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 성대한 연회석
며칠이 지나자 양주부의 지부 오지영(吳之滎)이 잔치를 벌여서 흠차를 환영했다. 곧이어 도태로부터 들은 이야기지만 흠차가 선지사를 행원으 로 삼으려고 했다고 하는지라, 선지사의 가장 멋진 점은 절 앞에 한 개 의 작약포가 있으니 흠차대인이 그 절에 머물려고 한 것은 아마도 꽃 구경을 좋아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남의 비위를 잘 맞추는지라 이미 수일 전에 작약포 옆에 하나의 화붕(花棚)을 세우게 했다. 그리고 솜씨가 뛰어난 장인으로 하여금 소 나무의 껍질을 벗기지 않고 나무의 가지와 잎들이 그대로 달려 있는 채 로 세우게 했다. 화붕 안의 탁자와 의자는 모두 천연적인 나무와 돌을 사용했고 화붕에도 꽃나무와 푸른 화초를 잔뜩 심어서 다시 대나무 토 막으로 물을 끌어들여서 화붕 안 사방을 돌며 흐르도록 만들어서 졸졸 거리는 소리가 나도록 했다. 그러니만큼 지극히 교묘한 생각을 짜낸 것 이라 할 수 있었다. 그곳에서 술을 마시고 잔치를 벌인다는 것은 마치 산속에 앉아서 술을 마시는 것과 다름없었다. 이것은 부유한 사람이 옥 을 깎아서 대들보를 세운 화려한 객당에서 술을 마시는 것과는 또다른 흥취가 있었다. 그러나 위소보는 용렬하고 범속하기 이를 데 없는 사람 이라 화붕에 이르자 첫 번째 한 마디가 다음과 같았다.
[어째서 차일이 쳐져 있지? 아, 그렇군! 절의 화상들이 법사를 하려고 세워서 이곳에서 배고픈 거지들에게 밥을 먹여 주려고 하는 모양이군.]
오지영은 그야말로 심혈을 기울였으나 헛되게 되자 그만 얼굴이 겸연쩍 게 되었다. 그는 흠차대신이 일부러 자기를 비웃는 줄 알고 웃음을 지 으며 말했다.
[폐직의 견문이 좁고 얕아서 이곳을 대인의 뜻에 들도록 꾸미지를 못했 으니 실로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위소보는 손님들이 이미 엄숙히 서서 자기를 기다리고 있는지라 즉시 인사말을 하고는 자리에 앉았다. 양강의 총독은 위소보를 상대로 며칠 동안 술도 함께하고 말도 나누어 보았는지라 이미 강녕의 자기가 다스 리는 곳으로 가고 없었다. 그런데 강소성의 순무와 포정사 등은 다스리 고 있는 곳이 바로 소주인지라 모두 다 양주에 남아서 흠차대신을 모시 고 있었다. 그리고 나머지 귀빈은 명사가 아니면 공을 세운 염상들이었 다. 양주의 연회석은 절차가 번거로운 만큼 또한 화려했다. 술 마시기 전에 올라오는 다과와 간식만 해도 수십 가지나 되었다. 위소보는 이 고장의 토박이였지만 그것들을 다 알지는 못했다. 한동안 차를 마시자 햇살이 서쪽으로 점점 뉘엿뉘엿 기울어졌다. 햇살은 이제 화붕 밖의 수천 그루 나 되는 작약을 비추게 되어 그 찬란한 아름다움은 그야말로 비단을 펼 쳐 놓은 것 같았다. 위소보는 보면 볼수록 화가 났다. 어린 시절 승려들에게 구타당하고 모 욕당한 일이 생각나 대뜸 작약을 모조리 뿌리채 뽑아서 태워야 속이 후 련할 것 같았다. 그러려면 반드시 구실이 있어야 그와 같이 손을 쓸 수 있었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순무인 마우가 웃으며 입을 열었다.
[위 대인, 대인의 말투로 미루어 아마도 이 희양(准揚) 일대에서 지낸 적이 있는가 보군요. 희양은 물과 땅이 좋아서 인재가 나고 또한 좋은 꽃도 난답니다.]
관원들은 흠차가 정황기 만주 사람이라고 알고 있었다. 그런데 순무는 이 며칠 동안 그의 말을 듣고 양주의 말씨와 비슷한 점이 있다고 생각 하며 이 기회에 그를 추켜세운 것이었다. 위소보는 이때 한창 선지사의 승려들이 괘씸해 죽겠다고 섕각하고 있던 터라 불쑥 말했다.
[이 양주 땅은 다 좋은데 오직 화상들만 고약합니다.]
순무는 어리둥절해져서 그의 참뜻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지 못했다. 포 정사 모천안(募天預)은 눈치가 빠르고 학문이 있는 사람이라 그 말을 받았다.
[위 대인이 보시는 바가 무척 옳습니다. 양주의 화상들은 시세의 흐름 을 매우 잘 타는 편으로 관부의 사람이라면 추켜올리고 평범한 사람이 라면 업신여기는데 그것은 옛날부터 그렇답니다.]
위소보는 크게 기뻐서 웃었다.
[그렇소이다. 모 대인은 독서하는 사람이라 책에 쓰여 있는 것을 알고 있었구려.] [당나라 왕파(王播) 벽사농(碧紗籠)의 이야기만 하더라도 바로 양주에 서 일어났던 일이 아니겠습니까?]
위소보는 옛날 이야기를 듣기 좋아하는 편이라 재빨리 물었다.
[뭐가 황포비사룡(黃布比沙龍)의 이야기요?] [이 이야기는 바로 양주 석탑사(石塔寺)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당나라 건원(乾元) 연간에는 석탑사를 목란원(木蘭院)이라고 했는데 시인 왕파 는 젊었을 때 집안이 가난해서....]
위소보는 속으로 생각했다. (원래 이 사람은 왕파라고 한 것이고 한 조각의 황포가 아니었구나.) 그는 모천안이 계속하는 말을 들었다.
[목란원(木蘭院)에서 기거하게 되었지요. 절간의 화상들은 밥을 먹을 때 종을 쳐서 알렸는데 왕파도 종소리를-듣고 역시 반당(飯堂)으로 가 서 밥을 먹었죠. 화상들은 그를 싫어해서 한번은 모두들 밥을 먼저 먹 고 난 후에야 종을 쳤습니다. 왕파는 종소리를 듣고 반당으로 들어갔는 데 이미 승려들은 흩어지고 없었고 밥과 찬도 이미 깨끗이 먹어치운 후 였죠....]
위소보는 앞에 놓인 탁자를 두드리며 노여워했다.
[제기랄! 화상이 고약하군.] [그렇지요. 밥 한 끼의 비용이 얼마나 되겠소이까? 당시 왕파는 속으로 부끄러움을 느끼고 벽에다 다음과 같이 쓰게 되었지요. '상당기료각서 동(上堂已了各西東) 참괴도려반후종( 愧 黎飯後鐘)']
위소보는 물었다.
[도려는 어떤 녀석이오?]
벼슬아치들은 그와 며칠 상대를 해보았는지라 이 흠차대인은 독서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다. 사실 만주 귀인의 공명부귀는 책을 읽어서 얻 는 것이 아니므로 별로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모천안은 말했다.
[도려는 바로 화상이지요.]
위소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화상은 바로 땡초였군. 그 후 어떻게 되었소?] [후에 왕파는 큰 벼슬아치가 되었고 조정에서는 그를 보내 양주를 지키 도록 했는데 그는 재차 목란원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그때 화상들은 자 연히 그를 크게 떠받들었지요. 그는 과거에 남긴 시가 아직도 있는지 보려고 했는데 그 벽에 써 놓은 그의 두 구절의 시에 값진 벽지를 붙여 서 잘 보존시키고 있었습니다. 왕파는 매우 감격하여 다시 두 마디의 시를 읊었지요. '삼십년전진토면(三十年前塵土面) 여금시득벽사농(如今 始得碧紗寵).']
위소보는 말했다.
[그는 그 땡초들을 잡아서 볼기를 쳤겠구려.] [왕파는 풍류를 알고 멋을 아는 선비인지라 두 마디의 시를 써서 약간 비웃어 주고는 그만두었지요.]
(만약 나였다면 어찌 그토록 쉽게 손을 떼겠는가? 하지만 날 보고 시를 쓰라 한다면 나에겐 그만한 재간이 없다. 나는 그저 똥을 쌀 줄만 알았 지 시를 쓸 줄 모른다.) 이와 같이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차를 물리고 술이 올라왔다. 위소보는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왕진보가 옆자리에서 술을 한모금 시원스럽게 마 시고 있는지라 속으로 움직이는 바가 있어서 말했다.
[왕 장군, 그대는 전마(戰馬)가 작약을 먹으면 특별히 건장해진다고 말 한 적이 있지 않소?]
말하면서 그는 눈짓을 했다. 왕진보는 그 뜻을 몰라 말했다.
[그건....]
위소보는 말했다.
[황상께서 유명한 종자의 좋은 말을 뽑아서 사용하고 계시지 않소? 무 슨 몽고의 말, 서역의 말, 사천성의 말, 운남성의 말들이 있는데 황상 께서는 우리들에게 조심해서 키우라고 분부하지 않았소?]
강희가 말을 기르려고 한다는 사실은 왕진보도 알고 있는 터였다.
[대인의 말씀이 옳습니다.] [그대는 말의 성질을 잘 알고 있어서 북경에 있을 때만 하더라도 전마 에게 작약을 먹인다면 두 배나 빠르게 된다고 하지 않았소? 황상께서 그와 같이 말을 사랑하시니 우리들 신하된 자는 마땅히 성상의 뜻을 살 펴야 할 것이오. 만약 이곳의 작약꽃을 뽑아서 북경으로 보내 병부 거 가사의 사람들로 하여금 말에게 먹이도록 한다면, 황상께서 아시고 반 드시 크게 기뻐하실 것이외다.]
사람들은 그 말을 듣고 모두 다 하나같이 이상야릇한 표정을 지었다. 작약꽃이 말을 건장하게 한다는 말은 처음 듣는 것이었다. 그리고 왕진 보가 우물쭈물하는 것으로 보아 틀림없이 그렇지 않은 모양이었고 다만 공공연하게 반박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위소보는 입만 벙 긋하면 황상 황상 하면서 황제를 내세우니 누가 감히 조금이라도 이의 를 달겠는가? 그야말로 천여 그루나 되는 유명한 종자의 작약이 모조리 그의 손에 의해 망가지게 될 판이고 양주는 이후부터 명승지 한 곳을 잃게 될 판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이 위 대인이 어째서 그토록 작약을 미워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사람들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말 을 하지 못했다. 지부 오지영이 말했다.
[위 대인께서는 정말 학식이 풍부하여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탄복하게 하는군요. 이 작약의 뿌리는 적작(赤芍)이라고 하는데 본초강목(本草綱 目)에서 들먹이고 있지요. 그 효능은 응어리를 풀어 주고 피를 순환시 키게 한다고 했습니다. 작약의 명칭에 약자가 있는 것을 보면 옛날 사 람들은 바로 그 작약을 좋은 약으로 생각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말 이 작약을 먹게 된다면 피가 잘 순환되어 자연히 나는 듯 달리겠지요. 대인께서 북경으로 돌아가실 때 폐직은 사람들을 시켜 이곳의 작약꽃을 모조리 뽑아서 대인께서 북경으로 가지고 가도록 하겠습니다.]
벼슬아치들은 그 말을 듣고 속으로 오지영이 비열하고도 몰염치하게 상 관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서 양주의 아름다운 풍경을 망가뜨리려 한다고 욕을 했다. 위소보는 손뼉을 치고 웃었다.
[오 대인은 정말 일을 처리하는 방법이 훌륭하구려. 정말 좋소! 좋아!]
오지영은 매우 영광스럽게 여긴 듯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하 고 말했다.
[대인께서 칭찬해 주시니 고맙습니다.]
포정사 모천안은 화붕에서 걸어나가 작약포의 안으로 들어가더니 한 송 이의 대접만한 작약꽃을 꺾어서 자기 자리로 되돌아와 두손으로 위소보 에게 바치며 웃었다.
[대인께서 아무쪼록 이 한 송이의 꽃을 모자에 꽂으십시오. 폐직은 대 인께 들려드릴 이야기가 있습니다.]
위소보는 얘기를 들을 수 있다는 말을 듣고는 꽃을 받아들었다. 그런데 그 한 송이 작약꽃은 꽃잎이 아주 짙은 붉은색이고 꽂잎 가운데 한 가 닥의 노란 선이 그어져 있어서 무척 화사하고 아름다웠다. 그는 즉시 모자 위에 꽂았다. 모천안은 말했다.
[대인께 축하드립니다. 이 작약은 금대위(金帶圍)라는 명칭이 있으며 매우 드문 명종입니다. 옛날 책에 기록되어 있는 바로는 이 금대위를 본 사람은 이후 재상이 된다고 했습니다.] [그럴 리가 있소?] [이 고사는 바로 북송(北宋) 연간에 비롯되었답니다. 그 당시 한위공 (韓魏公) 한기(韓琦)가 양주를 지키게 되었는데 바로 이때 선지사 앞의 작약포에서 갑자기 한 그루의 작약이 네 송이의 큰 꽃을 피우게 되었지 요. 꽃잎은 짙은 붉은빛이었고 가운데에 금빛선이 그어져 있었는데 바 로 이 금대위였습니다. 이와 같은 작약은 일찍이 없었던 것으로써 매우 진기한 일이었지요. 그리하여 아랫사람이 보고를 하자 한위공은 즉시 왕림하여 구경을 하게 되었고 매우 즐거워했답니다. 그런데 꽃이 네 송 이 있는 것을 보고 다시 세 분의 손님을 청해 함께 꽃을 감상하려고 생 각했습니다.]
위소보는 모자에서 그 꽃을 내려서 다시 보니 아니나다를까 붉고 노란 빛이 서로 얽혀 더욱더 찬란해 보였다. 그 한줄의 금빛은 가로로 난 무 늬여서 여느 꽃에서는 볼 수 없는 것이었다. 모천안은 말했다.
[그때 양주에는 명성이 높은 두 인물이 있었는데 한 사람은 왕규(王圭) 였고, 또 한 사람은 왕안석(王安右)인데 모두 다 재주가 있고 학문이 깊으며 견식이 넓은 사람들이었습니다. 한위공은 속으로 꽃은 네 송이 인데 사람은 세 사람뿐이니 아름다움 중에 부족한 점이 있다고 생각하 고 달리 한 사람을 청하기로 했지요. 그런데 그 사람의 명망은 그만한 자격이 없었습니다. 바로 이와 같이 주저하고 있을 때 갑자기 그 누군 가 찾아왔습니다. 찾아온 사람은 바로 진승지(陳升之)로서 그 역시 한 분의 명사였지요. 한위공은 크게 기뻐서 이튿날 이 작약포 앞에서 크게 연회를 차려 네 송이의 금대위를 뽑아서는 각기 머리 위에 한 송이씩 꽂게 되었습니다. 이 고사는 사상잠화연(四相簪花宴)이라고 하는데 후 에 이 네 사람은 모두 재상이 되었다고 합니다.]
위소보는 웃었다.
[그거 재미있구려! 그 네 분 형씨들은 모두 유명한 독서인이고 시를 쓰 거나 문장을 지을 줄 알았지만 형제는 감히 그분들에게 견줄 실력이 못 되오.] [그렇지 않습니다. 북송 때만 하더라도 선비들이 재상을 했습니다만, 우리 대청나라는 싸워서 천하를 얻었기 때문에 황상께서 가장 중시하는 사람은 용기와 지략이 있는 영웅호걸입니다.]
위소보는 용기와 지략이 있는 영웅호걸이라는 칭찬의 말을 듣고 크게 기분이 좋아서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모천안은 말했다.
[한위공은 위국공(魏國公)에 봉해졌으니 더 말할 것도 없지요. 왕안석 은 형국공(荊國公)으로 봉해졌고, 왕규는 기국공(岐國公)에 봉해졌으며 진승지는 수국공(秀國公)으로 봉해졌습니다. 네 분의 명신들은 모두 재 상이 되었을 뿐 아니라 모두 국공(國公)으로 봉해졌습니다. 그런데 대 인께서는 젊어서 이미 출세하여 지금은 백작에 봉해졌으니 다시 한 계 급 더 오르면 후작이고 거기에서 더 오르면 공작이 될 것입니다. 그러 니 왕에 봉해지고 친왕에 봉해지는 것은 순식간의 일이 될 것입니다.]
위소보는 껄껄 소리내어 웃으며 말했다.
[아무쪼록 모 대인의 금쪽 같은 말씀처럼 이곳의 모든 분들이 벼슬이 오르고 부자가 되기를 바라겠소이다.]
모든 관리들은 일제히 일어나서 술잔을 들고 말했다.
[삼가 위 대인께서 가관진작(可官進爵)하시기를 바라며 공후만대(公侯 萬代) 되시기를 축하드립니다.]
위소보는 몸을 일으켜서는 관리들과 한 잔의 술을 건배했다. 그리고 속 으로 생각했다. (이 벼슬아치는 학문이 있고 또 구변이 뛰어나 이야기를 잘해 사람을 기쁘게 만드는구나. 만약 그로 하여금 북경으로 가서 일을 처리하도록 한다면 수시로 그가 이야기하는 것을 들을 수 있으니 그야말로 이야기 꾼의 이야기를 듣는 것보다 훨씬 낫지 않겠는가? 이 사람은 타고난 아 첨대왕으로서 이름마저도 모천안이라고 하여 조정의 황상을 뵈옵고 싶 다는 뜻을 분명히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때 모천안은 다시 말했다.
[한위공은 후에 군사를 거느리고 서강(西疆)을 지키게 되었지요. 서하 (西夏)나라 사람들은 그를 두려워해서 감히 군사를 이끌고 침범하지 못 했습니다. 서하인들은 당시 송나라 조정의 두 분 대신을 두려워했는데 한 분은 바로 한위공 한기였고 다른 한 분은 범문정공(范文正公) 범중 엄(范仲淹)이었습니다. 당시 두 마디의 말이 퍼져 있었지요. '군중유일 한(軍中有一韓), 서적문지경파담(西賊聞之驚破膽)' 장래 위 대인께서는 군사를 거느리고 서강을 지키게 되면 다음과 같은 말이 떠돌게 될 것입 니다. '군중유일위(軍中有一韋), 서적견지망하궤(西賊見之忙下蒜)'!]
위소보는 매우 즐거워서 말했다.
[서적이라는 두 글자는 정말 잘 썼소이다. 평서왕의 이 서....]
그러다 갑자기 속으로 생각했다. (오삼계는 아직 군사를 모아 반란을 일으키지 않았으니 서적이라고 부 를 수가 없다.) 그는 재빨리 말투를 바꿨다.
[평서왕이 서강을 지킨 이후 태평무사함으로 매우 공로가 크오이다.]
오지영은 말했다.
[평서왕은 지용을 겸비하고 노고도 크지만, 공을 크게 세워 친왕에 봉 해지게 되고 세자는 부마가 되었지요. 장래 위 대인께서는 크게 부귀영 화를 누리게 되고 수명은 남산처럼 높아 반드시 평서왕과 다를 바가 없 게 될 것입니다.]
위소보는 속으로 크게 욕을 했다. (이런 빌어먹을! 너는 나를 오삼계라는 대매국노와 견주어 똑같이 얘기 하고 있구나. 그 늙은 자라는 머리통이 곧 이사를 가게 되는데 너는 내 가 그와 같이 되라는 것이냐?) 모천안은 평소부터 조정의 동향을 애써 짐작해 보려고 하던 터였는데 일전에 저보에 난 것을 보면, 황상께서 번왕들을 직위해제할 뜻을 비췄 다고 했는지라 오삼계가 매우 운수불길하게 되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때 위소보의 안색이 확 변하는 것을 보고 즉시 마음 속으로 알아차리고는 말했다.
[위 대인께서는 황상께서 친히 끌어올리신 대신이라 바로 성상의 심복 이요. 조정의 주석이며 국가의 동량(棟梁)입니다. 평서왕은 지금 관직 이 높지만 끝내 위 대인과는 비교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오 지부의 그 와 같은 말은 약간 맞지 않지요. 위 대인의 조상인 당나라 조정의 충무 왕(忠武王) 위고(韋旱)는 토번(吐蕃)군사 사십팔만 명을 쳐부숴서 서쪽 변경에서 위세를 떨쳤습니다. 과거 주체(朱砒) 가 반란을 일으켜 사람을 보내 위 충무왕에게 함께 군사를 일으키고자 청을 했습니다. 충무왕은 황제께 충성을 다하여 두 가지 마음을 품지 않은지라 어찌 그와 같은 대역무도한 일을 했겠습니까? 즉시 반적의 사 절을 참하고 군사를 내보내 조정을 도와 반적을 평정하여서 대공을 세 우게 되었지요. 위 대인의 풍모가 의젓하신 것을보면 복이 커서 견줄 데가 없을 것 같습니다. 응당 위 충무왕에 견주어야 마땅하지요.]
위소보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그는 자기의 성이 뭔지도 모르 고 있는 판이었다. 다만 모친을 위춘방이라고 부르기 때문에 어머니의 성을 따른 것인데 위씨 성을 가진 사람 가운데 이와 같이 큰 내력이 있 는 인물이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던 터였다. 그런데 이 포정사가 억 지로 자기의 조상이라고 말하니 그것은 자기의 얼굴에 금칠을 하는 격 이 아니겠는가? 그리고 그의 말뜻을 들어 보건대 오삼계가 반란을 일으 키려고 한다는 것을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는 것 같아서 이 사람의 재 주와 지혜가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오지영은 모천안이 그와 같이 반박 하자 속으로 못마땅했으나 감히 공공연하게 상사와 언쟁을 할 수가 없 어서 말했다.
[소문에 듣건대 위 대인은 정황기인(正黃旗人:기인은 만주인)이라고 들 었습니다.]
그 말뜻은 물론 그는 만주인이니 어찌 당나라의 위고와 비교할수 있느 냐 하는 것이었다. 모천안은 웃었다.
[오 지부는 한 가지만 알았지 두 가지는 모르는구려. 지금 성천자께서 제위하시어 천하 만민에 대해서 똑같이 보고 계시므로 만주인이나 한인 은 한집안 같은데 어찌 만인이니 한인이니 하는 차이를 두겠소이까?]
이 몇 마디의 말은 실로 억지를 쓴다고 하지 않을 수 없었으나 오지영 은 감히 변명하지 못했다. 그리고 속으로 또 몇 마디의 말을 했다가는 어쩌면 흠차에게 죄를 짓게 된다고 생각하고 잇달아 그렇다고만 했다. 모천안은 말했다.
[평서왕은 우리 양주부의 고우(高郵) 사람이지요. 오 지부는 평서왕과 한집안이 아니시오?]
오지영은 결코 양주 고을 사람이 아니었으며 원래 오삼계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그러나 이때 오삼계의 권세가 하늘을 찌르는 듯했는지 라 그는 본래 세도가에게 아부하는 성질이 있기 때문에 자기의 성이 오 가임을 퍽이나 영광스럽게 생각하고 있는 관계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족보의 서열로 볼 때 폐직은 평서왕보다 한 항렬이 낮아 마땅히 왕야 를 아저씨라고 불러야 한답니다.]
모천안은 고개를 끄덕이고 그를 아랑곳하지 않고 위소보에게 말했다.
[위 대인, 이 금대위라는 작약은 송나라 때만큼 드물지는 않지만 이와 같이 활짝 핀 것을 보면 이상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런데 오늘 공교롭 게도 위 대인께서 이곳에 와서 꽃구경을 하게 되었을 때 활짝 피었으니 이것이야말로 우연이 아니라 하늘의 뜻이 있을 것입니다. 폐직에게 조 그만 의견이 있는데 대인께서 결정을 내려 주십시오.]
위소보는 말했다.
[모형께서 가르침을 베풀어 주시구려.]
모천안은 말했다.
[가르침이라니 어찌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이 작약꽃의 뿌리는 약재를 파는 가게에 가면 있습니다. 대인께서 말에게 먹이신다면 약재 가게에 서 다듬고 익힌 것이 더욱더 효력이 클 것입니다. 폐직은 대량으로 구 입해서 북경으로 보내 사용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이곳의 작약꽃은 대인에게 좋은 일이 있고 또 공을 세우리라는 사실을 알렸다는 점을 감 안하여 잠시 남겨 주실 수 없겠습니까? 훗날 위 대인께서 원수가 되시 어 도적을 깨뜨리고 또다시 재상이 되거나 왕에 봉해지게 되었을 때는 바로 한위공이나 위 충무왕처럼 되어서 재차 이곳에 와서 꽃구경을 하 시게 될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때 금대위가 활짝 피어 귀인을 맞아들이 게 된다면 어찌 아름다운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있겠소이까? 폐직이 생 각하건대 훗날 반드시 연극무대에도 올려지게 될 것이라고 생각됩니 다.]
위소보는 신이 나서 말했다.
[그대는 연극하는 자들이 나로 분장하여 노래를 한다는 것이오?] [그렇지요. 그야 물론 준수하고 우아하며 멋진 젊은이가 위 대인으로 분장하겠지요. 그리고 하얀 수염에 검은 수염을 단 사람과 얼룩무늬를 칠한 얼굴에다 하얀 코의 광대들이 있어 오늘 우리와 같은 벼슬아치들 의 역할을 해내겠지요.]
관리들은 모두 껄껄 소리내어 웃었다. 위소보는 말했다.
[그러면 그 한 토막의 연극은 뭐라고 부르는 것이오?]
모천안은 순무인 마우에게 말했다.
[그건 무태대인(撫台大人)께서 연극 이름을 붙여 주시도록 하십시오.]
그는 순무가 줄곧 말을 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그를 흔자 내버려 두어 외롭게 할 수 없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마우는 웃었다.
[위 대인께서 장래 왕으로 봉해지신다면 이 연극을 위왕잠화(韋王簪花) 라고 하는 것이 어떻겠소?]
벼슬아치들은 일제히 칭찬의 말을 했다. 위소보는 속으로 흐뭇해져서 다시 과거의 원한을 마음에 두지 않게 되었고 속으로 생각했다. (나는 재상은 될 수 없지. 그러나 서적을 크게 깨뜨리고 왕야가 되어 노닥거리는 것쯤은 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이들 작약들을 뽑아 버린 다면 조짐이 좋지 않을 거야.) 그가 밖을 내다보니 작약포에는 금대의가 적어도 수십 송이는 될 것 같 아 속으로 생각했다. (어떻게 저토록 많은 재상이 생겨날 수가 있나? 설마 하니 이 사람들 모두 재상이 된다는 것일까? 무태와 번태(藩台)들은 희망이 있다고 할 지 모르나 이 오지영과 같은 사람은 아무래도 그럴듯하지 않구나. 장래 연극무대의 하얀 코를 가진 광대는 반드시 이 자가 맡게 될 것이다.) 그는 포정사가 이리저리 말을 돌려서 섕각하고 생각한 끝에 말을 했던 것은 바로 선지사 앞의 수천 그루나 되는 작약들을 보전하려는 데 있다 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야말로 벼슬아치의 요결은 모두들 잘되는 데 있다고 할 수 있었다. 이것이야말로 알록달록한꽃가마는 모든 사람이 떠메고 갈 수 있다는 말과 같은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대가 나를 추켜 올리는 이상 나 스스로도 또한 고집스럽게 일을 처리해서 양주 전체 성 의 관리들 체면을 떨어뜨리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생각한 것이었 다. 그리하여 그는 다시 작약 일을 들먹이지 않고 웃으며 말했다.
[장래 그와 같은 한 토막의 연극이 정말 있게 될지라도 우리들로서는 모두 볼 수 없을 것이오. 그러니 차라리 지금 당장 노래나 먼저 듣도록 합시다.]
관리들은 일제히 그렇다고 말했다. 오지영은 이미 준비하고 있던터라 분부를 내렸다. 그러자 화붕 밖에서 장식품이 쨍그랑거리는 소리와 더 불어 일진의 향긋한 냄새가 풍겨 왔다. 위소보는 정신이 번쩍 들어 속 으로 생각했다. (미인을 보게 되었구나.) 아니나다를까 한 여자가 사뿐사뿐 화붕 안으로 걸어들어와 위소보에게 절을 하더니 간드러진 어조로 입을 열었다.
[흠차대인과 여러 대인들께서 만안하시기를 빌며 소녀가 노래를 한 곡 불러 시중을 들까 합니다.]
이 여자는 삼십여 세쯤 되는 나이로 옷차림은 화려했으나 자색은 평범 했다. 피리를 부는 사람이 피리를 불자 그녀는 곧 노래를 부르기 시작 했다.
푸른산은 물결 속에 일렁이고 가을이 깊어가니 강남의 초목이 시드네. 이십사교라는 다리에 명월이 밝게 비추는 밤 어여쁜 님은 어디에서 퉁소를 불까? 실의에 잠겨 강남에서 술이나 마시고 다니다가 허리는 한손에 잡힐 듯 가늘어졌구나. 십 년 동안 양주에서 놀던 기억은 꿈만 같은데 돌아다보니 기녀원에 보잘것없는 이름만 올랐구나.
그녀가 부르는 노래는 두목(杜牧)의 양주시 두 수였다. 피리소리는 고 즈넉했고 노랫소리는 부드러워 듣기가 좋았다. 위소보는 그 노래를부르 는 기녀를 바라보며 속으로 약간 불쾌한 심정이 되었다. 그 여자의 노 래가 끝나자 다시 한 명의 가기(歌妓)가 들어왔다. 이 여자는 삼십오 세 정도의 나이인데 행동거지가 매우 우아했으며 목청은 더욱 숙련되어 아무리 높낮이의 변화가 있어도 매우 부드럽게 높였다 내리는 등 변화 가 많았다. 그녀가 부른 노래는 진관(秦觀)의 망해조(望海潮)였다. 이 한 수의 노 래는 정말 잘 불렀다고 할 수 있었으나 위소보는 큰소리로 하품을 했 다. 그 망해조의 노래는 이때 겨우 반 토막밖에 부르지 않았지만 오지영은 눈치가 빠른 사람이라 흠차대인이 별로 흥취를 느끼지 못하는 것을 보 고 손을 내흔들자 그 가기는 즉시 노래를 멈추고 절을한 후 물러갔다. 오지영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위 대인, 이 두 명의 가기는 모두 양주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으로 그 녀들은 양주의 즐거운 행사 때만 노래를 부르는데 대인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모르겠군요.]
위소보는 노래를 듣는 데 세 가지 조건이 구비되어 있어야 했다. 첫째 는 노래 부르는 사람이 젊고 아름다워야 했고, 둘째는 부르는 노래가 풍류적이고 경쾌한 가락이어야 했으머, 셋째는 음탕한 가사로 노래를 불러야 했다. 지난날 진원원은 그녀의 경국지색의 아름다움과 함께 설 명과 노래를 곁들여 가며 줄곧 해석을 했기 때문에 그로 하여금 한 곡 의 원원곡을 다 들을 수 있게 만들었다. 그런데 지금 눈앞의 가기의 자 색은 평범하고 표정도 딱딱했으며 노래 부르는 가사도 무슨 뜻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가 하품을 한 것만 해도 매우 겸손한 노릇이었다. 그는 이때 오지영이 묻는 말을 듣고 말했다.
[노래는 괜찮소. 다만 너무나 늙었구려. 이와 같이 오래 묵은 것들에 대해서 이 형제는 별다른 입맛을 느끼지 못하겠구려.]
오지영은 말했다.
[예, 예. 두목지(杜牧之)는 당나라 때 사람이며 진소유(秦少遊)는 송나 라 사람인데 정말 오래 되었지요. 한 수의 새로운 시가 있는데 한 신진 의 시인이 만든 것인바 이 사람은 사신행(査愼行)이라고 하며 명성을 떨친 지는 얼마되지 않았습니다. 묘사하는 것은 양주의 전가녀(田家女) 의 풍운(風韻)을 묘사한 것으로 신선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그가 손짓을 하자 시중을 들던 사람이 말을 전하게 되었고 다시 한 명 의 가기가 들어섰다. 위소보가 오래 된 것이라고 말한 것은 바로 가기 를 가리킨 것인데 오지영은 그가 가사나 시가 진부하다고 하는 줄로만 알았다. 이때 위소보는 그가 말한 두목지니 진소유니 하는 것이 무엇을 가리키는지 몰랐고 그저 양주 전가녀의 풍운을 묘사한 것으로서 신선하 기 이를 데 없다는 그 한 마디만 이해하고 속으로 생각했다. (신선하기 이를 데 없는 양주의 여자라면 어디 한번 볼 만하겠구나.) 그런데 그 가기가 화붕 안으로 들어서자 위소보는 보지 않았으면 좋았 을 텐데, 일단 그녀의 얼굴을 보는 순간 그만 노기가 끓어올라 고약한 마음이 저절로 고개를 쳐들어 대뜸 화를 터뜨리려고 했다. 이 가기는 사십 세는 넘어 보였으며 머리카락은 이미 희끗희끗했고 이 마에는 주름이 잡혀 있었다. 그리고 마땅히 커야 할 눈은 오히려 실눈 이었고 입은 작아야 하는데 오히려 컸다. 이 가기가 손에 비파를 들고 있었기 때문에 위소보는 더욱더 노기가 끓어올라 속으로 생각했다. (네가 감히 진원원을 흉내내겠다는 것이냐?) 그 가기가 비파의 줄을 륑기자 그야말로 옥을 굴리는 듯한 소리가 났고 제비들이 재잘거리는 듯한 소리가 울려퍼져 매우 듣기가좋았다. 이어서 그녀는 노래를 불렀다. 노랫소리는 청아했으며 한 마디의 구절마다 비 파의 운율과 짝이 되어 때로는 마치 물이 졸졸거리며 흐르는 것 같았 고, 때로는 은방울이 딸랑거리는 것 같았다. 최후의 한 마디 청군예장 폭(靑裙曳長幅)이라는 그 한 마디를 부르게 되었을 때 비파소리는 울리 는 듯 마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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