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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모든 은택을 잊지 말아라
시편 103:1-5(22) 25, 304, 295, 429
사람들은 누군가로부터 은혜를 받고 존재하며 살고 있습니다. 은혜를 받지 못했다면 세상에 존재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누군가로부터 받은 은혜를 아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받은 은혜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감사도 없고 존귀함도 모릅니다.
인간관계에서 부모로부터 제일 많은 은혜를 받았을 것입니다. 부모로부터 받은 은혜는 너무 크고 많아서 다 알 수 없지만, 조금이라도 아는 것만큼 부모를 감사하고 존경하며 섬기게 됩니다. 은혜를 모르기 때문에 부모를 원망하고 미워합니다.
성도는 하나님으로부터 많은 은혜를 받은 자들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혜를 아는 것만큼 하나님을 감사하며 섬깁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모르면 하나님께 감사도 하지 않고 섬길 줄도 모릅니다.
다윗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혜가 너무나 크고 많았음을 깨닫고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의 거룩한 이름을 송축하라”라고 찬송을 불렀습니다.(1) 단순한 입술의 찬송이 아니라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영혼의 찬송을 불렀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혜를 깨달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알지 못하면 찬송도 감사하는 마음도 없을 뿐 아니라 예배도 가장되고 거짓됩니다.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의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2)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혜를 알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에게 찬송을 불러 드리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혜를 알지 못하고 부르는 찬송은 기계적인 음악이나 노래에 불과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모든 은혜를 잊지 말고 기억하고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성도로서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택을 잊지 않고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부모를 원망하는 자녀들은 부모의 은혜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낳은 아이를 키울 수가 없어서 버려진 아이가 외국으로 입양되어 잘 자랐습니다. 그는 자신을 낳아 준 부모가 누군가를 알기 위해 한국에 와서 찾아다니다가 경찰의 도움으로 어머니를 찾았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딸이 ‘왜 나를 버렸냐?’고 원망할까봐 딸을 반가워하기보다는 고개를 들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딸은 자신을 낳아 준 것만으로 감사하다고 하며 눈물을 흘리며 반가워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다윗은 ‘그의 모든 은택을 잊지 말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모든 은택을 기억하며 감사하라’는 말입니다. ‘恩澤’이란 은혜 恩자와 못 澤자로 ‘은혜의 연못’이란 말입니다. ‘恩澤’이란 받은 은혜가 너무나 많아서 마치 물이 가득찬 연못과 같다는 뜻입니다.
다윗은 자신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총이 너무나 크고 많았다는 것을 알고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고 여호와 하나님에게 감사와 찬양을 하였습니다.(1) ‘송축’이란 하나님의 사랑과 감사에서 우러나오는 내적찬양을 의미합니다. 내 마음속에 하나님의 사랑과 감사로 충만할 때, 그로부터 자연스레 터져 나오는 찬양을 송축이라고 합니다.
다윗이 잊지 못했던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택은 왕이 되고, 부자가 되어서가 아닙니다. 권력을 잡아서, 전쟁에서 이겨서도 아닙니다.
다윗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잊지 말아야 할 은택을 네 가지로 말했습니다. 첫째로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둘째는 모든 병을 고치시며, 셋째는 관을 씌우시며, 넷째로 소원을 만족하게 하시는 것이라고 했습니다.(3-5) 이 은택들은 자신이 스스로 빚어 만든 건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거저 주신 은택들입니다.
이와 같은 은택을 다윗만 받은 것이 아닙니다. 우리도 이와 같은 은택을 받았습니다. 다만 우리가 알지 못했을 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그의 모든 은택을 잊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택 중에 그중에 가장 크고 첫째가 되는 것은 죄사함 입니다.(3) “그가 내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죄사함을 받지 못했다면 우리는 은택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죄로 인한 저주와 형벌의 대상일 뿐입니다.
다윗은 이새의 막내 아들로 태어나서 아버지로부터나 형들로부터 별로 사랑을 받지 못했습니다. 형들은 다들 집에 있고 어린 다윗은 들에서 밤낮 아버지의 양들을 지켰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으로부터 특별한 사랑을 받고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과 함께 하시므로 이스라엘을 대적하는 이웃 나라들과 싸워 한 번도 패한 일이 없었습니다. 전쟁에서 승리하므로 이스라엘은 부강한 나라가 되었고, 다윗은 매우 훌륭한 왕이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큰 죄악을 범했습니다. 충신의 아내인 밧세바를 취한 것과 그의 남편 우리아를 죽게 한 것입니다. 다윗은 왕으로서는 있을 수 없는 엄청난 죄를 범하고도 그의 죄를 숨겼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아시고 나단 선지자를 다윗에게 보내시고 그의 죄악을 무섭게 책망했습니다. 나단으로부터 무서운 책망을 듣고 다윗은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 고백하고 회개하였습니다. 그래서 나단 선지자는 다윗에게 ‘여호와께서 당신의 죄를 사하셨다’고 말했습니다.(삼하12:13)
다윗은 자신의 죄악을 고백하고 용서를 빌었고, 여호와께서 다윗의 죄를 사해주셨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죄악을 사해주신 여호와를 잊지 않고 기억하며 진심으로 감사하며 찬송을 불렀습니다.
‘모든 죄를 사하시며’란 다윗이 바셋바를 취하고 사람을 죽인 그 죄뿐 아니라 계속되는 그의 모든 죄까지도 사해주셨다는 말입니다. ‘모든 죄’란 과거와 현재에 범한 죄뿐 아니라 끊임없이 계속되는 미래의 죄악까지도 사해주시는 하나님의 은총을 강조하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셀 수 없는 많은 죄를 짓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긍휼히 여기사 계속하여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해 주셨습니다. 지난 날에 지었던 죄악을 사하여주실 뿐 아니라 앞으로 짖게 되는 죄까지도 이미 다 사해주셨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지난 날에 지었던 죄뿐 아니라 앞으로 짖게 되는 모든 죄까지도 이미 다 사해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말고 감사하며 영광을 돌려 드리어야 합니다.
다윗은 계속해서 우리가 범하는 죄에 대하여 여호와께서 어떻게 하셨는가를 말했습니다. “여호와는 긍휼이 많으시고 은혜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고 인자하심이 풍부하도다”라고 말했습니다.(8)
“자주 경책하지 아니하시며 노를 영원히 품지 아니하시리로다”.(9) “우리의 죄를 따라 우리를 처벌하지는 아니하며 우리의 죄악을 따라 우리에게 그대로 갚지는 아니하셨으니”(10)라고 말했습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죄를 범할 때마다 채찍으로 때리고 벌하신다면 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이고 책망을 듣고 채찍을 맞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범하는 죄를 모르신 것이 아닙니다. 다 지켜보셨고, 다 아시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하시지 않으시며 죄를 갚지 않으십니다. 왜냐고요. 이미 죄를 다 용서하셨기 때문입니다.
“동이 서에서 먼 것 같이 우리의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으며”라는 말씀은 마치 동이 서에서 먼 것 같이 우리는 죄와는 아무 상관없는 것처럼 말씀하셨습니다. 이미 우리의 죄를 다 용서하셨기 때문에 죄와 상관없는 의로운 자로 인정하신다는 말씀으로 이해합니다.
죄가 많을지라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죄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의로운 자로 취급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베드로가 주님을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한 것은 엄청난 죄가 아닐 수 없습니다. 베드로가 이처럼 엄청난 죄를 범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한 번도 ‘네가 나를 모른다고 왜 부인했느냐’고 하시며 꾸짖거나 책망하셨다는 말씀을 찾을 수 없습니다.
오히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물으셨고 ‘내 양을 먹이라’는 사명을 주셨습니다. 엄청난 죄를 범했음에도 왜 책망이나 꾸지람도 하지 않으셨습니까? 이미 그의 모든 죄를 사해주셨기 때문입니다.
죄를 범했음에도 경책도 하지 않으시고 처벌도 아니하시고 갚지도 아니하시는 것은 우리가 죄를 범하지 않아서가 아닙니다. 이미 우리의 모든 죄를 다 용서하셨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의 조카 롯은 무법한 자들의 음란한 행실로 멸망 당해야 할 소돔과 고모라에 들어가서 그들과 함께 살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유황불로 멸망하실 때 천사들을 보내어 롯과 두 딸을 구원했습니다. 베드로는 롯을 “의로운 롯”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벧후2:7)
우리가 아직도 죄중에 살고 있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죄악을 사하여 주셨으므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죄인처럼 여기지 않으시고 의인으로 취급하신다는 것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다음으로 우리의 모든 병 고치신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3) ‘모든 병’이란 육체적인 병뿐 아니라 모든 내면적인 고통을 가리킵니다. ‘고치다’라는 말의 원문 ‘라파’는 단순히 육체적인 질병을 고쳐주실 뿐 아니라 창조의 상태로 완전한 회복을 의미합니다.
죄를 범한 우리의 체질은 먼지와 같으며, 인생은 풀과 꽃과 같은 존재입니다.(14,15) 먼지와 풀과 꽃과 같은 존재에 불과한 우리를 하나님께서 처음 인간을 만드셨던 것과 같은 완전한 인간으로 고쳐주신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드셨던 그 아담과 하와와 같은 몸으로 부활의 날에 고쳐주실 것입니다. 에덴동산에 살았던 그때의 그들과 같은 몸으로 고치실 것입니다. 영원히 죽지 않고 하나님과 함께 살 수 있는 신령한 몸으로 고치실 것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셋째로 우리에게 관을 씌워주시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네 생명을 파멸에서 속량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라고 말씀하셨습니다.(4) ‘생명의 파멸’이란 ‘사망’이나 ‘음부’를 의미합니다. 마땅히 죄로 인하여 음부에 던져 파멸당해야 할 우리를 속량하여 주시고 머리에 관을 씌워주실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관’은 왕과 같이 높임을 받을 것을 의미합니다. ‘면류관’, ‘생명의 면류관’을 씌워주실 것입니다. 다윗은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 ...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시8:4,5)라고 감사하며 찬송을 불렀습니다.
죄로 인하여 마땅히 죽음과 음부에 던져져야 할 존재임이도 불구하고 파멸에서 속량하시고 영광의 관을 씌워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소원을 만족하게 하여 주시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하게 하사 네 청춘을 독수리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라고 말씀했습니다.(5) ‘좋은 것으로 만족하게 하신다’는 말씀은 필요한 모든 것을 조금도 부족함이 만족하게 하시는 천국에서 우리의 삶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들어가서 영원히 살게 될 천국에는 우리가 원하는 것들이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곳입니다. ‘청춘을 독수리같이 새롭게 하여 주실 것’이란 말씀은 지금은 늙고 약하지만 천국에서는 독수리같이 청춘을 새롭게 하여 주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좋은 것으로 만족하게 하시고 새롭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택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는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택을 잊지 맙시다. 죄악을 사하여 주시고, 모든 병을 고치시고, 속량하시고 관을 씌우시며, 좋은 것으로 만족하게 하시는 그 모든 은택을 잊지 말고 기억하며 여호와를 송축합시다. 내 속에 있는 것들이 다 함께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을 송축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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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은혜의 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설교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