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에서도 바울이 복음 전하는 것에 대한 유대인들의 저항이 거셌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이 작당(作黨)하여 바울을 법정으로 끌고 가서 아가야(Ἀχαϊα, Achaia)의 총독인 갈리오에게 데리고 갑니다(12절). 아가야는 마케도니아 남쪽 지역을 일컫는 말인데, 이 지역의 수도는 고린도였습니다. 갈리오(Γαλλίων. Gallio) 총독의 이름은 루키우스 유니우스 갈리오 안나에아누스(Lucius Junius Gallio Annaeanus)인데 줄여서 갈리오 총독이라고 기록하였습니다. 갈리오 총독이 부임한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유대인들은 이렇게 작당하여 바울을 고발하면 갈리오가 민심(民心)을 추스르기 위하여 들어줄 것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입니다. 유대인들은 바울이 율법을 어기면서 하나님을 경외하라고 사람들을 권한다고 고소(告訴)합니다(14절). 아마 여기에서 율법을 어겼다는 말은 로마의 법을 어겼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유대의 율법은 유대 땅도 아닌 헬라의 로마 관할 지역에서는 의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재미있는 것은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임에도 바울이 하나님을 섬기라고 권했다며 고소했다는 것입니다. 이율배반적(二律背反的)인 모습이 엿보입니다. 자기들의 요구를 관철시키기 위해서는 양심조차 버린 것입니다. 그런데 갈리오는 단칼에 이 고소(告訴)를 기각(棄却)하고 맙니다(14절, 15절). 바울이 뭔가를 말하기도 전에 갈리오는 로마 법에 따른 부정한 일이나 불량한 행동이 일어난 것이라면 이 법정에서 다루겠지만, 너희 유대인들끼리 벌어지는 다툼이라면 굳이 내가 관여할 바가 아니니 너희들끼리 처리하라며 법정에서 쫓아냅니다(16절). 굳이 유대인들끼리 자기들의 종교에 대한 갈등에 끼어들고 싶지 않다는 것입니다.
일이 그렇게 되자 모든 사람이 회당장 소스데네(Σωσθένης, Sosthenes)를 법정 앞으로 끌고 가서 때렸지만, 갈리오는 신경을 쓰지 않았습니다(17절). 누가, 왜 소스데네를 때렸을까에 대한 것은 두 가지 견해가 있는데, 그 하나는 바울에 대한 유대인들의 고소가 기각되자 회당장 소스데네가 제대로 일 처리를 못한 것이라고 여긴 유대인들이 폭행했다는 견해가 있고, 또 다른 하나는 바울에 대한 유대인들의 고소가 기각되자, 그렇지 않아도 유대인들을 탐탁지 않게 생각했던 헬라인들이 유대인들에 대한 반감으로 회당장인 유대인을 폭행했다는 견해가 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바울이 고린도교회에게 보낸 편지인 고린도전서 1:1에 보면 고린도전서를 보내는 발신인으로 바울과 더불어 소스데네가 언급되고 있는 것을 볼 때 아마 오늘 본문에 나오는 소스데네가 나중에 바울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게 되어 바울의 동역자가 되었을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습니다.
고린도의 법정에서 갈리오가 바울을 향한 유대인들의 고소를 기각한 사건은 바울이 로마의 통치 아래 있는 지역들에서 복음을 전하는 일에 있어서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 여겨집니다. 아무래도 로마 총독이 바울의 복음 전도에 대해서 용인(容認)해 주었다는 것이 다른 지역에서도 하나의 전례(前例)가 되어서 유대인들이 바울을 대적하는 일이 상당히 힘을 잃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역사(役事)를 이루어 가십니다.
바울은 여러 날 동안 고린도에 더 머물다가 배를 타고 수리아(Syria)로 이동하였는데, 브리스길라와 아둘라 부부도 함께 동행했습니다(18절). 그리고 바울은 겐그레아(Κεγχρεαί, Cenchrea)에서 머리를 깎았습니다. 아마 바울은 나실인(Nazarite)의 서약(誓約)을 했었던 것 같습니다. 나실인의 서약은 자발적으로 자신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지키겠다는 서약으로 포도주나 술, 독주를 마시지 않고 머리카락을 자르지 않고, 시체, 무덤 등의 부정한 것에 접촉하지 않는 등을 지켜 행했습니다. 바울은 나실인의 서약을 지켰었고, 그 기간이 다 끝나서 머리를 깎은 것으로 보입니다. 겐그레아의 현재 지명은 그리스의 케크리스(Κεχριές, Kechries)로 고린도에서 남동쪽으로 약 11km 정도 떨어진 항구 마을입니다. 나중에 바울은 겐그레아교회의 신실한 일꾼으로 거론하는 뵈뵈(Φοίβη, Phoebe)가 겐그레아와 관계가 있습니다(롬 16:1, 2).
그리고 바울은 에베소(Ἐφέσιος, Ephesus)로 이동하여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를 에베소에 머물게 하고, 바울은 에베소의 회당에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유대인들과 깊은 토론을 합니다(19절). 에베소는 아데미 신전(神殿)인 아르테미시온(Ἀρτεμίσιον)이 있던 곳이지만, 에베소에서는 비교적 바울이 전하는 복음과 하나님의 말씀에 저항하는 이들은 별로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에베소 사람들은 바울에게 더 오랫동안 에베소에 머물기를 원했지만 여러 정황상 바울은 배를 타고 가이사랴로 향했습니다(20절~22절). 바울은 “만일 하나님의 뜻이면 너희에게 돌아오리라”(21절)라고 말하면서 에베소에 다시 와서 말씀의 교제를 나누고 싶은 소망을 피력(披瀝)하였습니다.
바울은 가이사랴에 도착하여 그곳의 교회를 돌아보고 안디옥으로 내려갔고(22절), 이전에 방문하여 복음을 전했던 갈라디아(Γαλατία, Galatia)와 브루기아(Φρυγία, Phrygia)에 다시 방문하여 그곳에 있는 제자들(성도들)의 믿음을 굳건하게 하는 사역을 하였습니다. 이것이 제3차 전도여행의 시작이 됩니다.
바울은 가는 곳마다 쉬지 않고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유대인들에게 핍박을 받으면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유대인들에게도 복음 전하는 일을 게을리하지는 않았습니다. 가는 곳마다 유대인의 회당을 찾아가서 복음을 가르쳤다는 것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헬라인들을 비롯한 이방인들에게도 복음을 전하여 모든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복음은 모든 사람에게 열려있는 구원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가는 곳마다 구원받아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그래서 복음은 점차 땅 끝을 향해 더 번져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바울과 그 일행들, 그리고 주님의 제자들이 마음을 다해 복음 전하는 일에 헌신했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 시대에도 이런 헌신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지상명령(至上命令)인 모든 민족이 복음을 듣고 구원받아 그리스도인으로 세워져 가는 사명이 성취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나 자신부터, 우리 교회부터 이러한 일에 깊이 헌신되길 소망합니다.
(안창국 목사)
#큐티
#매일성경
#라이트하우스고양
#안창국목사의말씀묵상
#사도행전18장12절부터23절
#고린도에서복음을전하는바울
#브리스길라와아굴라
#고린도의유대인들에의해고린도법정에고소당한바울
#고린도의법정에서는바울
#아가야총독인갈리오앞에서게된바울
#갈리오가바울에대한유대인들의고소를기각하다
#갈리오총독
#사람들에게폭행당하는회당장소스데네
#소스데네
#겐그레아
#에베소
#제2차전도여행을마치다
#끊임없이복음을전하는바울
https://cafe.naver.com/lighthousegoyang/13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