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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해를 찾아서
이 홍사
아무리 생각해도 오늘은 종일 꿈속을 떠도는 기분이다.
지루하게 반복되는 일상과는 달리 좀 희한한 날이다.
하루 종일 구름을 밟고 다니는 기분이었고 새벽 한 시에 일어나서 여태 자지 않았는데 잠이 오지 않는 것이다. 분명히 꿈 때문이다.
예정에 없던 대구 나들이도 오랜만에 하고 돌아왔다. 꿈에서 들은 월해를 찾으러 대구까지 갔지만 찾지 못했다. 결론은 내가 찾던 월해는 패철에도 없는 것이다. 잠이 모자라서인지 눈만 따갑고 잠은 오지 않는 것이었다. 접대용 소파에 등을 묻고 눈을 감는다. 오늘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사무실에 내려온 건 새벽 두 시경이었다.
자다가 일어나 잠옷 바람으로 사무실에 내려와 인터넷을 뒤졌다. 밖은 조용했다. 그 시간이면 쉽사리 볼 수 있었던, 길 건너 상가의 취객의 흥청거림도 개 짖는 소리도 오늘따라 들리지 않았고 고요했다. 그 고요 속에 담겨 인터넷을 뒤지며 아침까지 피운 담배꽁초가 재떨이에 수북했다. 초저녁에 술친구, 이교수와 가볍게 한잔하고 일찌감치 자다가 한 시쯤 깨서 잠옷 바람으로 내려와 그대로 날을 밝힌 것이다.
꿈 때문이다. 너무나 선명한 꿈을 나름대로 해몽하려고 자다가 내려온 것이다.
‘월해를 봐라! 월해!’
카랑카랑한 노인의 말이 귀에 이명처럼 인다. 아니다, 가만히 생각하니 꿈속의 그 양반 얼굴을 보지 못했으니 노인인지 중늙은이인지 모르겠다. 나에게 말을 하대하는 것으로 미루어 나보다 나이가 많음은 분명하다.
월해? 꿈속에서 내가 들여다본 것은 풍수들이 묏자리의 좌향坐向을 볼 때 쓰는 나경羅經, 즉, 패철이었다. 나무로 정교하게 제작되어 손때로 반질거리며 매끈한 풍수용 패철이었는데 바늘이 가리키는 곳에서 월자와 해자를 찾아보았다. 해亥자는 돼지를 일컫는, 십이지十二支의 마지막 자이니 쉽게 찾았지만 월자는 보이지 않고 매울 신辛자가 자꾸 보였다. 월자도 한문으로 쓰면 열다섯 가지가 넘는데 어느 월자를 말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월해? 그게 뭐지요?
꿈속에서 노인에게 되묻다가 내가 뱉은 선명한 목소리에 놀라 잠이 깬 것이다. 깨면서 미얀마 숙소인 줄 알았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한국의 내 방이었다. 미얀마에서 보름간 일을 하다가 엊그제 들어왔는데 오밤중에 깨니 한국이라는 게 실감나지 않았다.
담배를 물고 꿈을 찬찬히 짚어보니 그냥 넘겨버릴 꿈이 아니었다.
뭔지 모르지만 선몽先夢이 확실하다. 월해를 보라고 한 노인의 얼굴은 보지 못했다. 아무튼, 풍수에 조예가 깊은 노인임은 분명하다. 그냥 그가 입은 모시도포의 자락만 얼핏 올려다보았을 뿐인데 나는 그렇게 짐작하고 있었다. 그 새하얀 도포자락이 눈에 어른거리고 패철의 바늘은 선명했다.
꿈을 스스로 조절해서 꾸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다. 그러나 나는 꿈을 조절할 초인적인 능력이 나에겐 없다. 하지만 꿈 하나는 기가 막히게 맞다. 되지도 않게 친구들이나 직원들의 태몽을 꾸고 다음날 태몽을 알려주고 얼마 지니지 않아 그 상대로부터 태기를 명확하게 확인을 한 경우가 여러 번 있어 스스로 놀랄 지경이었다. 그런 게 한두 번이 아니다. 내 꿈은 너무 정확해서 스스로 두렵기까지 하다.
침대에 걸터앉아 담배를 물고 선명한 꿈을 다시 짚어보았다. 꿈은 범상치 않았다.
꿈속에서 내가 죽었다. 꿈은 언제나 논리적이지 못하는 법, 내가 죽었는데 내 묏자리를 왜 내가 보는지 모르겠다. 아무튼, 내가 죽어서 묏자리를 만들며 좌향坐向을 보는 과정에서 나온 얘기다. 관이 들어갈 자리는 이미 파여져 있었다. 나는 그 구덩이 아래 내려서 있었고 위에서 허연 도포자락만 보이는 노인이 월해를 보라고 한 것이다. 패철을 거꾸로 들고 아무리 보았지만 월해를 찾을 수가 없었다.
꿈은 얼마나 선명한지 꿈에서 본 패철의 바늘의 그 미세한 흔들림까지도 잔상으로 남아있었다.
월해가 뭐지? 달과 해를 보란 말인가? 그건 국한 혼용이라 말이 안 되지. 묏자리를 보는 풍수에 그런 말이 나올리는 없고, 달과 바다를 보란 말인가? 풍수지리란 말의 어원이 바람과 물과 땅의 이치를 뜻하니 달과 바다도 전혀 연관이 없지는 않을 것 같다. 그런데 묏자리 좌향에 월해라? 그건 좀 그렇다.
담배를 끄고 탁자위의 다이어리를 집어 베개위에 펼쳤다. 그리곤 메모하다가 둔 페이지를 찾아서 ‘월해를 봐라!’ 라고 꿈에서 들은 그대로 한글로 적어놓고 별표로 중요표시를 했다.
내일 찾아보아야겠다고 생각하고 다이어리를 접고 탁자 위에 충전기에 꽂아놓은 휴대폰을 눌러 시계를 보니 그 때 시간이 새벽 한 시가 좀 넘었다. 세상은 모두가 잠들었는데 나는 뭔지도 모르는 월해를 찾고 있는 것이 스스로 이상하게 여겨졌다. 어딘가 모르게 어색하다.
물을 찾으러 주방으로 나갔다.
딸애의 방에서 아내의 코고는 소리인지 개새끼가 코를 고는 소리인지 고양이 신음소리가 가볍게 들렸다. 애완견도 늙으니 코를 곤다. 들어보면 영판 사람 코고는 소리다. 딸애가 대학 기숙사에 들어가고부터 아내는 딸애의 방을 차지했다. 자다가 일어나 불을 켜고 메모를 하는 내 고약한 습관과 또 자다가 일어나 피우는 담배연기가 죽도록 싫다며 딸애의 방에 둥지를 틀었다. 그리곤 안방으로 돌아오지 않았지만 내가 해외로 출장을 나가면 안방에서 자는 눈치다.
자다가 일어나 담배를 피우는 고약한 습관은 젊은 시절 중장비 기사를 하면서 객지생활, 독방생활을 오래해서 생긴 버릇이다. 당시에 혼자 객지 잠을 자다가 한 밤중에 깨면 손이 가는 곳은 물과 담배밖에 없었다. 당연히 손이 가야할 아내의 젖가슴이 옆에 없는 까닭인지 모르겠지만 저절로 담배에 손이 갔다.
자다가 깨어 객지의 하늘을 보며 담배를 물고 나는 어느 하늘아래 있는가? 자다가 일어나 뇌파가 완만한 순간에 내 정체성을 스스로 짚곤 했는데 그게 버릇으로 굳으니 객지생활을 접고 집에서 자다가도 순전히 담배가 피고 싶어 깨곤 했다. 고약한 버릇이 습관으로 굳었다. 깨면 거실이나 화장실에 나가 담배를 피우곤 했는데 차츰 간이 커지니 아내와 함께 자는 방, 아내 머리맡에 앉아서도 피웠다. 그러다가 아내를 놓친 것이다.
딸애가 오고 아들 녀석이 휴가를 나오는 날이면 방을 빼앗기니 당연히 내 방으로 돌아오지 않겠는가? 기대했지만 내 기대는 허방을 짚었다. 그런 날이면 아내는 아예 거실에다 이부자리를 까는 것이다. 그게 벌써 오 년이 넘었다. 하여 아내와 합방하는 경우는 연례행사로 간주할 정도로 뜸해졌다. 나이가 들었음인지 나도 그렇지만 아내도 그게 크게 절실하지 않은 모양이다.
어쩌다 한잔하고 들어와서 은근히 생각이 나서 아내가 자는 방에 쳐들어가면 훼방꾼이 있다. 순자란 이름을 가진 개새끼다. 아니 개년이다. 암컷이니 욕이 아니라 그게 정확한 표현이다. 애견센터에서 산 게 아니다. 유기견이 굴러온 놈인데 이젠 오래 되어서 몇 년 전인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봄비가 내리던 날 제 발로 굴러들어온 푸들이라는 종자인데 비를 쫄딱 맞고 일층 현관 앞에서 떨고 있는 것을 딸애가 데리고 들어왔다. 주인을 찾는다고 이웃에 소문을 내고 방을 붙였지만 주인을 찾지 못해 거두었던 놈인데 이젠 객군이 아니라 제 주제도 모르고 주인 행세를 한다.
아내의 방에 들어가면 이게 생난리를 친다.
아내가 침대에 누워있는데 들어가면 짖고 뛰어 내려와 바짓가랑이를 물고 늘어진다. 나에게만 그 따위 짓거리를 하는 게 아니다. 희한하게도 내 방 침대 밑에 엎드려있는데 아내가 무슨 일로 들어오면 아내에게 마구 짖고 달려들어 치맛자락을 물고 늘어진다. 개라는 짐승이 지닌 충직한 보호본능이지 싶다.
아내에게 수작을 걸려면 이 개부터 격리시켜야 했다. 어떻게 입맛을 들였기에 이 개새끼는 바나나라고 하면 껌뻑 죽는다. 개를 유인하여 아내로부터 격리시키는 방법이 있다. 순자야! 바나나 먹자, 하고 소리치면 그 말귀는 알아들어 올려다본다. 진짜야? 하는 투로 아주 못미더운 눈초리로 올려다본다. 그때 들고 있는 바나나를 조금 떼어서 침대 밑에 던지면 폴짝, 침대에서 뛰어 내려온다. 그걸 다 먹으면 입맛을 다시며 또 올려다본다. 그때 다시 바나나를 조금 떼어서 문 주위에 던져놓는다. 그러면 그쪽으로 달려와 먹는다. 그 다음은 문밖, 그 다음은 거실 입구, 그 다음은 거실 중앙, 그걸 처먹고 올려볼 적에 거실 문 앞으로 한 조각을 슬쩍 던진다. 개새끼의 눈길이 그걸 따라가고 그걸 먹으려고 멀리 갔을 때 아내의 방을 쏙 들어가 안에서 문을 닫으면 그만이다.
그렇다고 일이 다 되는 건 아니다.
아내가 아랫도리에 이불을 돌돌 말고 귀찮은 듯, 싫어하는 눈치를 보이면 그날은 허탕이다. 그런 날은 아무리 수작을 뿌려도 안 된다는 걸 나는 안다. 일찌감치 포기하고 자는 게 심리적이나 정신적인 보약이다.
가볍게 코고는 소리를 들으며 조용히 물병에 정수기의 물을 받았다. 매일저녁 자리끼로 물을 준비하는데 어제 초저녁에는 뭣 때문인지 잊고 준비를 하지 않은 것이다. 물로 입을 적시고 물병을 머리맡 탁자위에 놓고 누웠는데 선명한 꿈이 떠올랐다. 너무나 또렷했다. 월해? 도대체 월해는 뭘 말하는 걸까? 쉬 잠이 올 것 같지 않았다. 인터넷으로 찾아볼까?
인터넷이 설치된 노트북은 이층 사무실 책상에 있다.
이층이 사무실이고 삼층이 집이지만 나는 사무실에 가면서 잠옷차림으로 오는 경우가 거의 없다. 새벽이면 일치감치 일어나 다 씻고 출근 복장을 갖추어 내려온다. 전화가 와서 비상이 걸리면 바로 현장으로 출동해야하기 때문이다. 위에서 아내가 밥 먹으라고 소리치면 온전히 다 들리지만 사무실과 집이라는 공간을 나름대로 엄격히 분리시켜 놓고 생활한다. 새벽에 내려와서 현장 상황을 파악하고 배차가 적절한지 다시 확인하며 중장비가 배차한 현장에 제대로 투입되었는지 확인한다. 하루 중에 내 전화가 가장 바쁜 시간이 바로 그 아침시간이다. 짬이 나면 인터넷과 조간신문으로 세상을 내다보며 일을 정리하고 느지막하게 아침을 먹으러 다시 올라가는 것이다. 그게 한국에 있는 동안 나의 일상이다.
물을 마시고 누웠으나 잠이 올 것 같지 않았다. 월해가 뭘 말하는지 파악하지 않고는 잠이 올 것 같지 않았다. 그러나 잠을 자야한다. 잠을 자야지 새벽에 일어나 일을 하고 아침을 먹고 나서 현장을 돌면서 모레 일을 주문받고 배차를 한다. 일을 해야 한다. 고로 나는 지금 잠을 자야 한다고 눈을 멀뚱멀뚱 뜨고 중얼거렸다.
일을 해야 한다.
이건 철칙이다. 식구들 반은 밥을 먹고 똥을 싸고, 반은 똥을 주식으로 해서 밥을 싸면 좋겠다. 그러지 못하는 이상 어디서나 일을 해야 한다. 다른 집은 어떤지 몰라도 애석하게도 우리 집에는 똥을 먹고 밥을 싸는 식구가 아무도 없다. 전부가 밥을 먹고 똥만 싼다. 고로 밥을 구하기 위해서 나는 일을 해야만 한다. 일을 하기 위해 그 시간에는 잠을 자야하는데 잠이 오지 않는 것이었다. 꿈에서 말하는 월해가 무슨 뜻인지 알지 않고는 잠이 올 것 같지 않았다.
-그래 뭔지 알아보자.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담배를 챙겨들고 잠옷 바람으로 사무실로 내려온 것이다.
그리고 밤을 꼬박 밝혔다.
새벽에 내가 알아낸 것은 월해越海란 해외로 건너가는 것을 뜻한다는 것과 패철을 사려면 인터넷으로 주문하는 것보다 대구에 있는 풍수백화점에 가서 구입하는 게 빠르고 싸다는 것뿐이었다.
사전적인 의미로 따진다면 나는 지금 월해에 해당하는 일을 하고 있다. 미얀마, 양곤에 외국인 투자자로 사업자를 내고 서민주택을 짓고 있는데 현장이 다섯 군데, 총 짓고 있는 세대수가 서른여섯 세대다. 어느 현장은 완공을 눈앞에 두고 마무리 작업을 하고 있고 다른 현장은 삼층과 사층까지 올라가고 한 현장은 허가서류를 넣어놓고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다. 하여 보름은 한국, 보름은 미얀마에서 일을 하니 분명 사전적인 의미로 월해越海, 영어로는 oversea를 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꿈속에서 노인이 말했던 월해와는 의미가 사뭇 다른 것 같다.
그 꿈에 집착하는 이유는 정작 다른 데 있다.
미얀마에 일을 벌이면서 솔직히 죽을 각오를 했다. 이전에도 몽골을 칠 년간 오가며 해외사업으로 중기업을 병행했지만 그건 미얀마 투자에 비하면 조족지혈이었다. 투자금액이 그렇다는 얘기다. 말이 좋아 사업이지 내 생에 있어서 최대의 도박이다.
한국에서 서른여섯 세대면 장난이다. 한국이라면 먼저 은행에 사업계획서를 넣고 신축 부지를 저당 잡히고 건물이 올라가는 데로 대출 금액을 늘려서 공사비를 지급하고 다 지어서 분양해서 대출금을 갚고 남는 차액을 가지는 게 건축회사의 통상적인 자금 조달 방법인데 미얀마는 그렇지가 않다. 무조건 내 수중에 있는 돈으로 건축을 완공하고 분양해야하니 면적당 건축비가 한국보다 적게 든다지만 위험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그 위험부담이 심리적으로 압박되자 나는 죽을 각오를 하고 배수진을 치는 심정으로 내가 죽어서 갈 묏자리를 만들었다. 그게 지난 한식날이었다.
장소는 집에서 차로 이십 분 남짓 걸리는 교외의 야산에 있는 밭이다.
십여 년이 넘었을 것이다. 멋모르고 자두가 탐이 나서 야산의 계단식 자두나무 과수원을 샀는데 과일농사는 남의 손에 맡겨서 과수관리가 되지 않는다는 걸 삼 년 농사를 지어보고 알았다. 농사를 짓던 노인이 나이를 빙자해서 과수만 망쳐놓고 손을 들자 포클레인을 끌고 들어가 자두나무를 다 작파하여 묻어버리고 하나로 합병하여 비탈진 밭을 만들었다. 중기임대업을 하는 작자가 그 정도의 일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할 수가 있다. 그렇게 하나로 완만한 밭을 만들자 눈독 들이는 사람이 많았다. 어떻게 알고 전화를 해대는 그 마을 주민 중에서 소를 키운다는 마을사람에게 사료작물을 재배하는 밭으로 세를 주었다.
그렇게 농사를 짓고 있으니 내 휴대폰 번호를 어떻게 알고 그 밭을 팔면 안 되겠냐고 수시로 여기저기서 전화가 오는 것이었다. 용도가 무엇이냐고, 무엇에 쓰려고 하느냐고 묻자 하나같이 묏자리를 운운했다. 선산先山이 5공단으로 편입되며 산소자리를 찾는 중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었고 흩어진 산소를 모아 가족 묘지를 조성하겠다는 사람도 있었다. 그렇게 사겠다고 말을 꺼낼 정도면 풍수를 데리고 다니며 명당을 찾아본 것은 당연한 이치다. 결국 나는 가만히 앉아서 그 밭이 명당임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사겠다는 전화가 오면 나도 산소자리를 쓰려고 그 밭을 사두었다고 일축했다.
그렇게 전화가 오자 그 밭이 얼마나 좋은 명당자리인지 은근히 궁금해졌다.
그러던 차에 작년에 자주 가는 암자에 가서 스님과 차를 마시다가 우연히 산소 얘기가 나왔다. 좀 구체적으로 얘기하면 그 암자가 도현사인데 내가 다니는 절이 아니다. 그냥 지나다니다 들러 차를 마시며 풍수와 한학에 조예가 깊은 현담스님과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하는 것이 재미있어 가끔 들려 차를 마시는 암자다.
내가 적을 두고 다니는 절은 따로 있다. 이십대에 시절, 직접 포클레인 조종을 하며 절로 올라가는 진입로 공사를 하다가 인연을 맺은 천해사이다. 현담스님은 내가 그 절에 적을 두고 삼십 년이 넘게 다니고 있으며 신도 회장을 맡고 있다는 걸 알고 계신다. 허여 그 절에 어떤 행사가 있어도 나에게는 부담을 주지 않는데 그게 오히려 미안할 지경이다.
아무튼, 그날은 무엇 때문인지 오전에 들렀다. 차를 마시고 점심 공양을 스님과 같이 하고 얘기가 길어졌다. 그 스님과 함께 있으면 스님은 얘기를 하는 편이고 나는 늘 듣는 입장이다. 언제 들어도 배울 게 있으니 발길이 잦을 수밖에 없다. 그 날은 점심 공양을 하다가 명당에 대한 얘기가 나왔다. 양택 명당과 음택 명당에 대한 얘기를 주고받다가 자두 밭에 관한 얘기했다. 내 얘기를 들은 스님은 오후에 별일이 없으면 나들이 삼아 밭을 한번 둘러보자고 했다. 스님께서 먼저 제안하시니 나는 마다할 이유가 없다. 그렇지 않아도 궁금해서 확인하고 싶었던 참이었다.
내 차를 이용했는데 왼쪽 무릎 관절이 안 좋다는 스님을 태우고 차를 밭 입구까지 끌고 들어갔다. 밭 입구에서 내리신 스님은 밭 맨 위로 절룩거리며 올라가시더니 응, 여기....... 하시며 주위의 산세를 훑어보셨다. 그리고 지명에 대해서 설명을 했다.
뒤에 보이는 게 조산이 비봉산飛鳳山이다. 봉황이 날고 싶어 하는 산이라 비봉산이고, 이 동네 이름이 봉황의 남쪽에 있는 산이라 봉남리鳳南里다. 이 산은 멀리서 보면 봉황이 날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사실이다. 들어오는 입구 멀리서 보면 산의 공제선이 무슨 날짐승의 날개처럼 보인다. 스님은 훤히 알고 계셨다.
봉황이 날아가지 않고 자리를 잡으라고 옆에 좌청룡자리에 꽃밭인 화조리花鳥里를 만들었고 우백호자리에 새가 춤을 추는 무을면舞乙面이 있다. 그리고 앞에 큰 그물로 덧씌워 대망리大網里가 있다. 이름에서 보듯이 날아가지 않고 봉황이 알을 품고 있는 자리다. 산의 이치와 형세를 알려면 그 부근의 동네 옛 지명을 익히면 수월하다. 입수룡入首龍이 들어오는 자리가 비봉산이고 정남향에, 앞에 단물인 감천甘川이 파구 방향으로 흐르고 책상에 해당하는 안산案山이 적당한 높이로 있고 정남향으로 위치하니 이건 볼 것도 없다.
스님의 말씀 요지는 그것이었다. 듣기 좋은 말이다. 그러면서, 혹시 수맥이 있나 보자며 조끼주머니에서 수맥 탐지봉인 엘 로드를 꺼내서 수맥을 측정했다. 포클레인 기사 시절에 산소작업을 하도 많이 다녀보아서 나도 반풍수다. 그런데 스님의 말씀을 듣고 보니 지명이 이치에 딱딱 맞아떨어졌다.
한동안 수맥을 측정하였으나 다행히도 수맥은 잡히지 않고 땅의 지기가 성성한 곳이라는 진단이 나왔다. 그 정도 되니 다른 사람들이 탐을 냈겠지.
스님에게 나선 김에 한 곳을 더 보아달라고 했다. 그곳은 우리 선산, 고조부모부터 모신 선산인데 아버지 어머니의 산소 아래 공터였다. 우리 형제들이 갈 자리라고 묘사나 벌초 때마다 얘기를 하던 곳이었다. 봉남리에서 차로 이십여 분 걸리는 강 건너 고향마을이다.
-차가 바로 산 아래까지 들어갈 수가 있습니다.
절룩거리는 스님의 관절을 생각하며 건넨 말이다.
-소풍삼아 한번 둘러보지, 뭐!
스님이 허락을 하셨다. 차로 대교를 건너서 농로를 따라 산 입구에 닿아서 스님은 말씀 하셨다.
-이곳도 백호白虎라 괜찮은데 봉남리에는 못 미치지.
우리가 어렸을 땐 백구산이라고 불렀던 산이다. 스님은 그걸 알고 계셨다. 일단 믿음이 갔다. 산길을 천천히 올라가며 산의 형세를 보고 얘기하고 아버지 어머니의 산소를 둘러보고 우리 형제가 죽으면 가겠다고 했던 자리에 수맥 측정을 했다. 다행히 수맥은 없었다.
-처사님 가시기엔 아무래도 여기보다 봉남리가 좋을 것 같습니다.
바로 그것이었다. 말은 못하고 있었지만 내가 가장 궁금해 하던 대답을 속이 시원하게 건질 수가 있었다. 궁금증을 해소하고 이른 저녁으로, 인근 시골마을의 콩국수가 유명한 집으로 스님을 모시고 갔다. 그 집이 특별한 건 주문을 받고 나서 불린 콩을 마당에 있는 옛날 맷돌에 갈아서 콩국을 만드는데 콩국을 듬뿍 넣어 뻑뻑한 게 맛이 아주 진하다. 조선에 이런 맛이 있나? 고향의 맛이라며 나보다 의외로 스님이 더 좋아하셨다. 둘이서 국수사발을 깔끔하게 비우고 스님을 암자에 모셔다 드렸다. 결과를 말해 콩국수 한 그릇 대접하고 산소자리를 본 놈은 조선에서 나 밖에 없을 게다.
죽어서 봉남리 밭으로 간다고 마음을 먹고 있던 참에 미얀마 일이 점점 커져서 자금 압박을 받게 되었다. 여윳돈을 몽땅 투자하고 모자라 중기 차고지와 살고 있는 건물까지 저당을 잡히고 대출금을 쓰고 있으니 은근히 불안했다. 해외사업은 하면 근본이 물 건너 있는 돈은 돈이 아니라는 심정으로 해야 한다. 다시 회수해서 통장에 넣어야 내 돈이다. 다 잡히더라도 그 밭은 잡히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으로 지난 한식날 포클레인을 데리고 가서 터를 다듬고 스님이 말씀하신대로 좌향을 잡아 봉분을 쌍분으로 만들고 잔디를 심었다. 누가 봐도 산소다. 축대아래 크기가 적당하고 보기가 좋은 자연석으로 야트막하게 석축을 쌓고 산소 앞에 목향 두 그루를 심으니 누구라도 탐을 낼만한, 아담한 산소가 되었다.
산소를 만들며 가만히 생각하니 오십대 중반에 제가 갈 산소를 만드는 놈은 나 밖에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문득문득 들어 손놀림이 어색했다. 그렇게 하고 있으니 점심을 가져나온 아내의 질타가 날아들었다. 그날 아침에 아내에겐 밭에 할 일이 있다며 점심을 가져오라고 말했었다. 아내는 산에서 내려오는 물을 돌리려고 도랑을 치는 작업쯤으로 생각했던 모양이다. 죽으면 어련히 알아서 할까봐 이 난리를 뜨느냐는 것이었다. 아내는 모른다. 그 자리가 얼마나 좋은 자리이며, 또 내가 해외에서 벌인 일에 배수진을 치는 기분으로 그 산소를 만들었다는 것을. 그러나 아내에게 해명할 수가 없었다. 해외에 벌여놓은 일에 돈이 얼마나 들어가고 얼마나 리스크가 있는 사업인지는 아내에게 설명할 수가 없었다. 아내가 그런 걸 다 알면 잠을 못자고 종내에는 금세 만들어 놓은 그 산소의 진짜주인이 되어버릴 일이다. 아내의 그런 말이 없었으면 일을 하는 포클레인 기사조차도 그게 정작 누구의 산소인지 모르고 지나갔을 정도로 조용히 진행했다. 나는 아내를 한쪽으로 불렀다. 큰소리 내면 천기가 누설되는 일이고 나중에 우리가 죽어서 갈팡질팡할 아이들을 위한 일이라며, 내 장비가 있고 내가 힘이 있을 적에 내 마음에 들도록 만드는 것이니 큰소리 내지 말고 조용히 하라고 달랬다.
어쨌거나, 그렇게 산소를 만들고 나니 마음가짐이 달라졌다. 매사에 긍정적이라기보다는 욕심이 조금 줄었다. 설령 하고 있는 일이 마음에 차지 않더라고 그러려니 했다. 심리적 변화에 확실히 효과가 있었다. 화를 덜 내고 속으로 삭이는 태도가 되었다. 속으로 외친다. 화를 내서 되는 일이 없다. 시간이 해결하겠지. 안 되면 죽기밖에 더하겠냐. 죽어도 갈 자리가 있는데 뭘 걱정하느냐? 이런 식의 마음가짐이다. 요즘 아내는 말한다. 다른 집 남자들은 늙어가며 양기가 입으로 올라 말이 많아진다는데 당신은 오히려 말수가 줄었다고. 생각이 깊다. 생각이 깊어지면 입이 무거워지는 걸 모르고 하는 소리다.
그렇게 산소를 만들어놓고 미얀마와 한국을 오가며 일을 했다. 미얀마 사람들은 시간이 돈이 아니다. 모두들 그렇게 인식하고 있다. 예로부터 굶어죽거나 얼어서 죽을 일이 없는 민족이라 느긋함이 생활 속에 배었다. 우리가 아무리 미얀미얀(빨리빨리)를 외치더라도 안 된다. 우리는 살기 위해 일을 하는 것이고 미얀마사람들은 즐기기 위해 일을 하는 것 같다. 보고 있으면 속이 터진다.
도박과 사업의 공통점은 주물럭거리면 커지는 법이다. 미얀마의 일도 예외는 아니다. 당초 예상보다 커져서 들어오면 있는 것 없는 것 마이너스로 박박 끓어서 나간다. 미얀마에서 들어오는 날이면 터미널로 마중 나온 아내의 첫마디가 이번에는 얼마나 가져가야 되느냐고 묻는다. 그게 인사다. 그러나 정작 나는 무덤덤해졌다. 들어갈 액수는 이제 윤곽이 잡혔다. 언제 들어가느냐가 문제다. 다행히 투자금액이 들어가는 시점에 빨리 올라가는 현장에 몇 세대라도 선분양이 된다면 재화가 물 건너가지 않고 제자리에서 돌아서 들어가겠지만 그건 희망사항이고 그런 경우는 거의 드물 것으로 예측된다.
어쨌거나 어젯밤에 꿈을 꾸고 그 산소의 좌향과 연관이 있을 것이라고 짐작했다. 산소의 좌향을 제대로 짚어보아야겠다고 마음먹고 인터넷을 뒤졌다. 인터넷으로 알아낸 것은 월해란 바다 건너를 말한다는 것과 패철을 빨리 구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아침을 먹고 서둘러 대구로 내려갔다. 약도를 보니 차를 가지고 가는 것보다 기차로 내려가서 지하철을 이용하는 게 빠르고 수월할 것 같았다. 차는 역 뒤 주차장에 세워두고 기차를 이용했다. 통학이나 통근하는 사람이 많은 위성도시라 기차는 삼십 분 간격으로 있다. 기차도 별로 기다리지 않고 패철 전문점의 약도와 전화번호를 프린트해서 재킷주머니에 넣어갔으므로 지하철역에 내려 쉽게 찾을 수가 있었다.
패철전문점의 머리가 백발인 젊은 사장이 풍수를 배우고 싶어서 찾느냐고 물었다. 얼굴은 사십대로 보이는데 희한하게 머리는 백발이라 인상적이었다. 그의 물음에 고개를 저었다. 요즘 어중간한 오십대들이 관심을 가지고 배우고 싶어 많이 찾는다고 하며 어디에 쓸 거냐고 재차 물었다. 말문이 막힌 나는 그냥 가지고 놀고 싶어 사러왔다고 둘러댔다. 가지고 놀더라도 제대로 알고 가지고 놀라며 나경의 구조가 적혀있는 소책자와 CD를 한 장 덤으로 주었다.
올라오는 기차 안에서 나경의 뚜껑을 열고 아무리 들여다보아도 월자는 찾을 수가 없었다. 월해? 해亥자 맞은편을 보니 사巳자였다. 돼지와 뱀이 마주보고 있다. 그러면 좌향에서 사좌해향이 되거나 해좌사향이 된다. 꿈에서 들은 월해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 꿈에서 얼핏 보았던 신辛자의 맞은편을 더듬었다. 을乙자다. 신을? 을신? 이건 더 엉뚱하다.
도대체 월해가 뭘까?
달리는 기차 안에서 나경을 그렇게 들여다보고 있으니 본질과는 달리 나는 어느 향向으로 가고 있는지 엉뚱하게도 그게 궁금해졌다. 남북으로 바늘을 맞추고 보니 서북 간향으로 기차는 달리고 있었다. 그렇게 나경을 가지고 놀면서 올라왔다. 정말이지 가지고 놀려고 산 나경이 되었다.
늦은 점심을 먹고 CD를 노트북에 꽂아 돌려보았다.
나경의 역사부터 구조에 대한 설명이었다. 나경은 한문 31자만 알면 해독이 가능하다. 십이지 그러니까 자축인묘진사오미신유술해子丑寅卯辰巳午未申酉戌亥 이 열두 자와 천간天干의 열 자 갑을병정무기경신임계甲乙丙丁戊己庚辛壬癸 그리고 오행의 다섯 자, 목화토금수木火土金水 그리고 사유라고 불리는 건곤간손乾坤艮巽의 네 자, 이렇게 31자의 한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보통 풍수들이 쓰는 게 9층 나경인데 9층 나경 어디를 훑어보아도 월해는 없었다.
나경을 살 때에는 그 집 머리가 백발인 사장이 나경을 볼 줄 아느냐고 물었다. 그 대답은 시계를 만드는 놈이 어렵지 시계 보는 놈이 뭐가 어려워요? 이렇게 시건방진 대답을 했는데 나경은 보통 어려운 게 아니다. 누가 만들어놓은 묘지에 가서 무슨 좌향인지는 금세 알 수가 있다. 그러나 좌향을 잡고 좋은 명당 터를 찾는데 활용하고 응용하기란 정말 어렵겠다. 손목시계의 역사는 이백 년 미만이다. 그러나 나경의 역사는 기원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88개의 별자리 움직임을 관찰하여 24방위에 적용시켰고 거기다가 우리나라에서 쓰는 24절기와 24시간을 넣어놓았다. 보통 과학적으로 만든 게 아니다.
-이거 재미있는 걸?
CD를 다 보고 흘린 말이다. 은근히 욕심이 났다. 나경을 보는 방법도 여러 방법이 있다. 입수룡入首龍을 기준으로, 산에서 정기를 내려 받는 곳부터 측정하는 방법이 있고 水口, 그러니까 물이 빠져나가는 곳을 측정하여 좌향을 잡는 방법이 있다. 충분히 공부할만한 가치가 있다. 묘지인 혈은 4층의 지반정침으로 보고 주위의 산은 6층의 인반중침으로, 물은 움직이는 것임으로 양으로 간주하여 8층의 천반봉침으로 보는 것이다. 예를 들어 자子면 시간으로는 자정 무렵을 얘기하고 방향으로는 북쪽을 얘기하는데 4층 지반정침의 자와 인반중침의 자는 각도가 약간 다르다. 산은 움직이지 않고 고정되어 있어 음陰으로 간주하고 자반정침의 자보다 7.5도 역행(시계반대방향)하고 8층의 천반봉침의 자는 물은 움직이는 것으로 양陽으로 간주하여 7.5도 순행시켜놓았다. 아주 과학적 산물이라 거듭 놀랐다.
옛날 풍수들은 산소 터를 잡을 적에 산에 올라 좋은 명당자리에 올라서면 지기地氣가 올라와 다리가 저릿저릿하다고 들었다. 그 자리에서 음양오행을 따지고 수구와 득수得水 자리를 따져보고 터를 잡는다는 것이다.
음양오행은 목화토금수인데, 풀이하자면 목木, 그러니까 나무는 화火, 불을 살리고, 화는 토土, 땅을 살리고 토는, 금金을 쇠를 살리고, 금은 수水, 물을 살리고 수는 목木, 나무를 살린다고 이해하면 수월하다. 상생도의 그림을 보니 그렇다. 상극이란 목극토木克土 나무는 흙을 이기고 토극수, 흙은 물을 이기고, 수극화, 물은 불을 이기고. 화극금, 불은 쇠를 이기고, 금극목, 쇠는 나무를 이기는 것으로 나타나있다. 이게 흔히 말하는 상생상극이다. 짚어보니 이치에 딱 맞아 떨어졌다. 6층 인반중침에는 성수오행이 작은 글씨로 표기되어 있다. 별자리를 보고 만든 것이라고 했다. 나경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게 아니다. 수 천 년에 걸쳐 검증하고 보완하고 검정하고 보완한 것이다.
CD를 두 번째 돌려서 복습하고 있으니 현장에서 전화가 왔다. 호출전화다. 견적을 넣을 일이 있는데 나와서 어느 장비로 하는 것이 효율적인지 장비 사용료가 대충 얼마나 들어가는지 전문가가 좀 보아달라는 것이었다. 그게 바로 내 일이다. 견적을 정확한 가격에 넣어서 내 거래처가 그 공사를 수주해야하는, 나로서는 엄청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저물기 전에 내가 만든 산소에 가서 좌향을 확인하고 싶은 마음에 지금 멀리 있다고 둘러대고 내일 나가겠다고 했다.
그 전화를 받고 나경을 챙겨들고 봉남리 자두 밭으로 내달았다.
가서보니 산소에 심어놓은 잔디가 착근이 되어 자리를 잡고 있었다. 나경을 두 봉분 사이에 놓고 자오정침을 했다. 그리고 좌향을 측정하니 자좌오향子坐午向으로 정남향이었다. 산소를 만들 적에는 대충 남향이 될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나경으로 방위를 측정하니 정남향이었다. 산소 앞 잔디밭에 앉았다. 산소를 만들고 처음으로 산소 앞에 앉아 주위의 산세와 물길들을 면밀히 관찰했다. 마음이 푸근했다. DVD를 보고 가서인지 입수룡과 득수, 파구를 쉽게 찾을 수가 있었다. 가만히 짚어보니 소책자에 나오는 명당의 산세도와 상당부분 일치하는 것이다. 터를 다듬고 산소를 만들 적에는 별 생각이 없었는데 나는 죽어서 이곳에 눕게 된다고 마음을 먹으니 마음이 참으로 든든하며, 푸근한 게 일어나고 싶은 생각이 없어졌다. 옛날 풍수들이 자리를 잘 모르면 그 땅에 십 분간 앉아 있어 보라고 했다. 푸근하고 오래 앉아 있고 싶은 땅은 명당이고 마음이 갑갑하고 빨리 일어나 가고 싶으면 좋지 않은 터라는 말이 있다. 마음이 그렇게 푸근했던 걸 보면 명당이 확실하다는 것을 재차 확인했다. 산소 앞에 앉아서도 꿈에서 들은 월해가 뭐지? 궁금증이 일었었다. 산소에서도 월해를 찾지 못하고 차를 돌렸다.
월해가 뭐지? 보통 꿈이 아니었는데?
돌아오는 차안에서도, 사무실에 와서도 머리는 온통 월해를 찾고 있었다. 사무실에 와서 인터넷을 켜고 다시 월해를 치고 들어가니 바다를 건넌다는 뜻 이외에 월해한의원, 월해재단, 월해사 주지, 갤러리 월해, (주)월해 따위의 웹문서와 링크가 올라와 있었다. 그 외에는 수월해요, 삼개월해보고, 등 월해가 들어가는 쓸데없는 낱말이 뜨는 것이었다. 새벽에 다 보았던 것이다. 내가 확인한 건 월해를 인터넷으로 찾는 게 아니다. 인터넷을 종료시켰다. 오늘이 아니라도 살다보면 찾을 수가 있겠지.
접대용 소파에 등을 묻고 앉았다. 잠이 모자라는지 눈이 시리고 따갑다.
눈을 감고 찬찬히 오늘의 궤적을 훑었다.
하루 종일 월해를 찾아다녔다. 그 결과 나경이라는 장난감을 구입하고 산소자리가 명당임을 거듭 확인했다. 나경은 썩 괜찮은 장난감이다. 더 연구하고 공부할 가치가 충분히 있는 물건이다. 월해! 바다 건너로 나아감. 나는 또 다 다음 주에 미얀마로 나가서 일을 해야 한다. 월해에 해당한다. 나가기 전에 풍수백화점에 다시 들러 나경에 대한 책과 좌향 보는 법에 관한 책을 구입해야겠다. 그곳의 백발인 사장에게 시계 만드는 놈이 어렵지 보는 놈이 뭐가 어렵냐는 건방진 소리를 한 데 대해서 사과를 하고 이해하기 쉬운 책으로 골라달라고 해야겠다. 눈이 시리고 따갑다. 눈두덩이 부은 것 같다. 눈을 비비다가 보니 길 건너편 상가의 유리창에 역광으로 비친 해가 기울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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