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三國志) (115) 태의 길평 (太醫 吉平) <하편>
극심한 두통으로 머리를 싸매고 있던 조조는 길평이 내미는 탕약을 받아들었다.
그리고 숟가락으로 한술을 떠서 입으로 가져가다가 말고, 손을 멈췄다.
그리고 이내,
"너무 뜨거우니 식혀가지고 오라."
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한 숟가락만 입에 넣으면 끝나는데...)
속으로 무척 기대하고 있던 태의 길평은 씁쓸한 속을 감추고 약사발을 도로 받아들고 나왔다.
잠시후, 길평은 약을 식혀 가지고 다시 조조앞으로 가져갔다.
그리하여 약사발을 조조의 손에 닿는 곳에 내려놓고, 조조가 어서 마셔주기를 기다렸다.
두풍으로 괴로운 조조가 인상을 찡그리며 묻는다.
"당신은 어의 노릇한 지 얼마나 되었나?"
"초평 2 년에 입궁했으니 올해로 13 년 되었습니다."
"음! 초평 2 년이라...그때 나도 엄청난 일을 벌였지, 그게 뭔지 아나?"
"모릅니다."
"그해 3월 초 여드레였지...그날, 동탁이 나처럼 침상에 누워 있을 때, 나는 그를 죽이려고 칠성도를 가슴에 품고 그에게 몰래 다가 갔었지, 역적을 죽여 역사에 이름을 남기려고 말야, 헌데 동탁이 내가 가슴에 품은 칠성도 꺼내는 것을 거울로 보는 바람에 나는 그때 죽을 뻔했지, 그런데 정말 생각도 못한 일은 오늘, 내가 그때의 동탁처럼 되었다는거지.."
하고 중얼거리 듯이 말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길평은 조조의 말 뜻을 얼른 알아차리지 못했다.
오히려 약사발을 손수 들어 조조에게 내밀며,
"승상, 식으면 약효가 떨어지니 어서 드시지요."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조조의 말이 조금 격해지며,
"예로부터 군주의 약은 신하가 먼저 먹어보고, 아비의 약은 자식이 먼저 마셔보았네... 오늘날 자네가 나를 부모처럼 섬기니, 자네가 날 위해서 먼저 약을 먹어보겠나?"
하고, 길평을 향해 매몰차게 말하는 것이 아닌가?
"예,엣?"
길평은 느닫없는 조조의 요구에 깜짝 놀라며 한발 뒤로 물서서자, 그 순간 조조는 벌떡 일어서며, 길평을 후려갈겼다.
"우당탕!"
약사발이 떨어지며 소리를 냈고, 동시에 길평이 <악!>하는 소리를 내며 바닥에 엎어졌다.
그러자, 조비를 선두로 조조의 측근 두놈이 약속을 한 듯이 달려 들어 길평을 깔아뭉겠다.
길평이 순식간에 제압당하자, 조조가 병색을 완연히 털어버린 정색으로,
"말해! 누가 내가 먹을 약에 독을 타도록 시켰냐? 일당은 누구냐?"
하고, 물었다.
그러자 팔이 뒤로 꺾여 꼼짝을 못하게 된 길평은 간신히 고개만 쳐든 채,
"역적을 죽이는데 누가 시키고 말고 할 것도 없다!"
하고 대꾸하는 것이었다.
"어의 주제에 감히 날 죽이겠다고, 응? 배후를 말하면 살려주마. 말해라!"
조조는 이렇게 말했지만,
"역적 조조! 널 죽이려고 하는 게 어디 나 뿐이겠느냐!"
하고, 단호한 어조로 대답했다.
그러자 조조가,
"저놈을 족쳐서라도 배후를 밝혀내라!"
하고 측근에게 명하였다.
그러자 길평은 끌려나가면서도,
"이 역적놈아! 오늘은 내가 비록 실패했지만, 세상은 반드시 너를 처단할 것이다!"
하고 외쳐대었다.
...
"어서 빨리 문 열어라!"
"쾅, 쾅, 쾅, 쾅! ...."
한 떼의 무사들이 대문이 부숴져라 두드리고 사정없이 흔들어 대는 곳은 국구 동승의 집이었다.
"누구시오?"
심상치 않은 호령에 집사가 겁을 집어먹고 물었다.
"그건 알 것없다! 어서 문이나 열어라!"
문 밖에서 우악스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하여 망설이던 집사가 문을 열자, 조조의 측근 장수 하나가 많은 부하를 이끌고 성큼 들어서며,
"승상의 부름이니 동승은 연회에 참석하라!"
하고, 명령 하듯이 외치며 내실로 달려가는 것이었다.
그러자 뒤따르던 집사가,
"저희 대인께서는 지금 병석에 계시오."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장수는,
"승상의 분부다! 동승이 병을 칭하더라도 데려오라 하셨으니, 어서 나오라고 하라!"
하고 강압적인 어투로 명령조로 말하는 것이 아닌가?
이리하여 와병중이던 동승은 승상부로 불려가 조조와 마주앉게 되었다.
조조가 동승을 보고 입을 연다.
"두달 전에는 여기서 유비와 술잔을 기울이며 영웅을 논했는데, 이젠 흔적도 없고 .. 가을 바람에 나무잎이 시들면서 유비도 반란을 시도했지. 그러나 상관없네, 떨어지는 낙엽도 즐기만 하고 겨울 고목도 분위기가 나지, 그렇지 않은가?"
조조는 알쏭달쏭한 소리를 하였다.
그러자 동승은 조조의 속셈을 간파하지 못한 채,
"옳은 말씀이오."
하고, 조조의 비위를 맞추는 의미의 대꾸를 하였다.
"그렇다면 술잔을 비워보세나."
조조는 이렇게 말하면서, 상 위에 잔을 들어보였다.
그러자 동승은,
"소인은 병중이라 술을 마실 수가 없으니 승상께서는 헤아려 주시오."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조조가 힐난하는 어조로,
"병이라?..그래요? .. 마침 내게 묘약이 있는데..."
하고 말을 하더니, 부하를 부른다.
"여봐라!"
"넷!"
"끌고 와라 1"
"넷!"
잠시후, 옴 몸에 걸친 옷은 풀어 헤지고, 머리는 헝크러져 풀어지고, 극심한 고문에 시달려 온 몸이 축쳐진 늙은이 하나를 두 병사가 양쪽 팔을 하나씩 잡고, 계단으로 오르며 끌고오는 것이었다.
그리고 조조와 동승이 자리한 앞에 내려 놓았는데, 그는 힘에 겨운채 고개를 옆으로 돌려 보인다.
그러자 이런 모습을 잠시 물끄러미 바라보던 조조가 입을 열어 말한다.
"길평! 여기 아는 얼굴이 있지? 말하라, 누가 시켰나?"
"역적 놈! ..."
길평은 다 쓰러져가는 목소리로 조조에게 손가락질을 하며 원망스러운 저주를 퍼부었다.
"말해보게, 자네 손가락이 어째서 아홉 개만 남아있나?"
조조는 자기를 가리키는 길평의 손가락이 하나 없는 것을 보고 물었다.
그러자 길평은 엎드린 채로,
"손가락을 씹으면서 국적을 죽인다고 맹세를 했지."
하고 전혀 주눅들지 않은 소리를 하는 것이었다.
동승은 길평이 끌려올 때부터 속으로 깜짝놀랐다.
그러나 역적 조조를 죽이기 전까지는 어떠한 일이 있어도 의심받을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애써 태연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훌륭한 맹세로군, 여봐라!"
조조는 길평이 더이상 쓸모없다는 판단을 했다.
그리하여 <넷!>하고 대답하는 병사를 향해,
"끌고 나가서 남은 손가락을 모두 다 잘라라, 그래도 또 씹는지 보게!"
하고 매몰찬 명령을 하였다.
그러자 끌려 나가던 길평이,
"손가락이야 있든 없든, 역적놈을 씹을 입은 살아있으니, 네 놈을 욕할 수는 있다!"
하고 쥐어짜내는 소리로 저주의 말을 씹어 뱉었다.
그러자 조조는 냉혹한 표정으로,
"저놈의 혀도 자르고 이도 모두 뽑도록 해라!"
하고 명령하는 것이었다.
"넷!"
명령을 받은 병사가 길평을 끌고 나가려 하자, 길평이 순간적으로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며 부축하고 있던 병사를 뿌리쳤다.
"으아잇!..."
그리고 길평은 정자 기둥을 향해 온 힘을 다해 달려들어 자신의 머리를 세게 부딪치는 것이었다.
"탕!...."
길평은 그 자리에서 푹 고꾸러지며 죽어버렸다.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이런 모습을 지켜보던 조조가 길평이 죽었다고 판단하고 아무런 말도 하지 아니하고 손짓을 하자, 병사들이 달려들어 죽은 길평을 끌어 내었다.
이같은 상황을 옆에서 지켜 보던 , 동승이 크게 놀라 자리에서 반쯤 일어나, 들려 나가는 길평을 멍한 표정으로 바라 보고 있자니, 동승에게 눈길을 돌린 조조가,
"동승? 어때? 병은 좀 나았나?"
하고 물었다.
그러자 침통한 표정의 동승은 말 없이 조조를 쏘아보기만 하였다.
그러자 조조가,
"약이 부족한가 보군, 그러면 약을 한 사발 더 주지. 여봐라, 끌고 와라!"
"네!"
곧이어, 조조의 명을 받고 불려나온 사람은 다름아닌 동승의 종놈인 진경동이었다.
"경동아! 들은 대로 말해 보거라."
조조는 엎드려 부복하고 있는 진경동에게 말했다. 그러자 사내놈은,
"알겠나이다. 엊그제 동 대인 방 앞을 지나다가, 어의와의 대화를 엿들었는데, 승상의 탕약에 독을 넣자고 하였사옵니다."
하고 아뢰는 것이었다.
그러자 동승이 엎드려 있는 진경동을 가르키며,
"이, 천박한 것!"
하고 저주의 말을 내뱉었다.
그러자 조조가 고개를 끄덕여 보이며,
"옳커니! 천박한 쌍것이지!"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이렇게 된 이상, 발뺌은 물론이고 ,그 어떤 말로도 조조의 의심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현실적인 판단을 한 동승은 비로서 조조를 향하여 속에 담은 말을 내뱉었다.
"역적 놈! 이리 된 이상 더 바랄 것도 없다! 어서 날 죽여라!"
하고 조조를 향해 말하였다.
그러자 조조가 그 말을 듣고, 손을 들면서 이렇게 말한다.
"급할 것 없지...죽을 뻔 한 나도 이렇게 느긋한데, 뭘 서두르겠나? 물어볼 게 있는데... 경동아, 네 주인이 너를 천박하다고 했는데 네 생각은 어떠냐?"
하고 얼굴에 미소까지 지으면서 동승을 취조하다 말고 사내놈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러자 진경동은 조조의 말 뜻을 알아듣지 못하고,
"소인은 ...."
하며 얼머무렸다.
그러자 조조는 단박에,
"천박해! 너는 대역죄를 두 개나 졌다는 것을 아느냐?
첫째는, 아랫것이 주인집 첩실과 간통을 했고,
둘째, 아랫 것이 주인 애기를 몰래 옅듣고 내게 밀고까지 하여, 주인을 팔아 출세를 하려 했으니, 배은망덕한 놈이 아니더냐?
이런 죄 둘 중에 어떤 죄목이든 너는 능지처참 감이다.
동승! 자네는 눈이 멀었구먼, 저런 놈을 키우느니 차라리 똥개를 키웠어야지. 안 그런가?"
조조가 동승을 향하여 이렇게 말하며 눈길을 주자,
"是 是" (시 시)!" ->그렇소!
하고 진경동을 경멸하는 눈으로 바라보며 대답했다.
"여봐라!"
"넷!"
조조의 병사들이 즉각 대답한다.
"저 놈을 끌고나가 참 하거라!"
하고, 냉정한 어조로 명령했다.
그러자 사내놈이 당황해 하며,
"승상을 살려드렸는데, 왜 저를 죽이려 하십니까!"
하고 애절한 소리를 내뱉었다.
그리고 병사에게 끌려 나가면서 울부짖었다.
"승상! 살려주십시오! 제발!"
조조는 입시해 있던 백관과 장수들에게 말한다.
"다들 보셨소? 내가 독하긴 해도 시비는 분명히 가리오, 그렇지 않소이까?"
그러자 문무 백관들은 두 손을 올려 조조를 향해 허리를 굽히며 복명하였다.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