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나라 충청도 계룡산 남쪽에 있는 논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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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jy9713
2023.12.30. 22:04조회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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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룡산 남쪽에 있는 논산
계룡산은 계룡시를 남쪽에 끼고 동쪽으로 대전, 서남쪽으로 논산, 서북쪽으로 공주에 그 산자락을 펼치고 있으며, 금남정맥 줄기를 따라 전라북도 대둔산 아래 금산군으로 이어진다.
계룡산의 서남쪽에 자리한 논산은 논강평야 가운데 위치하고 그 서쪽에 강경이 있으며 북쪽으로는 공주와 경계가 닿아 있다. 계룡산의 넷째 연봉에서 한 가지가 서쪽으로 내려와서 경천촌(敬天村)이 되었는데, 판치의 남쪽에 있다. 그 일대 상월면과 노성면의 땅이 기름지고 웅장한 계룡산이 버티고 있어 가히 살 만한 곳이라고 볼 수 있다. 『택리지』에는 이렇게 기록한다.
동쪽은 공주의 대장촌(大庄村)이고, 서쪽은 이산(尼山, 지금의 논산시)과 석성(石城, 지금의 부여군) 두 고을이며, 또 남쪽은 연산(連山, 지금의 논산시)과 은진(恩津, 지금의 논산시) 두 고을이다. 이산과 연산은 산이 가깝지만 땅이 기름지고, 은진과 석성은 평야지대에 있지만 땅이 메마르며 수해와 가뭄 재해가 자주 일어난다. 이 네 고을은 경천과 통하면서 하나의 평야로 이루어지며, 바다 조수가 강경을 거쳐 드나들기 때문에 들 가운데 여러 곳의 냇물과 골에 배가 통행하는 이익이 있다. 강경은 은진의 서쪽에 있다.
계룡산 단풍 © 유철상
은진ㆍ연산ㆍ이산이 논산시에, 석성이 부여에 편입된 것은 일제의 행정구역 통폐합 때였다.
논산 일대에는 세 가지 명물이 있는데 그 유래가 재미있다. 이 지역 사람들은 죽어서 염라국에 가면 염라대왕이 “네가 연산의 가마솥과 은진의 미륵과 강경의 미내다리를 보았느냐?” 하고 물어본다 하여 반드시 논산에 있는 이 세 곳을 구경한다고 한다.
가마솥이란 예전에 연산공원에 있다가 1981년에 개태사(開泰寺)로 옮겨진 철솥을 말한다. 이 솥을 가마솥, 대부 또는 대철이라고도 부르는데, 지름이 3미터이고, 높이 1미터, 둘레 9.3미터의 큰 솥이다. 본래 천호리 개태사에 있던 것이지만 개태사가 폐사된 후 큰 장마에 떠내려가 4킬로미터쯤 떨어진 연산리 앞 냇가에 묻혀 있던 것을 일제강점기에 연산공원으로 옮겨두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일본인들이 이 솥으로 무기를 만들기 위해 솥을 깨려는데, 별안간 일하던 사람이 병들어 죽고 그 일에 관계했던 사람이 모두 중병에 걸렸으므로 크게 놀라 깨지 못했다는 일화가 전해온다. 이 솥이 『여지도서』에는 다음과 같이 실려 있다.
개태사 대정(大鼎): 개태사의 옛 터에 큰 솥이 있었다. 둘레는 10여 파(把)나 되며, 높이는 1장이나 된다. 백성들 사이에 전하기를, 개태사가 한창 왕성하던 때에 승려들이 장(醬)을 졸이던 그릇이라고 한다. 주조해 만든 지 이미 오래되었지만 꽤 신령스럽고 이상한 점이 있다. 큰 가뭄을 만날 때마다 백성들이 다른 곳에 옮겨다두면 그때마다 비가 내렸다. 지금은 관아의 서쪽 2리쯤에 있다. 요 몇 년 사이에 오랜 가뭄이 들었을 때 끌어다 이곳으로 옮겨두었다고 한다.
논산의 3대 명물 예전부터 논산 사람들에게 이 일대의 3대 명물에 대한 이야기가 전한다. 죽어서 저승에 가면 염라대왕이 논산의 세 명물을 보고 왔느냐고 묻는데, 개태사의 가마솥과 은진의 미륵과 강경의 미내다리가 그것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계룡산 남쪽에 있는 논산 (신정일의 새로 쓰는 택리지 5 : 충청도, 2012. 10. 5., 신정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