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고등학교 다닐 때에 기술을 가르쳤던 공업 선생님의 말씀이 떠오릅니다.
인문계 고등학교였지만.....
당시 예비고사 과목이 아니었던 공업을 의무적으로 배웠습니다.
공업 선생님의 충격적인 말씀은
대구에 대구 백화점과 동아백화점을 이어 중앙로 네 거리에 미도 백화점이 생겼었는데
수업시간에 백화점의 "동선 구조"가 잘못되어 문을 닫고 망할 것이라고 예언적인 말씀을 하였습니다.
그 후 몇 년 뒤에 미도 백화점은 문을 닫았고.....
지금은 과거에 미도 백화점이 있었는지조차 아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로 까마득한 과거가 되었습니다.
당시 공업 선생님의 동선 구조가 잘못되었다고 지적한 탁월한 안목은
비록 수업 시간에 여담으로 하였던 말씀이었지만 그대로 적중되었습니다.
동선 구조는 건축의 디자인에도 사활을 결정짓는 중요한 문제이지만
성경의 동선 구조는 하나님의 뜻을 알고 발견하는 중요한 열쇠입니다.
그 가운데서도 사도행전은
구속사적인 성취를 하나님의 나라로 열어가는 성령의 역동적인 동선 구조를 선명하게 가졌습니다.
성경의 구속사적인 이해를 언약 신앙의 열매로 갖는 사도행전의 하나님 나라는
성령 세례의 역동적인 동선을 복음 전파의 경로로 그려내고 있습니다.
사도행전을 기록한 누가는
성령의 역동적인 사역을 공간적인 입체를 가진 동선 구조을 현제적 시점으로 완벽하게 그려 놓았습니다.
글을 쓰는 사람의 동선이 역동적이지 못하면
그 글은 생명력을 잃게 될 것입니다.
사도행전은 신약시대 사도들의 행적을 기록한 역사서이지만
단순히 시대적으로 사건별로 인물별로 나열한 것이 아니라 성령의 역사하시는 동선을
흐르는 시간이 아닌 움직이는 공간의 입체적 느낌으로 기록하였습니다.
이것은 성령의 역동적인 사역을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현재적인 시점으로 느끼게 하는 탁월한 능력이요, 안목이 아닐 수 없습니다.
시간의 흐름을 공간의 이동으로 느끼게 하여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현재적인 장소의 이동으로 역사하시는 성령의 은혜를
하나님 나라의 확장으로 기록한 것입니다.
사도행전을 읽으면서 성령의 역사를 과거의 사건으로 이해하는 사람은
사도행전을 기록한 누가의 동선 구조를 발견하지 못한 것입니다.
문득.....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기록한 "누가,
그는 과연 누구인가?"란 제목의 글을 쓰고 싶어집니다.
공관복음의 기록을 대조하면서.....
누가의 역동적인 화법을 탐구하는 것도 좋은 공부일 것입니다.
누가는 성령의 구원 역사를
마치 태평양에서 발생한 태풍이 우리나라를 향해 돌진하는 것을 예상 경로를 보여주며 일기 예보를 하듯
시간이 아닌 공간의 이동을 흐르는 시간으로 녹여내어 현재적 시점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고난 받으신 후에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살아 계심을 나타내사
사십 일 동안 그들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고.....
사도와 함께 모인 가운데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의 증거로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고......
보혜사 성령이 강림하여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는 메시야 사역을 이어 갈 것이라고 약속하였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받은 사도들과 믿는 성도들은 다 함께 마가 요한의 다락방에서
약속을 기도하면서 믿음으로 기다렸습니다.
오순절 날이 이르러 성령께서 강림하셨고.....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증거하는 복음 사역을 하나님 나라의 확장으로 가지게 되었습니다.
사도들과 120여명의 성도들에게 임한 성령의 세례는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여 복음을 믿는 사람들에게 사람들에게 임하였습니다.
오순절 성령 강림의 사건은 마가 요한의 다락방에서 시작하여 오순절 예루 살렘에 모인 사람들에게 임하였고
헬라파 유대인도 아니었던 완전 이방인 로마의 백부장 고넬료의 가정에 베드로를 통하여 역사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아볼로가 전도한 에베소 교회에 사도 바울을 통하여
오순절 성령 강림의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더 나아가 사도바울의 4차에 이르는 전도 여행을 통하여
아시아와 유럽지역에까지 성령의 강림 사건이 나타났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의 입술에 약속으로 있었던 성령의 세례는 마가요한 다락방과 오순절의 예루살렘,
그리고 고넬료의 가정과 에베소 교회에 공간적인 동선의 이동으로 나타났습니다.
사도행전의 중심은 사도들의 활동이 아니라
성령의 주권적인 구원의 역사를 하나님의 나라로 이루어 가는 역동적인 동선이 중심입니다.
공간의 거리를 시간의 흐름으로 녹여내는 성령의 구원 역사는 역동적인 현재 시점의 움직이는 동선으로
사도행전을 읽고 듣는 모든 사람들에게 현재적인 하나님 나라로 임하는 놀라운 기적을
구원의 은혜로 경험하게 합니다.
성령의 역사를 공간의 거리로 흐르는 것을 기록한 누가는
구원사적인 복음의 이해를 분명한 사관으로 가졌습니다.
복음 전파의 역동적인 경로는 단순한 종교적 열정이 아니라
복음으로 역사하시는 성령의 역동적인 사역인 것을 동선으로 느끼게 하였습니다.
스데반과 야고보가 순교하고 예루살렘교회가 핍박으로 흩어지는 가운데서도
복음 전파의 동선을 성령의 역동적인 사역으로 기록하였습니다.
구속사의 흐름을 공간의 동선으로 그려놓은 누가의 사도행전은
성령의 구원사역을 시간의 흐름이 아닌 아닌 공간의 동선으로 현재성을 강조하였습니다.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라는 말은 역사의 흐름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공간의 거리를 말하는 것입니다.
산 자의 하나님이라는 부활 신앙은 과거와 미래를 잇는
영원한 현재, 곧 공간적인 신앙입니다.
하나님의 영원한 현재는
하나님 나라의 속성이 역사적인 시간의 흐름이 아니라 공간적인 통치라는 사실을 교훈힙니다.
구속사적인 언약 신앙을 구원의 열매로서 성령의 사역을 현재성을 강조하는 누가의 신앙은
참으로 경이로운 신앙, 그 자체가 아닐 수 없습니다.
누가는 마치 성령의 사역과 비슷한 성향을 가졌습니다.
성령은 스스로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오직 예수 그리그도의 십자가 복음을 듣고 믿어 인치는 역사를 구원의 보증으로 행하십니다.
성령의 충만한 사역은 성령의 은사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음으로 영접하여 영원한 구원을 이루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누가는 자신이 누구인가를 한 번도 말하지 않으면서
누가복음으로 예수님의 복음을 담아내고 사도행전으로 성령의 역사를 온전히 담아내었습니다.
성경의 탁월한 저자로서 누가는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성령의 역사로
교회와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가는 공간적인 동선을 완벽하게 그려 내었습니다.
누가행전은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을 성령의 역사로 모아낸 위대한 증거입니다.
오늘날 강단의 설교는 누가행전의 동선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역동적인 성령의 사역으로 선포하지 못하는 안타까움을 참으로 애석하게 느낍니다.
누가의 동선 구조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성령의 사역으로 선포하는 설교자는
초록의 푸른 향기로 눈을 씻고 찾아 보아도 찾을 수 없습니다.
모두가 유대인 거짓 선지자 바예수와 마술사 시몬을 바울로 혼합한 시스템을 가지고 있어
누가의 아름다운 복음전파의 동선을 성령의 역사로 발견하지를 못하였습니다.
안타까움의 끝을........
누가의 역동적인 성령의 역사를 공간적인 입체를 가진 동선으로 느껴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