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0월 16일 일요일
올 해 노벨문학상을 탄 '아니 에르노' 의 작품 <단순한 열정> 을 읽었다. 한 인간이 살아온 궤적을 일인칭으로 기술하면서 자아의 정체성을 모색하는 작품이다. 거대한 담론이 무너지면서 작가의 시선이 집단에서 개인으로, 구조에서 주체로 이동하고, 그간 예술적 관심사에서 외면당했던 평범한 개인의 낮은 목소리와 사소한 몸짓이 부각되면서 일상의 의미가 새롭게 해석되는 현상이 이 작품의 형성 배경인 것 같다.
이 작품은 한 여인의 범상치 않은 사랑 이야기이다. 주인공은 한 남자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시간이 흘러 그와 헤어진 후 그 사랑이 남겨둔 기억들을 반추한다. "작녀 9월 이후로 나는 한 남자를 기다리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라는 고백이 보여주듯, 그 사랑은 폭풍과도 같은 열정적인 사랑이다.
이 사랑은 그녀의 일상과 몸과 정신과 영혼을 완절히 뒤엎어 놓는다. 넋이 나간 듯한 상태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사소한 것이라도 그 남자와 관련된 이야기에는 온 신경이 쏠린다. 그의 전화를 미친듯이 기다리지만, 막상 그와 만날 시간이 다가오면 너무도 초조해진 나머지 아무 일도 할 수가 없다. 만남이 끝나고 그가 떠나면 다시 그의 전화만 기다리는 고통스러운 나날이 계속된다. 한번쯤 사랑에 빠져본 사람들이라면 공감이 갈 것 같다.
그러나 이 작품에는 사랑에 관한 여타의 소설들과 다른 점이 있다. 너무도 강렬하고 생생하여 두려움을 불러일으키고, 심지어 편집증이나 정신병으로까지 느껴지는, 광기에 가까운 사랑의 허기가 집중적으로 돋을새김되어 있기 때문이다. 서술방식 또한 너무나 사실적이이어서, 읽는 사람은 충격과 전율, 때로는 당혹감까지 느끼게 된다. 그것이 작가 자신이 실제로 겪은 이야기라는 대목에서는 더더욱 충격적이다. 지난날의 추억은 세월이라는 체를 통과하는 동안 미화되게 마련인데, 아니 에로노는 소름끼칠 정도의 냉정함으로 자신이 겪은 사랑을 미추의 구분이나 도덕적 판단을 미러둔 체 낱낱이 써나가고밌는 것이다.
처음 발표되었을 때 르노도상 수상한 유명한 유명 작가이자 대학교수인 아니 에르노가 연하의 외국인 유부남과 가진 불륜 체험이 거의 사실 그대로 고백되었기 때문에 일대 파란을 몱고 왔었다. 그런데 몇 년 뒤 한 번의 파란을 몰고 온다. <단순한 열정> 을 읽고 깊은 인상을 받아 독자로서 작가인 아니 에르노를 만나고 그녀의 애인이 된 그녀보다 33세 연하인 필립 빌랭이라는 청년이 그녀와 5년간의 사랑을 <단순한 열정> 의 문체까지거의 그대로 옮겨 <포옹> 이라는 소설로 발표했다.
어쨌거나 이 작품은 기억에 관한 소설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사랑을 하는 동안에는 주변의 모든 것이 온통 '그 사람' 을 기억하게 하고 환기 시킨다. 하지만 머지않아 모든 게 흐릿해지는 순간이 온다. 마무리 소중했던 사랑의 기억도 세월의 무게를 견져낼 수는 없다는 듯이 ㆍㆍㆍㆍㆍ
* 이 작품을 읽으면서 작가의 용기에 감탄하였다. 유부남과의 사랑을 감추려는 일반 사람들과 달리 섬세하고 소상히 밝히는 것이 참으로 대단하였다. 자신의 남편이나 자식들이 다 읽으면 어쩌나~~ 다음 읽을 작품은 <세월> 이다.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