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사유와 문학의 그림자
- 책으로 만난 산문의 스승
책으로 만난 내 시의 스승이 정지용 시인이라면, 책으로 만난 산문의 스승은 당연히 법정스님이다.
두 사람을 직접 만나서 배운 것은 아니지만, 꼭 교실에서 만나 가르침을 받아야 스승이랴.
법정스님을 책으로 처음 만난 것은 부산기계공업고등학교를 다니던 시절 문고판 <무소유>에서 였다.
당시에 김형석, 안병욱의 수필과 함께 칼 힐티의 <잠 못 이루는 밤을 위하여>나 루이제 린저의
<왜 사느냐고 묻거든>, 헷세의 <인생론>등이 독서목록에 들어오던 때였다.
당시에 법정스님의 수필을 읽으면서 나는 그의 글이 나의 삶과 무관한 것처럼 보였다.
그러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제철공장에서 노동자 생활을 하면서,
인생이 이게 전부가 아닌데? 라는 생각이 들 때 법정의 글이 나에게로 왔다.
스무 살 무렵의 나는, 이렇게 수십 년 똑같은 직장에 다니고 돈을 벌다가
인생이 끝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방황하였다.
대학에 가지 못했던 나는, 그런 이유와 함께 마음이 더욱 처진 때였다.
그런 어느 날 청송 주왕산 대전사에 간 적이 있었다.
소심한 성격이어서 절 마당에서 머뭇거리기만 하다가 잠자리를 얻지 못하고,
주변 여인숙에서 하루를 머물면서 여행의 심사를 시로 적어서 시골의 동생들에게 보냈다.
그런지 며칠 후 비 오는 날이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예고도 없이 멀리 충청도에서 경상도 하숙집으로 들이닥쳤다.
성질이 대단해서 호랑이처럼 무섭던 아버지는 그날만은 눈물을 글썽이는 듯 손을 잡고는 “괜찮냐?” 고 하셨다.
나는 영문을 몰랐지만, 바닷가에 모시고 나가 밥을 먹는 중에 아버지는
내가 시골 여동생들에게 보냈던 엽서를 내놓으셨다. 내가 중이 되려는 줄 알고 하숙집으로 부리나케 찾아왔다는 거였다.
벚나무 열매인 버찌로 쓴 글이었으나, 내용도 그렇지만 버찌즙이 어떻게 보면 피가 바랜 것과 비슷하여 부모님이
놀랐던 것이다. 정말 외아들이 무슨 인생의 대단한 결단을 한듯 적잖이 놀랐을 것이다.
돌아보면 우스운 사건이었지만, 그 사건의 배후에는 나를 방황케 하는 법정스님의 <무소유>가 있었다.
이 책의 앞부분 <너무 일찍 나왔군> 이라는 곳에는 내 부모님의 과거를 가늠케 하는 뚝섬이야기도 나온다. 법정스님이 이 글을 발표한 1969년에도 뚝섬은 서울시 성동구이지만 나룻배를 타고 건너야 되는 곳이고,
전기도 전화도 수도시설도 없는 곳이다.
부모님은 고향인 청양에서 결혼을 한 직후 서울로 올라와 동대문운동장이 내려다보이는
돈암동 판자촌에서 나를 낳았다고 한다. 그
뒤에 뚝섬으로 가서 새끼공장을 했다는 것이다. 거기서 사업이 안되자 정리를 하고 홍성에 있는 큰할아버지 집으로 내려가 농사를 도와주며 있었는데, 어머니는 돈을 받으러 나를 업고 서울을 오르락내리락 하였다고 한다.
서울이라지만 전기도 전화도 수도시설도 없는 곳에서 살았을 부모님, 그리고 이십대 중반의 어머니가 어린 나를 업고 사람과 분뇨를 같이 실었다는 나룻배를 탔을 생각을 하면 돌아가신 어머니에게 미안한 마음으로 아득해진다.
나는 이글을 쓰면서 스님의 <설해목>을 읽어가다가 비슷한 사유를 만나 놀라고 말았다.
“겨울철이면 나무들이 많이 꺾이고 만다. 모진 비바람에도 끄덕 않던 아름드리나무들이 꿋꿋하게 고집스럽기만 하던 그 소나무들이 눈이 내려 덮이면 꺾이게 된다. 가지 끝에 사뿐사뿐 내려 쌓이는 그 하얀 눈에 꺾이고 마는 것이다. (...생략...) 정정한 나무들이 부드러운 것에 넘어지는 그 의미 때문일까” 라는 부분이다.
내 시 <폭설 아침> 과 우연히 겹치는 사유 때문이다. 이건 숫제 표절에 가깝다. 아예 시 전문을 소개하겠다.
부드러운 눈이
꼿꼿한 대나무를 모두 휘어놓았습니다
소나무 가지를 찢어놓고
강철로 만든 차를 무덤으로 만들었습니다
크고 작은 지붕들을
푹 덮어 평등하게 만들었습니다
개 한 마리 함부로 짖지않고
쥐새끼 한 마리 돌아다니지 않습니다.
따악!
앞산에서 설해목 부러지는 소리 한 번
고요가 모두를 이긴
폭설 아침입니다
오래전 스님의 글을 읽고 받아들였던 것이 마음속 어디쯤에 자리 잡고 있다가 튀어 나왔으리라. 이렇게 법정스님의 수필은 내 젊은 날 방황의 배경이 되었고 사유방식에 영향을 끼치며, 오래전부터 몇 가지 인생의 기준을 가르쳐 주었다.
그 첫째가 취미의 철학이 아닐까 한다. 법정스님은 <나의 취미는>에서 바람직한 취미를 자신만 즐기는 것이 아니라 고결한 인품을 함양하고 생의 의미를 깊게 하여 함께 살아가는 이웃들에게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쳐야 한다고 하였다.
나는 원래 다투기 싫어하고, 경쟁을 싫어하는 성격이어서 그런지 화투나 낚시, 당구, 바둑, 장기,
게임 등 잡기를 전혀 모른다. 그야말로 재미없는 인생이다.
술을 마실지언정 이런 잡기를 하지 않은 것은 원래의 성격에다 법정 스님의 글을 보면서 마음을 굳혔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니 당연히 학생이 아닌 청년노동자 시절 나의 취미는 사서삼경이었고, 나이를 좀 먹어서는 맨발 산행이었다.
법정스님은 글에서 낭비적이고 퇴폐적인 것까지 버젓이 취미로 여긴다며 골프를 취미로 하는 부류들을 비판하고 있다. 그 이유를 모두가 즐길 수 없는 특수 계층만의 취미요 오락이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그는 골프를 “인간의 죄를 벌하기 위해 스코틀랜드의 칼비니스트들이 창조해낸 전염병”이라는 인용까지 하며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그가 골프를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골프 자체가 아니라, 골프가 특수 계층만이 즐기는 것이고, 이러한 취미는 사회적 계층의식을 격화시켜 국력 약화를 초래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지금은 내 주변의 친구나 많은 사람이 골프를 즐기고 있고, 술자리에서 골프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다. 그렇지만 이들의 이야기에 흔들리지 않는것은 아직도 법정스님의 취미론이 나에게 작용하기 때문일 것이다.
두 번째는 공부방법일 것이다. 법정의 공부방법이란 특별한 어떤 것이 아니다. 스님은 <인형과 인간>의 서두에서 자신의 생각의 실마리가 버스 안에서 흔히 이루어진다고 하였다. 선실이나 나무 그늘에서 하는 사색은 한적하지만 어떤 고정관념에 갇혀 공허하거나 무기력해지기 쉽다는 것이다.
그런데 달리는 버스 안은 살아 움직이는 생동감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래 대학 3, 4학년을 빼고는 지금까지 직장을 다녀야 하는 처지다. 그래서 돌아보건대, 내 시 창작과 공부는 거의 대중교통이나 공휴일에 이루어졌다는 생각이다. 대중교통을 교실 삼아 공부를 했던 것이다.
나는 지금도 일산신도시와 서울을 오가는 버스나 지하철에서 여러 개의 무가지 신문을 읽고, 스크랩을 하고, 독서를 하고, 메모하고, 시를 읽거나 떠올린다. 가장 많이 공부를 하는 장소가 대중교통 안이다. 이렇게 한 권의 제법 두꺼운 책이 된 것이 최근에 낸 <이야기가 있는 시 창작 수업>이다.
이 책이 생동감 있고 쉽게 읽힌다는 평가를 받는 이유는 책상 위에서가 아니라, 생동감이 넘치는 대중교통 속에서 많은 사람과 부딪히고 자료를 만나면서 얻어진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세 번째는 사회를 보는 눈일 것이다. 나는 일찍이 법정스님의 글 여기저기서 사회를 걱정하고 세태를 비판하는 내용을 만났다. 그는 산속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고, 조계종 기관지인 <불교신문> 주필을 하고, 함석헌 장준하 등과 ‘민주수호국민협의회’를 결성하여 유신철폐 개헌 서명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또 민주화운동에 앞장섰던 <씨알의 소리>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기도 하였다. 세상과 불교를 바꾸려고 노력한 개혁가였던 것이다. 그의 글은 처음부터 사회의 위화감을 조성하는 취미도 그렇지만, 난개발로 인한 환경파괴와 부동산 정책등 여러 가지 사회정치적 문제를 끊임없이 지적해 왔다.
이를테면 <무소유>의 첫 글인 <복원 불국사> 마지막 즈음에도 천 년 묵은 절의 분위기를 망가뜨린 것을 서운해하고 아쉬워한다. 복원된 불국사에서는 그윽한 풍경소리 대신 씩씩하고 우렁찬 새마을 행진곡이 울려 퍼지는 것 같다며, 개발독재의 풍경을 은근히 풍자하고 있는 것이다.
다른 글 <침묵의 의미>에서는 침묵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도, 마땅히 입을 벌려서 말을 해야 할 때도 침묵을 고수하려는 것은 비겁한 침묵이라고 하였다. 이 비겁한 침묵이 우리 사회를 얼룩지게 한다는 것이다.
그는 폐암 투병 중인 2008년 말 출간한 책 ⌜아름다운 마무리⌟의 <한반도 대운하 안 된다>에서 정부의 4대강 사업을 비판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의 공약사업으로 은밀히 추진되고 있는 한반도 대운하 계획은 이 땅의 무수한 생명체로 이루어진 생태계를 크게 위협하고 파괴하려는 끔찍한 재앙이라는 것이다.
법정스님은 운하를 환영하는 사람들이 교통수단으로 이용하려는 것이 아니라 개발 사업으로 치솟는 땅값에 관심이 있는 투기꾼들과 건설공사에 관심이 있는 일부 건설업자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법정스님은 개발 욕구에 불을 붙여 국론을 분열시키면서까지 사업을 추진하는 이런 무모한 국책사업이 계속된다면 커다란 재앙을 초래할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그래서 법정스님은 이런 무모한 구상과 계획은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우리가 사전에 막아야 하고, 이것이 우리의 신성한 임무라는 글을 남기셨다.
돌아보건데 이러한 법정스님의 사회관은 내 시의 사회정치적 상상력에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나는 내시가 사회정치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는 이유로 오래전 직장에서 해고되어 한때 생활의 어려움을 겪기도 하였다.
그러나 어려움만 겪은 것은 아니다. 나는 지난 2008년 봄 경부대운하 반대를 하러 한국작가 회원들과 낙동강 걷기에 참여한 적이 있었다. 돌아와서 시를 한 편 써서 발표하고 문학상을 받기도 하였으니 법정스님의 덕분이 아니고 무엇이랴.
그때 <놀란 강>이라는 제목의 시를 썼다. (시 원문 생략)
법정스님이 돌아가신 지 한 달여가 되어가는 지난 4월 3일, 나는 여주 신륵사 앞 여강선원 앞에서 환경단체와 벌이는 4대강 사업 반대 집회에 한국작가회원들과 다녀왔다. 거기에 가서 법정스님이 항상 우려하던, 생명을 경시하는 개발지상주의 정부의 만행 현장을 확인하고 돌아온 것이다.
네 번째는 열린 종교관이다. 법정스님의 글 <불교의 평화관>은 나의 종교관에도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전쟁과 대량 학살의 상황에서 종교가 부동자세로 청산 백운이나 바라보며 초연하려 한다면 그런 종교는 없는 것만 못하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또 그는 일체중생이 부딪치고 있는 문제는 종교의 과제이기 때문에 평화에 대한 염원과 노력은 오늘의 종교가 문제 삼아야 할 가장 중요한 과제라는 것이다. 함께 살고 있는 이웃들에게 보시와 자비는 물론 국제간에도 경제적인 불균등한 분배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이러한 불균등한 분배가 평화를 깨뜨린다는 것이다.
거기다가 종교라는 것이 하나에 이르는 개별적인 길이며. 그러므로 종교는 인간의 수만큼 많다고 하였다. 그의 이런 글을 읽으면서 나는 다른 종교에 대한 이질감을 갖지 않고 열린 종교관을 갖게 되었을 것이다. 실제 나는 이슬람 사원에 가면 절을 하고, 성모 마리아나 예수상 앞에서는 손을 공손히 모은다.
법정스님의 수필에 애정을 갖고 그의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노력한 나의 몇 가지가 있다. 문학교실에서 만난 사람들 가운데 수필을 공부하는 사람들에게는 집에 있던 법정스님의 수필을 가져다주기도 하고 사서 주기도 하면서 꼭 필사를 하면서 문장공부를 하라고 한 것이 한두 번이 아니다. 스님이 돌아가시면서 책을 출판하지 말라는 유언을 남겼다는 기사를 읽고 책장을 뒤져보니, 스님의 책은 돌아가시기 전에 다른 사람에게서 선물로 받은 <아름다운 마무리> 한 권 뿐이었다.
강의실에서 만난 학생들에게는 법정스님 수필을 석사논문으로 쓸 것을 권유하여, 그는 결국 국내에서 두 번째로 법정수필을 석사논문으로 쓴 사람이 되었다.
2009년 만해축전에서는 그동안 발표한 법정스님 수필 전체를 생태적 상상력 관점에서 조명하는 기획을 하여 ‘생태사상의 활불’로 그를 자리매김하였다. 물론 그 발제 논문을 쓰신 분은 그 논문으로 문학상을 수상하였다.
불교지식이 부족한 내가 글을 쓸 때 자주 열어보는 책 가운데 하나는 1963년에 나온 <우리말 팔만대장경>이다. 당시에 법정스님이 해인사 한직으로 있으면서 청담스님, 성철스님과 함께 편찬위원으로 참여했던 책이다. 헌책방에서 구한 이 책은 색인이 잘 되어있어 나에게 많은 도움이 되는 책이다.
이렇게 나는 법정스님을 십 대 후반에 책으로 만나 오십의 나이에 이르렀다. 스님의 문장과 정신은 내 사유방식과 문학의 그림자로 평생을 따라다니고 있다.
- 시인 공광규
겨울 숲
법 정
겨울바람에 잎이랑 열매랑 훨훨 떨쳐버리고 빈 가지만 남은 잡목숲. 가랑잎을 밟으며 석양에 이런 숲길을 거닐면, 문득 나는 내 몫의 삶을 이끌고 지금 어디쯤에 와 있는가를 헤아리게 된다. 내게 주어진 시간을, 한번 지나가면 다시 돌려받을 수 없는 그 세월을 제대로 살아왔는가를 돌이켜볼 때 나는 우울하다.
가랑잎 밟기가 조금은 조심스럽다. 아무렇게나 흩어져 누워 있는 가랑잎 하나에도 존재의 의미가 있을 것 같다. 우리가 넘어다볼 수 없는 그들만의 질서와 세계가 있을 법하다. 이 세상 모든 것은 있어야 할 필연적인 이유 때문에 거기 그렇게 존재한다.
지난가을 말빚을 갚느라고 거의 산거(山居)를 비우다시피 하면서 여기저기 시정(市井)을 동분서주했었다. 일을 마치고 산으로 돌아오자 그사이 잎이 물들었다가 벌써 낙엽이 지고 있었다. 숲을 스치고 지나가는 밤바람소리에 한동안 잊고 지내던 내 속뜰이 되살아났다. 평화와 정적이 깃든 그 내면의 여로(旅路).
산에서 듣는 발마소리는 귓전만을 스치는 것이 아니다. 저 뼛속에 묻은 먼지까지도, 핏줄에 섞인 티끌까지도 맑게 씻어주는 것 같다. 산바람 소리는 갓 비질을 하고 난 뜰처럼 우리들 마음속을 차분하고 정결하게 가라앉혀 준다. 인간의 도시에서 묻은 온갖 오염을 씻어준다. 아무런 잡념도 없는 무심(無心)을 열어준다.
바람, 눈에 보이지도 붙잡을 수도 없는 나그네. 보이지도 붙잡히지도 않기 때문에 그것은 영원히 살아서 움직인다. 그리고 그 손길이 닿는 것마다 생기를 돌게 한다. 이 세상에 만약 바람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 살아 있는 것은 시들시들 질식하고 말 것이다. 모든 것은 빛이 바래져 재가 되고 말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손에 붙잡히지 않는다고 해서 없다고 할 수 있을까. 보이지 않는 것을 바탕으로 보이는 것이 있게 되고, 들리지 않는 것을 의지해서 들리는 것이 있게 되는 것이다.
인도의 구루(종교적인 교사)인 라즈니쉬는 이런 표현을 하고 있다.
한 방울 물을 잘못 엎지를 때
우주 전체가 목마를 것이다.
한 송이 꽃을 꺾는다면
그것은 우주의 한 부분을 꺾는 일
한 송의 꽃을 피운다면
그것은 수만 개의 별을 반짝이게 함이어라.
아, 이 세상 모든 것은 이처럼
서로서로 밀접한 관계로 이루어졌느니.
흔히 겪는 일인데, 산을 찾아온 사람들 가운데는 마루에 걸터앉아 앞산을 내다보기가 바쁘게 ‘왜 이렇게 조용하지요?’라든가 ‘너무 고요해 안 되겠는데요’라고 하면서 무엇에 쫓기듯 안절부절 불안해하는 부류들이 있다. 물론 그들은 도시에 사는 똑똑하고 영리한 사람들. 말하자면 도시형 관념적인 지식인들이다. 그들은 도시의 혼잡과 소음에 잔뜩 중독된 나머지 본래적인 질서와 고요를 까맣게 잊어버린 것이다. 어디에도 의존함이 없이 순수하게 홀로 있는 시간을 받아들일 수가 없는 것이다. 무엇엔가 기대지 않고는 홀로 설 수가 없다.
그래서 자연 그대로의 고요를 감내할 수 없어 흐르는 시냇물소리가 묻히도록, 맑고 투명한 새소리가 무색하도록 트랜지스터를 틀어대거나 고래고래 고함을 질러 그 불안으로부터 벗어나려고 한다. 이런 사람들을 가리켜 어떻게 만물의 영장(靈長)이라고 할 수 있을까, 현대인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상하게 정말 이상야릇하게 변질되어 가고 있다.
왜 오늘날 우리들은 ‘있음’에만 의존하는 것일까.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고 손에 잡히는 현상에만 매달리려는 것일까. 침묵이 없이 어떻게 인간의 언어가 발음될 수 있단 말인가. 어느 하나 허(虛)를 배경 삼지 않은 실(實)이 존재할 수 없다.
《금강경》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범소유상(凡所有相) 개시허망(皆是虛妄)
약견 제상비상 즉견여래(若見 諸相非相 卽見如來)’
보고 듣고 만질 수 있는 사물이나 현상은 모두가 허망한 것, 그러니 제상(諸相)과 비상(非想), 즉 현상과 본질을 함께 볼 수 있다면 비로소 우주의 실상(實相)을 바로 보게 될 거라는 뜻이다. 표현을 달리한다면, 어떤 사물이나 현상을 바로 인식하려면
드러난 단면만 보지 말고 그 배후까지도 함께 꿰뚫어 볼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우리 불일암 둘레의 숲 속에는 산토끼와 꿩들이 살고 있다. 자기들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나를 믿어서인지, 나를 보고는 놀라 달아나는 일이 없다. 눈이 많이 내려 쌓일 때면 가끔 콩 같은 걸 뿌려주는데 그런 때는 가까이 다가와 마음 놓고 주워 먹는다. 이런 걸 지켜보고 있으면 가슴에 훈훈한 물기가 도는 것 같다. 그러나 낯선 사람을 보고는 이내 달아나버린다. 어쩌다 마을 사람들이 올라와 뜰에서 어정거리는 꿩이나 토끼를 보면 그들은 반색한다. 식탁의 요릿감으로만 보여 잡아먹을 궁리나 하지 짐승이 같은 생물인 사람을 믿고 따르는 이웃의 정은 기르려고 하지 않는다. 순박한 짐승들은 이심전심(以心傳心)의 묘리를 직감적으로 터득하고 있는 모양이다.
12월 초순, 요즘도 대숲 머리에 있는 두 그루 감나무에는 감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강추위가 오기까지는 얼마 동안 더 달려 있을 것이다. 더러는 꿩과 새들이 쪼아 반쯤 허물어진 것도 있지만, 나머지는 말짱한 그대로다. 벌써부터 보는 사람마다 왜 따지 않느냐고 입맛을 다시곤 했지만, 나는 과일을 입으로만 먹지 않고 눈으로도 먹을 수 있는 비밀을 알고 있다. 실은, 내 뜰에 놀러 온 새들에게 따로 대접할 게 없으니 감이나 먹고 가라고 남겨둔 것이지만, 나는 나대로 하루에도 몇 차례씩 초겨울 하늘 아래 빨갛게 매달려 있는 감을 바라보는 즐거움을 누리고 있으니 일거양득이 아닐 수 없다.
앞산에 눈이라도 하얗게 내려 쌓이는 날, 빈 가지 끝에 매달린 저 감의 빛깔을 본 사람이면 잘 알 것이다. 그 기막힌 빛의 조화를. 큰절 문수전에 살던 혜담 스님은 한해 겨울눈이 내리는 날이면 그 신비로운 감의 빛깔을 보기 위해 비탈길을 미끄러져 가면서 일부러 올라오곤 했었으니까. 겨울철 빛깔의 조화치고는 일품이 아닐 수 없다.
입으로만 먹고 말았다면 어떻게 이토록 눈이 시리도록 아름다운 감 맛을 볼 수 있었겠는가. 예이츠의 시에선가, 술은 입으로 들고 사랑은 눈으로 든다더니, 아름다움 또한 눈으로 드는 것일레라.
겨울 숲은 부질없는 가식을 모조리 떨쳐버리고 본질적인 것으로만 집약된 나무들의 본래 면목. 숲은 침묵의 의미를 알고 있다. 침묵을 딛고 일어선다. 봄날 움을 틔워 초록빛 물감을 풀어 수줍게 설레다가, 여름에는 뜨거운 태양을 받아 서늘한 그늘을 대지에 드리운다. 가을이 되면 열매를 익히면서 이 골짝 저 골짝에서 울긋불긋 서로 손짓하다가 마침내 미련 없이 낙하(落下). 머리와 팔을 허공에 치켜든 채 이제는 말없이 묵상에 잠겨 있다.
산다는 것은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창조하는 일. 그 누구도 아닌 자신이 자신에게 자신을 만들어준다. 이 창조의 노력이 멎을 때 나무건 사람이건 늙음과 질병과 죽음이 온다.
겉으로 보기에 나무들은 표정을 잃은 채 덤덤히 서 있는 것 같지만, 안으로는 잠시도 창조의 일손을 멈추지 않는다. 땅의 은밀한 말씀에 귀 기울이면서 새봄의 싹을 마련하고 있는 것이다. 시절 인연이 오면 안으로 다스리던 생명력을 대지 위에 활짝 펼쳐 보일 것이다. (198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