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그 무렵에 다시 큰 무리가 모여 있었는데, 먹을 것이 없었다. 예수께서 제자들을 가까이 불러 놓고 말씀하셨다.
2. "저 무리가 나와 함께 있은 지가 벌써 사흘이나 되었는데, 먹을 것이 없으니 가엾다.
3. 내가 그들을 굶은 채로 집으로 돌려보내면, 길에서 쓰러질 것이다. 더구나 그 가운데는 먼 데서 온 사람들도 있다."
4. 제자들이 대답하였다. "이 빈 들에서, 어느 누가 무슨 수로, 이 모든 사람이 먹을 빵을 장만할 수 있겠습니까?"
5. 예수께서 그들에게 물으시기를 "너희에게 빵이 몇 개나 있느냐?" 하시니, 그들이 대답하기를 "일곱 개가 있습니다" 하였다.
6. 예수께서는 무리에게 명하여 땅에 앉게 하셨다. 그리고 빵 일곱 개를 손에 드시고, 감사를 드리신 뒤에, 떼어서 제자들에게 주시면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게 하시니, 제자들이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7. 또 그들에게는 작은 물고기가 몇 마리 있었는데, 예수께서 그것을 축복하신 뒤에, 그것도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게 하셨다.
8. 그리하여 사람들이 배불리 먹었고, 남은 부스러기를 주워 모으니, 일곱 광주리에 가득 찼다.
9. 사람은 사천 명쯤이었다. 예수께서는 그들을 헤쳐 보내셨다.
10. 그리고 곧 제자들과 함께 배에 올라, 달마누다 지방으로 가셨다.(마가복음8:1-10)
1. Not long afterward another large crowd came together. When the people had nothing left to eat, Jesus called the disciples to him and said, 2. “I feel sorry for these people, because they have been with me for three days and now have nothing to eat. 3. If I send them home without feeding them, they will faint as they go, because some of them have come a long way.”
4. His disciples asked him, “Where in this desert can anyone find enough food to feed all these people?”
5. “How much bread do you have?” Jesus asked. “Seven loaves,” they answered.
6. He ordered the crowd to sit down on the ground. Then he took the seven loaves, gave thanks to God, broke them, and gave them to his disciples to distribute to the crowd; and the disciples did so. 7. They also had a few small fish. Jesus gave thanks for these and told the disciples to distribute them too. 8-9. Everybody ate and had enough—there were about four thousand people. Then the disciples took up seven baskets full of pieces left over. Jesus sent the people away 10. and at once got into a boat with his disciples and went to the district of Dalmanutha.
1. 그 무렵에 다시 큰 무리가 모여 있었는데, 먹을 것이 없었다. 예수께서 제자들을 가까이 불러 놓고 말씀하셨다.
1. Not long afterward another large crowd came together. When the people had nothing left to eat, Jesus called the disciples to him and said,
예수님을 전하면 사람들은 우리에게는 불교도 유교도 있다고 답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기독교는 서양의 종교라고 반박합니다.
기독교는 과연 특정한 지역의 사람을 위한 것인가?
이스라엘만 위한 것인가?
주님은 지금 이방 지역에 가셨습니다.
이방 사람들도 줄줄이 예수님께 모여들었습니다.
그들이 예수님께 몰려든 이유는 먼저 질병 때문이었습니다.
32. 그런데 사람들이 귀 먹고 말 더듬는 사람을 예수께 데리고 와서, 손을 얹어 주시기를 간청하였다.
33. 예수께서 그를 무리로부터 따로 데려가서, 손가락을 그의 귀에 넣고, 침을 뱉어서, 그의 혀에 손을 대셨다.(막7:32,33)
히로시마 원전의 오염수로 사람들은 소금을 사고 있습니다.
우리 마을 할머니 한 분도 소금을 다섯 가마인가 미리 사두었다고 했습니다.
최소한 사람 생명에 관심을 가진 것입니다.
이 오염수의 위험이 있기 전까지 사람들은 원자력 발전소의 전기를 믿고 에어컨 살 생각만 했습니다.
소금을 생각도 없었습니다.
위험이 코 앞에 보이면 사람들은 그 때야 진지해집니다.
종교적인 유대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야이로라는 회당장이 성경 해석 문제 때문에 주님 앞에 엎드러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가 예수님 앞에 넙죽 엎드린 것은 딸이 죽게 생겼기 때문이었습니다.
22. 회당장 가운데서 야이로라고 하는 사람이 찾아와서 예수를 뵙고, 그 발 아래에 엎드려서
23. 간곡히 청하였다. "저의 어린 딸이 죽게 되었습니다. 오셔서, 그 아이에게 손을 얹어 고쳐 주시고, 살려 주십시오."(막5:22,23)
병든 딸이 없는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두고 성전 모독 어쩌고 말씀과 전통이 저쩌고 비판이 많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야이로는 그럴 여유가 없었습니다.
집에서는 딸이 마지막 가쁜 숨을 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딸만 살려주면 우상 앞에 엎드려도 된다는 말은 절대 아닙니다.
야이로는 결국은 딸 때문에 그리스도도 알게 되고 또 만나게 된 것입니다.
질병이 복이 된 셈입니다.
죽음의 위협을 당하고 보니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똑같았습니다.
유대 사람이나 이방 사람이나 죽을 현실이 예수님께 가게 되는 초청장 구실을 했던 것입니다.
여기에 등장하는 귀먹고 눈먼 육체적인 장애는 특정한 사람에게 주어진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 장애 없이 사는 사람이 많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자신을 더 주의 깊게 살펴보라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은 치명적인 질병을 가졌는데 그것은 인생 80이 되면 늙어 죽는 절대 질병입니다.
27. 사람이 한 번 죽는 것은 정한 일이요, 그 뒤에는 심판이 있습니다.(히9:27)
어떤 사람에게도 예외는 없습니다.
히말라야 어디 가면 수천 년 안 죽는 도사가 산다더라 하는 헛소리가 있습니다.
제가 참소리를 하겠습니다.
“진시황도 죽었더라!”
“싣다르타도 죽더라!”
복음은 바로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죽음이라고 불리는 그 문제를 해결하심으로 그리스도가 되신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영원한 생명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주님께서 바로 이 영생의 말씀을 들려주셨을 때 이방 사람들도 사흘을 거의 굶다시피 하면서 주님의 말씀에만 귀를 기울였습니다.
들판에서 잠을 자면서 주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거기에 모인 누구도 주의 말씀을 듣느라고 사흘을 굶으며 들판에서 밤을 지새우게 될지 생각도 못 했습니다.
제가 설교를 한 시간만 해도 참지 못하고 나가실 사람들이 많을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사흘 동안 듣고 있었습니다.
그런 영적인 시간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그래도 헤어져야 할 시간이 있었습니다.
우리도 노상 그 훈련을 받고 있습니다.
1 주일에 한 번 주일 오전 11시에 교회에 모였다가 예배 마치고 서로 헤어지는 훈련입니다.
그 영적 시간은 나흘까지 연속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사흘 동안 영적인 충만 때문에 나흘째부터 이슬만 먹고 살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나흘 되는 날 집으로 돌아가다가 길에서 그 사람이 쓰러질 수 있음을 염려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해보세요.
도사는 없다.
한계를 가진 죄인만 있을 뿐입니다.
강대상에 서서 자신은 밥 안 먹어도 살 수 있는 것처럼 말하는 사람은 사이비 교주입니다.
교회 안에는 강대상 위에서 설교하는 죄인의 괴수가 있고 또 교회 장의자에도 죄인들이 있을 뿐입니다.
루터는 아주 재미있는 지적을 했습니다.
믿는 사람은 죄인이며 동시에 의인이라고 했습니다.
기독인이란 이 모순 된 존재입니다.
우리는 철저히 육적 존재이며 그리스도 안에서 철저히 하나님의 영적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은혜를 많이 받은 사람이라도 교회에서 사흘을 굶으면 길 가다가 꼬꾸라진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삼층천을 다녀온 바울이라도 솥에 밥 끓여 먹고 먹은 후에 설거지해야 했습니다.
화장실도 가야 하고.......
도사로 치면 최고의 도사인 바울은 그 먹는 문제 해결을 위해 장막을 짓기도 하며 이웃들에게 물리적인 도움을 받았습니다.
18. 나는 다 받아서, 풍족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나는 여러분이 보낸 것을 에바브로디도에게서 받았으므로 풍족합니다. 그것은 아름다운 향기요,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제물, 곧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제물입니다.
19. 나의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영광 가운데서, 그분의 풍성하심을 따라 여러분에게 필요한 것을 모두 채워 주실 것입니다.(빌4:18,19)
사람들에게 치명적으로 중요한 일이 먹는 일입니다.
굶으면 죽으니까.......
따라서 성경은 이 중요한 주제를 여러 번 다루고 있습니다.
가장 먼저 주님의 공생애가 시작될 때입니다.
마귀는 40일을 금식하신 예수님께 돌로 양식을 만들라고 요구했습니다.
여러분들은 오병이어의 기적으로 5,000명을 먹이신 이야기를 알고 있습니다.
오늘 또다시 7개의 떡과 몇 마리의 물고기로 4,000명을 먹이신 것입니다.
먼저 사탄이 예수님께 양식을 만들어달라는 요구를 드렸을 때부터 살펴봅시다.
지금도 북한에서는 많은 사람이 굶어서 죽어가고 있습니다.
얼마 전 뉴스를 보니 기아를 피해 이 남한 땅에 와서 또다시 굶은 탈북민이 있었습니다.
주님의 능력으로 돌이 떡으로 된다면 그보다 좋은 일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하지만 주님은 사탄의 요구를 분명하게 거부했습니다.
3. 그런데, 시험하는 자가 와서, 예수께 말하였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이 돌들에게 빵이 되라고 말해 보아라."
4.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성경에 기록하기를 '사람이 빵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다' 하였다."(마4:3,4)
주님은 거절의 이유를 분명히 밝히셨습니다.
돌로 떡을 만들 경우 사람들은 먹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고 할 것입니다.
다른 것들은 다 부수적인 문제가 될 것입니다.
배부르니 성경을 보는 것이지.......
또 그리스도의 가장 중요한 사역을 세상 양식 보장으로 여기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사탄의 요구를 거부하실 때 육신의 양식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영적 양식이 있음부터 밝히셨습니다.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이 진정한 삶을 보장한다는 것입니다.
동방의 가장 큰 의인은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12. 내가 그의 입술의 명령을 어기지 아니하고 정한 음식보다 그의 입의 말씀을 귀히 여겼도다.(개정개역)(욥23:12)
욥은 하나님의 말씀을 음식에 비교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이 일용할 양식보다 더 귀하다고 고백했습니다.
밥이 육신의 양식이면 말씀은 영의 약식입니다.
세상의 양식은 먹어도 사람이 죽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영생을 보장합니다.
2. "저 무리가 나와 함께 있은 지가 벌써 사흘이나 되었는데, 먹을 것이 없으니 가엾다.
2. “I feel sorry for these people, because they have been with me for three days and now have nothing to eat.
*기적의 배경
주님의 양식을 베푸시는 일에는 분명한 신학적이 고려가 있습니다.
그래서 사탄의 요구를 부인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특별한 배경에서 이 일을 하신 것입니다.
그런 고려가 없이 또 배경을 무시하고 사람들에게 양식을 베푼다면 사람들은 그 하나님의 기적을 세상 배를 채우는 기회로 삼을 것입니다.
신학적인 고려가 없는 부흥사의 기적들이 하나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을 무시해도 된다는 메시지를 주게 될 것입니다.
제가 다시 주의하는 것은 영적 고려 없이 일으키는 기적들이 말씀을 역행한다는 것입니다.
5. 그리고 마음이 썩고 진리를 잃어서, 경건을 이득의 수단으로 생각하는 사람 사이에 끊임없는 알력이 생깁니다.(딤전6:5)
음식에 파리가 끌 듯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드러내는 기적들 경건들을 세속 이익의 수단으로 삼으려는 자들이 모여 들 것입니다.
기적이 이런 위험성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급식의 동기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기적을 베푸셨습니다.
사람들은 배를 굶은 채 집으로 가야 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누구도 그것을 문제시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그것을 염려하신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양식을 주셨습니다.
이렇게 주님께서 급식 기적을 자청하신 것은 사탄이 주님께 돌로 양식 만드시라는 상황과는 다른 상황이었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이 주님과 함께 하며 오직 주님의 말씀을 듣다가 이런 일이 일어났던 것이 달랐습니다.
또 사람들이 사흘 동안 제대로 먹지 못했던 현실이 달랐습니다.
주님은 그들을 염려하시고 가엽게 여기셨습니다.
*굶주림
그들이 주님과 함께 있던 사흘 동안 그들은 대부분 굶고 있었습니다.
그 굶은 일을 어쩔 수 없었던 일이 아닙니다.
주님은 그들을 일부러 굶기신 것입니다.
그렇게 굶어 봐야 사람이 주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의 중요성을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한 삼일 정도는 굶어야 합니다.
사람들은 40년을 사막에서 바로 그 경험을 했던 것입니다.
3. 주께서 너희를 낮추시고 굶기시다가, 너희도 알지 못하고 너희의 조상도 알지 못하는 만나를 먹이셨는데, 이것은, 사람이 먹는 것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주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는 것을, 너희에게 알려 주시려는 것이었다.(신8:3)
하나님께서 백성들을 낮추시며 굶기신 것입니다.
굶은 경험이 없는 사람들은 말씀의 중요성을 제대로 모릅니다.
혹은 그 굶주림에 대한 기억을 잊고 먹을 것을 함부로 다루는 사람은 신앙에 문제가 있는 사람들입니다.
먹을 음식으로 먹방이나 하고 다니는 사람!
교회 수련회는 호화로이 먹여야 한다는 사람!
수련회에서는 굶어 보아야 합니다.
먹는 것은 조미료치고 그 맛을 음미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것입니다.
먹을 것은 하나님께서 보장해주시는 것입니다.
2. 저 무리가 나와 함께 있은 지가 벌써 사흘이나 되었는데, 먹을 것이 없으니
2. because they have been with me for three days and now have nothing to eat.
양식이란 죽고 사는 문제입니다.
사탄의 요구대로 하나님의 아들임을 입증하기 위해서 돌로 떡을 만들 수 없습니다.
종교적인 입증 행위로 양식을 보장할 수 없습니다.
굶음을 통해 죽음의 현실을 암시받은 사람들의 양식을 보장하셨습니다.
이방인인 여러분을 가엽게 여기시는 분이 계십니다.
물은 언제나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 법입니다.
모든 선한 것은 위에서 즉 하나님에게서 사람에게로 흐르는 법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에 대한 가엽게 여기심이 사랑으로 표현된 것이 복음입니다.
탈북한 한 소녀의 이야기입니다.
앞날을 위해 자식을 남쪽으로 떠나보내며 아버지가 두만강 너머 중국 땅에 있는 딸의 이름을 마지막으로 불렀다는 것입니다.
아무개야!
그리고 아버지는 보안부에 끌려가서 고문당해 돌아가셨을 것입니다.
그것은 아들 딸에게 어머니 아버지만 할 수 있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사랑하신 것입니다.
그 사랑 때문에 이 기적이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구원은 사람 편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편의 사건입니다.
주님께서 여러분을 가엽게 여기셨습니다.
3. 내가 그들을 굶은 채로 집으로 돌려보내면, 길에서 쓰러질 것이다. 더구나 그 가운데는 먼 데서 온 사람들도 있다."
3. If I send them home without feeding them, they will faint as they go, because some of them have come a long way.”
*모순적 존재
양식이 중요한 것은 사람이 그것을 먹지 않으면 죽기 때문입니다.
아마 삼 일까지는 견딜 수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나흘째 집으로 돌아가다가 쓰러질 위험이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사람의 양식을 보장하셨습니다.
아무리 성령의 충만을 받아도 사람들은 육적 존재라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이 사실을 망각했을 때 이단이 되는 것입니다.
교주들을 보세요.
자신들이 마치 이슬을 마시고 사는 듯이 자신을 영화 합니다.
강대상의 조명도 이용하고
흰 구두에 흰 양복과 흰 넥타이를 매고
더 유치한 사람들은 금빛 왕관을 쓰고
주님은 그 들판에서 그들을 거저 주시는 양식으로 배를 채웠습니다.
하지만 양식에 대한 다른 입장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17. 남자에게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네가 아내의 말을 듣고서, 내가 너에게 먹지 말라고 한 그 나무의 열매를 먹었으니, 이제, 땅이 너 때문에 저주를 받을 것이다. 너는, 죽는 날까지 수고를 하여야만, 땅에서 나는 것을 먹을 수 있을 것이다.
18. 땅은 너에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다. 너는 들에서 자라는 푸성귀를 먹을 것이다.
19. 너는 흙에서 나왔으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 때까지, 너는 얼굴에 땀을 흘려야, 낟알을 먹을 수 있을 것이다.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다."(창3:17-19)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거저 하나님의 영적 은혜를 입겠지만 땀 흘리며 일해야 하는 죄인입니다.
은혜를 입었다는 것은 가슴을 치며 우리의 죄를 시인하는 행위입니다.
주님은 양식을 보장해주셨지만 일하지 않으면 굶게 되는 세상으로 우리를 보내셨습니다.
4. 제자들이 대답하였다. "이 빈 들에서, 어느 누가 무슨 수로, 이 모든 사람이 먹을 빵을 장만할 수 있겠습니까?"
4. His disciples asked him, “Where in this desert can anyone find enough food to feed all these people?”
이 말씀을 하시자 제자들이 한 소리는 아주 타당한 소리입니다.
온통 빈들인데 어디에 음식을 구합니까?
장정만 4,000인데 어떻게 이들을 다 먹입니까?
제자들과는 이렇게 정상적인 이성으로 예수님을 반박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다른 원리로 돌아가는 다른 나라를 보이셨습니다.
그들은 보지 못하던 하나님 나라입니다.
지금 우리 교회가 오직 타당한 소리만 하기 때문에 문제입니다.
러시아 선교를 가려면 반드시 4,593,123원의 선교비가 있어야 한다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여비+식사비+전세비+.........=4,593,123
대형 교회가 그것을 잘 감당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교회가 그것을 위해서 소를 길러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수련회는 점심 저녁 식단도 없었습니다.
그렇게 굶던 사람들을 주께서 다섯 개의 떡과 두 마리의 물고기로 먹이셨습니다.
그 주님의 역사를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통해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서 움직이시는 보지 못했던 하나님의 나라를 보게 된 것입니다.
똑똑한 논리가 다 깨지고 말았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 전에도 그러더니 또 정상적인 소리를 한 것입니다.
그들에게 다른 나라를 가르치기 위해 주님은 그들로 하여금 40년의 광야의 길을 헤매게 하셨습니다.
그들은 한 세대를 전부 그 사막에 묻어야 했습니다.
그 길은 과거 야곱이 죽었을 때 장례를 치르고 다시 돌아왔던 길입니다.
40년 걸리는 길이 아니었습니다.
야곱이 죽자 그의 유언대로 가나안 땅에 그를 묻게 되었습니다.
13. 아들들이 아버지의 시신을 가나안 땅으로 모셔다가, 마므레 앞 막벨라 밭에 있는 굴에 장사하였다. 그 굴과 거기에 딸린 밭은 아브라함이 묘 자리로 쓰려고 헷사람 에브론에게서 사둔 곳이다.
14. 요셉은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고 난 다음에, 그의 아버지를 장사지내려고 그와 함께 갔던 형제들과 다른 모든 사람들을 데리고, 이집트로 돌아왔다.(창50:13,14)
그 길을 따라서 40년 한 세대를 다 죽이고 그 나라에 들어가게 된 것은 그 믿음을 보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7개의 떡과 몇 개의 물고기로 4,000명을 먹이시는 분이십니다.
5. 예수께서 그들에게 물으시기를 "너희에게 빵이 몇 개나 있느냐?" 하시니, 그들이 대답하기를 "일곱 개가 있습니다" 하였다.
5. “How much bread do you have?” Jesus asked.
“Seven loaves,” they answered.
제자들이 정말 올바른 소리만 하자 예수님은 대꾸조차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 소리를 무시해버리고 한 사람의 도시락으로 4,000명을 먹이셨습니다.
이전에는 5개의 떡과 2 마리의 물고기로 이제 7 개의 떡과 몇 마리의 물고기로 제자들을 반복 교육하신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하나님 나라에 관한 한 기억력이 없었습니다.
10번의 기적을 경험한 후 그들은 홍해 앞에서 다른 소리를 했습니다.
어찌 되었든지 죄인이며 의인인 사람들 앞에 양식을 마련하는 이 두 나라의 방식이 모두 열려있다는 것입니다.
봄에 씨 뿌리고 여름에 땀 흘리고 가을에 수확하는 고된 방식입니다.
또 한 사람의 도시락으로 4,000명을 먹이는 방식입니다.
사람들이 이 두 나라를 제대로 선택하는 존재가 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 동기를 주님은 주목하시는 것입니다.
2. 사람의 행위는 자기 눈에는 모두 깨끗하게 보이나, 주께서는 속마음을 꿰뚫어 보신다.(잠16:2)
2. You may think everything you do is right, but the Lord judges your motives.
사람은 그 성과에 관심을 두지만 주님은 그들의 동기를 주목하십니다.
그래서 사탄의 동기(motive)를 보신 주님은 돌로 떡을 만들라는 요구를 거절하셨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그 때 하나님의 나라를 드러낼 시간이라고 여기셨습니다.
그 때 주님께서 결정적인 것을 희생할 사람부터 먼저 찾으셨습니다.
희생이 필요 없는 발에 차이는 돌덩이로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 희생에서 하나님의 역사가 시작됩니다.
그래서 익명의 그 한 사람의 희생이 그 빈 들에서 수천 명을 먹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너도 하고 나도 할 수 있는 것을 내놓으라는 것이 아닙니다.
삼일동안 굶으면서 챙겨둔 도시락을 희생하라는 것입니다.
한 분의 희생으로 전 인류가 구원을 얻은 것입니다.
그것이 복음입니다.
그런데 이 기적을 통해서 예수님께서는 이층집이 있는데 거기에다가 더 빌딩이 생기는 기적을 베푸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사람이 굶는데 그 배를 채우시는 일을 하셨습니다.
그것도 딱 한 끼였습니다.
6. 예수께서는 무리에게 명하여 땅에 앉게 하셨다. 그리고 빵 일곱 개를 손에 드시고, 감사를 드리신 뒤에, 떼어서 제자들에게 주시면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게 하시니, 제자들이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6. He ordered the crowd to sit down on the ground. Then he took the seven loaves, gave thanks to God, broke them, and gave them to his disciples to distribute to the crowd; and the disciples did so.
*시간
그 생각을 뛰어넘은 믿음은 시간을 초월합니다.
우리는 일단 음식을 다 장만한 후에 식탁에 앉으라고 할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손님을 식탁에 앉히신 후에 식사를 준비하셨습니다.
당시에 주님의 손에는 한 사람의 도시락 뿐이었습니다.
일곱 개의 떡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4,000명을 자리에 앉게 하셨습니다.
*양
우리는 4,000명을 대접할 때 100명 정도의 음식의 여분을 더 준비할 것입니다.
4,100명 분의 음식을 준비하고 4,000명을 식탁에 앉힐 것입니다.
주님은 한 사람의 도시락으로 4,000명을 먹이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정상적인 기존의 사고로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감사
이런 불가사의 한 일의 경계에 주님의 특별한 일이 있었습니다.
보이는 한 사람의 도시락을 들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 감사 기도드린 일입니다.
그 감사로 하나님 나라를 드러내셨습니다.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드렸을 때 그 일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일이 된 것입니다.
*동참
주님은 그 일에 제자들을 동참시키셨습니다.
방금 전까지 불신하던 제자들입니다.
그들은 아무 소리 못 하고 떡을 들고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제자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일에 동참하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에 동참하는 일이야말로 가장 큰 영광입니다.
24. 이제 나는 여러분을 위하여 고난받는 것을 즐겁게 여기고 있으며, 그의 몸 곧 교회를 위하여 내 육신으로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채워 가고 있습니다.(골1:24)
그리고 우리 믿는 사람이 동참할 수 있는 최고의 일은 십자가의 고난입니다.
믿습니다. 빌딩
믿습니다. 일류대
그런 동참이 아닙니다.
십자가에 동참하는 일을 주님은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남기신 것입니다.
그보다 더 큰 기쁨은 없습니다.
7. 또 그들에게는 작은 물고기가 몇 마리 있었는데, 예수께서 그것을 축복하신 뒤에, 그것도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게 하셨다.
7. They also had a few small fish. Jesus gave thanks for these and told the disciples to distribute them too.
그것은 밥만의 사건이 아니었습니다.
주님은 이번에는 반찬을 들고 기도하셨습니다.
그 때에도 소수의 물고기로 4,000명의 반찬을 마련하셨습니다.
그 때에도 주님께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기도하셨습니다.
그 때에도 주님은 그 일에 제자들을 동원하셨습니다.
삼일 정도 굶었다면 이제 감사로 기도하십시오.
이 믿음의 사건은 여러분들이 경험하는 모든 어려운 일에 적용될 것입니다.
8. 그리하여 사람들이 배불리 먹었고, 남은 부스러기를 주워 모으니, 일곱 광주리에 가득 찼다.
일단 사람들이 배불렀으니 그 음식을 내버려도 되는 것인가?
남아도니까......
아닙니다.
사람이 먹다 남은 부스러기는 모아서 개나 돼지 밥으로 주어야 합니다.
그것들이 먹고 싼 똥은 모아서 거름으로 써야 합니다.
거저 받은 선물이라고 함부로 써서는 안 됩니다.
쌀이 남는다고 쌀로 막걸리를 만들어 마시고 비틀거리며 다녀서는 안 됩니다.
음식은 오직 생명을 위한 것입니다.
정치적으로 북한을 고립시킨다면서 동포를 아사시키는 짓을 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일입니다.
이데올로기는 살인까지 정당화하지만 주님의 계명은 원수를 사랑의 대상으로 삼으라는 것입니다.
동포가 주적이 될 수 없습니다.
주적은 사탄일 뿐입니다.
마귀들입니다.
주님의 계명과 사람이 만든 조잡한 자본주의 공산주의 이데올로기는 동급이 될 수 없습니다.
9. 사람은 사천 명쯤이었다. 예수께서는 그들을 헤쳐 보내셨다.
8-9. Everybody ate and had enough—there were about four thousand people. Then the disciples took up seven baskets full of pieces left over. Jesus sent the people away
*헤쳐 보내심
주님은 대단히 중요한 일을 하셨습니다.
이 기적을 통해 결속하려는 집단을 헤쳐 보내셨습니다.
죄인들은 거기다 여지없이 대형 교회를 세우려 할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런 일이 일어나면 곧바로 그 죄성을 드러내 제 소욕을 채우려 듭니다.
하나님의 힘으로 세상 보장책을 삼으로 합니다.
그 하나님의 기적으로 세속의 힘을 삼으려 합니다.
한 사람의 도시락으로 수 만을 먹이신 이를 왕으로 삼아 세상 떵떵거리며 살려 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그런 시도를 경계하셨습니다.
강력하게 그 일을 금지하셨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신 후에도 바로 그 일을 하셨습니다.
45. 예수께서는 곧 제자들을 재촉하여, 배를 태워, 자기보다 먼저 건너편 벳새다로 가게 하시고, 그 동안에 무리를 헤쳐 보내셨다.(막6:45)
죄인들이 힘을 모으면 안 됩니다.
선교조차 영적 과시 행위로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죄인들은 종교적인 명분을 내세우면서 실은 하나님을 배제해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약한 것이 힘이라는 말씀을 합니다.
9. 그러나 주께서는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 내 능력은 약한 데에서 완전하게 된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무르게 하려고, 나는 더욱더 기쁜 마음으로 내 약점들을 자랑하려고 합니다.
10. 그러므로 나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병약함과 모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란을 겪는 것을 기뻐합니다. 그것은 내가 약할 그 때에, 오히려 내가 강하기 때문입니다.(고후12:9,10)
그런 뜻에서 대형 교회는 시장 논리로 운영되는 장사하는 집입니다.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 때 바울은 나는 내 병도 내 마음대로 고치지 못하는 사람이고 했습니다.
그래서 은혜롭다는 것입니다.
영적 과시 행위를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10. 그리고 곧 제자들과 함께 배에 올라, 달마누다 지방으로 가셨다.
10. and at once got into a boat with his disciples and went to the district of Dalmanutha.
그들은 하나님의 영적인 능력으로 세상의 세를 과시하려 했던 것입니다.
그들이 주님을 왕으로 삼으려 하자 그 때도 주님은 숨으셨습니다.
15. 예수께서는, 사람들이 와서, 억지로 자기를 모셔다가 왕으로 삼으려고 한다는 것을 아시고, 혼자서 다시 산으로 물러가셨다.(요6:15)
주님은 이 때에는 강제력을 동원하셨습니다.
그들을 다 흩어 놓으신 후 그들이 올 수 없는 곳으로 배 타고 떠나신 것입니다.
그 자리에 대형 교회를 세우려는 자들을 떠나신 것입니다.
며칠 전에 우리 아동부 아이들 생일 잔치가 있었습니다.
그 때 썼던 생일잔치 글자 은박 풍선은 바람을 빼서 간수 했습니다.
바람을 넣어두면 그것인 변형이 되어서 나중에 쓸 수 없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힘이 들어가서 이 사회에서 팽팽해져 있으면 신앙의 본질을 잃고 말 것입니다.
그 바람을 빼버려야 합니다.
그래야 그 본질이 유지되는 것입니다.
주님은 그들을 헤쳐 보내신 후에 아예 그 지역을 떠나신 것입니다.
다시 기억합시다.
사람들에게 그 양식이 필요했던 것은 주님의 말씀을 듣다가 사흘을 굶었을 때입니다.
주께서 주셨던 양식은 그 한 끼였습니다.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을 보시면 알 것입니다.
사람이 땀을 흘려도 제 먹을 것의 보장을 받기 힘들다고 여기지만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불 질러 버리고 폭탄으로 밭을 뒤집어 버리고 그런 짓만 안 해도 굶어 죽을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수백 억대의 무기를 동원해서!
그 잘난 수재들을 동원해서!
오직 하나님의 말씀이 드러나야 합니다.
이 땅에 탱크가 호미가 되는 날이 속히 와야 합니다.
2. 민족마다 오면서 이르기를 "자, 가자. 우리 모두 주의 산으로 올라가자. 야곱의 하나님이 계신 성전으로 어서 올라가자. 주께서 우리에게 주의 길을 가르치실 것이니, 주께서 가르치시는 길을 따르자" 할 것이다. 율법이 시온에서 나오며, 주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 나온다.
3. 주께서 민족들 사이의 분쟁을 판결하시고, 원근 각처에 있는 열강 사이의 갈등을 해결하실 것이니, 나라마다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나라와 나라가 칼을 들고 서로를 치지 않을 것이며, 다시는 군사 훈련도 하지 않을 것이다.(미가4:2,3)
그 소망의 날은 예루살렘에서 나오는 오직 주님의 말씀이 세상에 편만하게 드러날 때입니다.
원수가 사랑의 대상이 되게 하소서!
주님의 말씀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