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왕봉(天王峯)
2021년 9월 20일 월요일 맑음
아내와 글쓴이
누가 알아주거나 말거나 자신만의 정신세계를 가지는 것은 노년에 중요한 일이다. 남성은 대부분 관계에서 힘을 얻고 생활한다. 하지만 나이가 먹어가는 글쓴이에게는 언제까지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 해법을 구할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산행이다 . 산과의 교감을 통한 일상의 이어가기다.
천왕봉은 백두대간 남진 때 왔었다. 그 때는 성삼재에서 능선을 타고 올라왔던 관계로 이번에는 중산리에서 오른다. 중산리 주차장은 2층으로 되어있다 선착순이라 금방 만차가 된다.
여성과 달리 남성에게는 집단의 관계에서 얻는 것을 익숙하게 살아왔고 그래서 관계가 흐려지는 말년을 그리도 힘들게 여기는 이유이다. 천왕봉을 통해 또 하나의 익숙함에서 제거를 실행해 본다.
중산리에서 오르는 천왕봉은 높이도 그렇지만 오르기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경사도가 심하고 험한 것은 모두가 인정하는 것이 아닌가?
목표와 생각을 천왕봉에 두어야 비로소 허락되는 높이다. 천왕봉에서 3대가 공덕을 쌓이야 허락된다는 사방의 트임이 오늘은 압권이다
중산리에서 오르는 길은 법계사로 오르는 길, 칼바위를 거쳐 법계사로 오르는 길 , 그리고 칼바위에서 법천계곡을 따라 장터목경유로 오르는 길이 있지만 우리는 법계사로 오르는 길을 선택했다.
법계사로 오르는 첫번째 버스를 타고 오른다.
법계사 입구에서 내려서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한다. 이 차는 환경교육원에서 회차하여 돌아간다.
홀로사는 사는 것을 훈련하는데 산만한 것이 없다. 아내와 동행해도 어차피 오름은 내 몫이다. 여기서 법계사 까지 2.8km다.
힘듦이 찾아올 때 늘 산은 무엇인가를 물으며 오르기도 한다. 그러다가 내가 왜 사는가로 귀결되어 결론을 맺기도 한다.
법계사까지의 오름은 비교적 원만해 이런 생각을 하면서 걷는다. 이런길 저런길로 무장된 오솔길 같은 길을 따라..
한 시간반쯤 오름을 경험한 후 도착하는 법계사 입구다.
등산할 때 기준 중 하나는 물소리다. 계곡 물소리가 들린다면 거의 중턱에 밖에 오르지 못했다는 증거다. 법계사와 함께하는 로타리 휴게소에서 비로소 물소리를 벗겨낸다. 샘물이 있어서 물을 보충할 수 있다.
이제부터는 산오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는 이야기다. 칼바위를 통해 올라오는 길이 여기서 합류하고 잠시 쉬어가기 좋다.
법계사에서 산마루까지 불과 2.1km밖에 되지 않아 편안하게 생각하면 큰일난다. 2.1km의 거리를 여기서 2시간여를 소비해야한다. 여기부터 가파른 돌계단과 센오름을 각오해야 한다.
개선문 까지만 가면 거의 갈텐데라는 생각으로 오로지 개선문만 생각하면서 오른다. 법계사에서 개선문까지 한시간 20분 걸렸다.
조선시대 때, 천왕봉은 금강산 비로봉과 함께 사대부 양반들의 로망이었다. 죽기 전에 금강산과 지리산은 꼭 한번 올라가봐야 한다는 그런 사회적 분위기가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수많은 사대부들이 지리산에 오르고, 그 여행기를 남겼다. 사대부들이란 기본적으로 시를 짓고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하는 문인들이니까 유람록이 넘쳐나는 것이다. 지리산에서 중산리 방면에 오늘 산행 중 유일하게 안개 없이 잠깐의 트임과 보임이 있어서 순간을 담는다 .
지리산 밑의 마지막 샘물. 여기서 중산리 방변이 숨막히게 아름답지만 볼 수가 없다.
거의 다 올라왔지만 제일 힘들다고 등객 모두 아우성이다. 마지막 246계단만 오르면 되는데..
질문 없는 등산은 등반 아닌 운동일 뿐이라고 누군가 푸념했지만 그런 것 생각할 여유가없다. 힘들고 지쳐서 빨리 정상만 보고싶을 뿐인데...
갑자기 천왕봉(1915m)이 나타난다.
두번째 오름이지만 두번다 운이 좋아 구름위의 장관이 어우러진다.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천왕봉 일출을 보러 오시라 삼대째 내리 적선한 사람만 볼 수 있으니 아무나 오지 마시고"
이원규 시인이 나를 향해 한 말이다 너는 3대째 적선했구나..
사람으로 인산인해를 이루지만 산이 허락하는 기운으로 기분 좋은 기억을 담아 추억으로 만든다.
만보계 21,183보
순수 산행시간 4시간 11분 54초
물이 키우고 바람이 거두고 산새가 꾸미고 나무가 웃음짓는 넉넉한 공간 천왕봉에 다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