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저씨, 손 좀 만져보자. 무슨 남자 손이 이리 보들보들 하냐.” 매상을 솔찮게 올려주자 좌판주인 오순네는 처음 봤을 때완 영 딴 판으로 살랑살랑 내 입 안에 안주도 넣어주고 “아저씨를 위하여” 하며 정답게 건배도 청한다. 이럴 땐 가만히 있으면 안된다. 화답으로 이 집에서 제일 고급 안주격인 새송이 버섯볶음(5000원)을 호기있게 추가한다.
초겨울 엷은 해가 떨어지고 사방이 어둑어둑 해올 때 나는 광장시장으로 들어왔다. 셀수 없이 많은 좌판 대폿집이 환히 불 밝힌 채 빈대떡이며, 순대, 머릿고기, 국수 등을 차려놓고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서울에 이런 곳이 있었던가.
서울 종로5가 보령약국 건너편 광장시장 좌판골목으로 들어서면 청계천로까지 약 240m에 이르는 종축, 또 중간을 가로지르는 횡축으로 무려 600여개의 좌판들이 폭 10m 골목에 두줄로 들어서 있다. 그 중 300여개의 좌판이 술과 음식을 팔고 있으니(나머지는 옷가지 등을 판다) 말 그대로 우리나라 최고, 최대의 좌판 ‘대포촌’이다.
그 역사가 100년이다. 을사조약(1905년) 체결 후 일본의 경제침략을 막기 위해 ‘조선 최초의 첨단 시장’으로 개설된 이곳은 전차가 다니면서 더욱 번창했다 한다. 그리고 100년 지난 오늘까지 그 열기는 식지 않고 이어진다.
특별한 난방기구가 없는 탓에 손님들의 허연 입김과 따끈한 안주에서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수증기가 어우러진다. 58년 개띠. 우리 나이로 마흔 여섯인 오순네 주인 박오순씨는 볼수록 웃는 얼굴이 예쁘다. 전북 부안이 고향이고 스물 다섯때부터 광장시장에서 장사를 했다. 2남8녀 중 다섯째라 ‘오순이’란다. 서너가게 뒤로 ‘사순네’란 상호가 보인다. 바로 위 언니네 좌판이다. “언니 왔어? 우리 둘째 언니에요.” 시장 근처에서 단란주점을 하는 ‘이순이’ 언니란다.
내 옆에 비집고 끼어 앉은 손님이 안주를 독촉하자 “알아서 먹어요”하며 오순네가 퉁명스럽게 내뱉는다. 그러자 그 손님은 정말 알아서 손수 마아가린 바르고 부침개를 이리저리 뒤적거린다. 연신 “어이쿠, 다 타네”라 중얼거리는 손님은 이곳 20년 단골이다.
‘현태네’ ‘강경 할머니집’ ‘광주집’ ‘자선네’ ‘안나의 뜰’ ‘모녀집’…. 올망졸망한 간판들이 정겹다. ‘기철이 엄마네’ 안주는 정말 푸짐하다. 큰 손으로 돼지 껍데기와 머릿고기를 덥석덥석 담아준다. 서른네살 기철이가 아직 장가를 못 가 걱정이란다. 깍두기 국물맛이 시원하다. 열 여덟살부터 40년간 줄곧 이곳에서 장사를 해 온 최고 고참 사장님이다. ‘할머니집’의 함경도식 아바이 순대는 연신 불티나게 팔린다. 그 자리에서 먹는 사람, 포장해 가는 사람들로 정신이 없다. 할머니는 지난 여름 돌아가시고 10년전부터 같이 일해온 외며느님이 대를 이어 장사하고 있다. 며느님은 명문여대 출신이고 할머니 아드님도 명문대 출신이라 결혼할 때 시장 안이 떠들썩 했다고 주위에서 귀뜸한다. 단골이 무려 “1000명”이라고 아주머니는 단언한다. 머릿고기가 냄새도 안 나고 맛도 깊이가 있다. 돼지얼굴 부위 중 쫄깃한 뺨과 오드득 거리는 귀가 특히 맛있다. 홀로 막걸리잔과 마주보고 앉은 손님은 23년째 단골. 대학생때 술과 고기 먹고 돈이 없어 도망갔다가 후일 돈벌어 외상값도 갚고 단골이 됐다고 털어놓는다.
광장시장 한가운데엔 횟집도 서너군데 있다. IMF때 많이 없어졌고 지금은 ‘회 원조집’ ‘이모횟집’ ‘강원횟집’ 등이 중앙을 차지하고 있다. 추운날 추운 바람 다 맞아가며 살 얼음 끼어있는 차가운 회 먹는 맛이 일품이다. 충남 예산이 고향인 ‘회원조집’ 주인 아주머니는 20대 후반부터 35년째 이곳에서 횟집을 한다. ‘선임하사’란 별명답게 성격도 시원시원하고 수완도 보통이 아니다. 시장 한 가운데 높이 자리잡고 있는 좌판에 올라서서 입구서 부터 들어오는 손님들을 살피고 있으니 혹여 다른 안주가 먹고 싶더라고 빤히 얼굴을 알고 있는 주인 아줌마의 눈길을 피하기가 쉽지 않다. 1인분에 1만원짜리 모듬회에는 ‘배에서 급랭해서 1년 동안 숙성해 내 왔다’는 아주머니식 자랑이 이어지는 문어며, 참치며 고동이며 아나고들이 소복히 쌓여 나온다. 좌판에 놓인 생선들의 잇몸이 시려 보인다.
이때 하얀 얼굴의 색스폰 할아버지가 등장한다. 여든살 백연화 할아버지는 반짝반짝 별을 붙인 마술사 모자에 가슴에 커다란 가짜 나리꽃을 꽂았다. 여기에 긴 가죽 부츠까지 복장이 심상치 않다. “차렷, 경례, 오케바리!” 그리고는 색스폰을 신나게 불어댄다. 레퍼토리는 ‘목포의 눈물’ ‘아내의 순정’ ‘내 마음의 별과 같이’ 그리고 ‘장록수’. 일어나 춤 추는 손님, 박수 치는 손님…. 광장시장에 넘쳐 흐르는 색스폰 멜로디를 타고 사람들이 흔들린다.
각종 전이며 머릿고기를 담은 비닐봉지가 전리품인양 흐뭇하다. 이제 얼마 후면 청계천이 복원되고 그러면 이 광장시장의 대폿집 골목에도 많은 변화가 있을 것이다. 도란도란 늘어선 좌판들이 칸 하나하나 마다 소중한 사연들을 가득 실은 열차처럼 하얀 김을 내뿜는다. 100년 역사의 광장 시장은 그렇게 또 한 살을 더 먹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