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들의 ‘침묵’ 이것은 무엇인가?
윤지형 부산 신곡중 besanson@hanmail.net
1. 침묵의 언어 침묵이 갖는 힘의 진실을 부정하거나 모를 사람은 없다. 침묵은 아름답다. 침묵은 참되다. 침묵은 강력하다. 입만 다물고 있다고 해서 침묵인 것은 아니다. 침묵은 침묵이면서 말이고 말이면서 침묵이 되는 무엇이다. 그러기에 그것은 별처럼 빛나는 함의를 내장하고 있고 갠지스 강변의 모래알보다 많은 언어를 숨기고 있다고 해야 한다.
“무엇이 참된 법(진리)입니까?” 제자가 묻자 부처는 말없이 꽃을 들어 대중에게 보였다(拈華示衆). 아무도 그 뜻을 눈치 채지 못했으나 마하가섭만이 빙그레 미소했다. 부처의 법은 그렇게 전해졌다고 전해진다.
“무엇이 부처님의 참된 법입니까?” 제자가 묻자 조주 선사가 말했다. “뜰 앞의 잣나무니라.” 성동격서聲東擊西의 대답 - ‘잣나무’라는 말의 의미를 따라갔다간 법은커녕 잣나무조차 만나지 못한다는 걸 눈치채라는 침묵의 가르침이다. 부처의 법은 이렇게도 전해졌다고 전해진다.
또한 저 고매하신 보리달마는 말했다. “부처의 참된 법은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해질 뿐 문자를 세우지 않는다.” (以心傳心 不立文字)
2. ‘침묵’의 현전, 2010년(1) 선생이 된 지 25년째가 되는 지난해 10월 초 어느 날 오후 부장회의 시간. 늘 그러듯 교장, 교감, 행정실장까지 포함해서 15명이 참석했는데 회의 말미에 교장이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하라고 권했다. 한 가지 작정해 둔 게 있어서 내가 말문을 열었다. “이젠 정말 교가 좀 고만 틉시다. 꽃 노래도 한두 번이라는데, 선생님들과 학생들 모두에게 스트레스입니다.” 처음이 아니었다. 교가 문제에 관한 한 나는 이미 두어 번 교장에게 좋은 말로 건의를 한 바였다. 교내 식당에서 같은 테이블에 앉게 되는 때를 이용해서, 말하자면 자연스럽게 말이다. 지난해 9월에 새로 부임한 교장은 정년퇴임한 전 교장보다 여러 면에서 훌륭했다. 새 교장이 교감일 때 같이 근무해 봤다는 몇몇 선생들은 그녀가 우리 학교로 온다는 소문이 나돌 때부터 지나치게 깐깐하다는 둥, 선생들을 쥐어짜서 못 살게 군다는 둥 하며 수군거렸다. 이젠 우린 모두 죽었다, 정말 피곤하게 생겼다, 이런 식이었다. 그러나 막상 나타난 교장은 늘 웃는 얼굴에 합리성도 있어 보이고 나름의 경영 마인드를 가진 사람이었다. 일머리도 모자란 데다 턱없이 권위적이었던 전 교장에 비하면 격(!)이 달랐다. 학생을 대하는 태도도 그랬다. 전 교장이 어린 중학생들 앞에서 목소리만 큰 육군 상사처럼 굴었다면 새 교장은 자상한 젊은 할머니였다. 그런데 새 교장이 오자마자 벌인 몇 가지 소소한 일들 중에 교사와 학생 모두를 짜증나게 하는 게 하나 있었으니 그것은 아침 등교 시와 점심시간, 그리고 하교 시, 이렇게 세 번을 온 교정에 커다랗게 교가가 울려 퍼지게 한 것이었다. 그것도 한때에 세 번씩을 반복해서! (나중에는 때마다 한 번씩으로 줄어들긴 했다.) 교무실의 선생들은 혀를 차기도 하고 짜증을 내기도 했지만 그러고 말 뿐이었기에 내가 결국 한 번 더 말을 꺼낸 거였다. “그게 학생들로 하여금 교가를 자연스레 익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면 이제 한 달이 넘었으니 그 교육적 목적은 충분히 달성되었다고 봐도 좋지 않겠느냐”는 말도 덧붙였다. 부장 교사 두엇이 공감을 표시하는 듯 쿡쿡, 하고 웃었다. 그러자 교장도 빙긋 웃으며 대응했다. “그래도 학생들은 아주 좋아하는 것 같은데……?” “글쎄요, 설문 조사라도 한번 해 볼까요? 여하튼 저로선 여간한 스트레스가 아닙니다.” 교장은 잠깐 생각하더니 물었다. “다른 부장님들도 같은 생각입니까?” 예. 좀 그렇습니다, 교장 선생님. 누군가로부터 이런 대답 정도는 퍼뜩 나올 줄 알았다. 교무실에서나 식당에서나 적지 않은 선생들이 교가에 대해 불만을 토로한 바 있고, 그날 회의실의 공기도 험악과는 거리가 멀었기 때문이다. 누구라도 농담 한마디는 던질 수 있는 그런 느슨한 분위기였던 것이다. 그러나 종내 아무도, 그 아무도 말이 없었다.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째깍, 째깍, 째깍……. 침묵이 1분여를 넘기자 회의실은 숨 막힐 듯 갑갑해졌다. 누구나 다 그랬으리라. 그러자 현명하게도 교장이 침묵을 깨며 결론을 냈다. “말 않고 계시는 걸 보니 다들 윤 부장 말에 공감하는 모양이군요.” 다시 다들, 침묵.
3. ‘침묵’의 현전, 2010년(2)
선생님들의 관심을 호소합니다. 어제 저는 퇴근길에 부산시교육청에 다녀왔습니다. 그 정문 앞으로 150여 명의 선생님들이 모여 있는 가운데 단상 쪽 펼침막엔 ‘민노당 후원 교사 징계를 철회하라’는 글귀가 크게 쓰여 있었습니다. 언론 보도를 통해 아실 테지만 지난 5월, 민주노동당에 매달 1, 2만 원의 후원금을 낸 전교조 교사 183명(부산 23명)을 검찰이 기소하자 교과부는 기다렸다는 듯 각 시도 교육청에 이들을 당장 배제징계(파면·해임)하라고 요구했더랬습니다. 하지만 그 후 6.2 지방 선거가 있었고, 6개 시도에서 진보적 교육감이 당선되었고, 그와 함께 여론이 정권 측에 불리하게 돌아가자 교과부는 징계의 칼날을 슬그머니 감추었었지요. 그런데 교과부는 며칠 전 설동근 신임 교과부 차관이 주재한 전국 부교육감 회의를 통해 바로 오늘인 11월 29일까지 징계를 마무리하라고 다시 지시를 내렸더군요. (중략) 어제 교육청 정문 앞 집회 현장에서 우리 학교 B 선생님의 남편이며 23인 중의 한 사람인 L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저와 비슷하게 벗겨진 머리에 수염까지 기른 얼굴로 환하게 웃으며 악수를 청하더군요. 와 줘서 고맙다고요. 기온이 급강하한 그저께와 어제, 그를 포함한 23명의 해당 선생님들은 교육청 본관 앞 차가운 바닥에서 밤을 새웠습니다. 마음속으로 눈물이 났습니다. 아, 언제가 되면 우리 교사들은, 민주주의 좀 제대로 해라, 니네들 힘 있는 자들 경쟁의 논리로 아이들 그만 괴롭혀라, 강과 자연을 훼손하지 마라, 이렇게 소리칠 필요 없는 세상에서 마음 편히 아이들 가르치는 일에만 전념할 수 있을까, 하고……. 저는 새 교육감님이, 정부의 강권에도 불구하고 징계 여부는 법원의 판결 이후로 미루겠다는 서울·경기·강원·전남·전북·광주의 새 교육감님들처럼 우리 선생님들을 지켜 주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러도록 하기 위해서는 선생님들의 따뜻한 관심과 동료애가 꼭 필요합니다.
지난해 11월 29일 아침, 교내 메신저(학교에 따라 ‘쿨cool 메신저’라고도 하고 ‘핫hot 메신저’라고도 하는)에 교장에서 행정실 소속의 목수에 이르기까지 교직원 모두에게 위와 같은 메시지를 띄웠다. 오후 늦게 답장이 하나 왔다.
“기분도 별론데 오늘 마치면 막걸리나 한잔합시다아.”
유일한 짧은 답장이었는데, 그 발신인은 5월엔가 내가 술을 한잔 산 적이 있는, 쾌활한 성격의 목공실 주사였다. 교사의 답장은 없었다. 점심시간 식당에서 나와 마주 앉은 동년배 교사도 복도에서 마주치는 전교조 조합원 교사도, 적어도 내게는, 징계 문제에 관한 한 어떤 방식으로든 촌음의 관심도 표명하지 않았다, 하루 종일. 물론 남편이 징계 대상자인 B 선생에게는 몇몇 여 선생님이 말을 붙이는 걸 나는 보았다. 또한 7명의 조합원 교사들은, 그 관심의 농도에는 차이가 있을지언정 이미 이심전심이라 여겨도 좋았다(사실 그랬다-모두는 아닐지라도). 그래서 생각해 본다. 나는 메신저에 그런 글을 날려 놓고는 무얼 기대한 것일까?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았다고 한다면 모순이겠다. 하지만 나는 정말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았다, 아무것도. 10년, 20년 동안, 교사들의 저 무서운, 저 이해할 수 없는, 저 슬픈 침묵을 나는 보아 왔다. 그리고 오늘 나는 그 교사들이 무섭지도, 이해할 수 없지도, 슬프지도 않다. 그렇게 되었다.
4. ‘침묵의 교단’과 ‘노예 같은 침묵’을 깨고 나섰던 교사들의 추억 1960년 4.19혁명의 위대한 열매였던 교원노조가 이듬해 5.16 군사정권의 폭정으로 처참하게 짓밟히자 교사들은 강요된 침묵과 좌절의 늪 속으로 빠져들었다. 그 세월이 너무 길었던 탓일 터다. 교사들은 어쨌든 먹고살아야 했고, 자연 길들여졌고, 소시민의 쥐꼬리 안락을 탐했고, 타락했다. 단테의 한 구절을 떠올린다.
깃발을 따라 사람들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죽음이 그렇게 수많은 사람들을 쓰러뜨렸다는 것을 난 믿을 수 없었다. - <신곡> 지옥 편 3곡 中
그러니까, ‘강요된 침묵이 그토록 수많은 교사를 쓰러뜨렸다는 것을/ 난 믿을 수 없었다’고 나는 말하고 싶은 것이다. 그랬기에 교사들이 1989년 5월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의 깃발과 함께 분기했을 때 아마도 가장 많이 목 놓아 부른 노래는 이러할 수밖에 없었으리라.
굴종의 삶을 떨쳐/ 반교육의 벽 부수고 침묵의 교단을 딛고서/ 참교육 외치니 - <참교육의 함성으로> 1절, 첫 구절
속아서 살아온 세월/ 노예 같은 침묵의 세월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전교조 깃발 높이 올렸다 - <전교조 투쟁가> 2절, 첫 구절
그전에 이미 YMCA중등교육자협의회 소속 교사들의 5.10교육민주화선언(1986년)이 있었고, 1987년 6월 민주화대항쟁의 열기 속에서 가을에는 전국교사협의회가 건설되면서 일선 학교에서는 평교사협의회가 속속 결성되었다. 부패와 억압의 복마전 같은 사립학교의 교사들도 그야말로 ‘떨쳐’ 일어났다. ‘아이들의 초롱한 눈망울 앞에서’ 더 이상은 부끄러운 침묵을 계속할 수 없음을 교사들은 학교 안에서, 학교 밖에서, 그러니까 만천하에 선언하고 나섰던 것이다. 기만의 죽은 침묵이 한번 깨지자 참되고 생명 있는 말은 봇물이 되어 터져 나왔다. 침묵을 깬 대가는 혹독한 것이었지만(사립학교 민주화 운동에 앞장서다 쫓겨난 300여 교사들과 전교조 결성과 관련해 해직된 1,500여 교사들의 고난만 생각해도 그러하다. 함께했던 수만의 교사, 수십만 학생들의 피와 땀과 눈물은 잠시 밀쳐 두더라도), 그 선물은 그 대가를 치르고도 남음이 있었다. 침묵을 깸으로써 열린 교사들의 저 초유의 자유와 첫사랑의 문, 그 문은 한번 열리면 다시는 닫히지 않는다는 진리(법)의 문을 닮아 있지 않은가. 다시금 지옥의 변방으로 추방당한다 할지라도, 절해고도의 감옥에서 입에 재갈을 물게 된다 할지라도 어둠의 벽을 뚫고 비추는 한 줄기 빛처럼 그 자유와 사랑의 문은 내 가슴속에 영원히 열려 있을 것이기에.
5.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학교 식당의 점심시간 풍경을 떠올려 본다. 교사들은 사실 참 많은 말을 한다. 하긴 교사는 말로 먹고 사는 족속이라지. 어쨌든 교내 식당의 밥상에는 다른 무엇보다 인터넷에서 공급되는 갖가지 뉴스들이 교사들의 입을 통해 올라온다. 이따금 놀람과 한탄과 웃음과 자조도 울려 퍼진다. 그런데 그러고는 그만이다. 어떤 뉴스도 모두들 알고 있거나, 알아도 그만 몰라도 그만인 뉴스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물론 밥상머리에서는 그래야 한다.(밥상머리에서 심각한 얘기를 꺼내는 자에게 저주가 있을 진저!) 하지만 딴은 그것도 아니다. 북의 연평도 포격 뉴스만큼 심각한 뉴스가 있나? 그러나 이것도 별 무리 없이 밥상에 오른다. 그것도 여러 번. 중학생이 여교사를 때린 뉴스만큼 심각한 뉴스가 있나? 이것도 당연 밥상에 오른다. 그것도 여러 번. 때론 G20(이때 G는 ‘지’가 아니라 ‘쥐’로 일단 읽어야 하는데) 정상회담 서울 개최를 홍보하는 포스터에 쥐를 그려 넣은 대학의 미술 강사가 경찰에 체포되었다는 정말 심각한 뉴스도 밥상에 오른다. 그러니까 연쇄 살인범 뉴스도 있고,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의 파업 뉴스도 있고, 학교에서 가까운 아파트 25층에서 뛰어내린 고교생에 관한 뉴스도 있다. 때론 평생 삯바느질로 모은 전 재산을 대학에 몽땅 기부한 어떤 할머니의 미담 뉴스도 끼어들긴 한다. 그러나 이런 심각하지 않은 뉴스보다 심각한 뉴스가 압도적으로 많다. 해만 뜨면 쏟아지는 심각한 뉴스들. 여기에 교사들은 포위되어 있다. 하지만 그래서 어쨌단 말인가? 그 어떤 것도 점심밥의 맛을 돋우는 가십거리일 뿐이라면…….
때론 연평도 사태 같은 걸 놓고서는 ‘조·중·동’과 ‘한겨레·경향’이 교사의 입을 통해 대리전을 치르기도 한다(아주 드문 일이긴 한데 왜냐하면 이런 사안의 경우 ‘조·중·동’은 대체로 대놓고 떠들어 대기 십상인 데 반해 ‘한겨레·경향’은 진작 입을 닫아 버릴 때가 많으니까). 그러나, 어쨌든 분명한 것은 연평도 문제가 전쟁과 평화에 대한 성찰로 이어지는 일은 좀체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점심 밥상머리에서 그걸 굳이 기대한다는 건 아니지만). 학생의 교사 폭행 사건 뉴스도 마찬가지다. 여기에 관한 한 교사들의 공분이 있다. 한탄과 자조도 있다. 그러고 그뿐이다. 이것이 승자독식이라는 무한경쟁 사회의 폭력성을 되돌아보는 계기로 얘기가 진전되는 법은 없다. 거기까지 가선 안 된다는 묵약이 있는 것일까? 침묵의 약속! G20 광고 포스터에 쥐를 그려 넣은 젊은 화가가 경찰에 체포되었다는 뉴스는 교사들 사이에서도 적지 않은 말들을 불러일으키기도 하지만 어느 순간엔 다들 시들하게 입을 다문다. 그것은 그 뉴스가 ‘그렇다면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인가’라는 불온한 질문으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는 어떤 묵약, 침묵의 약속 때문이 아닐까, 나는 의심한다. 혹은 ‘민노당 후원 전교조 교사를 향한 초법적 칼날이, 현 정권의 전교조 죽이기라는 무지막지한 칼날이 결국엔, 법 없이도 살아갈 자신만만한 당신, 혹은 쑥쑥 성장해 갈 당신의 사랑스런 아들딸을 향한 칼날일 수 있다는 사실을 생각할 줄 알아야 한다’는 말 따위는 아무리 옳고 그럴듯해 보여도 속으로 그러려니 하고 말아야지 그쪽으로 한 걸음이라도 내디뎌선 안 된다는 자신과의 묵약, 침묵의 약속을 깨어서는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내 (가족의) 평화가 깨질지도 모르니까, 공연히 그럴 필요가 없는 것이지, 앞만 보고 달려도 벅찬 인생인데! 이렇게 교사들은 말없이, 외치고 있는 것만 같다. 두려움에 떨면서, 혹은 두려움에 떨고 있다는 사실 자체도 모르면서. 그렇다면 그들은 수많은 말들 속에서도, 혹은 죽음 같은 침묵 속에서도, 결국엔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는 셈이 되는 것이리라.
6. 깨어져야 할 침묵과 존재해야 할 침묵 홀로 내게 물어본다. 정녕 교사들은 다시금 깊은 침묵의 바다 밑으로 가라앉아 버린 걸까? (‘다시금’이라 한 것은 ‘노예 같은 침묵’을 깨고 나왔던 시절도 있었기 때문이다. 1960년 4.19 교원노조와 1989년 5.28 전교조를 다시 상기하라.) 그런 걸까? 그렇다면 ‘다시금’ ‘침묵의 교단을 딛고서’ 외칠 날도 오겠지. 그 침묵은 가당찮은 MB 정권의 폭정과 음양으로 관련되어 있다는 의미에서 정치적 함의도 있는 것이니까. 그러니까, 좋은 세상이 오면 교사들의 입도 절로 열리겠지. 근데 생각하건대 이것도 아니야. 교사들이 긴긴 침묵을 깬 것은 좋은 세상이 와서가 아니라 나쁜 세상이 너무 오래 지속되어 더는 참을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었잖아?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전교조 깃발 높이 올렸다’는 노래가 그냥 나온 건 아니다.) 그렇다면 지금 대다수 교사들이 침묵하는 건 지금 세상이 좋다는 걸까?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MB 정권은 탄생한 거니까. 그럼 돈의 논리, 시장의 논리, 약육강식 경쟁의 논리가 학교와 세상을 잠식해 가고 있는 현실에 대한 교사들의 침묵은 강요된 침묵일까 자발적 수용의 침묵일까? 혹은 강요된 침묵을 자발적으로 수용하게 되고 만 것이라고 할까? 나는 모르겠다. 이럴 때는 이것에 가깝고 저럴 때는 저것에 가까운 무엇이겠지……. 정말 모르겠다고 고백할 때가 된 것 같다. 오늘도 목도하고 내일도 목도하게 될 교사들의 침묵에 대한 정치경제학적 분석과 고찰은 애초 내 몫이 아니었다고, 능력 밖이라고, 사회학적 접근도 심리학적 접근도 마찬가지라고. 그래서 나는 거기로부터 도망치곤 해 왔다. 그러한 분석과 고찰과 접근의 효용 가치를 부정해서가 아니라 내게 때로 그것들은 매우 휘발성이 강한 무엇이기 때문이다. 이제 나는 그쪽으로부터 고개를 돌린다. 그러면 이쪽엔 무엇이 있나……. 이를테면, 파스칼이 있다고 해야겠다.
이 무한한 공간의 영원한 침묵이 나를 두렵게 한다. - <팡세> 제15편 中
저 우주적 침묵 앞에서 두려워할 줄 아는 존재로서 교사를 생각한다. 그 침묵, 그 존재론적 두려움에 대한 성찰 내지는 응시 없는 어떤 말도 침묵도 이미 헛되다는 가르침을 생각한다. 다시 말해 나는 지금 교사의 실존, 침묵의 실존을 생각한다. 어떤 실존도 정치경제학적 토대, 혹은 역사적·사회적 상황을 배제하고는 그 실상이 충분히 드러나지 않는다는 사상이 갖는 진실의 위력에도 불구하고 나는 오늘, ‘토대’와 ‘상황’의 고리를 끊어 낸 어떤 자리의 교사의 실존을 생각한다. 교사 이전에 한 인간인 존재, 그러기에 인간의 궁극적 진실, 전취해야 마땅할 진리(법-적멸)를 지향하는 존재로서 교사의 실존을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교사들의 침묵의 참된 실상도 드러날 것이므로.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르면서, 캄캄한 밤하늘에 별은 빛나고 있기에, 감연히 말해 본다. 나여, 교사여, 침묵을 깨라. 그리함으로써 정녕 침묵에 이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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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지형
부산 해운대 바다가 가까운 신곡중학교에서 국어를 ‘배우며 가르치며’를 하고 있습니다. “나를 등불 삼고 법(진리)을 등불 삼으라.自燈明 法燈明”라는 부처의 가르침을 마음에 새기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