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현실 신인상 당선작 (2022. 가을호)
돌멩이의 노래 외 4편
염혜순
개울물이 돌 틈을 지날 때면 목소리가 한층 높아지지
모래밭을 지날 때나 풀뿌리를 스칠 때의 소리가 아니야
그건 돌멩이와 함께 부르는 또 다른 합창인 거지
고요하던 물이
돌멩이 표면을 스치며 흐를 때면
돌 하나하나 마다 그 음이 달라
어느 돌은 매끈하고 동글동글
어떤 건 깨어지고 날카로워
아파서 구르지도 못하고 모래 틈에 박혀 신음하거든
깨어지고 구르며 돌들도 노래를 쓰는 거야 그 몸 전체로
저 소리가 노래인지 울음인지 때론 알 수가 없지
개울가에서 들리는 소리는
돌멩이의 노래를
흐르는 물이 따라 부르는 거야
시간도 그런가봐
사람 하나하나 지나쳐 흐르며
부딪히는 사람마다
다른 소리가 나는 것을
시간이 흘러가는 곳에
구르는 돌 같은 나는
무슨 음을 낼까
개울가에 앉으면
물소리에 내 귀가 촉촉이 젖어들어
그네
허공에 덩그러니 매달린 그네는
얼마나 많은 바람을 태우고 흔들렸을까
바람을 보내고 또 얼마나 긴 시간을
빈 마음으로 그곳에 앉아 있었을까
매달려서 흔들리는 게 운명인 줄 알면서도
잠시 있다 가는 온기를 기다리며 사는 일은
여름에도 시린 한기로 남아
허공에 매달려 두 팔로 버티며
텅 빈 시공을 견디는 날들의 어둠을
저절로 깊어가게 한다
빈 그네 위에 내 몸을 실으니
앞으로 뒤로 세월이 흔들리고
뒤로 앞으로 마음이 흔들리고
늘 그 자리에 있는 하늘도 산도 흔들리는데
가눌 길 없는 허무만 혼자 그네를 민다
굳은살
새 구두를 사고 두어 달 쯤 지나니
뒤꿈치에 굳은살이 박였다
굳은살이 박일 때 까지는
낯설음이 물집으로 잡혔다 터지고
쓰라리길 되풀이했다
사람과 사람도 처음 만나면
더러 물집이 잡혔다 터지곤 하다가
굳은살이 생긴다
그러려니 하면서
낯설지도 않은 마음 하나가
새 구두 뒤축처럼 나를 자꾸 문다
오늘도 또 물집이 잡혔다 터지고
벌겋게 살갗이 벗어졌다
굳은살 박인 뒤꿈치를
구두 속으로 밀어 넣으니
한숨이 푸욱 새어 나온다
마음과 마음 사이
굳은살이 생기려면
얼마나 오래 걸리는 건지
구두에게 묻는다
그러려니 하면서 무뎌지지도 못하고
버리지도 못하는
마음 하나 때문에
나는 오늘도 벗겨진 뒤꿈치가 벌겋기만 하다
뜨개질 하는 오후
털실에서 재깍거리는 소리가 난다
시간을 손에 감아
바늘로 고리를 짓는다
한 코 두 코
그대와 나의 이야기를 엮고
한 단 두 단 마음을 쌓으면
어느 시간은
목도리가 되고 모자가 되고
또 스웨터가 되는 계절
아차 코가 빠지면 시간을 돌리듯 거기까지 줄줄이 풀어
다시 뜨고 또 푸는
어설픈 솜씨
아무리 하여도 익숙해지지 않는
낯선 날들이다
안뜨기 겉뜨기,
늘이고 줄이며 모습을 잡아가면
서툰 대로, 뒤틀린 대로
추위 막아줄
털옷 하나 생기려나
아픈 눈과 뻐근한 어깨와 관절통 속에
늦은 오후
나는 뜨개질을 한다
재깍이는 털실이 다 할 때까지
천사의 날개
용평 리조트 어느 건물 한쪽 벽에
천사의 날개가 그려져 있다
날개와 날개 사이 내 몸을 밀어 넣고
날개 단 천사가 된다
날개가 잠시 움직이는 듯 했지만
나는 사진 한 장 찍고
날개 사이를 채웠던 몸을 돌려
나오고 말았다
순간 날개는 나를 놓치고
움직이려다 다시 벽에 붙어
날 수 없는 날개로
누군가를 기다리는 모양이다
천사가 되고 싶은 또 다른 나를
날개를 단 내가 사진 속에서 웃는다
날개는 내가 사라지면 더는 천사가 아니다
날개를 버린 나도 천사가 아니다
날 수 없는 날개가
선하지 않은 나를 만나
아주 잠깐 함께 천사가 되었다
염혜순 시인
2014년 <한국수필>로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