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르게세 오렌지 공원을 걷다가
조연수
너의 어깨를 따라 여기에 왔다
낮은 회색 담벼락을 따라 줄지어 서있는
약간은 굽고 오톨도톨한 살을 덮은 명랑한 유머들이 쏟아지는 밤
유머들이 흔들리자 건강한 웃음이 자라나고
이제 어디로 가는 거지?
바람을 타고 들려오는 오래된 너의 질문
오렌지 불을 밝힌 공원으로 들어선다
이 나무와 저 나무 사이를 지나는 오렌지오렌지 수군거림,
어제 말했잖니
우린 오늘로부터 내일로 가는 기차를 탄 거야
이 여름밤 오렌지 공원을 지나면 결말이 없는 소설이 시작 되는 거지
결말이 해피엔딩이라고 꿈꾸지 말 것
보르게세의 밤은 고요하게 가라앉은 질문들을 깨울 테니까
자신도 모르던 자신들이 깨어 날 때까지
후회는 하지 말 것
그건 오래도록 단단한 껍질 안에서 주황빛으로 익어 갈 것이고
가끔 눈물을 흘리며 외로움을 터트릴 테지
달콤함을 가장한 생일이 몇 번 지나고 나면
우리 다시 오렌지 공원 어디쯤 서 있겠지
다시 훤하게 누군가를 비추는 밤이 되면
너의 오렌지는 어디 있을까
한 밤 중 오렌지 공원에서 길을 잃고 싶어
-조연수 詩, 《포엠포엠》 2015년 가을호
첫댓글 갑자기 오렌지가 확~~땡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