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권익위원회(위원장 이성보)가 '부정청탁 및 금품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 시행되는 내년 9월 28일 이후 발생할 우려가 있는 무고성 고소·고발이나 수사기관의 권한 남용을 방지하기 위한 밑그림을 공개했다. 법 위반 행위에 대한 수사기관의 수사 개시 요건 등을 구체적으로 마련해 '과잉입법', '신(新) 검·경 공화국 초래' 등의 우려를 씻어내겠다는 것으로 향후 관련 시행령 제정 과정이 주목된다.
권익위와 한국법제연구원(원장 이원)은 지난달 28일 서울 중구 소공로 포스트타워에서 청탁금지법 시행령 제정을 위한 공개토론회를 열었다. 이날 토론회는 청탁금지법 시행 준비 첫 단계로 수사기관의 권한남용 방지 필요성과 예외적 허용 금품의 금액 기준, 외부강의 사례금 기준의 직종별 차등적용 여부 등에 대한 각계 전문가와 시민들의 의견을 듣기 위해 마련됐다.
곽형석 권익위 부패방지국장은 주제발표를 통해 "법 집행 과정에서 부정청탁이나 금품수수 의혹만으로 수사기관의 조사 등을 받게 되면 선량한 공직자의 권익이 침해될 우려가 있다"며 "조사권이나 수사권을 제한하기 위해 조사·수사 개시요건과 조사·수사의 개시와 종료 사실 통보 규정을 시행령에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공직자가 부정청탁이나 금품수수 등의 혐의가 있다고 인정할만한 상당한 정도의 소명이 있을 때에 한해 조사나 수사를 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그동안 제기돼 온 검찰이나 경찰 등 수사기관의 권한 남용 우려를 막겠다는 취지로 풀이된다.
곽 국장은 "공직선거법과 사립학교법, 국가공무원법 등의 입법례를 참고해 시행령에 규정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의혹만으로 조사 받게 되면 선량한 공직자 권익침해 우려
이의신청 등 처리절차에 대한 투명성 확보 수단도 다뤄야
물가 상승고려 식사·경조사비 금액 기준도 상향 조정돼야
이의신청 등 처리절차에 대한 투명성 확보 수단도 다뤄야
물가 상승고려 식사·경조사비 금액 기준도 상향 조정돼야
현행 공직선거법 제272조의2는 각급 선관위는 선거범죄에 관해 그 범죄의 혐의가 있다고 인정되거나, 후보자(경선후보자 포함)·예비후보자·선거사무장·선거연락소장 또는 선거사무원이 제기한 그 범죄의 혐의가 있다는 소명이 이유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 또는 현행범의 신고를 받은 경우 그 장소에 출입해 관계인에 대하여 질문·조사를 하거나 관련 서류 기타 조사에 필요한 자료의 제출을 요구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 사립학교법 제66조의2와 국가공무원법 제83조는 감사원, 검찰·경찰, 그 밖의 수사기관은 사립학교 교원이나 국가공무원에 대한 조사나 수사를 시작한 때와 이를 마친 때에는 10일 이내에 해당 교원의 임면권자나 그 소속 기관의 장에게 그 사실을 통보하도록 하고 있다.
공무원 등에게 허용되는 식사비나 경조사비 등의 금품 기준 금액도 시행령에서 현행 규정보다 상향 조정될 것으로 예상된다. 김정현 법제연구원 연구위원은 "2003년 제정된 공무원 행동강령에 따르면 공무원은 3만원이 넘는 식사나 5만원이 넘는 경조사비를 받을 수 없다"며 "2003년과 비교해 소비자물가가 34%포인트 상승했다는 점 등을 고려해 금액 기준을 현실에 맞게 올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김 위원은 법 적용 대상자별로 식사비나 경조사비에서 다른 기준을 마련하는 것은 혼란을 발생시킬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 그는 "직종별로 식사·경조사비 기준에 차등을 둬야 하는 사유가 불충분하고, 시행령 초기에 발생할 수 있는 혼선을 최소화해야 한다"며 "향후 제정될 식사·경조사비 기준을 공무원 이외의 사립학교 교직원과 언론인 등에게도 동일하게 적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청탁금지법은 공직자 등이 제3자로부터 1회 100만원, 연간 300만원을 초과하는 금품을 받으면 직무관련성과 관계없이 형사처벌하도록 하고 있다. 다만 원활한 직무수행이나 사교·의례, 부조 등의 목적으로 제공되는 음식물·경조사비·선물 등은 시행령으로 정하는 일정금액 내에서 허용하는 예외 규정을 두고 있다.
외부강의 사례금에 대한 기준도 시행령에 마련된다. 김 위원은 "별도의 규정이 없는 사립대 교수나 언론인들의 강의료 기준도 마련해야 한다"며 "다만 사립학교 교원과 언론인 등 민간영역의 직업적 특수성을 감안해 직종별로 차등적인 기준을 둬야 한다"고 제안했다.
현행 공무원 행동강령에 따르면 외부강의 강연료(1시간 기준)로 장관급은 40만원, 차관급은 30만원, 국·과장급은 23만원을 넘게 받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다만 그는 "청탁금지법이 직무와 상관없이 1회 100만원을 초과하는 금품을 형벌로 제재하는 규정을 고려해야 한다"며 "1회 100만원 이상으로 하는 것은 곤란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공직자에게는 현행 행동강령 외에 추가로 외부강의 시간 및 상한액을 설정하는 것이 청탁금지법 도입 취지에 맞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청탁금지법 시행 이후 상황을 우려하는 목소리는 여전히 높았다. 공직자 등의 '가족' 범위가 형제 자매를 아우르는 '민법상 가족'에서 '배우자'로 한정되긴 했지만 언론인과 사립학교 교원 등 법 적용 대상이 민간영역까지 확대돼 수사권 남용에 따른 언론의 자유 등 기본권 침해 우려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특히 '골탕 먹이기'식이나 무고성 진정·고소가 급증해 수사력 낭비 우려도 있는 만큼 검찰이 청탁금지법 시행에 앞서 검찰권 행사의 구체적인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참여연대 행정감시센터 소장을 맡고 있는 장유식(51·사법연수원 30기) 법무법인 동서남북 변호사는 "시행령에 허위신고에 대한 통제장치나 조사·수사결과에 대한 이의신청, 재조사 요구 등 처리절차에 대한 투명성 확보 수단도 담아야 한다"며 "수사기관의 권한남용 방지를 위해 권익위가 직접적으로 견제할 수 있는 제도적 보완책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장 변호사는 "과거 '벤츠 여검사', '그랜저 검사' 사건처럼 스폰서 형식으로 금품을 받아도 직무관련성이나 대가성이 인정되지 않으면 뇌물죄로 처벌할 수 없었던 전례를 감안해 청탁금지법이 만들어진 것인데, 수사기관의 권한 남용을 걱정해야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발생했다"고 했다. 그는 "청탁금지법 소관기관인 권익위가 수사권 남용 견제 수단을 마련한다고 해도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지 의문이 든다"며 검찰권을 견제하기 위한 고위공직자 비리조사처 설치 등 추가적인 입법을 제안했다.
이성기 성신여대 법대 교수는 "식사비나 경조사비 등 예외적 허용 금품 기준은 직종별로 차등 없이 현행 공무원 행동강령 수준보다는 높여야 하지만, 공무원이 아닌 교원 등에게 외부강의 강연료나 사례금 상한액을 설정하는 것은 경제적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며 "지나치게 과도한 강의료를 받았다면 사안별로 실질적인 뇌물인지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권익위는 이날 토론회를 시작으로 전국 순회 설명회와 전문가 간담회 등 의견수렴 과정을 거쳐 8월 중으로 시행령을 마련해 입법예고하고, 연내에 시행령 제정 작업을 마무리할 계획이다.
※법률신문은 '부정청탁 및 금품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의 제정 취지와 목적 등을 고려해 앞으로 이 법률 제명의 약칭을 '김영란법'이 대신 '청탁금지법'으로 사용하기로 하였음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