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直立步行
조 승 기
보포(步浦)에 버스가 들어왔다. 비로소 이곳 사람들은 버스를 보게 된 셈이다. 버스라고 했으나 실은 마이크로 버스다. 서울 시가지를 탈탈거리며 달리던 좀 큰 사과궤짝 같던 붉은색 합승이다. 이 합승들이 어느 날, 일시에 서울거리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비정, 무자비, 공포, 절망, 야심, 좌절, 이기, 타산 등이 어우러져 날로 비대해져가는 부의 도시, 서울에서 합승은 그 역할을 잃었다. 이제 합승은 천덕꾸러기가 된 것이다. 거리의 경관을 해쳐놓았으며, 시민 모.두에게 혐오감을 불러일으켰고, 산뜻한 하루 일과를 짜증으로 바꾸어주었을 뿐만 아니라, 외국인의 왕래가 빈번해지자 그들이 어떻게 보고 느낄 것인가에까지 생각이 미치기 시작했다. 합승이 철수해간 서울 시가지에는 그야말로 〈조국근대화〉에 알맞는 미끈한 시내버스가 등장했었다. 서울시민들은 조금 더 문명인이 된 셈이었다.
서울에서 사라진 고물 합승이 몇 대 보포의 거리를 털털거리며 달리고 있었다. 보포서민들은 합승과 함께 합승이 늘 뒤에 이끌고 다니는 공해를 또한 보게 되었다. 그 합승을 보포사람들은 버스라고 불렀다. 차의 옆구리에 〈축 운행 개시〉라고 크게 〈보포 버스 주식회사〉라고 작게 써붙여 달고 있기도 했으려니와, 도대체 이곳 사람들은 많은 수가 구경조차 해본 적이 없어서 합승과 버스의 구별이 곤란했던 까닭이다. 그저 큰 차니까 버스려니 했다. 항상 부우연 먼지에 휩싸여 있는 회색의 도시, 사시사철 비와 눈이 함께 내리는 변두리 삼류극장의 화면 같은 도시, 포장 안된 도로에 비가 내려 흙탕물만 잔뜩 뒤집어쓰는 이 도시에 잘 어울리는 버스였다. 부스럼 앓는 듯한 버스 몸뚱이의 퇴색한 붉은 빛에서 갖은 악취를 맡을 수 있었다. 상한 고기를 넣어두는 정육점에서 붉은 빛깔의 조명을 해두는 것과 같은 느낌을 시민 모두는 버스로부터 받았다. 버스가 구르고 어쩌고 하니까 도시가 한결 활기에 차고, 의욕에 넘치는 것처럼 보이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버스보다 더 빠른 속도로 보포는 생활의 저 밑바닥을 향해 무너져내리고 있었다.
나이 많은 여인네들이 아이를 등에 업거나, 팔에 안거나 손목을 잡고 거리에
나와서는 “얘야, 저게 버스라는 거란다.” 하고 있는 모습을 곳곳에서 볼 수 있었다. 그러면 그 여인네들의 손가락 끝에서 낡은 붉은 빛깔로, 〈으웅!〉하는 아이들의 음성이 힘없이 부서지는 것이었다.
아무도, 그 누구도 버스를 타는 사람이 없었다. 다만 다음과 같은 비난이 있을 뿐이었다. “돈 지랄하네!”, “별 미친 자식들!”, “기름 아껴!”, “체조하는군.”
보포사람들은 비오는 날 좁은 거리를 질주하는 버스로. 옷을 더럽히는 일이며, 밝은 날 뒤꽁무니로 내뿜는 먼지와 매연에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그런데도 버스는 일정한 간격으로 하루 종일, 새벽부터 자정까지, 그야말로 쉬지 않고 쏴다녔다. 바람난 계집년처럼 가득찬 젖가슴과 둔한 허리와 팍 퍼진 엉덩짝을 되는대로 흔들어대며 굴러다녔다.
운전기사와 안내양, 오직 둘이서 행들의 갖은 비난과 온갖 손가락질을 이겨내며, 1주일 내내 빈차로, 내리고 탈 일도 없는 정류장마다 정차했다가 떠나곤 했다. 큰일을 계획하고 앞을 내다보는 자는 적어도 1주일 가량의 외로움이나 비난 같은 것에는 절대로 끄덕하지 않는다는 것을 시위하듯 거리를 누비고 있는 것이다. 그 짓이 한 주일을 넘어서자 사람들은 “별 우스운 일도 다 있구만. 영화관에서 손님이 하나도 없는데, 영화 돌리는가?” 했다. 마시고 버린 드링크류의 작은 병과 구겨서 버린 껌종이가 버스 바닥을 구르며 운전기사와 안내양의 외로움을 한결 돋보이게 했다.
보포는 시가지를 모두 걸어보았댔자 40분 정도면 충분하다. 변두리에서 변두리로 빙빙 돌아도, 걸어서 한 시간 반 안쪽이다. 그래서 보포사람들은 누구 하나 버스 탈 필요를 느끼지 않았다. 또, 버스는 얼마 못 가 제풀에 지쳐 더 깊은 산골로나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망하는 방법도 여러가지라며 버스회사를 모두 비웃고 다녔다. 산에서 물고기를 구할 수는 있어도 버스로 보포에서 일어설 수는 없다는 사실을 모두 믿었다. 할일 없는 어른들이 아이들을 붙잡고, “세상에서 필요없는 것은?” 하고 물으면, 아이들은 누구나 “뱀의 다리!”
“시내버스!”라고 대답했다.
버스보다 10여 년 빨리 보포에는 택시가 몇 대 들어와 있었다. 사람들은 거의 택시를 이용하지 않았다. 이용할 필요를 느끼지 않았던 것이다. 간혹 전화를 해 택시를 부르면 가고 싶은 목적지까지 걸어서도 서너 번은 왕복하였을 시간이 지나서야 입에 하품과 졸음을 잔뜩 문 택시가 어슬렁거리며 나타나곤 했다. 그래서 보포사람들은 왜 거북이 토끼를 앞지를 수 있었던가를 이해하곤 했다. 운전기사들은 시내를 굴러보았댔자 누가 이용을 안하니까, 아예 전화 한 대를 사무실에 묻어놓고 죽치는 형편이고, 택시는 차고에 처박혀 죽음처럼 굳어 있는 것이다. 운전기사들은 울지 않는 전화기를 피해 어딘가로 차러 가고, 친구 만나러 가고, 도시 구석의 다방에서 차 나르는 아가씨와 히히딕거리며 무료함을 달랜다. 때문에 연락을 해도, 사무실에서 어딘가로 다시 연락을 해서 운전기사를 찾아내야 하기에, 사람들이 필요한 1간 내에 택시가 와주지를 않는다. 와서도 운전기사들은 “웬만하면 걸어서 가시지 그러십니까. “걷는 게 건강에도 좋다구요.”라며 별로 달가와하지를 않았다. 이러니 사람들도 급히 시외로 뛰는 것 외엔 택시를 이용하지 않는 실정이었다. 그 판국에 버스라니, 돈을 내버리는 방법도 여러가지라고, 돈을 버는 방법보다 한 가지가 더 많다고 사람들은 생각했다. 또 무모하게 벌겠다고 덤비는 자에게, 그들은 차라리 보포에서 시내버스를 굴리라고 해댔다.
김도규 사장은 간부들을 불러 회의실로 오라 했다. 간부라야 두 아들이었고, 회의실이라야 비와 바람이나 겨우 막을 정도의 허름한 사무실의 한쪽이었다. 사무실의 삼 분지 일쯤에 베니어판으로 막아놓은 곳이다.
“성칠, 성필아, 이 애비는 지금까지 〈견물생심〉이라는 말만을 열심히 믿고 살아왔는데, 사람들이 물건을 바라보기만 하고 탐내주지를 않으니, 걱정이 태산같구나.”
김도규 사장의 표정에서 두 아들은 아버지의 뜻을 꺾을 절호의 기회가 왔다고 느꼈다. 그들은 처음부터 시내버스업에는 반대를 해왔고, 최근에는 아버지의 본업에 충실하라는 직언을 계속 올려왔던 참이었다.
“아버님, 이참에 집어치우세요. 고집을 그만 버릴 때가 되었읍니다. 벌써 얼마큼의 적자를 내었읍니까? 무모한 짓입니다. 달걀로 바위를 치는 것과 같습니다.”
큰아들의 말에 작은아들도 맞장구를 쳤다.
“아버님, 그동안 우리가 얼마나 고생을 해서 모은 돈입니까? 뼈빠진 돈 아니에요? 이 사업을 계속하려면 차라리 불우이웃이나 도우세요. 가능성이 없을 땐 일찍 손을 떼세요! 일엽편주로 태평양을 건너려는 짓입니다.”
김도규 사장은 감고 있던 눈을 뜨며 두 아들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이 애비는 맨손으로 시작해서 오늘날 이런 정도까지 이루어놓았다. 너희들은 모를 것이다만, 나도 어느 정도는 앞을 꿰뚫어볼 줄 안다. 내가 엿장사를 시작할 때만 해도 6·25 직후에 배고파 죽을 판국에 엿이 다 뭐냐고 하더라만, 한번 맛들이니까 못 떼더라. 중독들이기까지가 밑천이 드는 거다. 그래서 돈 놓고 돈 먹기 아니냐. 이 사업으로 나 어깨 한번 펴볼란다. 지금까지는 더럽고 냄새나고 구질구질한 것으로 인해 돈을 모았다만, 나노 대기업체들의 사장 축에 끼어 나의 지금까지의 남루를 다 벗어던지고 싶다. 궁하면 통한다는 말이 있다. 통하지 않은 것은 궁한 상태가 아직 극에 다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통하늠 길이 이제 곧 눈앞에 펼쳐진다. 시작해서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 두 손 들고 나자빠진다는 말이냐. 내 고집으로 이루지 못한 일이 없다. 나는 내 자신보다도 고집을 더 믿어왔다. 우리가 거꾸러지든가, 보포시민들이 거꾸러지든가다. 대중은 무력하고 우매한 것이다. 그들은 잘 속고 약하다.”
김도규 사장은 잠시 말을 끊고 생각한다. 두 아들놈을 설득시키지 못하고 어떻게 보포 시민들을 이겨낼 수 있겠는가. 우선 이놈들을 넘어뜨려야 한다. 그
는 다시 말을 이었다.
“무슨 영화에 관객이 20만 명 동원되었다면, 그 속에 끼지 못한 일을 한없이 원통해 하며, 그속에 끼기 위해 그 비싼 암표 사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 것이 바로 대중이다. 또 그들은 무언가 엄청나게 큰일이 일어나주길 바라고 있다. 될 수 있는 대로 그들이 모르고 있는 사이에 그런 일이 일어나주기를 바라고 있다. 그들은 무엇보다도 그들의 힘으로 그런 일들이 벌어질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선량하고 정직하다. 우리가 몇 가지의 술수만 잘 부린다면, 그들과의 싸움에서 반드시 이긴다. 우린 그 술수를 생각해내지 않으면 안된다.”
말을 갑자기 뚝 끊더니 김도규 사장은 손가락을 하나 들어올려 머리를 가리키며, “히프를 돌려라, 히프를!” 했다.
그가 하는 최고의 농담이다. 말하자면 “머리를 써라, 머리를!”이라는 뜻인데, 그는 이마에 주름을 만들며, 콧구멍을 벌름거리며 그말을 심각하게 해댔는데, 웬지 두 아들은 쿡쿡 웃음을 입에 물었다. 김도규 사창은 두 아들의 웃음을 그의 뜻에 따르겠다는 표시로 받아들였다.
그러면 김도규 사장은 과연 어떤 인물인데 이런 싸움을 하고 있는가. 그는 앞으로 어떻게 두 와들을 부려 이 싸움을 승리로 이끌려고 하는가. 그는 이길 수 있을까.
김도규. 그는 어린시절을 보포의 변두리 철로변에서 살았다. 그가 사는 곳은 지금은 보포에 속해 있으나, 그때는 인근 군에 속해 있었다. 부모는 특정한 기술이 없이 닥치는 대로 일을 얻어 하는 사람이었다. 답도 고치고, 채소장사도 하고, 자갈이나 모래운반도 하고, 철근을 끊기도 하고, 똥도 퍼주고 하여튼 안하는 짓이 없었다. 하루종일 막노동에 지친 부모는 집에 돌아오자마자 곯아떨어잔다. 라디오 한 대도 없는 판자집이어서 집에 돌아오면 그들은 할일이 없었다. 자다가 새벽기차 소리에 깨어나면, 피로가 어느 정도 가신 뒤여서 늘 그짓만 한다. 사내아이들만 기차가 달고 가는 칸수보다 더 많이 퍼질러대어 주렁주렁했다. 그는 학교에 가본 기억이 별로 없다. 늘 그놈의 사친회비 타령에 기가 죽었던 탓이다. 그는 국민학교 시절을 철길과 보포의 시장통에서 보냈다. 그때의 기차는 지금과 달라서 증기기관차였다. 따라서 기관사가 삼으로 연신 조개탄을 던져넣어야 했다. 그는 철길을 동네의 몇 아이들과 걸으며, 찌그러진 바께스에 조개탄을 주워담았다. 철길을 한없이 걸으며 주웠다. 기관사의 삽질에서 빠져나온 조개탄이 가끔가다 한둘씩 홀려 있었다. 이웃 읍의 역 가까이까지 갔다오면 상당량의 조개탄을 모을 수 있었다. 철로를 걸을 때 조개탄보다는 똥을 더 많이 보았는데, 기차가 싸갈긴 그 똥들을 볼 때마다 그들은 얼굴을 찌푸리고 다녔다. 특히, 물론 우연이지만, 조개탄에 똥이 떨어져 있을 때는 줍기가 몹시 망설여졌다. 오전부터 점심때까지 주워 그들은 학교 부근의 만화가게로 갔다. 만화가게 주인은 항상 부시시한 얼굴로, 찢어진 눈에 더욱 가는 웃음기를 오려붙이고서 때 낀 손으로 그들의 수확물을 넘겨받았다. 그리고 그 대가로 그들은 오후 내내 만화책을 볼 수가 있었다. 그들은 피곤함, 배고픔도 잊고 만화속에 빠져들었다. 그 시절의 만화는 지금과는 달라 상당히 교훈적이었다. 아마 그 만화의 내용 덕분에 김 도규 사장은 요즘 상당히 유식한 말을 자신이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 시절 외엔 책을 본 적이 별로 없으므로, 물론 신문이나 방송을 할일 없이 읽고 듣고 한 덕도 있겠으나, 책은 만화가 시작이고 끝이었다. 해질녘 그들이 만화가게의 잘 열리지 않고 소리만 큰 문을 열고 나오면, 주인의 누우런 이빨이 내보낸 “히히히, 내일은 더 많이 주워와야 해!” 하는 말을 고픈 뱃속에다 집어담았다. 겨울의 찬바람이 목을 타넘어와 헛헛한 뱃속을 채우면, 그들은 몸을 떨었다. 떨면 그 바람이 발로 내려가 구멍 뚫린 고무신 사이로 빠져나가곤 했다. 떨림은 더 많은 떨림을, 더 심한 떨림을 데려왔는데, 어느 정도 떨고 나면 고무신 구멍 사이로 다 달아났는지 춥지 않았다. 그떼쯤 눈앞에 떨고 있는 집을 보게 되었고, 그들은 각자의 집으로 힘차게 뛰어갔다. 그리고 인사했다. “학교에 다녀왔읍니다.” 모진 추위의 겨울이 지나고 나면,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일이 있었다. 그들은 괭이를 들고 집 주위의 야산에 올랐다. 칡을 캐는 일이었다. 입 주위가 시커멓게 될 떼까지 칡을 캐어 씹어먹고, 상당량을 지고 내려와 학교 주변의구멍가게에 팔았다. 그러면 그들은 약간의 돈을 손에 쥘 수가 있었다. 그들은 시가지를 건너 선창 쪽으로 갔다. 그 돈으로 그들은 고래고기를 몇 점씩 뱃속에 집어넣을 수 있었다. 그리고 나서 그들은 바다를 향해 고추를 내놓고 오줌을 쌌다. 누구 우줌줄기가 더 멀리 떨어지나, 누구 오줌이 더 빨리 태평양으로 흘러나가나를 시합했다. 그들은 갈 수 없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꿈을 오줌에 실어 멀리멀리 띄워 보냈다. 짙은 여름이 오기 전 그들은 보포의 시가지 구석구석을 누볐다. 그들은 판자 위에다 서너 개씩 살구를 모아놓고 파는 노파가 바라다보이는 시장통의 골목에서 진을 쳤다. 아이들이 살구를 사서 우물우물 입안에서 먹고 씨를 퉤 버린다. 그들이 노리는 것이 바로 살구씨다. 장남감 대신 가지고 논다거나 심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그들은 노파 주위로 가서 재빨리 살구씨를 주워 호주머니에 넣는다. 한참 그런 뒤 다른 시장통으로 가 또 그짓을 한다. 몇차례 장소를 바꾼 뒤, 다시 처음 장소부터 돌곤 했다. 살구씨를 모두들 양쪽 호주머니에 두둑히 채우면 그들은 한약방으로 갔다. 살구씨가 한약재로 쓰이는지, 주인은 계피하고 바꾸어주었다. 바짝 마른 나무껍질 같은 것이었는데, 이빨로 깨물어 혀에 놓는 향내가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이상이 김도규 사장의 때 낀 손과 더러운 얼굴, 다 해진 누더기의 어린시절이었다.
김 도규 사장은 도무지 진전이 없는 회의에 짜증이 났으나, 그런 내색을 전혀 하지 않고 두 아들을 향해 말했다.
“담배를 마구 피워라. 이 회의실 안에 연기가 가득 차도록 말이다. 애비 박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지 말고.”
“네에?”
“왜요?”
“철학가나 문학가들은 고뇌하기 때문에 담배를 많이 피운다. 그 고뇌 속에서 모든 아름다운 것, 모든 위대한 것, 모든 심오한 것들이 탄생하는 법이다. 자, 무지무지하게 피워대라. 그보다 우선 너희들, 이마를 내 이마에 가져다 대라.”
“네에?”
“왜요?”
“농구나 배구선수들 게임이 안 풀려나가면, 작전타임 걸고 둥그렇게 모여서 서 뭐라 수군댄 뒤, 일제히 박수치며 코트로 돌아가지 않더냐! 우리도 이마를 맞대고 짓찧어보자. 묘안이 나올지도 모른다. 자아, 어석 이마를 대락.”
이때 큰아들 성칠이가 말했다.
“그보다도 이만한 노력과 투자로 얼마든지 손쉽게 벌 수 있는 사업이 많습니다. 가령 맥주홀을 낸다든가 숯불구이 갈비집을 낸다…가….”
“이놈아, 쉬운 일만하면 사업이 번창하지 않는 법이야. 누구나 할 수 있는 일, 그것은 몇집 건너 하나씩 있지 않느냐? 많은 사람이 얻어가질 수 있는 이익을 혼자서 몽땅 빼먹는 거야. 또 쉬운 일이란 무엇보다도 일을 이루어낸 다음의 쾌감이 적어. 사람이 잘아지구 말야.”
말을 마친 김 도규 사장은 두 아들의 머리를 자신의 이마로 끌어당겨 쿵쿠웅할 정도로 세차게 부딪쳤다.
“아이쿠!”
“아이쿠!”
“이제 정신이 드느냐!”
셋은 회의실 안에서 서로 상대방을 알아볼 수 없도록 겨우 목소리가 연기를 뚫고 서로의 귀에 가닿을 만큼의 담배를 피워댔으나 회의내용에는 아무런 진전이 없었다. 회의실은 담배곽이었고, 그들은 세 개비의 담배였다. 누가 담배의 불을 끌 것인가. 그들은 시무룩해져서 회의실을 나왔다.
김도규 사장은 초등학교로 학교 교육을 마쳤다. 그는 한 7년 남짓 부모를 따라다니며 마구 걸리는 대로 품을 팔았다. 스무 살이 되었을 때, 그는 엿판을 짊어졌다. 읍, 면 단위로 돌면서 엿장사를 시작했다. 그는 굶기를 밥먹듯이 하면서, 허리띠의 구멍을 자꾸만 안쪽으로 파면서, 악착같이 돈을 모았다. 10년 뒤, 그는 자기 마을의 황폐한 땅을 수만 평 샀다. 그런 다음 엿판을 치우고 고물장사를 벌였다. 녹슨 양철을 사용해 울타리 대신 둘러치고 고물이란 고물은 모조리 사들였다. 폐차된 택시, 세발 자전거 부서진 것, 헌 캐비닛, 난로, 연통, 타이어 폐품, 드럼통, 철제침대, 심지어는 항아리 깨진 것, 남비 쪼가리, 라면 박스, 빈병까지도 사들였다. 그 넓은 땅에 고물들이 들어차 하늘을 향해 키를 키워나갔다. 그는 마누라와의 사이에서 두 아들을 얻어, 그들의 교육을 중학교에서 끝내버렸다. 그는 학교는 애비가 다녔으니 너희들도 다녀라, 애비가 국민학교를 나왔으니 너희들은 중학교까지만 다녀야 한다는 논리였다. 아들들은 성적이 퍽 우수했다. 그러나 아버지의 고집에 그들이 꺾이고 말았다. 그렇게 강요한 이유는 많이 배우면 돈이 모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어차피 장사를 해야 할 몸이니까, 못 배운 한을 돈으로 풀자는 정신으로 일에 달라붙어야 성공한다는 말이었다.
김도규 사장은, 변천하는 세태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아버지보다 좀더 배우면 된다는 식이다. 이를테면, 아버지는 아버지 세대를 국민학교 졸업으로 충분히 살아왔다. 세상이 발달한다니까 너희 세대는 중학교 졸업으로 버틸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학벌이 높으면 사사건건 트집을 잡고, 시키는 일 말 안 듣고, 또 부모가 못 배웠다고 무시하려 드는 것 때문에 고등학교는 아예 문턱에도 못 가게 했다. 김도규 사장은 아들들을 중국집 심부름꾼으로 보내고, 좀 자라선 여관, 식당, 다방 등등 많은 곳을 종업원으로 전전하게 했다. 특히 아들들은 다방의 주방장으로 꽤나 이름을 날렸다. 주방장이란 같은 양의 커피로 잔 수를 누가 더 많이 뻬내며 맛이 진하느냐에 따라 등급이 달라지는 법이었다. 그들은 다방가에선 일류로 통했다. 나중엔 들통이 나 직업을 옮겨야 하긴 했지만. 커피물 속에다 담배꽁초를 상당량 풀어넣어 같이 끓였던 것이다.
김 도규 사장은 고물장사로 이 부근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되었다. 특히 최근에는 고물이나 머리에 이고 있던 그의 땅이 보포시로 흡수되면서부터 그는 큰소리 좀 칠 수 있었다. 땅값이 급작스레 수십 배로 뛰었던 것이다. 그러는 중 그는 우연히 서울의 합승들이 공해의 선두주자로 등장해 있음을 알았다. 또 신문에서 합승을 새로 도입한 시내버스로 바꾼다는 사실, 합승이 폐차 직전까지 왔다는 부도를 읽고, 그 합승을 사서 고철로 팔려고 상경했다가 그만 시내버스 사업에 손대게 된 것이다. 그는 고물처리장 일부를 정리해 버스들이 잠을 잘 수 있도록 했다. 사무실도 만들고 회의실, 사장실도 만들었다. 앞으로는 운전기사 휴게실과 안내양 합숙소도 만들 계획이었다.
다음날, 그들은 다시 회의실에서 만났다. 그리고 담배를 피워댔다. 담배연기
속에서 다음과 같은 말들이 떠돌아다녔다.
“아버님, 어떤 음식물이라도 일단 사람들이 먹어봐야 맛을 알 것 아닙니까?
그들을 일단 태워야 합니다.”
“그결 누가 모르냐!”
“형님 말대로 우선 태워야 합니다.”
“아니, 태우다니 ? 그들이 타야지. 우리가 어떻게 태우나?”
“안 타면 태워야지요.”
“태워야 하는데 아무도 타주지를 않는구나. 그들이 반드시 버스에 올라주어야 한다. 우리 그 방법을 한번 생각해내자꾸나.”
그들은 다시 생각 속으로 몸을 깊숙이 집어넣었다. 그들은 마치 잠든 것처럼 보였다. 그들은 돌로 굳은 것처럼 보였다. 그들은 고철장의 고철처럼 보였다. 시간이 느릿느릿 흘러갔다. 정적 속에서 간간이 의자의 삐걱이는 소리만이 이들이 존재하고 있음을 일깨워주고 있었다.
이때 불쑥 성칠이 말했다.
“있읍니다!”
김도규 사장이 대꾸했다.
“무엇이!”
“방범요.”
“어떤!”
“들어보시겠읍니까?”
“그러자!”
김도규 사장은 우선 창들을 열어 환기를 시키라고 했다. 이제 담배연기의 역할은 끝났다고 했다. 그제야 그들의 눈에 창밖 풍경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버드나무에 파릇파릇 새싹이 얼굴을 내밀고, 먼산에서는 아지랭이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빈차로 얼마를 더 시내를 돌지 모르는 일이지요? ”
“그렇다.”
“그렇다면 기발한 묘안이 있읍니다. 생각해보면 지극히 평범한 아이디어입니다만.”
“뜸을 그만 들여라!”
“계절이 벌써 4 월로 접어들었읍니다. 보포시에는 공단이 있읍니다. 물론 그
공단들은 극히 보잘것 없는 수공업의 상태를 벗어나지 못한 상태입니다. 회사의 경영자들은 여공들을 2교대로 스물네 시간 계속 돌립니다. 따라서 여공들은 지극히 사기가 저하되어 있읍니다. 여공들 중에는 무엇 때문에 이 고생인가 하는 회의에 빠져 있는 수효가 꽤나 많습니다. 회사측에서는 여공들의 사기를 높여주기 위해서 1년에 봄가을 두 차례씩 야유회를 실시합니다. 우리 이때를 이용합시다.“
“이용하다니?”
“아니, 형님. 야유회와 우리 사업과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 하며 모처럼 성 필이가 말을 거들었다.
“각 회사로 공문을 띄웁시다.”
“무슨 공문을?”
“어차피 빈차로 돌릴 바에야 야유회 때 실어나르고, 다시 태워오는 일을 합시다.”
“그냥!”
“무료로!”
“네, 일단 사람들을 태워줍시다. 자꾸자꾸 실어나릅시다. 그 회사들은 버스를 한 대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교통수단의 편리함을 보여줍시다.”
김도규 사장은 지그시 눈을 감았다가 떴다.
“좋다. 이판새판이다.”
“공단뿐 아니라 각계각층으로 보냅시다.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기회를 줍시다.”
“좋다! 그런데 공문작성은 누구에게 부탁하지!”
“성필이, 네가 써라. 중학교 다닐 때 넌 문예부였으니까.”
“그렇게 하겠읍니다. 그러나 잘될 지는 모르겠읍니다.”
“문장이야 어떠냐. 이쪽의 뜻만 정확히 전달이 되면 되는 거지·”
“오늘밤 안으로 완성 하겠읍니다.”
성필이는 온밤을 고심했다. 서두를 뽑기가 상당히 어려웠던 것이다. 〈찬물이
차게 느껴지는 계절이 지나고〉로 해보았다가, 〈때는 춘삼월 호시절〉로 해보았다가, 〈매화 향기가 코끝에 배어들고, 먼산의 푸른 빛이 눈썹 끝에 묻어오는〉으로 해보았다가 잠을 설치고 말았다. 이건 예술문이 아니라 실용문이기에 문식이 강해지면 내용의 전달이 그만큼 약해진다는 생각에서 위의 구절들이 마음에 안 들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바로 〈다름이 아니오라〉로 들어가기도 뭣했었다. 결국 〈안녕 하십니까? 불철주야 산업 전선에서 오로지 생산력 확대에 모든 힘을 쏟고 계시는 산업 전사들의 노고를 위로코자 폐사에서는……〉으로 서두를 결정했다.
날이 밝자 각 공장으로 공문을 띄웠다. 다른 단체에는 서두만 다르게 하고 내용은 같이 해서 보냈다. 며칠 사이에 회신이 왔다. 날짜나 시간이 겹친 것은 다시 연락을 해 조정했다. 또 합승이기에 한꺼번에 많은 수를 실어나를 수가 없었다. 여러차례 계속 날라야 했다. 날짜에 맞추어 버스회사측에서는 새벽부터 눈코뜰새가 없었다. 김도규 사장은 운전기사에게 절대로, 어떤 명목으로든 폐를 끼치지 말라는 명령을 했다. 도시락 하나, 과자 부스러기 하나라도. 운전기사들은 몇 대 안 되는 차를 이용해 상춘객을 부지런히 날랐다. 목적지가 보포에서 좀 떨어진 외곽지대이므로 몇 시간이 걸쳐서야 다 수송할 수 있었다. 하루에 한 회사씩, 좀 작은 규모의 회사는 시간을 조정해 물씩도 해치웠다.
버스회사는 부쩍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태우면 태울수록 기름값만 길바닥에 퍼내다 붓는 셈이었으나, 이런 고충없이 어떻게 앞으로 회사를 키워나갈 수 있
겠느냐는 심정으로 울적함을 달랬다.
될 수 있는 대로 떠들썩하게 하기 위해, 한 대의 버스를 출발시킬 때마다 시가지를 한 차례씩 구석구석 돌도록 지시하였다. 여공들이 노래를 부르고, 또 창밖을 향해 연신 손을 혼들어대었으므로 광고효과가 좋았다. 시민들은 요즘 들어 웬 버스가 저리 복작거리는지, 눈이 휘둥그래졌다. 무슨 난리가 났나보다, 했다. 하여튼 그 버스의 행렬들이 보포사람들의 호기심을 불러 일으켰다. 한번 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스는 때닌 성시를 이루었다. 이번엔 춘계행군을 띠나는 학생들을 실어날랐다. 학생들이야말로 그들의 커다란 수입원인데 놓칠 수가 있겠는가. 회사측은 버스로 돈을 벌겠다는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시민의 충실한 발 노릇을 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을 은연중에 이용자가 깨닫도록 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했다. 버스란 바라보는 게 아니라 타야 한다는 것을 꾸준히 보여주었다. 그 결과, 회사측은 5월에 접어들어 시민의 날에 시장으로부터 역 광에서 감사패를 받게 되었다.
버스회사측은 출혈을 무릅쓰고 시민들을 태우는데 성공했다. 나머지는 적당한 시기를 골라 발표하면 그만이었다. 발표를 하기 전까지는 갖은 아양을 다 떨어 그들의 비위를 상하지 않게 하며 그들을 버스 타는데 중독이 들게 만들어놓는 것이었다. 이제 버스는 정류장이 아닌 곳에서도 정차해 사람들을 하나하나 태워 그들이 원하는 곳까지 한껏 공손히 모셨다.
보포사람들은 땀이 줄줄 쏟아지는 뜨거운 여름날, 걸어가는 것보다는 타고 가는 편이 훨씬 더 시원하다는 사실을, 비가 예고없이 쏟아지는 때엔 버스에 오르는 편이 훨씬 더 좋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들이 혀를 버스 속으로 깊이 내려놓았을 때, 그래서 버스 바닥에 끈끈하게 붙어 떨어지지 않을 때, 희사측에서는 인건비, 차량 유지비 운운하며 슬며시 손바닥을 내보였다. 모두들 그냥 버스에 타는 것을 미안하게 여기고 있던 차라 “올 것이 드디어 왔다!”면서 아무런 저항을 느끼지 않고 요금을 내었다. 사람들은 버스비를 내고 타는 편이 내지 않고 타는 것보다 훨씬 마음이 가볍고 떳떳하다는 사실을 알았다.
여름이 땀방울처럼 떨어지고 가을이 낙엽처럼 구르고, 겨울이 쌓인 눈처럼 녹아 한 해가 지나자, 옛날처럼 거리에 서서 버스를 바라보며 손가락질을 해대는 사람들은 이제 보포에 하나도 없었다. 그들은 “세 걸음이면 승차!”라는 구호를 외치면 문명의 이기를 생활화하고 말았다.
그동안 도로 복판 곳곳에 고장난 버스가 주저앉아 밤을 새운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러나 붉은색의 앉은뱅이 괴물은 그 대수가 차츰 불어났다. 사람들은 문명의 이기를 이용할 때면, 그 편리함보다는 자도 한 계층 올라선 문화인이 되었다는 자부심으로 혼자 행복해 하고, 혼자 으스대는 것이다. 버스를 타고 가면서, 창밖으로 안 타고 가는 사람들을 야만인 보듯 하는 것이었다. 그련 느낌이 수없이 등에 와 꽂히기 때문에 짧은 거리를 가는 사람들도 버스를 타게 마련이었다. 누가 감히 설탕을 좋아하겠는가. 누가 감히 사지의 힘을 모조리 빼내는 달콤한 음악을 좋아하겠는가. 그러나 한번 묻히기 시작하면, 마침내 전신에 젖어들어 자신의 의지대로 행동하기 어려워지는 법이다. 그것이 바로 향상이고 문명인 것인가.
작은, 아니 엄청나게 큰 유혹은 그 누구의 눈에도 보이지 않는 수천, 수만의 빨판을 가지고, 보다 더 커다란 형체를 잘디잘게 부서뜨리는 것이다. 버스가 지나가는데 그 누가 손가락질하며, “얘야, 저게 버스라는 거란다.” 할 것인가. 너도나도 모두 버스에 실러 버스 안은 터질 것 같은데; 누가 누구를 데리고 거리에 남아 외롭게 버스를 가리킬 것인가.
일부 시민들은 버스를 타지 말자는 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걷는 게 보포의 혼이라는 것이다. 걷지 않을 때 보포는 보포이기를 포기하는 것이 된다는 말이었다. 보포는 이름에 맞게 옛적부터 마라톤 선수들이 많이 나온 곳인데, 이대로 나가단 대가 끊긴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깨어 있는 소수는 취해 있는 다수를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었다. 이제 누가 트랙을 돌며, 또 고독하게 두 시간여를 줄기차게 달려나갈 것인가.
김도규 사장은 소망태로 운전기사 휴게실도 안내양 합숙소도 만들었다. 샤워실과 온수를 갖춘 현대식 건물로 지었다. 거기에다가 운전기사 아파트도 건립했다. 버스회사측에서는 한 노선밖에 없었던 것을 열서너 노선으로 나누었다. 이에 따라 버스들도 불어나 제각기 수자판을 이마에 달고 거리를 질주했다. 행인은 모.조리 길가로 쫓기고, 버스가 길 전체를 차지하며 풍채를 자랑했다. 옛날엔 한번이면 타고 갈 곳도 이젠 두 번씩 타도록 교묘히 쪼갰다.
또 안내양을 예쁜 애들로 바꾸었다. 안내양들이 얼마나 예쁘든지 일부 학생들은 하루종일 종점에서 종점으로 버스만 타고 내리는 재미에 열중하기도 했다. 며칠 간 학교에 안 나와 가정에 연락을 해보니 그 모양이었다. 다른 일부 학생들도 안내양에게 버스비를 주는 재미로 학교에 다닌다고 할 정도였다. 버스비가 차기네들의 손에서 안내양의 손으로 옮겨같 때 살짝 부딪는 그 감촉을 즐긴다는 것이었다. 특히 학생들에겐 만원버스가 제일 인기였다. 하나 더 탈 틈이 없어 출입문이 곧 닫히려는 순간에 달려가서 엉겨붙는 버스의 맨 마지막 승객이 되는 일이 극치였다. 하나라도 더 태우려는 안내양은 그 학생의 등을 가슴으로 밀어붙여 거의 끌어안다시피 하여 문을 닫기 때문이었다.
보포사람들은 이제 남녀노소 없이 돈을 집어주며 버스를 탄다. 김도규 사장은 두 아들을 데리고 색시집에 가 축배를 들었다.
“이 기쁜 날!”
“한잔을!”
“또 한잔을!”
그들은 거나하게 술을 짊어졌다. 거의 일어설 수 없을 정도로. 그들은 노래를 부르고, 손뼉을 치고 했다. 색시들도 괴성을 내지르며 유행가 가락을 연신 술잔에다 채우고, 비우고, 또 채우고 했다. 담배를 피워문 김도규 사장이 머리를 가리키며 소리를 질렀다.
“히프를 돌려라, 히프를!”
아들들은 웃어댔다. 이때 좌중의 색시 셋이 다 일어나 신나게 엉덩이를 돌리며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들은 때아닌 장면에 어리둥절했으나 이내 알아차리고 팁을 젖가슴에 쩔러넣어 주었다.
“그래, 그래, 까짓거 마구 돌려라, 돌려!”
김도규 사장은 자신의 말의 효과에 기분이 더욱 좋았다. 상이 부서질 듯이 요란스럽게 두드러맞고 있었다.
“그래, 히프를 잘만 돌리면 돈을 버는 거다, 히히헛.”
김도규 사장의 말에 두 아들도 따라웃었다. 술잔도 깊어가고, 밤도 깊어갔다.
드디어 어느 날, 붉은색의 합승이 비켜서고, 번쩍번쩍 빛나며 산뜻한 시내버스가 시가지를 구르고, 사람들은 한결 말라비틀어진 두 다리로 몸을 겨우 지탱하며 손잡이에 매달려 비비적거리는 것 이었다.
-끝-
2016년 3월 30일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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