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김씨님의 글입니다.
: 저는 김해김씨 (안경공파) : 여자친구는 (충의공파) : 그리고 여자친구의 할아버지는 5대 독자. : 우리는 결혼할수있나요? :
답 변
안녕하세요 홈을 방문하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김해김씨는 대별하여 가락국(駕洛國) 김수로왕(金首露王)을 시조(始祖)로 모시는 가락계(駕洛系) 김씨(金氏)와 신라(新羅) 경순왕의 후손인 김시흥(金時興)을 시조(始祖)로 모시는 신라계 김씨(新羅金氏)와 일본인으로서 임진왜란 때 귀화하여 김해김씨로 사성(賜姓)을 받은 김충선(金忠宣)이 시조(始祖)인 사성김씨가 있습니다.
가락계(駕洛系)를 선김(先金)이라 하고 신라계(新羅系)를 후김(後金)이라 일러 구별(區別)하여 왔는데, 양자가 같은 본관(本貫)을 쓴 관계(關係)로 여러 가지 혼란(混亂)과 복잡(複雜)한 문제들이 일어났기 때문에 김녕군(金寧君) 김시홍(金時興) 종문(宗門)에서는 정부(政府)에 청원(請願)하여 당시 예조(禮曹)의 비준(批准)을 받아 본관(本貫)을 김녕(金寧)으로 쓰게 되었으나, 신라계 김씨 즉 김녕김씨에서는 아직도 본관을 김해로 쓰는 경우도 있습니다.
님의 안경공 휘영정파(安敬公諱永貞派)는 가락계(駕洛系) 김해김씨(金海金氏)로서 시조(始祖)는 김수로왕(金首露王)이시고 중조(中祖)는 금녕군(金寧君) 휘목경(諱牧卿)이시며, 님 여친의 충의공파는 김녕김씨(金寧金氏) 충의공 휘문기파(忠毅公 諱文起派)인 것으로 보입니다.
님의 여친이 김녕김씨(金寧金氏) 충의공 휘문기파(忠毅公 諱文起派)가 확실하다면 님과 다른 씨족(氏族)이므로 님과 혼인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이나,
김녕김씨의 옛 족보도 김해김씨라고 기록되었었고, 여친의 호적부에 본(本)이 김해(金海)로 기록되어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가 없습니다. 이 때는 양측 모두 외관상으로는 김해김씨(金海金氏)이므로 양측의 족보(族譜)를 대조하여 님의 시조(始祖)가 김수로왕(金首露王)이고 여친의 시조가 김알지(金閼智) 또는 김시흥(金時興)으로 기록되어 있어 다른 성씨라는 것을 입증하여야 합니다.
님 여친의 시조(始祖)가 어느 분인지 다시 한번 더 확인하여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 족보 범례 一 金海之金別有金時興派 此其新羅敬順王後裔也 麗朝封金寧君而移籍於金海者世也 俗稱後金 又有慕華堂派 此則宣祖壬辰之亂日本人沙野將軍自感朝鮮禮義還惡於日本强暴來服子 襄毅公景瑞諱轅門合力伐倭共成大功故平定後 宣祖賜姓金海金氏 襄毅公同姓之意 賜號慕華堂崇拜中華之墓賜爵兵曹判書者也 此兩派元非 駕洛之金明矣 勿許同譜以別他姓焉 김해김씨에 별도로 김시흥파가 있으니, 이는 신라 경순왕의 후예다. 고려조정에서 금녕군으로 봉해져 본적을 김해로 옮긴 자이다. 속칭 후김이라 한다. 또 모화당파가 있으니 선조시기의 임진왜란때 일본인 사야장군(金忠善 1571∼?) 자는 선지(善之), 호는 모하당(慕夏堂). 본성은 사(沙), 본명은 야가(也可)) 이 스스로 조선의 예법과 도리에 감동하고, 일본의 강한 횡포에 돌아가기를 싫어하여, 내투하여 항복한 자로서 양의공 휘경서(김경서 장군)의 수레로 가서, 힘을 합하여 왜군을 정벌하고 같이 큰 공을 세웠으므로, 전쟁이 끝난 후, 선조가 내란 성으로 김해김씨이다. 이는 양의공과 같은 성이라는 뜻이다. 호는 모화당이라 받고, 중화의 묘로 숭배받고 있다. 병조판서의 작위를 받았다. 이 양 파는 원래 가락의 김씨가 분명히 아니니 이들을 별도의 성으로 구별하여 동보를 허락치 아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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