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동물권’을 고민해야 할 때,
우리 안의 야만성, 잔혹성, 폭력성을 아프게 직시할 것
‘동물권’을 테마로 한 소설집 『무민은 채식주의자』가 출간됐다. 『무민은 채식주의자』는 작품의 길이를 초단편으로 구성하여 독자들과 폭넓게 소통, 큰 화제를 모은 바 있는 출판사 걷는사람의 테마 소설 시리즈 ‘짧아도 괜찮아’의 네 번째 작품집이다.
동물권(Animal Rights)이란, 인권에 비견되는 동물의 생명권을 의미한다. 고통을 피하고 학대 당하지 않을 권리. 인간과 마찬가지로 동물 또한 적절한 서식 환경에서 살아갈 수 있으며, 인간의 유용성 여부에 따라 그 가치가 결정되지 않는다는 것. 이제 더는 이 같은 사실을 부인할 수 없음에도 우리 사회 도처에서는 아직 동물권에 반하는 행위가 비일비재하게 발생하고 있다. 법과 행정은 물론 동물권에 대한 일반의 시민의식 역시 아직은 미성숙한 상태에 머물러 있는 셈이다. 그러나 언제까지 기다릴 수는 없다. 동물과 인간의 공존을 위해서라면 지금 당장의 변화가 필요하다. 어쩌면 이런 변화를 다름 아닌 한 편의 소설이 이끌어낼 수 있지 않을까? 동물권을 테마로 한 작품이 생명 존중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고 문화를 확산하는 하나의 시발점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바로 이 같은 생각으로부터 이번 소설집은 탄생했다. 구병모, 권지예, 김봄, 김서령, 김연희, 김은, 박상영, 위수정, 이순원, 이장욱, 이주란, 정세랑, 최정화, 태기수, 하명희, 황현진 등 현재 우리 문학장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는 동시에 생명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지닌 소설가들이 적극 참여했다.
“작품들은 하나같이 애틋했습니다. 그리고 가슴 가운데를 꿰찌르는 알 수 없는 통증을 안겼습니다. 앞으로 이 책의 페이지를 천천히 넘기실 독자 분들도 비슷한 감정을 갖게 되시리라 예감합니다. 작품을 읽는 내내 있는 힘껏 애틋해하시길, 또 아파하시길 바랍니다.”
_<기획의 말> 부분
동물의 권리를 생각하는 일. 우리 안의 야만성, 잔혹성, 폭력성을 아프게 직시하는 일. 우리가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 아닐 수 없다. 여기에 문학이, 소설이 고유의 방식으로 작은 역할이나마 해내고 있다는 데 적잖은 의의를 지닌다. 아울러, 보다 새로운 주제와 이야기에 목마른 기존의 소설 독자들에게도 큰 만족과 감동을 선사할 것이다.
동물의 이야기인 동시에 인간의 이야기
“이조차 내가 감당해야 할 삶의 일부… 햄스터를 통해 그것을 배웠다.”
『무민은 채식주의자』 속 동물들은 다양한 모습으로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낸다. 그로써 자신들이 처한 적나라한 현실을 고발한다. “누군가의 잔인한 장난으로 불과 몇 분 사이 삶이 바뀌어버린 고양이들”, 즉 “석유를 붓고 불을 붙인 게 분명했다. 젖을 먹이고 있던 어미 고양이와 새끼 고양이 다섯 마리 중에 살아남은 것은 어미와 새끼 한 마리뿐이었다. (…) 어미는 우리를 향해 위협적으로 이를 드러냈지만 아무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고작 할 수 있는 위협이 작은 입을 벌려 이빨을 보이는 것뿐이라니.”(위수정,「검은 개의 희미함」)라거나 “‘햄스터’란 글자를 입으로 발음했을 때, 내 머릿속에는 사육장 안에 갇힌 채 쉬지 않고 새끼를 밀어내고 있는 힘 빠진 어미 햄스터가 먼저 떠올랐다.”(김봄, 「살아 있는 건 다 신기해」)라거나. 혹은 “그들의 삶과 죽음은 시간이 아닌 무게로 결정되었다. 1.5킬로그램에 도달 할 때까지를 살고, 1.5킬로그램에 도달하면 죽음을 맞았다. 그것은 육질이 가장 연하고, 고기 맛이 좋은 무게다. (…) 나는 그들에게 삶다운 삶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보다 엄마의 얼굴조차 모르고 살아간다는 사실이 더 안타까웠다.”(김은, 「오늘의 기원」) 같은.
때때로, 동물과 인간은 서로의 자리를 맞바꾸기도 한다. “너와 같은 종족, 인간 모두는 이 세상에 온 이상 그럴 자격이 충분히 있다는 것을. 그리고 나와 같은 개는 잊어버리고 새로운 개를 주인으 로 맞이하여, 이 개들의 세계가 반드시 생명에 대한 학살만을 일삼는 곳이 아니라는, 변명 같은 진실을 알아주기를.”(구병모, 「날아라, 오딘」)이라거나 “인육은 맛이 없고 비윤리적이라고 그는 주장했다. 맛이 없다는 것은 취향의 문제이므로 존중할 수 있지만, 비윤리적이라는 주장에는 아무래도 동의하기 어려웠다. 인간은 명백한 유해 종이므로 각종 대책을 통해 번식을 막는 것이 좋다는 점에는 누구나 동의한다. 휴머니즘 같은 기괴한 논리로 인간이라는 종이 자신을 변호해온 것을 생각하면 더더욱 그렇다.”(이장욱, 「무민은 채식주의자」)라는 식으로.
우리가 익히 알고 있어 더욱 선명하고 끔찍한 현실, 또 조금은 기괴한 상상 들이 소설집 도처에 포진해 있다. 깊이 들여다볼 수록 불편하고 힘겨운 사실들. 때문에 이 책을 읽어내리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그럴수록 최선으로 읽어내야만 하는 이유. 이것은 단지 동물의 이야기가 아닌 까닭이다. 뜻밖에도 우리는 ‘동물권’을 테마로 한 이 소설집에서 다양한 양상으로 고통 받는 인간, 즉 우리 자신의 모습을 대면하게 된다.
나는 때때로 햄스터가 나오는 꿈을 꾼다. 한없이 불어났다 다시 연기처럼 사라져버리곤 하는 그 알 수 없는 생명체. 햄스터는 어디에나 있고, 또 어디에도 없다. 이조차 내가 온전히 감당해야 할 삶의 일부라고 생각하면 뭐든 견디기 쉬워진다. 나는 햄스터를 통해 그것을 배웠다.
- 박상영 「이상한 꿈을 꿨어」부분
오빠와 함께 AI 판정 농가를 둘러싼 주변 농가들에 대해 예방적 살처분을 담당했던 공무원 두 명이 찾아와 이모와 이모부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그들은 이모와 이모부에게 미안하다고 말했고 이모와 이모부도 그들에게 미안하다고 말했다.
선생님들도…… 같이 보셨지요?
실신을 했다가 깨어난 이모는 공무원들에게 오빠가 쓴 유서를 보여주었다. 그들은 오빠가 쓴 유서를 손에 꼭 쥔 채로 고개를 떨어뜨렸다.
- 이주란 「겨울은 가고」부분
이번 책의 추천사를 쓴 동물권행동 카라의 한희진 팀장은 “이 책에 실린 하나하나의 이야기가 동물인 ‘그들’과 인간인 ‘우리’의 간극을 좁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의 뜻대로, 우리는 동물의 이야기를 쓰고자 했으나 결국 인간의 이야기로 읽게 되었다. 이로써 ‘그들’과 ‘우리’가 결코 별개가 아니라는 선득한 사실을 직시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어떤 미래를 그릴 수 있을까.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위해 우리는 평범으로 가장된 삶의 방식을 되짚어보고, 나아가 우리 스스로가 만들어낸 폭력의 고리를 끊어낼 수 있을까. 어쩌면 그것은 인간이라는 우리의 “존재감을 완전히 지우고, 듣는 일”로부터 겸허히 시작해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날다람쥐가 살아남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날다람쥐를 위해 죽을 수 있을 것 같다고도 느꼈다. 나방이나 노린재 같은, 날다람쥐보다 더 작고 보잘것없고 아름답지 않은 종을 위해서라도.
(…) 발밑으로 끝없이 숲이 펼쳐질 테고, 숲 그늘에서 한때는 흔했지만 이제는 희귀종이 된 생물들이 아라가 들어보지 못한 소리를 낼 것이다. 그것이 아라에게 거는 말이 아닐지라도 아라는 존재감을 완전히 지우고 듣는 데에만 집중할 계획이었다.
- 정세랑 「7교시」 부분
++ 이 책의 판매 수익금 일부(인세의 50%)는 동물권행동 ‘카라’에 기부, 유기동물 구호 및 동물 권익 수호에 쓰입니다.
* ‘짧아도 괜찮아’ 시리즈란?
도서출판 걷는사람에서 새롭게 선보이는 산문집 시리즈입니다. 작가들의 개성적인 손바닥소설(초엽편소설)과 에세이를 두루 만날 수 있습니다. 작품의 길이를 초단편으로 구성하여 독자들과의 폭넓은 소통을 염두에 두었습니다. 일상의 짧은 순간순간 휴식처럼, 때로는 사색처럼 책을 즐길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