시는 위나라 무공(武公)의 덕성을 찬양한 노래다. 그는 문장이 빛났으며 간언을 잘 들어서 예(禮)로써 자신을 잘 방비한 명군이었다.
- 후한에 성립한 毛詩傳
그 말은 뭐냐 하면, 부정적인 데서 긍정적인 시각으로 인격을 완성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바로 ‘유비군자라고 하는 사람을 표현한 것을 두고 한 말이겠군요.’라고 답한 것이다.
그러니깐 공자가 賜也, 始可與言詩已矣라고 한다.
賜也, 始可與言詩已矣.
여기서 사(賜)는 자공을 애칭으로 부른 것이라고 했다. 자공의 애명을 부르면서, ‘너와 더불어 비로소 이제 시를 논할 수 있구나.’라고 한다. ‘네가 그렇게 말귀를 잘 알아듣게 되었구나.’라고 말하는 것이다.
告諸往而知來者.
이게 좀 해석이 어렵다. 주자는 ‘왕(往)이라고 하는 것은 말로 표현한 것이요, 래(來)라고 하는 것은 말로 표현하지 않은 것이다.’라고 해석했다.
往者, 其所己言者 ; 來者, 其所未言者.
-주자
말로 표현해준 것을 알려주니깐, 말로 표현하지 않은 것을 알아서, 앞으로 전개될 것을 안다는 뜻이다.
이것을 레게는 다음과 같이 영역했다.
I told him one point, and he knew its proper sequence.
-제임스 레게의 영역
여기서 왕래의 해석이 어려운데, 어떤 한 귀퉁이를 튕겨주니깐, 그 뒤로 거기에 따라오는 의미들을 빠르게 캐치한다는 뜻이다. 그러니깐 ‘넌 참으로 훌륭한 제자로구나’하는 뜻을 담고 있다.
모두가 이 장을 이렇게 해석한다.
그런데 시경이라고 하는 것은 음운학적, 성운학적인 지식을 빌려서 해석해야 한다.
노래이기 때문에 그렇다. 노래는 운(韻)이라는 게 있다. 그 운에 따라서, 발음을 재구성해서 노래를 해석해야 한다. 발음의 재구성에 따라서, 새로운 의미가 발견된다. 그러기 때문에 여기에 대해서는 상당히 전문적인 새로운 지식이 필요하다. 공자시대보다 지금 오히려 우리가 시경에 대해서 더 정확하게 알 수도 있다.
그래서 오늘 시경에 대한 강의는 시경(詩經)의 전문가로, 우리나라에서 음운학적으로 시경을 접근한 분을 모시겠다. 같은 집에서 사는 제 마누라다.
자랑이 아니라, ‘중국어 음운학’이라는 어려운 책을 썼다. 저번에 시 강의를 하면서 운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우리나라 훈민정음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알려면 이 책을 보셔야 한다. 중국의 음운학은 신숙주, 성상문 이런 사람들이 다 연구를 한 것이다. 훈민정음의 모태가 되는 것이 중국 음운학이다.
그것을 다시 연구를 해서, 중국의 음이 어떻게 변천되고,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최근에 쓴 사람이다. 하여튼 저보다 더 나은 학자다. 공부를 더 지독하게 하는 사람인데, 자기표현을 안 하고, 수줍어해서, 영 나오려고 하지 않아서, 내가 빌고 빌어서 시경 강의를 해달라고 모셨다.
5. 최영애 교수의 시경
최영애(崔玲愛) : 중국 산동성 제남(齊南)에서 태어났다. 대만대학에서 외국인으로 처음 중국언어학 방면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고, 연세대학교 중문과 교수
최 교수 :
제가 사실 공자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눌언이다. 말이 좀 어눌하고 잘 못한다. 양해를 바란다.
시경을 보면, 간단하게 3가지로 구성이 되어 있다. 풍, 아, 송이라는 3가지로 나눌 수가 있다. 시경이 모두 몇 편인가? 305편이다.
풍(風) 각 나라의 민요
아(雅) 귀족의 노래
송(頌) 종묘제례악
다시 말해서, 305수의 시다. 풍, 아, 송이라는 시가 시경에 실려 있다. 풍은 160수, 아는 105수, 송은 40수로 모두 더해서 305수가 된다. 아는 소아, 대아로 나뉘고, 송은 주송, 노송, 상송으로 나뉜다.
풍(風) 15개국의 노래. 160수
아(雅) 대아(大雅), 소아(小雅). 105수
송(頌) 주송(周頌), 노송(魯頌), 상송(商頌). 40수
풍은 15개국의 풍으로 나누어진다. 여러분들이 잘 아시다시피, 주남(周南) 소남(召南)으로 시작한다. 위풍, 제풍, 진풍, 정풍 등 이렇게 15개의 제후국에서 채집된 민요다. 절차탁마는 위풍에 나오는 시다.
사실은 시경 305편 중에서 국풍 160수가 시경의 백미라고 할 수 있다. 그렇게 아름다운 시들로 구성이 되어 있다.
국풍 중에서 위풍과 정풍에는 특히 남녀의 사랑 노래가 많이 실려 있다. 그래서 송대의 주자는 ‘정풍하고 위풍에는 음시가 많다.’고 한다.
음시(淫時) : 주자가 "음탕한 노래"라고 비하시켜 한 말이지만, 오히려 이 말은 주자가 『시경』을 바르게 인식했음을 나타내준다.
저는 이 낱말이 못마땅한데, 주자라는 사람은 사실 한(漢) 대의 유가(儒家)들이 왜곡한 시경의 본질을 어느 정도 파악한 사람이다. 음시(淫時)라고 했지만, 현대말로 바꾸면 ‘사랑의 노래’ ‘연가’다.
6. 모과
위풍의 절차탁마를 보기 전에, 같은 위풍의 아름다운 시 하나를 소개하겠다. 모과라는 위풍의 시다. 木瓜라고 쓴다. 전체가 3장으로 되어 있다.
投我以木瓜(투아이목과) : 나에게 모과를 던져 주시니
報之以瓊琚(보지이경거) : 나는 패옥를 주었다
匪報也(비보야) : 답례가 아니라
永以爲好也(영이위호야) : 영원히 좋은 짝이라 생각해서지요
여기까지 1절이다.
投我以木桃(투아이목도) : 나에게 복숭아를 던져 주시니
報之以瓊瑤(보지이경요) : 나는 아름다운 옥을 주었다
匪報也(비보야) : 답례가 아니라
永以爲好也(영이위호야) : 영원히 좋은 짝이라 생각해서지요
2절이다.
投我以木李(투아이목이) : 나에게 오얏을 던져 주시니
報之以瓊玖(보지이경구) : 나는 아름다운 보석을 주었다
匪報也(비보야) : 답례가 아니라
永以爲好也(영이위호야) : 영원히 좋은 짝이라 생각해서지요
여러분들이 벌써 느끼셨을 텐데, 3번째 4번째 구절을 보면 완전히 동일하다. 그게 후렴이다. 지금 가요의 후렴이다.
이걸 1절만 번역해보면 다음과 같다.
내게 모과를 던져와
패옥으로 보답하네.
보답이라기보다
길이길이 사랑하겠다는 뜻.
이 시는 여인이 자기가 사랑하는 남자에게 과실을 던져서 자기의 마음을 표시하는 것이다. 그럼 남자가 그것을 받고서 패옥으로 답을 하는 것이다. 나도 네가 좋다는 뜻이다.
7. 낙양지귀
이러한 풍습이 주(周)대 시경의 시대에서 끝난 게 아니고, 아주 후대까지 지속이 되어서 내려온다. 그게 문헌 기록에 나와 있다.
서진 시대라고 하면 대개 3-4세기다. 조조의 위나라가 망하고, 사마씨가 진을 세운다. 낙양이 그 당시 수도였다.
서진(西晉, 265 ~ 316) : 사마염(司馬炎)이 위(魏)를 선양받아 세운 나라. 낙양(洛陽)이 그 수도.
그 당시 가장 대표적인 서진의 두 시인이 있다. 동시대에 살았다. 한 사람은 반악이라는 사람이었고, 또 한 사람은 좌사라는 사람이었다.
반악(潘岳, 247 ~ 300) : 시부(時賦)에 능했던 서진의 명인. 어려서부터 신동으로 소문났고 미모가 출중했다.
이렇게 두 시인이 있었는데, 이 중에서 반악이라는 사람은 어렸을 때부터 아주 신동이었다고 한다. 사람들에게 귀염도 많이 받았고, 더구나 이 사람은 굉장히 아름다운 미남자였다고 한다. 아주 빼어나게 아름다웠기 때문에 여자들이 그렇게 좋아했다고 한다.
좌사(左思, 250 ~ 305) : 서진의 대문호. 제나라 임치의 사람. 희대의 베스트셀러 『삼도부』(三都賦)의 저자. 그러나 추남이었다.
이 반악이 잘 차려입고, 부채를 들고, 수레를 타고 낙양시내를 거닐면 여자들이 너도나도 다투어서 과실을 던졌다고 한다. 그래서 수레 가득 과실을 싣고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좌사라는 사람은 반악보다 詩는 더 잘 썼던 거 같다. 이 사람의 ‘삼도부’라는 시가 있는데, 사람들이 하도 좋아해서 너도나도 종이에 베꼈기 때문에 낙양의 종이가 동이 났다고 한다. 여기서 중국어로 낙양지귀(洛陽紙貴)라는 고사성어가 유래한다. 우리는 ‘낙양의 지가를 올리다.’라는 말을 하는데, 베스트셀러가 되었다는 뜻으로 지금까지 쓰고 있다.
낙양지귀(洛陽紙貴) : 사람들이 다투어 좌사의 『삼도부』를 종이에 베꼈기 때문에 낙양의 종이값이 폭등했다. 채륜이 종이를 발명한지 200년도 안되는 시기의 실제 사건이었다.
이게 바로 좌사의 삼도부에서 나온 것이다. 시는 그렇게 잘 썼지만, 아주 못생겼다고 한다. 추남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반악이 그렇게 과실을 수레에 싣고 들어오는 게 부러워서, 좌사도 차려입고 낙양 시내를 거닐었다고 한다. 어떻게 되었겠나? 여자들이 기왓장, 돌맹이를 던져서 기왓장, 돌맹이 세례만 잔뜩 받고 돌아왔다고 한다. 이런 일화가 ‘세설신어’라는 남조시대 초기, 5세기 초에 나온 책에 실려 있다.
『세설신어』(世設新語) : 유송의 황족인 유의경(劉義慶, 403 ~ 444)이 지은 위진남북조의 대표적 지인소설(志人小說). 연세대 중문과 김장환(金長煥)교수의 우리말 완역본이 있다.
이런 걸 보면 뭘 알 수 있을까? 과실을 자기 맘에 드는 남자에게 던지는 풍습이 서진 때인 3, 4세기까지 지속이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저는 여기 여학생들이 많이 앉아계신데, 이제부터는 좋아하는 남학생이 있으면 속으로 끙끙 앓지 말고, 연애편지를 쓰지 말고 던지세요. 모과도 좋고 유과도 좋고, 향이 향긋하니깐 던지세요. 사과, 배는 어떻겠는가?
도올 :
그러니깐 여기 모과라는 시는 봄날의 위나라 강가에서 나온다. 멋있는 남자가 지나가면, 모과를 던져서 마음을 표현하고, 그에 대한 정표로 남자가 패옥을 주면 남자와 그 여자 사이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러니깐 요새보다 상당히 공개적으로 연애를 한 것이다. 사이버 연예와 같은 흉악한 게 아니고, 강가에 남여가 같이 나와서 그런 방식으로 연애를 했다. 이 시는 그러한 풍습을 담은 민요다. 그리고 그런 풍습이 있었다는 것을 세설신어라는 후대의 기록에서도 명료하게 증명이 된다는 이야기다.
최 교수 :
이 모과를 漢대의 유가는 어떻게 해석을 했냐 하면, 제나라 환공을 찬미하는 것이라고 풀었다. 위나라에 오랑캐의 침입으로 위기에 있을 때, 제나라 환공이 달려가서 도와주었다. 그래서 위나라 사람들이 제환공을 찬미해서 부른 노래라고 한다. 정말 그렇게 했겠나?
木瓜, 美齊桓公也. - 毛時
8. 표유매
또 다른 시를 소개한다. 과실 던지는 시가 나왔는데, 이것도 같은 것이다. 이건 위풍이 아니고 소남이라고, 국풍 중에 앞쪽에 위치한 것이다. 소남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다. 정설이 없는데, 대개 소공이 통치하던 남쪽 나라에서 채집된 노래들이라고 한다.
소남(召南) : 국풍(國風)의 둘째 번 나라. 주나라 소공(召公)이 다스린 지역의 노래로 알려짐.
그 중에 하나다.
摽有梅(표유매) : 익어 따는 매화 열매
其實七兮(기실칠혜) : 남은 열매 일곱이어요
求我庶士(구아서사) : 내게 구혼할 도련님들
迨其吉兮(태기길혜) : 좋은 기회 붙잡아요.
摽有梅(표유매) : 익어 따는 매화 열매
其實三兮(기실삼혜) : 남은 열매 셋이어요
求我庶士(구아서사) : 내게 구혼할 도련님들
迨其今兮(태기금혜) : 오늘 곧 붙잡아요.
摽有梅(표유매) : 익어 따는 매화 열매
頃筐墍之(경광기지) : 대바구니에 주워 담았소
求我庶士(구아서사) : 내게 구혼할 도련님들
迨其謂之(태기위지) : 말씀만 해주세요.
매실을 던지네. 남은 열매 일곱 개
나를 좋아하는 뭇 총각 길일을 놓치지 마세요.
매실을 던지네. 남은 열매 세 개
나를 좋아하는 뭇 총각 오늘을 놓치지 마세요.
매실을 던지네. 비운 광주리 채 던지네.
나를 좋아하는 뭇 총각 말만 하세요. 어서 빨리.
세월은 가는데 노처녀에게 남자는 없고, 너무 안타까워서 부른 노래로 보인다.
도올 :
시의 진행 방식이 굉장히 강렬하다. 광주리에 7개 남았을 때는 길일을 놓치지 말라고 그랬다가, 그 다음에 3개 남았을 때는 오늘을 놓치지 말라고 했다. 그 다음에는 광주리 째 던지면서 지금 말만 하라고 한다. 그런 것이 살아 있는 민요다. 이게 무슨 임금의 덕을 찬양한 시(詩)이겠나? 그런데 한대 주석에서는 그렇게 읽었다. 오늘날 여러분들이 볼 때도 그건 틀린 주석이다.
마찬가지로 위풍의 기오(淇奧)도 그런 식의 곡해가 있다. 공자부터 곡해가 있을 수 있다. 그 이야기를 바로 해 주세요.
9. 기오
최 교수 :
사실 시경에 나오는 모든 시의 제목은 첫 번째 구절의 핵심이 되는 낱말로 되어 있다. 대개가 두 글자지만, 1글자도 있고, 3글자, 4글자도 있다.
기오(淇奧) : 『시경』의 노래 제목은 모두 그 노래의 첫행에서 따왔다. 『논어』의 편명이 이 예를 따른 것이다.
淇奧(기오) 물굽이 안쪽
膽彼淇奧 저기 저 기수의 물굽이 안 바라보니
綠竹倚倚 푸르른 대나무 여린 잎새 무성하여라
有匪君子 멋진 내님
如切如嗟 자른 듯 다듬은 듯
如琢如磨 쪼은 듯 간 듯
瑟兮僩兮 침착하고 위엄 있고
赫兮咺兮 빛나고 훤하여라
有匪君子 멋진 내님
終不可諼兮 못내 잊을 수 없어라
이게 1절이다. 여기서 절차탁마는 생김새를 묘사한 구절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한 대의 유가 이후에 절차탁마의 해석이 달라진 게 된 것은 아무래도 이 군자(君子)라는 낱말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여기서 군자라는 것은 후대의 도덕군자가 아니라, 시경에서는 대개 자기 남편이나 연인을 귀하게 부르는 말로 썼다. 도덕군자라는 게 아니다.
군자(君子) : 『시경』에서 이 말은 여자가 남편이나 애인을 부르는 단순한 호칭이며 후대의 "도덕군자"라고 하는 의미가 전혀 내포되어 있질 않다.
그런데 그것을 도덕군자로 해석을 한다면, 아까 도올 선생이 말씀하셨듯이, 내면적인 수행이라는 식으로 왜곡될 수가 있다.
도올:
그러니깐 공자 이후에 군자라는 말이 새롭게 규정이 되었고, 유가는 그 영향 하에서 보고 있다는 것이다. 공자가 의미를 주기 전에 군자는 그냥 단순히 사내라는 뜻이다.
그러면 절차탁마라는 말도 기생오래비가 포마드를 쫙 바르고, 제비들이 입는 옷 같은 거 입고 있으면 ‘자식, 쫀 듯이 자른 듯 하네.’라는 뜻으로 이야기될 수 있는 것이다. 포마드를 바른 제비족 같은 바람꾼이 나와서 여자 홀리려고 이러니깐 ‘아, 잊을 수 없어라. 아물아물하는 그 남자의 모습. 아, 빛나는 저 사내.’라고 표현한 것이다.
그런 뜻으로 보면, 지금 공자와 자공 사이에서 논의된 맥락은 전혀 없다. 그러면 벌써 이미 공자 시대 때 시경에 대한 왜곡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자기들 나름대로 이해가 된 것이라는 말이다. 오늘날 이걸 해석해 보면, 분명히 그런 게 아니다.
시경 전체에서 위풍이나 이런 것을 보더라도, 이것은 분명히 최 교수가 해석하는대로, 얌체 같이 짝 빠진 어떤 남자의 모습을 ‘깍은 듯, 자른 듯, 다듬은 듯, 간 듯.’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그런 섹시한 모습의 형용에 불과한 것을 이렇게 왜곡할 수 있냐는 것이다.
그러니깐 고전의 해석학이라는 게 이렇게 재미있는 문제가 있다.
최 교수 :
그러니깐 1절은 그런 내용이었고, 2절은 차림새를 묘사한 것이다. 3절은 행동거지를 묘사한다. 뒷부분만 보자.
寬兮綽兮
猗重較兮
善戱謔兮
不爲虐兮
너그럽고 여유롭게
수레 옆 손잡이에 기댄 모습이여
농담을 잘해도 지나친 법이 없어라
도올 :
첫 번째 두 구절을 보면, 모두 기수 물가에 있는 대나무를 표현하는데, 시(詩)의 추이에 따라 변화가 된다. 처음에는 여린 잎이 무성하다가, 좀 자라서 굳센 잎새가 되고, 마지막엔 아주 빽빽하게 무성해진 모습을 나타낸다.
시경에 나오는 연가는 대개 물과 봄이 같이 나온다. 봄철 물가에서 연애가 이루어진다. 이 시도 역시 봄의 물가에서 이루어진 연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된다.
『시경』에서 물가(水)와 봄(春)은 예외없이 연시의 모티프이며 성적 함의(sexual implication)가 있다.
10. 건상
이렇게 시경은 분명히 노래집이다. 오늘날 우리 노래 가사랑 똑같은 형태다. 후렴이 있고, 몇 마디만 변해가면서, 박진감 있게 그 흐름을 이어 간다.
예를 들면, 그 음탕하다는 鄭風 하나만 더 소개하겠다.
褰裳
子惠思我
褰裳涉溱
子不我思
豈無他人
狂童之狂也且
子惠思我
‘그대가 진실로 나를 사랑한다면’
‘그대가 진실로 나를 애틋하게 사모한다면’이라는 뜻이다. 사(思)는 사랑한다는 것이다.
褰裳涉溱
‘치마를 걷고 저 진수 물가를 건너오시지요.’
옛날에는 남자도 치마를 입었다. 그러니깐 바지를 걷고 물가를 건너오라는 게 아주 섹시하다. 이건 여자가 부른 노래다. 진(溱)은 정나라에 있는 개울이다.
子不我思
‘그대가 나를 생각하지 않는다면’
그렇게 말해놓고, 싹 말투를 돌린다.
豈無他人
狂童之狂也且
‘딴 사내가 없을까봐? 미친 새끼 지랄하네.’
이건 그대로 번역한 것이다. 흉악한 말이 아니다. 이건 변경을 시키면 안 된다. 내가 이렇게 강을 건너오라는 힌트까지 주는데, 나를 생각 안 해? ‘딴 사내가 없을까봐, 미친놈 지랄하네.’라고 한다.
오늘날 21세기 노래 가사로 해도 될만큼 아주 컨템포러리(contemporary)하다. 아주 앞서가는 이야기다. 그리고 옛날 여자들의 성 모랄이라든가 표현이 요새보다 훨씬 더 자유롭고 분방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게 아주 기막힌 것이다.
11. 유호
하나 더 소개해 드릴까요?
有狐
有狐綏綏 在彼淇梁 心之憂矣 之子無裳
有狐綏綏 在彼淇厲 心之憂矣 之子無帶
有狐綏綏 在彼淇側 心之憂矣 之子無服
이건 더 야하다. 이건 위나라 노래다.
시경이라고 그러면 사서삼경 중에 들어가는데, 옛날 사람들이 이런 것을 읽고 있었다는 것을 생각해 보라. 우리 할아버지들이 시경이라는 어마어마한 도덕책을 읽고 있는 줄 알았지만, 유행가 가사를 읽고 있던 것이다.
이건 민요인데, 무슨 제나라의 무공을 찬양한 시였겠는가? 상식적으로 너무 명백하다.
有狐綏綏
‘저 여우가 어슬렁어슬렁.’
호는 여우다. 이건 결혼 못한 남자다. 결혼 못한 남자가 어슬렁어슬렁 걸어오는 모습이다.
在彼淇梁
‘저 여우가 돌다리 위에 있구먼.’
양(梁)이라고 하는 것은 기수 위에 있던 것이다. 거리적으론 멀다.
心之憂矣
‘내 마음 졸여라.’
之子無裳
‘이 처자 치마가 없네.’
지자(之子)라는 건 ‘이 처자’라는 뜻이다. 시경에서 공통적으로 쓰인다.
有狐綏綏
‘저 여우가 어슬렁어슬렁.’
在彼淇厲
‘저 여우가 방파제 위에 있네.’
여(厲)는 더 가까운 방파제로 온 것이다.
心之憂矣
之子無帶
‘아! 내 마음 졸여라.
저 처자 허리띠가 없네.’
有狐綏綏
在彼淇側
心之憂矣
之子無服
저 여우 어슬렁어슬렁.
저 여우가 바로 가까이 왔네.
아! 내 마음 졸여라.
저 처자 이제 옷도 없네.
그러니깐 치마가 없고, 허리띠가 없고, 옷이 다 없어져 나체가 된 것이다. 성교의 장면을 바로 묘사해 들어간 시라고 보여진다.
시경은 이런 것들로 꽉 차 있다. 이런 게 한두 개가 아니다. 이게 시경이다. 오늘 우리는 시경을 오해하고 있다. 우리는 조선조에서 과거 시험을 보기 위해서 어렵게 공부한 대단한 시경으로만 생각한다. 그러나 시경의 실제 내용은 이런 아름다운 민요다. 아주 발랄한 내용이다. 오늘날 우리의 도덕적 가치관으로는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그러한 노래로 꽉 차 있다.
그런데 이미 공자와 자공 사이에서 벌여진 이야기는 이런 해석에서 이미 멀어져 있다.
공자와 자공 사이에서 기오(淇奧)노래가 이해된 구조는 이미 도덕적 왜곡을 거친 후의 해석일 뿐이다.
그리고 그것이 더 심화되어서, 한(漢)대에 완전히 잘못되었다가, 주자가 그나마 제대로 음시라는 나쁜 말로 평한 것이지만, 오히려 나쁜 말 속에 제대로 본 것이다.
그러다가 20세기 말기에 들어와서, 비로소 고고학, 음운학, 성운학이 발전하면서, 시경에 대한 연구를 통해서 오늘날 제 모습을 복원하고 있다. 그런 시경 복원의 대가가 바로 우리 최 교수다.
하여튼 제가 최 교수하고 죽기 전에 꼭 우리 둘이서 합작으로 시경의 완전히 오리지널한 의미를 새롭게 새기는 아주 훌륭한 번역을 한 번 해보려고 기획하고 있다.
우리 고전이라고 하는 시경의 가사들은 지금 가져다가 유행가 가사로 써도 될만큼 컨템포러리하다. 이런 것이 시경에 얽혀 있는 재미난 이야기라는 걸 말씀 드리고, 30분 후에 유가의 핵심적인 이론인 중용에 대해서 강의를 계속하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