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최초의 신자 이승훈(베드로) 세례 관련 서신
방 다봉 신부의 편지
1784년 이승훈 베드로가 북경에서 세례를 받았을 때 북경에 있던 선교사 방다봉 신부가 이 기쁜 소식을 구라파에 있는 자기 친구에게 보낸 편지이다. (샤를르 달레 한국 교회사 상권 306-307)
그대는 한 사람의 입교 소식을 흐뭇한 마음으로 들을 것으로 믿습니다. 천주께서는 아마 그로 하여금 아직 어떤 선교사도 들어간 적이 없는 알지 못하는 나라에 복음의 빛으로 비추게 하실 것입니다. 그 나라는 중국 동편에 있는 반도 조선입니다.
그 나라 왕은 자기의 종주로 생각하는 중국 황제에게 해마다 사신을 보냅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그에게는 손해가 안됩니다. 조선왕이 황제에게 많은 예물을 바치지만, 황제는 그에게 더 많은 선물을 보내기 때문입니다. 이 조선 사신들이 작년 말에 왔는데, 그들과 그들의 수행원들이 우리 성당을 찾아왔습니다.
우리는 그들에게 종교서적을 주었습니다. 동지사 중 한 분의 아들은 나이 27세인데 박학하여 그 서적들을 열심히 읽어, 거기에서 진리를 발견하였고, 또 천주의 은총이 그의 마음을 움직였기 때문에 교리를 깊이 연구한 다음, 입교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성세를 주기 전에 그에게 많은 문제를 물어 보았는데, 그는 모두 잘 대답하였습니다. 우리는 그 중에서도 만일 왕이 그의 행동을 못마땅히 생각하여, 신앙을 버리라고 강요하는 경우에는 어떻게 할 결심이냐고 물어 보았습니다. 그는 서슴치 않고 자기가 그 “진리를 명백히 아는 이 종교를 버리기보다는 차라리 모든 형벌과 죽음까지도 감수하겠다.”고 말하였습니다.
우리는 또 ‘복음이 가르치는 순결은 여러 여자를 데리고 사는 것을 용인치 않는다’는 것도 잊지 않고 알려주었더니, 그는 ‘법적인 아내 밖에 없고 또 다른 여자를 결코 얻지 않겠다.’고 대답하였습니다. 마침내 그는 조선으로 돌아가기 위하여 출발하기 전에 그 아버지(이동욱)의 승낙을 얻어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라몽 신부가 베드로란 본명으로 그에게 성세를 주었습니다. 그의 성은 이가이며 왕족의 인척이라 합니다.
그는 ‘고향으로 돌아가면 인간의 공명을 버리고, 가족과 함께 시골로 물러가 자기 구령에만 전력하고자 한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리고 해마다 우리에게 ‘소식을 전하겠다.’고 약속하였습니다. 사신들도 그들의 왕에게 ‘서양 사람들을 그 나라에 불러들이기를 제청하겠다.’고 약속하였습니다. 북경에서 조선 한양까지는 육로로 약 3개월이 걸립니다.
우리는 조선 사람들과 글씨로 이야기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들의 글자와 중국 글자는 모양과 뜻이 같습니다. 다른 점이 있다 하여도 아주 미미합니다. 그러나 발음은 전혀 다릅니다. 조선 사람들이 말하고자 하는 생각을 글씨로 써 놓으면, 우리는 그 글자를 보고 뜻을 이해하였고, 그들도 우리가 대답으로 써 놓은 것을 보고 그 뜻을 즉시 알아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