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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살바도르; 십자가에 못 박히다
엘살바도르는 1970년대 까지만 해도 미 언론으로부터 아무런 관심을 받지 못하던, 미국 국민들 입장에서 보면 없는 나라나 마찬가지였던 중남미의 변방국가 였다. 그러나 1970년 무렵에 들어 서 몇 가지 ‘이상 징후’가 포착되었다. 예전 십 수년간 미국의 지원하에서 이 나라를 억압과 고문과 살인으로 무력 통치해 오던 독재자 소모사가 통제력을 잃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한편, 1970년 초 부터 대중적 조직 기반 즉, 농민단체, 각종 협의회와 조합, 교회 중심의 성경 공부 모임 등 의식화된 대중 집단이 출현하기 시작한 것이다. 1980년 2월, 엘살바도르의 오스카 로메로 주교는 카터 대통령에게 엘살바도르를 통치하고 있는 군사정부에 더 이상 경제원조를 보내지 말아 달라고 간청하는 편지를 보낸다. 이 편지에서 로메로 주교는 “ 이런 원조는 결국 최소한의 인간적 권리를 존중 받기를 희망하는 민중 단체를 더욱 핍박하는 데 사용 될 것이므로 이런 원조를 중단하여야 한다” 고 역설 하였다. 당연히 이 편지는 워싱턴에서는 하등의 주의를 끌지 못하였고 대신 이 편지가 있은 그 다음 주부터 엘살바도르 정부군에 의한 민중 대학살이 시작되었다. 온두라스 정부군과 엘살바도르 정부군이 합세하여 공격한 리오 삼풀 지방에서만 하루에 600명이 학살 당했고 2주일 뒤에 로메로 주교는 미사 집전 도중 암살 당했다. 1981년 까지 미국의 지원을 받는 정부군의 민중 학살에 의해 사망한 농민, 민중의 수는 1만 3천명에 달하였고 이런 내전 상태의 대 국민 학살극의 전면에서 활동한 엘살바도르 군대는 미군이 창설하여 훈련시키고 장비까지 갖춰 준 ‘아트라카틀’이라는 특수 부대였는데, 이들은 나중에 ‘살인특공대’로 명명 되었다. 1981년 말, 미국의 레이건 행정부는 엘살바도르가 완전히 ‘안정’되었다고 판단 하였다. 로메로 주교가 예상한대로 민중 단체는 완전히 자취를 감추게 되었고 이 와중에서 국민들 수 만명이 무참하게 살육당하고 백만명 이상이 피난민이 되었다.
니카라구아 ; 교훈 가르치기
1960년 이후 1970년대 말까지, 즉, 이 나라가 독재자 아나스타시오 소모사에 의해 ‘잘 다스려’ 지고 있던 1979년 이전까지는 니카라구아 역시 미국민과 미 행정부의 관심을 전혀 끌지 못하던 나라이었다. 그러나 1970년 대 이후 출현한 반 정부군 산디니스타 혁명군이 부패한 정부군을 압박하며 점점 그 세력을 넓혀 오자 상황은 달라졌다. 폭압적 독재 정권의 안정과 지속을 위해 미국은1979년 6월 반군 지역 중심지이던 마나구아에 엄청난 폭격을 가하면서 수 만명의 민간인이 이 폭격에 의해 사망하였다. 잔인하고 새디스틱 하기로 이름 높던 니카라구아 정부군, 국가방위군 (National Guard) 에 대해 미국이 대폭 지원을 증강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산디니스타 반군은 수도를 점령하고 독재자 소모사는 미국 마이애미로 탈출하였다. 미국의 카터 정부는 니카라구아 정부 요인과 군부 장성들을 적십자 비행기로 탈출시키고 니카라구아 국경에서 그 전의 국가방위군, National Guard 세력을 재 집결, 게릴라 부대로 편성하였다. 카터 뒤의 레이건 정부는 이 National Guard 군을 산디니스타 정권을 향한 테러리스트 반군으로 재조직 하고 대규모 전쟁을 시작한 것이다. 이들 National Guard 를 재편성한 게릴라 부대는 ‘콘트라’ 라고 명명 되었는데 이는 ‘자유의 투사’라는 뜻이다.
독재자 소모사가 미국으로 도망한 후 산디니스타 정권하의 니카라구아는 짧은 시일 내 비약적인 경제 발전을 이룩하였다. 형평성에 입각한 토지 재분배가 실시되고 국민 교육과 국민 건강이 향상되었으며 가난하던 농민들의 수입이 증대되었다. 1980년대 월드 뱅크는 이런 니카라구아의 경제회생을 ‘놀랄만한 경제 부흥’ 이라 평가하고 “니카라구아는 사회부문에서 주목할만한 발전을 이룩하였으며 사회-경제 개발의 장기적 안정 토대를 구축하고 있다” 라고 보고하였다.
이러한 니카라구아의 작은 개혁은 즉각 미국의 정책입안자들에게 위협으로 전달되었다. 이 작은 나라 니카라구아가 ‘민중을 중시하는 정부’ 를 세운 것이다. 당시 미국의 국무장관 죠지 슐츠는 산디니스타 정권을 “우리의 땅에 발생한 암 덩어리” 로 표현하며 이의 즉각적 파괴를 명령하였다. 이에 따라 미국은 이후 니카라구아를 압박하기 위한 세 단계의 정책을 시행하게 된다. 먼저 미국은 월드 뱅크와 아메리카 대륙간 은행을 협박, 니카라구아에 대한 모든 경제적 지원과 금융 지원을 중단시켰다. 둘째, “좋은 사례” 를 신속히 제거하기 위해 모든 경제 봉쇄를 단행하는 한편, 콘트라 반군을 지원하여 니카라구아가 부단한 대 테러 전쟁 즉, 내전 상태하에 놓이게 만듬으로써 니카라구아의 한정된 자원과 국가 재정이 대 테러 전쟁에 소진되고 고갈케 되어 국가 재정이 민중에게 혜택으로 돌아 가지 못하게 하는 전략을 구사하였다. 소모사 정권이 니카라구아를 다스리던 1972년에 니카라구아에 지진이 일어 나자 엄청난 지원을 보내었던 미국은 산디니스타 정권이 통치하던 1988년 9월에 니카라구아가 그 전보다 훨씬 큰 지진 피해를 당했을 때에는 단 1센트의 지원도 보내지 않았음은 물론, 당시 미 행정부는 다른 인접국과 선진국에 대해서도 니카라구아에 어떤 지원도 보내지 말 것을 촉구하였다.
산디니스타 정권이 이제는 게릴라 세력이 된 콘트라 반군과 휴전-평화 협상을 시작하려는 조짐을 보이자 미국 CIA 는 즉각 콘트라 반군에 대한 무기와 자금 지원을 3배로 증대시키며 이 평화 협상을 적극 방해함으로써 마침내 평화협상이 깨지게 만들었다. 1990년 산디니스타 정권은 미국과 서방의 경제 제재로 피폐해 가는 국가경제를 건져 내고 내전을 종식시키기 위해 총선거를 실시하였다. 이 선거 기간 내내 미국은 앞잡이들을 통하여 만약 산디니스타 정권이 총선에서 이긴다면 내전은 영원히 계속 될 것이고 경제 봉쇄 역시 영원히 지속될 것이라며 니카라구아 국민을 공갈 협박하였다. 1990년 산디니스타 정권은 국민 총선거에서 40%의 지지를 받았으나 과반수 득표에 실패, 지상에서 사라졌다.
( 위 내용은 노엄 촘스키 How Thw World Works ; 세계는 어떻게 움직이는가 에서 발췌 요약한 글이다. )
칠레 ; 민족주의에 입각한 민주주의는 설 땅이 없다
1970년 11월 칠레의 대통령 선거에서 인민전선의 후보였던 살바도르 아옌데가 승리, 대통령 으로 취임하였다. 아옌데가 속해 있던 ‘인민전선’ 은 칠레의 좌파 정당과 노동조합이 연대한 정당이었는데 이 인민전선은 선거전 중요한 공약 한가지를 내 걸었다. 즉, 자신들 인민전선이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할 경우 칠레의15세 이하 어린이들 모두에게 하루 0.5 리터의 우유를 매일 무상 배급하겠다는 것이었다. 아옌데는 소아과 의사 출신으로서 유아기의 단백질 및 비타민의 부족, 즉, 어린이들의 건강 문제를 잘 이해하고 있었고 또 당시 심각한 영양실조 상태에 있던 칠레 어린이들에게 가장 효과적인 치료 방법은 우유를 많이 먹이는 것이라는 점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가장 먼저 내건 공약이 이 우유 무상공급이었는데 당시 칠레의 분유와 이유식 시장은 다국적 기업 네슬레가 독점하고 있었다. 네슬레는 칠레의 대다수 목축업자와 독점 계약을 맺고 있었고 우유 생산도 독점하고 있었기 때문에 아옌데는 공약을 지키기 위해 네슬레의 협조가 필요하였다. 물론 아옌데는 네슬레와 시장 가격에 의한 정상적 거래를 요청한 것이다. 그러나 미국의 닉슨 행정부와 헨리 키신저의 사주를 받은 네슬레는 칠레 정부와의 협력을 전면 거부하여 아옌데는 무상우유 공급이라는 공약을 지킬 수가 없게 된다. 네슬레를 협박하여 아옌데를 곤경에 빠뜨린 미국 정부는 이후에도 수 많은 비열한 수단을 동원하여 칠레의 민주 정부를 전복시키는데 온 역량을 집결한다. 아옌데의 경제 개혁이 성공 할 경우 그 때까지 다수의 미국 기업 즉, 대자본 다국적 기업들이 누리고 있던 특권들이 침해 받을 것 이었기 때문에 미국은 칠레에 대한 모든 경제지원을 중단하고, 운수업계의 파업을 뒤에서 조종하고, 광산과 공장의 파업을 유도하여 아옌데가 추진한 경제개혁 정책의 대부분을 엄청난 재정적 어려움에 빠지게 하였다. 마침내 미국과 미 CIA 는 아우구스토 피노체트의 군부 쿠데타를 지원하여 1973년9월 11일 아옌데 정부를 전복시키게 된다. 대통령 궁에 있던 아옌데는 오전 11시 마지막 대국민 라디오 연설 직후 쿠데타 군에 의해 대통령 궁에서 살해되고 이후 칠레는 피노체트 군사 정부의 강압적 통치하에 놓이게 된다.
피노체트의 독재 기간 내내 수 많은 대학생, 기독교 성직자, 노동조합 간부, 지식인, 예술가, 그리고 일반 노동자들이 정부의 무자비한 탄압으로 목숨을 잃었고 아옌데 정권이 들어서기 전과 마찬가지로 수 백만명의 칠레 어린이들은 또 다시 영양 실조와 배고픔에 시달리게 되었다. 이후 ‘피의 독재’ 라 불리운 17년간의 피노체트 집권 기간중 3,197명에 이르는 학살피해자가 발생했으며 고문 피해자는 수 만 명에 달하고 또한 행방을 알 수 없는 실종자도 1,197명에 달했다. 피노체트의 주먹구구식 경제 운영과 경제 정책의 연이은 실패로 칠레의 경제는 수 십년 전으로 후퇴하였으며 또 피노체트는 칠레의 삼림 자원 등 천연자원에 대한 광범위한 통제권을 외국 대기업 자본의 손에 팔아 넘겨 이후 20여년 간 칠레의 경제를 회복 불가능한 수준으로 망가 뜨리게 된다. (장 지글러 ,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P 99 – 102 )
파나마; 더 이상 이용가치가 없는 심복 노리에가를 제거하다
파나마는 전통적으로 인구의 10% 미만인 소수의 유럽인 엘리트의 손에 의해 통치되어 온 나라이다. 1968년에 대중적 인기가 있던 군부의 장성, 오마르 토리조가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한 이후 메스티조 (혼혈 원주민)와 흑인이 군부 독재 정권에 참여하는 길이 열리게 되었다. 1981년 토리조가 비행기 추락 사고로 사망하자 마뉴엘 노리에가가 파나마의 집권자로 등장하게 되었는데 이 노리에가는 토리조와 마찬가지로 미 정보기관이 내세운, 미국의 통제를 받는 군부 출신 통치자였다. 미국 정부는1972년 이래 노리에가가 마약자금 세탁에 깊이 연루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한때 닉슨 행정부는 노리에가의 암살을 계획하기도 했었으나 어떻게 하여 노리에가는 미 CIA 의 보호를 계속 받게 되었다. 1983년 미 상원은 파나마가 중남미 마약 중개와 마약자금의 대부분이 세탁되는 중심 지역인 것으로 이미 판단하고 있었다. 그러나 CIA 를 비롯한 미국 정부는 노리에가에 대한 지원을 멈추지 않았고 노리에가의 마약 관련 혐의에 대한 수사를 적극 방해하였다. 미국이 대 니카라구아 전쟁을 벌이고 있던 당시 미국을 지원하여 싸운 1984년까지만 하더라도 노리에가는 미국이 돌보아야 할 자기 사람이었다. 그러나 상황이 바뀌기 시작했다. 1984년의 총선거에서 노리에가가 실각하고 야당이 승리하자 노리에가는 선거 결과를 뒤집고 야당을 탄압하였다. 특히나 1990년 1월 1일부터는 파나마 운하에 대한 부분적인 통제권이 파나마로 넘어 가게 돼 있었는데 이제 미국 정부는 노리에가의 충성심을 의심하기에 이르게 된 것이다. 미국이 그 나라의 통치자를 더 이상 신뢰하지 못하게 되면 그 통치자는 조용히 그리고 재빨리 사라져야 한다. 특히 이 파나마 운하는 2000년 1월 부터는 그 운영과 통제권이 완전히 파나마로 넘어 가도록 되어 있었기 때문에 미국으로서는 믿을만한 새로운 통치자의 출현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마침내 1988년 미국은 노리에가를 마약 관련 범죄자로 몰아 세우며 마이애미 법정에 기소하였다. 1989년 12월 미국은 전면적인 파나마 침공을 단행, 수천 수만의 민간인이 사상당하는 가운데, 노리에가를 수반으로 하는 파나마 군부 주도 정권을 전복시키고 기예르모 엔데라 정부를 승인하였다. 미군의 공격을 피해 바티칸 대사관으로 망명한 노리에가는 1990년 1월 미군에 투항, 미국으로 압송되어 미국 내 마약밀반입 등의 혐의로 재판에 회부되고, 1992년 7월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1990년 이후 파나마의 정권은 예전의 소수 유럽인 엘리트의 손으로 도로 돌아 가고 미국은 파나마 운하의 미래에 대해 한결 안심할 수 있게 되었다. 파나마 침공 직후 파나마는 미국계 은행의 수중에 완전히 장악되게 되는데 이들 미국계 은행의 마약 자금 세탁 규모는 그전의 노리에가 당시에 비해 어마어마하게 증가하였다. (노엄 촘스키 How Thw World Works ; 세계는 어떻게 움직이는가 P 39 – 43 )
두꺼운 책 한 권을 이런 사례 소개에 다 할애 한다 해도 못 다 할만큼 이야기는 한이 없다. 현재 나는 이 글을 노엄 촘스키의 ‘How the World Works’ 란 책을 번역하며 쓰고 있는데 정말 각 나라 별로 이런 실태를 한 장 한 장 설명하고 싶어지지만 지면의 한계로 이쯤에서 접어야 할 것 같다.
1900년대 이래 중남미는 미국의 식민지 였고 미국은 특히 이들 중남미 국가가 미국의 지도력 범위를 이탈한다든지, 자생적 민족주의적 정부에 의해 기존의 미국의 지원을 받고 있던, 미국에 절대 우호적인 독재 정권이 무너질 위험이 있다든지, 또 미국 대기업 자본의 이익 기반이 무너 질 조짐이 보인다든지 하면, 언제든 직접 무력을 행사하거나 또는 반군 세력 지원을 통하여 그 나라의 내정에 간섭하고 결국 그 나라가 미국의 통제 범위를 벗어날 수 없도록 물리적 강제력을 행사하였다.
미국의 타락 – 악의 축으로 거듭나다
미국은 세계 경찰인가
2차 대전 후 지금까지 있어 온 세계의 크고 작은 전쟁에서 미국은 항상 주도적인 역할을 해 왔다. 그 중 미국이 직접 일으키거나 또는 주도적으로 개입한 전쟁만 해도 한국전쟁 (1950-1953), 베트남 전쟁 (1968-1975), 걸프전쟁 (1990-1991), 이라크 전쟁 (2003-2011), 아프가니스탄 전쟁(2001 – 2012) 이 있다. 이런 모든 전쟁 즉, 미국이 개입한 전쟁은 미국이 표면에 내 세운 개전 또는 참전 이유 말고 또 다른 이유가 그 이면에 있는 것을 우리는 남미와 베트남, 그리고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전쟁의 사례를 통하여 이미 살펴 보았다.
아프가니스탄은 오사마 빈 라덴을 색출하고 탈레반의 폭정에 신음하는 아프가니스탄 국민을 구원하려 했던 것이 아니고, 이라크 전쟁은 대량 살상 무기를 찾아 내려 한 전쟁이 아니며, 또 걸프 전쟁은 자유 쿠웨이트를 후세인의 독재 정권 침략으로부터 지켜 내기위해 미국이 한 전쟁이 아니다.
또 우리는 위의 전쟁들이 각각 추구하는 바, 그 목표, 즉 그 전쟁을 통하여 미국이 얻고자 하는 실제적인 이익 즉, 실익이 따로 있음을 알게 되었다.
아프가니스탄의 경우 ; 알 카에다 점령 지역에 있는 송유관, 가스관 보호와 미군 상시 주둔 기지 설치, 즉, 중앙아시아의 석유 및 가스자원 확보가 일차적 목적이었으나 종국에는 이 지역에 대한 미국의 패권과 군사적 우위를 선점함으로써 중국, 러시아의 중앙아시아 접근을 사전에 봉쇄 하고자 하였으며,
이라크의 경우는 사담 후세인을 몰아 내고 친미 정권을 세움으로써 세계 제2위의 산유국 이라크를 지배할 목적과 위 아프가니스탄의 경우와 같은 목표를 위해 침공한 것이고,
걸프 전쟁은 이 기회에 걸프만의 석유 자원에 대한 미국의 영구 지배 체제를 공고히 하기 위해 이 지역 걸프만 일대를 미국의 군사 기지로 삼기 위한 전쟁이었다.
(히로시마, 나가사키의 원폭 투하 역시 이면이 있다. ; 미국의 변명은 전쟁의 조속한 타결과 일본의 저항에 따른 미군의 피해를 최소화 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원폭을 사용하였다 하지만 실상은 조금 다르다. 그 당시 일본은 더 이상 전쟁을 계속할 자원, 물자, 의지가 없었고 또 미.일간 항복 조건이 논의 되고 있는 과정이었기 때문에 원폭 투하는 전혀 불필요한 인명 살상에 불과 하였다는 지적이 많다. 한편, 나중에 공개된 미 정부 문서에 의하면 당시 미국은 이 원폭 투하가 일본보다는 소련에 미치는 영향을 더 중시하였다는 것이 드러 난다. 즉, 미국은 자신이 원폭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소련에 알림으로써 이후 세계 지배 체제에서 소련을 견제하고 소련에 대한 군사적 절대 우위를 선점하려는 의도하에 원폭을 사용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다시 바꾸어 말해, 미국은 목표하는 바가 있으면, 즉,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와 그 전쟁을 통하여 얻는 실익과 기도하는 바가 있다면 또, 이런 실익이 엄청난 이권을 가져다 준다면 즉, 그 나라의 어마어마한 자원 확보가 가능하고 또 군산 복합업체 등 미국을 사실상 지배하고 있는 거대 대자본 기업의 이해에 상응한다면, 전쟁만이 그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수단이라 판단한다면, 언제든 전쟁을 일으킬 준비가 되어있고 또 그렇게 해 왔으며 앞으로도 그리할 것이라는 말이다. 더구나 미국은 전 세계 어디에서나 즉각, 군사 행동을 취할 수 있는 능력도 보유하고 있다.
경찰의 임무는 질서 유지이다. 따라서 질서가 무너지기 전에, 즉 범죄 행위가 일어 나기전에 범죄 예방을 통해 경찰이 개입한다는 것은 인권 유린이고 위헌이고 마이너리티 리포트 식의 국가에 의한 테러이다. 그렇다면 미국은 오늘날 더 이상 경찰이 아니고 차라리 조폭이다. 폭력 행사를 통하여 이권을 뺏으려 하는 것은 폭력 집단의 전형적인 형태인 것이다.
네오콘과 신자유주의
네오콘 ;
2008년 버락 오바마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자 미 여론과 국민은 이제 “네오콘과 신자유주의 시대는 갔다” 라며 새 대통령의 시대를 크게 환영하였다. 그러나 이런 사람들의 기대는 오바마 대통령 취임 이후 4년이 흐른 지금 완전히 무너지고 말았고 오바마는 또 다른 부시, 미국의 진정한 숨은 권력의 허수아비로 그 평가가 급전직하하고 있다. 레이건 대통령 이래 부시 행정부에 이르기까지 미국의 정계를 장악하고 대내외 정책을 주관해 온 네오콘과 신자유주의에 대해 먼저 살펴 보는 것은 미국의 향후 움직임을 예측하는데 중요한 단서가 된다.
네오콘은 ‘Neo Conservatism’, 즉 신보수주의라는 의미인데, 종전까지의 보수주의가 경제정책은 산업보호, 사회정책은 전통주의였던데 비해 이들은 자유주의 경제정책과 전통주의 사회정책 을 신봉했다. 네오콘은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시절 정권 내부로 들어 와 영향력을 키워 왔는데 특히 군산 복합업체와 결탁해 공격적이고 호전적인 미국의 대외정책을 주도해 왔다.
다자간 외교 협상에 기초한 현실론이나 방어적 안보 개념을 중심으로 삼던 과거 우익들과 달리 미국의 도덕적 이상에 세계를 꿰맞추기 위해서는 무력도 불사해야 한다는 이념으로 무장한 새로운 매파, 신종 우익이라 할 수 있다.
한편, 미국 신세기 프로젝트 Project for the New American Century, PNAC 를 지지하는 사람들을 네오콘이라고 부를 때도 있다. PNAC 는 1997년에 결성된 미국의 싱크탱크로 이들은 다음과 같은 기본 제안을 선언했다.
- 미국이 지도력을 발휘하는 것은 미국에나 세계에나 좋은 일이다.
- 이 리더쉽에는 군사력과 외교, 에너지와 도덕 원리에 대한 관여가 필요하다.
- 그러므로 미국정부는 군사력을 포함해 사용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흔들림 없는 우위를 획득하기 위해 그 군사우위와 경제 우위를 충분히 활용하여야 한다.
9.11 사태와 함께 네오콘의 전략은 부시 행정부에서 압도적인 주류가 되었고, 이스라엘의 위협이 되고 있는 이라크와 이란을 무력으로 없애려는 네오콘의 ‘중동 민주화 전략’이 가동되기 시작하였다. '미국 제일주의'의 기치 아래 부시 대통령 당시 미국의 세계제패 시나리오를 주도 하던 실세들은 다음과 같다.
딕 체니 부통령과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 폴 울포위츠 국방부 부장관을 비 롯해 존 볼튼 국무부 국가안보.군축담당 차관, 리처드 펄 국방정책 자문위원, 루이 스리비 부통령 비서실장, 엘리엇 에이브럼스 대통령 특별보좌관 등이다. 또 이들의 배후에는 프랜시스 후쿠야마 존스홉킨스대학 국제문제고등연구원장, 도널드 케이건 예일대 학장, 찰스 크로서머 '워싱턴 포스트' 칼럼니스트 등 네오콘들 과 '부시 행정부 매파들의 집합소'로 불리는 미국기업연구소 (AEI)와 공화당 성향의 싱크탱크인 헤리티지 재단 등이 자리하고 있다.
네오콘들은 유대인, 동부지역 명문대학(아이비리그) 출신 엘리트라는 지연과 혈연, 학연으로 단단한 네트워크를 형성, 40대 레이건 대통령, 41대 아버지 부시 대통령으로 이어지는 공화당 집권기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네오콘이 미국의 정권 핵심에 자리를 잡을 수 있었던데는 이스라엘 정권 우파의 재미 로비 단체인 아메리칸-이스라엘 공공 문제위원회 American Israel Public Committee, AIPAC 의 압력이 컸다. AIPAC 는 현재 미국에서 영향력이 가장 큰 로비단체로 미국 상하 양원 의원들의 성향을 세밀하게 관찰하고 반 이스라엘적이라고 생각하는 의원이 있으면 강한 상대 후보를 내세워 다음 투표에서 이를 떨어 뜨리거나 스캔들을 언론에 흘려 궁지에 몰아 놓는 방법 등으로 의원들을 조종하고자 한다. (세계금융의 미래 ; 아베 요시히로 – 김 정환 옮김P 120 – 125)
집권 당시 부시 행정부 내 힘의 구도를 보면 “미국의 대외정책이 유대인 네오콘에게 공중 납치 당했다”는 비판은 터무니없는 게 아니다. 클린턴 행정부에 유대인 네오콘 출신 고위관리가 없었던 데 비해 부시 행정부 안에는 유대인들이 고위직을 차지, 노골적으로 이스라엘 편들기에 나서고 있었던 것이다. 이른바 네오콘의 선봉장이자 부시 행정부의 ‘선제공격론(preemption)’의 주창자로 꼽히는 폴 월포위츠 국방부 부장관을 비롯, 펜타곤 서열 3위인 더글러스 페이스 국방차관, 부시 행정부 내 국방위원장으로 있다가 뇌물 스캔들로 물러났으나 국방위원직을 그대로 유지하며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도널드 럼스펠드 국방의 측근 리처드 펄, 백악관 중동정책 책임자로 국가안보위원회(NSC) 동남아시아•근동(Near East)•북아프리카 지역 담당 국장인 엘리엇 에이브럼스, 백악관 대변인으로 일하다 얼마 전 스스로 물러난 애리 플라이셔 등이 바로 부시의 중동 정책에 큰 영향을 끼쳐온 유대인들이었다.
유대인 네오콘의 특징은 크게 친이스라엘(정확히는 친리쿠드당, 친샤론)이라는 점과 이라크 침공 주창론자라는 점이다(미국내 석유기업들이나 군수산업체들은 유대인 네오콘이 운영하는 학술기관이나 단체에 거액을 기부한다. 이들의 주장이 결국은 기업이윤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이들은 이스라엘의 국가안보는 미국의 국가안보와 같은 맥락이라고 여긴다. 폴 월포위츠를 비롯한 유대인 네오콘들은 9•11이 일어나기 훨씬 전부터 “사담 후세인 정권을 무너뜨리는 것은 미국의 안보에 절대 필요하다”고 주장해왔다. 아울러 “미국의 패권이 미국의 이익은 물론 세계 평화에 도움이 된다”는 논리 아래 미국의 일방주의를 합리화했다.
유대인 파워는 미 언론계에서도 막강하다. 영향력면에서 2대 신문이라 할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가 유대인 소유임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성향 면에서 보면 ‘뉴욕타임스’가 상대적으로 진보적이지만, 친이스라엘 논조라는 측면에선 큰 차이가 없다. 중동문제를 단골로 쓰는 유대인 칼럼니스트들 때문이다. ‘뉴욕타임스’의 윌리엄 새파이어, ‘워싱턴포스트’의 찰스 크라우새머가 대표적인 인물이다. 이 두 사람은 약속이나 한 듯, 기회 있을 때마다 지면을 통해 이라크 침공 나팔을 불어댔고 팔레스타인 지도자 야세르 아라파트를 비난했다.
유대인 네오콘들이 즐겨 내세우는 또 하나의 논리가 중동 민주화 도미노 이론이다. 미국기업 협회(AEI) 마이클 레딘 상임 연구원이 쓴 ‘테러 전문가들과의 전쟁(2002년)’은 그런 주장을 담은 대표적인 책이다. 민주화 도미노 이론에 바탕을 둔 레딘의 논리로 보면, 이라크 후세인 체제 몰락은 그 지역 민주화의 출발점이고 그 다음이 이란과 시리아다. 레딘을 비롯한 유대인 네오콘들이 이슬람권에 보내는 메시지는 ‘다음은 네 차례’라는 위협적인 경고다.
미국의 군사외교정책을 움직이는 유대인 네오콘을 일명 ‘리쿠드파(Likudniks)’라 일컫기도 하는데, 이는 이스라엘 우파정권인 리쿠드당의 이해관계를 충실히 반영해준다는 것을 뜻한다. 그래서 “리쿠드파가 부시 행정부의 실권을 쥐고 있다”는 소리마저 나온다. 그들은 일찍부터 “이스라엘 주변국들의 정권교체(regime change)야말로 이스라엘의 안보에 도움이 된다”는 생각을 밝혀왔다. 이를테면, 1990년대초 일어난 걸프전쟁 직후부터 이라크 침공을 통한 사담 후세인 체제전복을 주장했던 폴 월포위츠는 “바그다드를 거쳐야 중동평화의 길이 열린다(The road to peace in the Middle East goes through Baghdad)”고 말했다.
신자유주의 ;
신자유주의(neoliberalism)는 1970년대부터 부각하기 시작한 경제적 자유주의 사조이다.
네오콘의 경제정책인 신자유주의를 제창한 사람은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이자 시카고 대학 교수인 밀턴 프리드먼이다. 프리드먼은 1962년에 출판한 ‘자본주의와 자유’라는 책에서 신자유주의를 천명하며 각국 정부가 조속히 폐지해야 할 정책으로 다음과 같은 것들을 들었다.
정부의 농산품 구매 보증 가격제도 / 수입관세 또는 수출 제한 / 부동산 가격 통제및 물가, 임금 통제 / 법정 최저 임금과 가격 상한선 / 각종 산업 규제 / 미디어 규제 / 사화보장제도 / 특정 사업의 허가제도 / 공영주택 제도 / 징병제 (세계금융의 미래 ; 아베 요시히로 – 김 정환 옮김P 120 – 125)
한편, 위키피디아 백과사전에서는 신자유주의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국가 권력의 개입증대라는 현대 복지국가의 경향에 대하여 경제적 자유방임주의 원리의 현대적 부활을 지향하는 사상적 경향이다. 고전적 자유주의가 국가개입의 전면적 철폐를 주장하는데 비해, 신자유주의는 강한 정부를 배후로 시장경쟁의 질서를 권력적으로 확정하는 방법을 취한다. 신자유주의는 1980년대의 영국 대처 정부에서 보는 것처럼 권력기구를 강화하여 치안과 시장 규율의 유지를 보장하는 '작고도 강한 정부'를 추구한다. 신자유주의는 한국에서 주로 노동 시장의 유연화 (해고와 감원을 더 자유롭게 하는 것), 작은 정부, 자유 시장경제의 중시, 규제 완화, 자유무역협정(FTA)의 중시 등의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국제 정치•외교적 측면
신자유주의는 기본적으로 국제 체제를 무정부적으로 규정하며, 국가의 보호 아래에 있었던 각국의 국민, 기업들이 더 이상 국가의 보호 없이 세계 자본과 직접적으로 마주 경쟁하는 것을 의미한다.
경제적 측면
경제 대공황을 계기로 케인즈의 유효 수요 이론이 경제학의 주류로 자리잡았으나 그 후 세계적인 스태그플레이션에 따라 케인즈 학파의 이론의 타당성에 대하여 반기를 든 시카고 학파 (Chicago School of Economics)가 생성되었다. 시카고 학파는 "통화주의자"라고도 불리며 이 이론은 신자유주의에 바탕을 둔 레이거노믹스의 근간이 된다. 신자유주의는 절대적인 경제적 자유를 추구한다. 즉, 자유 시장, 규제의 완화, 지적재산권 등을 중시한다. 신자유주의는 정치적 방법들을 통해 타국의 시장을 여는 것을 선호한다. 신자유주의자들은 시장의 개방을 자유 무역과 국제적 분업 (Division of Labour)으로 지칭한다. 또한 세계무역기구 (WTO), 세계은행 (특히 IBRD; 국제부흥개발은행), 아시아 개발은행 (ADB; Asian Development Bank)을 통한 다자간 압력의 시장 개방 역시 선호한다.
자유 무역
미국 등 부자 국가들은 개발도상국에 완전한 자유무역을 강요하면서 아전인수 격으로 자국 형편과 자신의 이익에 맞게 특정 분야에서만 경쟁을 없애자고 한다. 즉, 무역자유화 조약에는 특정 산업에 대한 국가 보조금 지급이 대부분 금지되어 있지만, 농업, 기초 과학개발, 지역 균형 발전에 관련된 미국 산업의 보조금은 허용하고 있다. 예컨대 미국은 25,000개의 미국내 땅콩 농장에 연간 40억달러의 보조금을 지급 하고 있지만 상대방인 개발도상국에는 일체의 국가 보조금을 중단하라고 다그치는 것이다.
신자유주의의 허실
오늘날 미국이 세계 각국에 강요하고 있는 새로운 경제의 룰인 신 자유주의란 한마디로 게임의 룰을 없애자는 것이고 쌍방이 조건 없이 동등한 입장에서 싸우자는 것이다. 엽문 2란 영화를 본 적이 있는가? 홍콩의 중국 전통 무술가 홍금보는 영국의 복싱 챔피언과 맞붙은 무술시합에서 (물론, 상대는 복싱 글로브를 끼고 복싱 링에서 벌어 진 시합이다) 상대인 복싱 챔피언에게 흠씬 엊어 맞고 대전 중 죽는다. 역시 서구의 복싱은 중국 무술보다 강한가? 라고 생각했다면 영화를 조금 덜 본 것이다. 이 시합은 공정한 시합이 아니다. 즉, 홍금보와 영국의 헤비급 복싱 챔피언은 체급이 다르다. 헤비급 복싱 챔피언과 밴텀급 쿵푸 무술가의 승부는 아무래도 헤비급이 유리하게 마련이다. 그런데 오늘날 신자유주의는 체급에 상관 없이, 모든 싸움의 수단을 다 동원할 수 있고, 게임의 룰도 없으며, 어느 한 쪽이 죽을 때 까지 싸워야 하는 ‘격투기’를 하자는 것이다.
7급 기력을 소유한 바둑 아마추어가 조훈현, 이창호와 호선으로 바둑을 두어 이길 수 있을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팀과 시골 국민학교 축구팀이 축구 시합을 하면 누가 이길까? 라스베가스의 전미 포카 챔피언으로 5년 이상 군림한 ‘타짜’ 포카 챔피언과 친구와 취미로 포카를 해 본적 밖에 없는 일개 아마추어가 포커 게임을 한다 하자. 아마추어는 고작 수 천만원 밖에 가진 게 없는데 상대는 수십억 수 백억원을 가지고 덤벼 든다 해 보자. 이런 게임을 공정한 시합이라 할 수 있겠는가? 신 자유주의란 바로 이런 게임을 미국과 하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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