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글은
지난 2월 3일에 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에서 가진
국제 KTA 세미나에서 강의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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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주의 교회가 지닌 신학과 신앙 및 계대성에 관하여
이천우(부천개혁교회)
개혁주의 교회가 지닌 신학과 신앙 및 계대성을 말씀드리고 합니다.
Ⅰ. 개혁주의
1. 개혁의 용어
먼저 개혁주의란 말의 용어에 대한 이해부터 하겠습니다. 개혁주의란 말은 ‘개혁’이란 말에 ‘주의’란 말이 붙은 것입니다. 개혁(改革;Reform)이란 말의 국어 사전적인 의미는 "새롭게 고침", "정치 체제나 사회 제도 등을 합법적이고도 점진적으로 새롭게 고쳐 나감"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낡은 제도를 개혁한다"라거나 "부패한 정치를 개혁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미 있는 것을 고쳐서 새롭게 바꿔 나간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하면 개혁이란 항상 어떤 문제성을 지니고 있는 것에 대해서 등장하는 용어인 것입니다. 아무런 문제성이 없는데 개혁을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2. 교회사에서 루터와 칼빈의 신학 사상에 보는 교회 개혁의 본질
그런데 이 용어가 교회사 속에서 쓰여질 때는 교회의 개혁을 말하는 것인데, 변질된 주님의 교회를 참된 주님의 교회로 재건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주님의 교회의 참된 모습을 되찾는 것으로 주님만이 교회의 왕으로 높임을 받으시고 그의 말씀만이 절대적인 권위로 받아들여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의 회복을 통해서 되어집니다. 왜냐하면 루터로부터 시작해서 칼빈에 이르러 완성된 종교개혁은 사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자는 운동으로서 성경의 본의적 해석의 개혁을 뜻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유로 성경을 왜곡되게 해석하여서 이해하고 있는 잘못된 사상을 성경에서 계시하고 있는 본래의 의미로 해석하는데 충실하여서 현재의 교회가 갖는 신앙을 본래의 상태에 있게 하는 것이 종교개혁의 본질입니다.
종교개혁은 ‘오직 성경으로!’에 있었습니다. 루터가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산다”는 것에 가진 깨달음은 성경이 계시하시고 있는 구원 얻는 믿음의 원리를 알게 된 것이었습니다. 그는 인간 본성이 원죄로 인해 근본적으로 타락했기 때문에 인간은 자신의 힘으로는 하나님의 율법인 계명을 도저히 다 지킬 수 없는 무능력한 인간이 되었으며, 인간은 자신의 공적에 의해서 구원 얻는 것이 아니라 다만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총(은혜)을 신앙하는 것을 통해서만 구원될 수 있다고 보면서, 이 믿음은 오직 말씀을 듣게 하시는 것을 통해서만 주어진다고 보았습니다,
이런 이유로 그는 인간의 구원이 ‘오직 하나님의 은총만으로(Sola Gratia)’ , '오직 믿음만으로(Sola Fide)', '오직 성경만으로(Sola Scriptura)'이루어진다고 보았습니다. 여기서 루터는 성경의 권위를 강조합니다. 왜냐하면 그에게서 ‘오직 성경으로만(Sola Scriptura)’은 믿음은 오직 말씀을 통해서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일어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에게서 이의 강조는 참으로 중요한데, 이는 중세 스콜라주의의 선행과 중세 신비주의의 체험을 비판하면서 믿음은 주관적인 내면적 체험이 아니라(in nobis), 믿는 자의 밖에서 객관적으로 믿는 자에게 다가오는(extra nos)말씀으로만 믿음이 일어나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구원을 주시는 믿음인 하나님의 은총은 진리의 영이신 성령께서 하시는 사역으로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in the Word of God),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through the Word of God), ‘하나님의 말씀과 함께’(with the Word of God) 주어지는 것입니다.
교회사에서 교회 개혁의 본질을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의 권위에 둔 것은 칼빈에게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칼빈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과 성령의 관계성을 참으로 중요하게 생각하였습니다. 그가 “성경이 가라는 곳까지만 가고, 성경이 멈추라는 곳에서 멈춘다”는 말은 단지 그 말이 유명하게 된 데서 유명한 것이 아니고, 성경의 절대 권위를 말한 데 있습니다. 그는 “성경을 떠나서 하나님께 갈 수 있다는 자는 광신에 사로잡힌 자와 같다”고 했습니다(Inst, 1. 9. 1.) 성경 없이는 하나님께 갈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성경 없이 신앙을 갖는 것도 있을 수가 없습니다. 칼빈은 역시 성령의 역사는 어떤 새로운 계시를 주는 것이 아니고 오직 성경이 말하는 계시를 우리 마음에 부어주시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Inst, 1. 9. 1.). 성령의 역사는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통해 역사 합니다. 그러므로 그는 신자들이 성령의 역사로 오는 하나님의 은혜와 그 만족을 얻고자 한다면 성경을 읽고 그 말씀에 유의하라고 말했습니다(Inst, 1. 9. 2.). 성경 계시 사색 신앙 및 성경 계시 의존 신앙을 말하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신자들의 신앙이 있어야 할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교회 개혁의 본질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의 권위에 두고서 ‘말씀을 말씀되게 하는 것’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정성구는 이를 그리스도의 개혁운동이라고 말하였습니다.
3. 교회의 개혁이 의식적이며, 정치적이며, 반성향적인 제도로 적용되어서는 안 되는 예
교회사에서 종교개혁의 완성자를 칼빈으로 말하는데 주저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비록 루터가 1517년에 종교개혁 운동을 일으킨 시발자가 되고, 그에 의해서 새워진 형성된 교회인 루터파 교회는 프로테스탄트 교회로 불려지기는 하지만 개혁교회(개혁주의 교회, 개혁파 교회)와는 구별됩니다. 이는 루터파 교회가 비록 로마카톨릭교회와 차별되는 교회로 서지만 성례에 대한 교리와 예배의식에 있어서는 어느 정도 로마카톨릭교회의 것을 수용하는 편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과거 교회의 개혁을 정치적으로, 그리고 제도적으로 하려고 한 적이 있었습니다. 교회의 개혁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고 한 대표적인 것은 잉글랜드의 종교개혁입니다. 잉글랜드의 종교개혁의 특징은 왕의 주도에 의해서 정치적인 정략책에 의해서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잉글랜드의 종교개혁의 특징은 독일, 스위스, 스코틀랜드 등 여러 나라가 갖는 교리나 신학적 특징의 확신 때문에 일어난 종교적 동기에 의해서 보다는 헨리 8세에 의한 왕의 주도로 국가의 정치적인 이해의 비동기로 이루어진 개혁이었던 데서 찾게 됩니다. 잉글랜드의 종교개혁은 왕실 문제인 헨리(Henry) 8세의 결혼 문제로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헨리 8세는 케서린과의 결혼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지 않은 것으로 여기고 이혼을 하고 안볼린(Ann Boleyn)과 결혼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를 교황청이 허락하지 않자 헨리 8세는 교황청의 허락 없이 안볼린과 결혼하였습니다. 그러자 교황은 헨리 8세를 파문함으로 맞섰고, 이에 크게 분노한 헨리 8세는 로마카톨릭교회와 관계를 단절하고서 (1) 토마스 크롬웰(Thomas Cramwell)의 의견에 따라 교회를 국가의 관할 하에 둠으로써 국가교회로 만들었습니다. (2) 1534년에는 국회의 의결을 거쳐 잉글랜드의 국왕은 지상에서는 잉글랜드교회의 유일한 수장이 된다는 ?교회수장령?을 발표하여 교회를 왕의 권위에 귀속시켰습니다. (3) 교황에게 세금을 납부하거나 혹은 재판을 구하는 것을 금하였습니다. 이는 국가의 자주적 권익에 관한 것이므로 국민의 환영을 받았습니다. (4) 세입을 증가시키는 목적으로 1536년에는 수도원을 해산하고 세입을 몰수하여 왕실에 귀속시켰습니다. (5) 그러면서도 ‘6개의 신조’의 제정을 통해서 로마카톨릭교회의 화체설을 따르는 태도를 취하였습니다. (6) 이상의 사실은 헨리 8세의 개혁이 단지 로마카톨리교회와의 단절에서 뿐이지 실질적인 종교적인 개혁은 전혀 이루어지지 않은 것입니다. 그는 본시 루터의 개혁운동을 반대한 사람으로 루터를 반대하는 글을 써서 발표하여 레오 10세로부터 ‘신앙의 옹호자’(Defensor Fedei) 라는 칭호를 받기까지 하였었습니다. 그런 그가 로마카톨릭교회와 관계가 없다고 선언하며 단절한 것은 신앙적인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순전히 자신의 결혼 문제로 인한 로마카톨릭교회와의 불편한 관계에 의한 정치적인 의도에서 로마카톨릭교회로부터 돌아선 것에 불과합니다. 그러므로 그의 개혁의 동기는 순수한 신앙의 자각에 있지 않았기 때문에 교회의 교리와 예배 의식 그리고 교직제도에 대해서 본질적인 개혁의 단행이 없이 로마카톨릭교회의 것을 그대로 따랐습니다.
잉글랜드에서 종교적인 의도에 의한 개혁은 헨리 8세의 뒤를 이어 왕이 된 에드워드 6세 때에 행해집니다. 에드워드 6세는 헨리 8세가 제인 시모어(Jane Sey-mour)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로 10세란 어린 나이임에도 왕위에 올랐다. 이런 에드워드 6세를 크랜머가 섭정하였는데 그는 프로테스탄트 신앙을 가진 자로서 칼빈과 자주 통신을 교환하면서 칼빈주의를 취하였습니다. 그는 (1) ‘6개의 신조‘를 폐지하고 1552년에 프로테스탄트에 근거한 ‘42개 신조’를 제정하였는데 세례와 성찬에 관하여서는 루터보다도 칼빈의 신학 입장을 취하였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루터교적인 ‘39개 신조’로 바뀌어 나오게 되자 왕의 서명은 받았으나 의회의 통과는 보지 못했습니다. (2) 잉글랜드교회의 유일한 예배서인 ?기도서?를 편찬하였는데, 칼빈과 멜랑톤의 신학 사상이 배여 있었습니다. (3) 크랜머는 잉글랜드의 프로테스탄트교회의 기초를 닦아 놓았으나, 에드워드 6세기 즉위한지 7년 만에 죽으므로 더 이상의 진전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에드워드 6세가 죽자, 그 뒤를 이어 헨리 8세가 캐서린에게서 낳은 딸인 메리(Mary)가 여왕으로 즉위하였습니다. 메리 여왕은 잉글랜드에서 종교개혁을 행한 사람이 아니라, 오히려 그녀가 품은 적의(敵意)에 의해서 종교개혁자들을 탄압하고 잉글랜드교회를 로마카톨릭교회로 복귀지키고자 하였습니다. 따라서 반종교개혁자(反宗敎改革者)입니다. (1) 메리는 왕위에 즉위하자 그녀의 어머니 캐서린의 적이라고 간주되는 정치가와 성직자 286명을 죽였기 때문에 ?피의 메리?(Blood of Mary)라고 불리웁니다. 이에 프로테스탄트 신앙에 있던 잉글랜드의 종교개혁자들은 잉글랜드를 떠나 유럽으로 망명하였습니다. 스코틀랜드의 종교개혁자인 죤 낙스의 망명도 이때 있었습니다. (2) 메리는 이러한 피의 보복을 통해서 잉글랜드교회를 로마카톨릭교회로 복귀시키고자 하였습니다. 이는 철저한 카톨릭주의자인 스페인의 황태자 필립 2세와 결혼하였으며, 공동 기도서를 폐지하고 신부의 독신제를 부활시킨 것에서도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메리 여왕이 일찍 죽고 안볼린에게서 낳은 딸인 엘리자베스가 여왕에 즉위함으로써, 잉글랜드에는 다시 한번 종교개혁의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종교에서 개인의 성향은 화려한 예식과 예법을 선호하여 로마카톨릭적이었으나, 정치적 성향에서 잉글랜드교회를 이끌고 나가는 것에는 ‘종교적 관용책?을 썼습니다. (1) 잉글랜드교회를 로마카톨릭교회로부터 완전히 독립시키며 국민의 비카톨릭화 정책을 사용하였습니다. (2) 또한 로마카톨릭교회, 루터파교회, 칼빈파교회, 쯔빙글리파, 성공회(잉글랜드국교회) 모두를 허용하면서 타협정책을 사용하였습니다. (3) 여러 교파의 종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국왕수장령’과 ‘예배 방식 통일안’을 의회에 제출하여 통과시켰습니다. (4) 1563년에는 잉글랜드국교의 교회를 규정한 ?39개조?를 제정, 공포하였으며, 이것들은 8년 후에 모두 잉글랜드의 법률로 확정되었는데 교회의 의식상으로는 로마카톨릭적이나 교의상(교리)으로는 프로테스탄트적이어서 루터파, 칼빈파, 쯔빙글리파의 교리들이 총망라되어 있습니다. (5) 엘리자베스 여왕의 이러한 종교개혁 정책은 ?반카톨릭적?이며, 또한 ?반프로테스탄트적? 입장을 취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는 신앙과 예배의 순수성을 요구하는 청교도 운동의 시발이 되었습니다.
잉글랜드의 종교개혁은 정치적인 정략책에 의해서 행하여진 것이기 때문에 개혁교회의 개혁성향을 띠지를 못했습니다. 정치적 상황에 의해서 로마카톨릭교회와 단절하고 개혁교회를 받아들이는가 하면, 로마카톨릭교회로 복귀하기도 하였으며, 이러한 잉글랜드교회의 모습은 교리적으로도 제도적으로도 교회 개혁의 모습을 띠지를 못했습니다.
잉글랜드의 실질적인 종교개혁이 이뤄진 시기는 엘리자베스 여왕이 후사가 없이 죽음으로써 스코틀란드 왕 제임스 6세를 잉글랜드 왕으로 추대하여 세웠습니다. 이가 잉글랜드에서 제임스 1세가 되는데 그의 즉위는 잉글랜드를 퓨리탄(Puritan) 시대로 접어들게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퓨리탄, 곧 청교도로 불리우는 개혁주의 신앙을 가진 자들은 헨리 8세 때 대륙으로 건너가 쮸리히에 체제하여 칼빈주의 신학 사상의 영향을 받은 죤 후퍼(John Hooper, 1495-1555)가 귀국하여 교회에 제단을 두는 일을 반대하고 임직식 때 제복을 입는 것을 거절하는 등으로 투옥되기도 하였으며, 메리 여왕 때 그로우스타에서 화형을 당해 죽임을 당한 개혁주의 신앙에 선 프로테스탄트 교회의 신자인 그에게서 퓨리탄의 기원을 말합니다. 이때 800여명에 이르는 많은 프로테스탄트 신자들이 대륙으로 망명해 갔는데, 그후 메리 여왕이 죽고 엘리자베스 여왕이 즉위한 소식을 듣고는 귀국하였습니다. 그러나 엘리자베스 여왕은 친로마카톨릭적이나 포용정책으로서 반로마카톨릭교회적이며 반프로테스탄트교회적인 성향을 띠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의 정책을 따르지 않는 프로테스탄트 신자들은 탄압을 하였습니다. 그후 제임스 1세의 즉위(1603년)로 시작되는 제임스 왕조 때에 영국국교의 압박에 맞서 퓨리탄은 신앙의 자유를 찾고자 하였으며, 이들의 결실은 웨스트민스터회의(1643-1647)를 통해서 작성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에서 보게 됩니다.
잉글랜드의 종교개혁이 정치적인 정략에 의해서 행해진 반면에 교회의 개혁을 반성향적인 제도의 개혁을 통해서 하려고 한 대표적인 것은 재세례파(Anabaptist)의 개혁에서 볼 수 있습니다. 마틴 루터에 의해서 시작된 종교개혁은 프로테스탄트 종교개혁 운동을 가져왔는데 그 이후로 오늘날까지 프로테스탄트 교회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친 소단체의 교파가 있어 왔습니다. 그것은 재세례파(Anabaptist) 입니다. 이 재세례파는 종교개혁 이후에서야 비로소 생겨난 교파가 아닙니다. 재세례파는 루터의 종교개혁의 영향과 자극을 받은 바가 많기는 하지만 본래 이들은 루터의 종교개혁 이전부터 독일과 화란을 비롯하여서 이태리, 불란서에까지 산재되어 있으면서 개혁신앙의 성격을 띠어온 소단체들입니다.
재세례파는 처음에는 체제를 갖추지 않은 소단체에 불과했으나 1524년에 이러한 단체들의 대표가 발트슈트(Waldshut)에 모이고 1526년에는 아욱스버어그에 보이게 되어 그 결과로서 1527년에는 그곳에서 총회를 개최하고서 사틀러(Michael Sattler)가 기초한 7개조의 신앙선언 초안인 “우리는 신자 세례를 믿는다. 교회는 성만찬으로 결합된 모임이다. 성경은 축자 영감으로 받을 것이다. 권징은 파문 이상 다른 처형을 내릴 수 없다. 교역자는 개교회가 선택하여야 한다. 신자의 정치 참여는 있을 수 없다. 신자는 맹세할 수 없다.”를 통과하여 제정하고 교회의 정치를 정하고 목사와 장로와 집사의 직분을 세우고 그의 대표로서 조직되는 회의를 두고 감독이 이 회의에서 선정하게 하는 재세례파 교회의 조직을 갖춤으로써 한 교파로서의 실체를 비로소 띠었습니다.
이들은 중세의 교회의 조직과 의식의 번잡함을 기뻐하지 않았으며, 교회의 제례(祭禮)에 반대하여 예배는 일상의 국어를 사용할 것을 주장하고, 각자의 가정에서 집회하였으며, 기도를 힘쓰고 신앙서를 고백한 사람들의 단체가 되어야 할 것을 엄격히 주장하고, 무엇보다도 재세례파의 명칭이 사용되어서 자신들의 존재를 실체화시키는 큰 특징적인 것이 되는 유아세례를 인정하지를 않고 성인 세례만을 인정하여 주장하였기 때문에 이때로부터 이미 ‘아나밥티스트’(Anabaptist)라는 이름으로 불려왔습니다. 재세례파의 개혁은 그 특징적인 성향에 의해서 다음과 같이 크게 셋으로 구분하여 볼 수 있습니다.
첫째, 재세례입니다. 재세례파에 대한 평가는 샤프(Philip Schaff)가 이들을 가리켜 ‘과격한 복음주의자들’로 또는 ‘극단의 프로테스탄트’라고 부른데서 알 수 있듯이 혹독하게 비판을 받아 왔습니다. 재세례파가 이렇게 불리워 온 것은 이들의 개혁 성향이 같은 개혁파 교회에서도 과격하게 보여 온 데 따른 비판에 의한 것이지만, 이러한 사실은 재세례파의 개혁이 갖는 성향의 특징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프로테스탄트 종교개혁에서 로마 카톨릭 교회로부터 종교개혁을 한 루터파 교회와 구분하여 루터의 종교개혁을 재개혁 하는 뜻에서 개혁교리(Reformed Doctrine)를 강조하여 개혁파라고 불리우는 개혁교회가 존재해 왔듯이 재세례파는 로마 카톨릭 교회와 그리고 루터파 교회뿐만 아니라 개혁파 교회가 행하여 온 종교개혁 모두에서 재개혁 해야 할 것으로 세례를 중심에 두었습니다. 그것은 로마 카톨릭 교회와 루터파 교회, 개혁교회 유아세례를 인정하고 있는 것에 반대하여 유아세례를 거부하고 성인 세례만을 인정하여 재세례를 주장함으로써 재세례파란 이름이 붙게 된 것입니다. 이들은 신앙적 의식을 가지고 신앙고백을 할 때라야 비로소 세례의 의의가 있다고 주장하여서 유아세례를 반대하기 때문에 신자의 자녀가 유아세례를 받았을지라도 이를 인정하지 않고서 성인이 되었을 때 다시 세례를 다시 받게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이들은 자신들을 침례파(Baptist)로 부릅니다. 하지만 오늘날의 밥티스트교회, 곧 침례교회와는 그 미친 영향으로 인해서 다소 역사적인 연락이 없지는 않으나 본질적으로는 차이가 있습니다.
둘째, 로마카톨릭교회의 역사적 계속성 불인정과 새로운 교회의 건설입니다. 재세례파의 개혁은 세례가 그 중심에 있으나 이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재세례파는 루터파 교회와 개혁교회에서 로마카톨릭교회의 역사적 계속성(Historic Continuity)를 인정하며 개혁하려는 입장을 단호히 거절합니다. 재세례파가 이러한 입장을 취하는 것은 로마카톨릭교회가 완전히 타락하여서 교회의 역사적 계속성을 잃어버렸다고 보기 때문에 루터, 칼빈, 쯔빙글리 등의 개혁자들의 교회 개혁운동을 완전하고 철저한 교회의 개혁을 하기를 원했습니다. 이 운동은 쮸리히(Zurich)시를 중심으로 일어났으며 여기에 대표적인 인물이 그레벨(Conrad Grebel), 만츠(Felix Manz), 훕마이엘(Balthasan Hubmaier), 그리고 한스 덴크(Hans Denck) 입니다. 이들은 단지 교황의 제도에서 벗어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전통사상을 없애기를 원했습니다. 그러한 이들의 눈에는 루터, 칼빈, 쯔빙글리의 교회 개혁이 못미더웠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너무나도 옛날의 질서에 타협하는 안일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들은 로마카톨릭교회에서 완전히 떨어져 나와서 완전히 자주적이며 순결한 교회를 세우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재세례파는 성경에 의해서 로마카톨릭교회를 개혁시켜 초대 그리스도의 교회로 돌아가려는 입장을 취하지 않고 성경으로부터 얻은 진리로 새로운 교회 건설을 시도하고자 합니다. 즉 초대 그리스도의 교회를 모델로 개혁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새로운 교회로의 혁명을 지향하려 한 것입니다.
그에 따라서 재세례파는 교회를 로마카톨릭교회에서 보는 거대한 조직으로서가 아니라 신앙을 고백한 자들의 집단체라고 주장했으며, 교회의 조직과 의식과 예전을 반대하고, 예배는 자국어로 하고 단순하고 신앙은 의식적(意識的)이어야 한다고 주장하였으며 기도에 힘썼습니다. 그리고 외형적인 성경 말씀이나 성례전은 이차적인 것으로 여기고 심령에 비취는 성령의 속 빛을 체험하는 주관적인 경험을 무엇보다도 중요시 여김으로써 성경의 권위보다도 직접적인 하나님의 계시를 강조하는 영적 종교를 주장하였습니다.
셋째, 국가의 지배를 받는 국교회(국가교회)의 반대입니다. 재세례파는 로마 카톨릭 교회만이 아니라 개혁파 교회인 국교회들과는 아무 것도 함께 하기를 원치 않았습니다. 그것은 국가가 교회를 지배하는 것을 반대하기 때문인데 국가의 지배를 받는 신자들은 대부분이 이름만 그리스도인일 뿐이라고 여겼기 때문에 그런 그들과는 함께 할 수 없다고 생각한 때문입니다. 재세례파는 교회가 국가의 지배를 받는 것을 반대하기 때문에 세금 남부도 반대하였습니다.
이러한 재세례파의 모습은 당시 로마카톨릭교회에서와 개혁교회 모두에게 지나친 과격한 행동으로 여겨졌습니다. 그래서 재세례파는 종교개혁 이전부터 존재해온 소단체의 개혁신앙임에도 불구하고 로마카톨릭교회에서만이 아니라 개혁파 교회인 루터파 교회와 칼빈파의 교회로 말해지는 개혁교회 모두로부터 환영을 받지 못하고 배척과 박해를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재세례파의 지도자들은 자신들의 주장을 피로써 확증하기를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재세례파가 모두 과격한 극단주의자적인 행동을 취하는 것은 아닙니다. 초기의 재세례파 사람들은 그들 이후의 사람들보다는 보다 경건하고 신앙심이 깊은 사람들이었으며 고상한 이상과 순수한 동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이들 안에서는 점차 분명히 구별되는 두 파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정적파(靜寂派, Quietists)이고, 다른 하나는 혁명파(革命派)입니다. 정적파는 열성적인 개혁파이기는 하지만 광신자들은 아니었습니다. 이들이 원하는 것은 심령 속에 있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얽힌 남녀들이 단합하여 피차 종교적으로 교제하며 예배 볼 수 있는 자주적인 교회이었습니다. 그래서 정치적이나 교회적인 압력을 받아 신앙이나 생활에 구속을 받음이 없이 경건하고 평화로운 정신으로 종교생활을 하기를 원했습니다. 이들은 관공리나 군인으로서는 참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한 데서도 이들이 어떤 자들이었음을 잘 알 수 있습니다. 반면에 혁명파는 아주 열성적인 광신도들로서 모든 기존한 교회나 국가의 권위를 부정하고 필요할 경우에는 권력이라도 사용하여서 성도 곧 진정한 신자로써 다스림을 받는 지상의 천국을 건설해야 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재세례파는 종교개혁 이전부터 존재해온 개혁신앙의 단체였으며 종교개혁 이후에는 프로테스탄트 교회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치긴 했으나, 이들이 주장하는 개혁과 그 성향은 사실은 교회의 개혁 운동을 가져온 개혁교회와는 달랐습니다. 그것은 성경적 관점에서 가지는 바른 이해에 의한 신학 사상이 아닌 반성향적인 관점에서 자신들 나름대로의 새로운 제도를 세워가는 것으로서 갖는 주장이었습니다. 재세례파는 처음부터 신앙과 행위의 자유를 표방하고 출발하였으니만큼 성경을 지나치게 주관적 내지 축자적으로 이해하는 풍조가 유행함으로서 혼란을 야기시켰는데 세례, 교회의 역사적 계속성, 참된 교회의 본질, 예배에 대한 이해 등 이 모두는 단지 로마카톨릭교회에 대한 반발과 로마카톨릭교회적이지 않기 위해서 그에 상대적인 성향으로서의 개혁을 주장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개혁주의 신앙이란 하나님 말씀의 본의 이해에 의한 바른 신앙에서 출발하는 것입니다.
이상의 세 가지 예에서 알 수 있듯이 교회의 개혁을 의식적이며, 정치적이며, 반성향적인 제도의 적용에서 찾는 것은 서로의 교파의 성향을 두드러지게 할 뿐입니다. 비록 서로의 교파의 성향이 달라서 교회의 개혁이 달라도 이것은 단지 교회를 이루고 있는 외적인 요인들의 개혁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개혁주의 교회(Reformed Church)의 개혁 성향은 아닙니다. 만일 교회의 외적인 요인들의 개혁을 할지라도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율법을 완성하심으로써 폐지하신 것을 지킴으로써 의문에 순종하는 것에 대한 개혁을 하여서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케 세워나가는 것으로서의 개혁이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은 교회의 예배를 비롯하여서 의식에 관한 것이나 정치적이며 제도에 관한 개혁은 그것을 아무리 다른 것으로 바꾸어 가진다고 할지라도 개혁의 대상이 되지 못하는 것은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 항상 악할 뿐이어서 무엇으로 바꾸어 하든지 간에 사람이 있는 한에는 부패하기 때문입니다.
Ⅱ. 개혁주의 교회
우리가 장로교회이든 침례교회이든 감리교회이든 성결교회이든 또는 구세군이든 자신들을 개신교, 곧 '개혁신교'라고 말하는가 하면 또는, ‘개혁교회’ '개혁주의 교회'라고도 말하는데 주저하지 않습니다. 이는 우리가 믿는 믿음을 말하는데 있어서도 그렇습니다. '개혁신앙'이라고 말하는가 하면 또는 '개혁주의 신앙'이라고도 말합니다. 여기서 ‘개혁주의’는 ‘개혁파’라는 말로도 자주 사용됩니다. 그래서 목사는 자신들을 ‘개혁파 목사’로, 자신이 시무하는 교회를 ‘개혁파 교회’로 말합니다. ‘개혁주의’나 ‘개혁파’는 같은 용어인 ‘Reformed'(or Reformed tradition)입니다. 그런데 이 개혁파는 ‘Reformed Church'이냐, 아니면 ‘Presbyterian Church'이냐에 따라서 사실은 구분이 됩니다. 개혁주의(개혁파) 장로교회는 ‘Presbyterian Church'로서 개혁교회인 ‘Reformed Church'와는 차이를 갖습니다만, 그럼에도 ‘Presbyterian Church'는 ‘Reformed Church'와 함께 ‘Reformed'(개혁주의; 개혁파)란 개념과 그 의식을 갖고 있습니다. 이는 교회정치에서는 장로정치 체제를 가지면서도 교리적 신학 사상에서는 칼빈주의에 의한 개혁교회의 신앙을 갖고 있다는 견해에 의해서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정치체제와 그 정체성에서는 분명한 구분을 가져야 할 필요성을 가집니다만, 신학 사상에서는 'Reformed'에서 하나로 볼 것입니다.
‘Reformed'인 개혁주의는 우리말로서의 용어 그대로 한다고 하면 'Reformism'이라고 해서 개혁을 뜻하는 'Reform'이란 단어에 주의를 뜻하는 'ism'을 붙여야 하는데, 사전에 이런 단어는 없습니다. 그러니까 'Reformed’를 '개혁주의'이라고 번역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해서, 혹자는 '개혁주의 교회(신앙)'이라고 말하는 것은 옳지 않기 때문에 '개혁교회(신앙)'라고 말해야 한다는 견해를 피력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분명 용어상으로는 그렇습니다만, 그러나 무엇 때문에 '개혁'이라는 말에 '주의'를 말을 붙여서 말하는가를 염두에 두고서 고려하여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주의(主義)란 말은 어떤 것에 대한 정신과 사상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가령 '민주주의(民主主義)'라고 말할 때는 '주권이 국민에게 있고 국민을 위하여 정치를 하는 제도, 또는 그런 정치를 지향하는 사상'을 의미하고 있으며, 이를 준말로 간단히 '민주(民主)'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또 '시온주의(Zion主義)'라고 말하면 이는 '시오니즘‘(Zionism)인데 세계 각지에 흩어져 있던 유대인이 그들 선조의 땅인 팔레스타인에 조국을 재건하려던 운동이요 그 정신과 사상을 이릅니다. 그래서 시온주의라고도 말하고 또한 시온운동이라고도 말합니다. 이 시온운동은 1948년에 이스라엘의 독립으로 그들의 오랜 꿈이 이루어졌습니다. 이렇게 '주의(ism)'는 어떤 것의 정신과 사상이요 나아가서는 이를 행동화한 운동을 의미하는 것이어서 '개혁주의'라고 할 때는 개혁교회가 지니고 말하는 신학 사상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말은 우리나라에서는 기독교 신자인 그리스도인들이 관습적으로 널리 쓰는 말인 관용어가 되어 왔습니다. 해서, 사전적인 용어에서는 '개혁주의'란 말이 맞지는 않지만, 관용적으로 '개혁'이란 말과 함께 자연스럽게 번역되어서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런 것을 굳이 틀린 잘못된 용어라고 배격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영어권에서는 'Reform’에 'ism'을 붙여서 사용하고 있지는 않기에 사전에서 찾을 수는 없지만, 우리말이 지닌 자연스러움과 정서적 개념에서는 사용이 가능한 것입니다.
문제는 “Reformed'가 붙는 교회인 ‘개혁주의 교회’, 곧 ‘개혁파 교회’, ‘개혁교회’가 말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점입니다. 제가 섬기는 교회 이름도 ‘부천개혁교회’입니다만, 왜 ‘개혁주의 교회’인 사실을 굳이 강조하는가 하는 것이죠. 예전에 어떤 분과 면담을 하게 되었는데, 그분은 저에게 교회 이름을 ‘개혁교회’란 이름을 사용하지 말 것을 권하기까지 하였습니다. 무슨 이유로 그분은 상대적으로 개혁교회에 대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요?
교회사에서 그리스도의 교회가 구교와 신교로 구분하여 분리되는 큰 획을 긋는 종교개혁은 루터(Martin Luther)를 중심으로 시작되어 쯔빙글리(Ulrich Zwingli), 칼빈(John Calvin), 존 낙스(John Knox) 등으로 이어졌습니다. 이들을 통해서 행해진 종교개혁은 독일에서 유럽대륙과 스코틀랜드로 그 불길이 확산되어 가면서 프로테스탄트(Protestant)로 그 명칭이 굳습니다. 그것은 프로테스탄트는 로마카톨릭교회에 대항하여 교회를 개혁한 ?개신교?(개혁신교)의 성향을 띠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프로테스탄트는 로마카톨릭교회에 대항하여 새로운 교회를 만들어낸 신교로서의 교회 개혁을 한 개혁신교, 즉 개신교이기는 해도 이 개신교가 모두다 곧 ‘개혁주의 교회’, 곧 ‘개혁파 교회’는 아닙니다.
프로테스탄트 종교개혁은 그 방향이 독일에서 유럽대륙과 스코틀랜드로 길을 잡아가면서 크게 두 진영으로 나누어지게 되었습니다. 하나는 루터의 교회를 따르는 진영이고 다른 하나는 칼빈의 교리를 따르는 진영입니다. 이렇게 프로테스탄트 종교개혁이 루터를 따르는 교회와 칼빈을 따르는 교회로 나누어지게 된 것은 루터를 따르는 교회는 성례에 대한 교리와 예배의식에 있어서는 어느 정도 로마 교회의 것을 수용하는 편인데 반해 칼빈을 따르는 교회는 이 모두를 다 개혁한 데 따른 것입니다. 이렇게 성례와 예배의식에 대한 이해를 달리하는 견해 차이로 다같은 프로테스탄트 교회임에도 불구하고 오늘날까지 서로 다른 전통을 가진 교회로 서게 되어서 각기 루터교회(Lutheran Church)와 개혁교회(Reformed Church)로 불려지고 있습니다. 이때 여기서의 '개혁교회'는 칼빈, 쯔빙글리에 의해서 세워진 종교개혁의 성향을 가진 교회를 말하며, 또한 칼빈의 신학 사상을 따르는 교회를 말합니다.
그리고 프로테스탄트 교회로 'Reformed’에 서있는 개혁교회(Reformed Church)에서 칼빈으로부터 신학 사상의 영향을 받고 스코틀랜드에 개혁교회를 세운 사람이 있는데 그는 죤 낙스입니다. 낙스에 의해서 스코틀랜드에 정착한 개혁교회는 감독에 의한 교권정치를 반대하고 장로에 의한 정치를 강조하는 의미에서 장로교회(Presbyterian Church)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 장로교회는 ‘개혁주의 장로교회’(Reformed Presbyterian Church)로 불리웁니다. 그래서 종교개혁 이후 프로테스탄트 종교개혁은 3가지 큰 특징적인 교회가 생기게 되었으니, 곧 루터파 교회, 개혁교회, 장로교회 입니다. 그리고 이 프로테스탄트 교회 중에서 특히 '개혁파 교회', 곧 Reformed Church로 불리우는 교회는 개혁교회와 장로교회를 특징지어서 불리우는 이름입니다.
그런데 프로테스탄트 교회에는 이들 세 부류의 교회만이 아니라 앵글리컨 처치(Anglican Church), 곧 영국교회(영국 국가교회, 영국 성공회)와 재세례파로 불리우는 아나밥티스트(Anabaptists)도 포함됩니다. 여기서 재세례파는 사실 루터의 종교개혁이 시작되기 전부터 소단체로 존재해오면서 점차 그 행동이 확산되어가고 그 활동 또한 급격하고 과격한 성격을 띠어온 데다가 다른 프로테스탄트 교회에서조차 인정을 받지 못하였는데 이는 로마카톨릭 교회의 제도로부터의 완전한 개혁을 주장한 때문이 아니라 사실은 성경에서 이탈한 과격한 입장을 취한 때문이었습니다.
이들 프로테스탄드 교회는 모두 로마 카톨릭 교회에 대항하여 종교개혁을 한 교회에 속하는데 Lutheran Church - Anglican Church - Reformed Church, Presbyterian Church - Anabaptist의 순으로 갈수록 로마카톨릭교회로부터의 개혁 성향에 강한 이미지를 갖는 좌파적 성격을 띠는 반면에, 그 역순으로 갈수록 로마카톨릭교회적인 분위기와 색채를 유지하려는 우파적 성격을 띱니다. 그래서 Anglican Church(영국 국교회;성공회), Lutheran Church(루터파 교회)로 올라갈수록 교리로부터의 개혁은 있으나 그럼에도 로마카톨릭교회적인 교리와 예배 생활의 모습과 분위기를 지니고 있어서 ?반카톨릭적?이며 또한 ?반프로테트탄트적?인 성향을 띠고 있습니다. 반면에 좌파적 성격을 띨수록 교리에서만이 아니라 예배 등의 제도적인 전반에 있어서 개혁의 성격을 띠는데, Anabaptist(재세례파)는 구교와 완전한 단절을 요구하며 다른 프로테스탄트 교회와도 반대의 편에 서 있으므로 너무 급진적인 성향의 지나친 성향을 띠고 있습니다.
한편, 개혁주의(개혁파) 교회는 칼빈의 신학 사상을 따르는 개혁교회를 말하는 것으로서 앞에서 언급한 프로테스탄트와는 확연히 구별과 구분이 되는데 칼빈, 쯔빙글리에 의해서 세워진 Reformed Church(개혁교회)와 칼빈의 신학 사상의 영향을 받은 죤 낙스가 스코틀랜드에서 세운 Presbyterian Church(장로교회)가 여기에 해당됩니다.
개혁주의는 특히나 칼빈의 신학 사상을 이어 받고 신앙 노선을 따르며 교회를 개혁해 온 개혁자들 속에서 자신들도 개혁교회를 하고 있는 것을 강조하는 교회는 더욱 힘을 주어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아마도 16세기 종교개혁 이후 세말(世末)까지 교회에서 끊이지 않고 사용되는 말 중에서 목회자에게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용어일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개혁주의 신앙’으로 ‘개혁주의 교회’를 이루고 있습니다.
Ⅲ. 개혁주의 교회의 신학
교회사에서 신학은 신학자들에 의해서 그 정통성을 인정받으면서 교회 신학으로 자리잡으며 내려왔습니다. 많은 신학자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선지자와 사도의 가르침으로부터 시작해서 교부신학과 중세신학을 거쳐 두 가지의 양상을 띠어 왔습니다. 하나는, 인간 지혜의 탁월함 속에서 말해지는 인본주의적 신학입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해주는 신본주의적 신학입니다. 그리고 이 두 차이의 신학은 하나는, 로마카톨릭교회의 신학으로, 다른 하나는 개혁주의 신학으로 분류되어 왔습니다. 로마카톨리교회의 신학은 안셀무스(Anselmus, 1033-1109)에 의해서 시작되고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 1224/25-1274)에 의해서 집대성되고 완성되었다고 보는데, 이 신학은 고대 철학의 관점에서 신학을 논한 것이 중세에 이르러서는 스콜라철학으로 불려지고 있으며, 이 스콜라철학은 또한 스콜라신학으로도 불려지듯이 이 당시 철학의 관점은 곧 신학의 논쟁이기도 했습니다. 그러기에 이때의 신학에서는 다분히 인간의 지혜로 말해지는 신관이 중점이 됩니다. 그러나 근세교회 시대로 들어서는 종교개혁 시대에서 로마카톨릭교회의 신학에서 벗어나 성경의 관점에서 신학을 말하는 개혁주의 신학이 등장하였습니다. 개혁주의 신학은 인간의 생각에서 갖게 되는 지혜로 신학을 말하는 것이 아닌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주신 지혜에 의한 ‘하나님의 계시’의 관점으로 신학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학의 중심에는 항상 하나님의 계시인 성경을 두고서 하나님께서 말씀해 주시는 것으로서 신학을 말해 나가고자 하였습니다.
한국교회 신자의 분포는 대체적으로는 흔히 4대 교파로 말하는 장로교, 감리교, 침례교, 성결교가 전체 신자의 대부분인데, 이들은 자신들을 개혁주의 교회에 속해 있다고 여깁니다. 그러니만큼 신학을 하는 학생의 대다수는 자신들이 속한 교파의 신학교(신학대학교)에서 개혁주의 교회의 신학을 공부하고자 합니다. 하지만, 앞서 설명 드린 바와 같이 이들 교파 모두가 개혁주의 교회는 아닙니다. 사실 장로교, 감리교, 침례교, 성결교는 ‘개신교’로 불리웁니다. 이는 ‘개혁신교’를 이름인데, 로마카톨릭교회로부터 개혁한 신교를 이르는 말이기 때문에 프로테스탄트 교회(Protestant Church)를 지칭하는 것으로 프로테스탄트 교회에서 'Reformed'로 특징지어 여기에 해당하는 개혁주의 교회와는 다른 것입니다. 어떤 개신교파의 신학을 공부했느냐는 것이 ‘교회’를 결정짓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개신교파의 신학을 공부하건 간에, 그래서 어떤 개신교파에 속해 있든지 간에 그가 믿는 것이 무엇이냐는 것이 ‘교회’를 결정짓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주신 십자가에 의한 구속의 복음입니다. 어떤 개신교파의 신학이 신앙을 결정짓고, 또한 교회를 결정짓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말입니다. 바른 신학은 믿는 자의 신앙을 바른 신앙으로 인도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가령 개혁주의 교회가 갖는 신앙으로 알미니안의 신학 사상을 말하지 않고 칼빈의 신학 사상을 말하는 것이 그것입니다. 이는 칼빈이 가진 성경관과도 밀접합니다. 성경 해석에서 그의 신학 사상이 표출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승구(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 조직신학 교수)는 ‘개혁신학과 개혁파 목사’란 글에서 “기본적으로 개혁신학은 가장 성경적이려고 하며, 가장 공교회의 신조에 충실하려고 하는 신학이라고 생각된다”라고 말하고 있는 데서도 알 수 있듯이 개혁주의 교회의 신학은 온 교회가 신앙고백의 근거로 삼는 성경에서 말하고자 하고 있다는데서 그 특징이 있습니다.
교회에서, 특히 개혁교회를 지향해 나가는 교회에서 하나의 관용어가 된 '개혁주의'는 종교개혁으로 시작된 교회의 개혁 사상과 그에 따른 운동에 대한 분명한 신념을 가진 자들이 갖는 태도나 경향을 이르는 말입니다. 그리고 이 말은 오늘날에서는 상당히 포괄적 개념으로 사용이 되고 있습니다. 그 까닭은 16세기 종교개혁의 결과로 성립된 개혁교회로서, '정통 프로테스탄트'라고 불리우는 입장에 서서 칼빈의 신학과 교리를 따르는 이들까지 포함하는 포괄적인 의미에서 '개혁주의'를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16세기 종교개혁 이후의 전 시대에 걸친 개혁교회의 신학 사상과 교리를 따르는 사상 체계인 것입니다. 이것은 성경에 계시되어 있는 진리와 사상을 구체화하고 체계화한 것으로 성경의 권위, 삼위일체 하나님의 신적 작정과 주권적 구원 사역, 바른 교회관 등을 내용으로 하고, 궁극적으로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할 것을 신앙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가장 잘 표현하여 기술하고 있는 것이 칼빈의 '기독교강요'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비롯하여서 칼빈의 설교와 신구약 주석 등 방대한 저술에서 나오는 신학 사상은 칼빈이 했던 것과 같이 개혁교회를 이루어 나가려는 개혁자들에게 크나큰 영향을 끼쳤고 개혁주의 신앙은 곧 칼빈주의로 인식되어 왔습니다. 그리고 분명 그 영향 속에 있는 것은 틀림이 없습니다. 하지만 말입니다. 개혁교회는 칼빈의 신학 사상만을 따르는 자들은 아닙니다. 그 이전에 교회가 분명한 신학으로 세워오고 그 사상과 정신의 영향 속에 있게 해 온 개혁주의자들의 신학 사상이 있는 '은닉된 개혁교회'가 존재해 왔으며, 이것이 후에 개혁교회의 신조와 교리로 등장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개혁교회는 교회의 역사적 전통에 의한 신조와 교리의 바탕에서 칼빈의 신학 사상을 따르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뿐만이 아니라 칼빈 이후에 개혁주의 신앙으로 개혁교회의 신학을 표명해 온 많은 개혁주의자들이 있습니다. 개혁주의란 바로 이렇게 개혁교회의 정체성을 지켜 온 신학 사상을 이름입니다.
그래서 신론에서도, 기독론에서도, 구원론에서도, 교회론에서도, 종말론에서도 보는 것은 개혁교회의 신학 사상이요 신앙입니다. 그리고 성경의 어떤 곳의 해석에서도 성경에 계시되어 있는 하나님의 본의(本意)로써의 진리와 사상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 개혁교회는 무엇을 말해도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서 찾으려고 하는 것이며, 성경으로 끊임없이 돌아가려고 하며, 하나님의 말씀에서 출발해서 하나님의 영광의 처소인 교회를 변혁시켜 가려는 사상을 갖는,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에 따른 개혁'을 철저하게 강조하는 '개혁주의 신앙의 교회'를 말합니다. 개혁주의 교회란 이런 것입니다.
Ⅳ. 개혁주의 교회의 신앙
개혁주의 교회의 신학을 다루면서 또한 개혁주의 교회의 신앙을 다루는 것은 신학과 신앙은 서로 밀접하게 연관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전혀 이질적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대체적으로 신학을 하면 신앙이 좋을 것을 생각합니다. 그리고 신학을 한 사람은 성경을 잘 알고 있으며, 그래서 성경을 잘 해석하고 설명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사실 신학이란 ‘신지식’이기에 이것이 없이는 신앙이 되지 않습니다. 성경에 근거한 신학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있게 하여서 하나님을 바르게 신앙할 수 있게 합니다.
그런데 신학이 교회사에서 성경을 통해서 말하여 온 것에 의해서 후대 사람들에게 가르쳐지고 또한 계승되고 발전되어 와야 하는데 그렇지를 못하고 사람들의 깨달음에 의한 다양한 견해가 표출되는 것으로서의 학문화되었습니다. 신학의 이러한 학문화는 신학은 신학이고 신앙은 신앙이라는 이질적인 관계를 가져왔습니다. 그래서 신학은 많이, 그리고 잘 알고 있어서 뛰어난 지식을 소유하고 있는데 성경은 바르게 해석하지를 못하고 그래서 복음을 전하지 못하는 경우가 일반입니다. 그랬을 때 “읽는 것을 깨닫느뇨?”라고 물었던 집사 빌립의 물음에 “지도하는 사람이 없으니 어찌 깨달을 수 있느뇨?”라고 대답한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모든 국고를 맡은 내시에게 빌립은 내시가 읽고 있었던 이사야의 글이 무엇을 말해주고 있는 것인지를 자세히 설명하여 그를 예수 그리스도의 신앙으로 이끌었던 것에서 알 수 있는 바와 같이(행8:26-36), 빌립이 전하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은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 있는 하나님의 뜻의 깨달음인데, 이 신앙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으로서의 신학으로 존재하지를 못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신학을 종교개혁 시대에 들어서게 되는 이교화된 로마카톨릭교회의 신학에서 봅니다.
그리스도의 교회는 로마카톨릭교회가 이교화 되어간 속에서도 개혁주의 교회가 가진 공교회의 신조와 신학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말해주고 있는 신앙이 어떤 것인지를 말하며 보전하여 왔습니다. 루터의 이신칭의 사상과 칼빈의 하나님의 절대 주권 사상은 개혁주의 교회가 지닌 기독교 교리의 핵심이며 17, 18세기에 있었던 투쟁들의 와중에 스코틀랜드 교회에서는 언약 교리가 발전하여 훗날 개혁주의 교회의 중요 신학 사상으로 발전하였습니다. 여기서 언약 사상은 구약과 신약의 핵심입니다.
언약 개념이 이레니우스, 어거스틴, 옥캄에 의해서 말해져 오기는 했어도, 이것이 하나의 신학 사상으로 말해져 오게 된 것은 16세기 종교개혁과 그 후 2세기를 지내면서 조직적으로 발전하여 오면서인데 쯔빙글리, 볼링거, 칼빈, 우르시누스, 코케이우스와 같은 대륙의 종교개혁자들의 신학의 기초가 되었다. 이들에게 있어서 언약 개념은 주석이나 신학적 숙고를 위한 중심 역할을 했습니다. 특히 칼빈의 기독교강요에서 언약 개념이 많이 사용되었으며, 하나님의 주권과 관계해서 그의 사상의 중심을 차지했습니다. 더욱이 언약은 구원론적 측면으로 이해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언약 개념은 성경의 중심 주제로 다루어져서 성경적 개념에서 언약은 하나님의 구속을 말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하나님의 언약은 곧 하나님의 구속을 내용으로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약을 통하여 자기 택한 백성을 구속하십니다.
하나님의 언약이 신학 사상으로 발전한 것은 신학이 성도를 예수 그리스도의 신앙으로 바르게 인도하는데 유익한 도움을 주었습니다. 그것은 목사의 설교에 그대로 반영되었습니다. 설교는 신학에 바로 선 가운데서 성경해석을 옳고 바르게 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본의를 이해하는 성경의 관점에서 신학이 다루어져야 하며, 또한 신학의 이해에 충실하여서 성경해석을 바르게 하여야 합니다.
개혁주의 교회의 신앙은 신학과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신학의 원리에 바르게 견고히 서 있음으로 인해서 그리스도의 복음의 교리에 서 있기 때문에 다른 복음에 대처해 나갈 수가 있습니다. 교회의 역사에서 신학은 언약신학 외에도 다양하게 발생하고 존재해 왔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교회를 말하고, 그 교회가 지닌 그리스도의 신앙을 말하는 신학으로 존재해 온 것이 개혁주의 신학입니다. 개혁주의 신학은 언약신학의 이름으로, 또는 조직신학의 이름으로, 또는 역사신학의 이름으로, 또는 성경신학의 이름으로 불려지든지 간에 성경의 관점에서 신학을 다루면서 하나님과 하나님이 행하신 구원의 은혜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의 신앙인 교회가 있게 하고 그 교회의 신앙을 후대가 상속받아 바른 신앙에 있게 하는 것입니다.
Ⅴ. 개혁주의 신학과 신앙을 지닌 교회의 계대성(繼代性)
교회는 오직 하나입니다. 그리스도의 교회가 그것입니다. 지상에 아무리 교회가 많을지라도 그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의 한부분입니다. 이를 ‘Catholic Church'와 ’Local Church'의 개념으로 말합니다. 우리가 예배를 드릴 때 ‘공예배’란 표현을 쓰는 것은 교회가 공교회이기 때문입니다. 지상의 모든 개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로서 보편적 속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보편적 속성이 주님의 교회된 일치성의 요인이 됩니다. 그래서 이것의 확인이 예수 그리스도를 신앙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개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신앙고백하는 것으로 자신들이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임을 온 세상에 나타내는 것입니다.
교회가 가진 예수 그리스도께 가진 신앙고백은 하늘에 계신 하나님으로부터 받아서 가진 것으로 곧 교회가 지닌 신앙의 유산입니다. 그에 따라서 교회는 이 신앙을 상속받아서 동일한 믿음에 의해서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 함을 받고 영생을 얻습니다.
이를 보여주고 있는 교회의 역사가 개혁주의 교회입니다. 개혁주의 교회는 창세 전에 하나님이 작정하신 것의 실천에 따라서 그리스도를 통해서 구속하여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게 하신 자들을 모든 시대에서 보여 왔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가 아닌 다른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는 사람들 앞에서 자신들이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를 진실하게 믿고 있는지를 보였습니다. 이것의 확인이 교회회의를 통해서 되어짐으로써 신앙고백서의 문서로 작성되어 선언되고, 교회가 믿는 교리로 확정되었을 뿐만 아니라 교회 신학으로 가르쳐져왔습니다.
그런데 교회의 역사에서 그리스도를 진실히 믿는 그리스도의 교회는 점차 은닉성을 띠었습니다. 이는 로마 황제인 콘스탄틴(Constantinus)이 밀라노 칙령의 공포를 통해서 그리스도교를 로마의 국교로 공인(A.D.313년)하면서부터 되어졌습니다. 지상에 그리스도교란 국교가 등장하고, 니케아 회의(A.D.325), 콘스탄틴노플 회의(A.D.381), 칼케돈 회의(A.D.451)를 통해서 신앙고백서인 각각의 신조가 작성되어 공교회가 신앙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말해나가며 신학이 서나가고 있었습니다만, 로마카톨릭교회가 전성시대를 맞이하여 갈수록 그리스도의 참된 교회는 그 모습이 감추어져 있었습니다. 이들은 로마카톨릭교회란 거대한 세력 속에서 남은 자로 있었습니다. 이 당시의 로마카톨릭교회는 지상에서 교회라는 거대한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지만, 그러나 그리스도의 교회는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이 세력 속에서 예비해 놓은 은닉되어 있던 남은 자들을 끄집어내어서 사용하셨습니다. 이는 르네쌍스(Renaissanace)로 불리우는 문예부흥을 통해서 새로운 학문의 발달과 인문학이 발달하고, 동로마제국의 멸망으로 문예부흥은 더욱 크게 일어나는 것에 의해서 로마카톨릭교회는 쇠퇴해 나가는 시기에 있게 하면서 입니다. 그래서 마틴 루터가 등장하기 전에 이미 종교개혁 운동의 근저를 이루는 종교개혁자들이 있었습니다. 김의환은 이들을 첫째는 교리적인 개혁자, 둘째는 실제적인 개혁자, 셋째는 신비적인 개혁자로 구분하였습니다. 이중에서 교리 신앙상으로 로마카톨릭교회의 가르침에 복종하지 않은 사람들은 왈도와 그의 무리들, 알비젠스, 위클리프와 그의 무리들, 후스, 보헤미아의 개혁당이며,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서 교회 내의 부패를 정화하고 도덕적인 개혁을 행하려고 한 사람으로는 사보나룰라, 피에르, 제르손 등이 있습니다.
루터에 의해서 시작되고 쯔빙글리, 그리고 칼빈의 신학 사상의 영향을 받아서 세워진 프로테스탄트 교회와 이 중에서 또한 개혁주의 교회는 종교개혁 시대에 등장함으로써 은닉되어온 교회에서 그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개혁주의 교회는 주님이 세우신 교회의 신앙이요 사도적 신앙을 가장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교회가 권위를 주이신 그리스도께 두었으며, 또한 믿음의 원리를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서 말씀해 주고 있는 것에서 말한 데 있습니다.
개혁주의 교회는 칼빈의 신학 사상을 따르는 유럽대륙을 중심으로 존재하고 있는 개혁교회와 죤 낙스에 의해서 칼빈의 신학 사상을 따르면서도 교회정치를 장로주의에서 찾고 있는 스코틀랜드의 개혁주의 장로교회에서 시작되고 있는 장로교회로 구분됩니다. 이 중에서 장로교회는 영국과 미국을 거쳐 우리나라에 전파되어 들어왔는데 이 장로교회에 개혁교회도 크게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장로교회의 실태는 개혁교회에서 보는 신앙도, 개혁주의 장로교회에서 보는 신앙도 볼 수가 없습니다. 우리나라의 각 교단은 분명 개혁주의, 보수주의, 복음주의, 정통주의를 표방합니다. 그러나 이는 마치 구호요 표어이듯이 되어 있을 뿐이며, 신학의 정체성은 상실되어 있는 형편입니다. 이는 교단 또는 교회와 신학교(신학대학원)가 같이 있으면서도 사실은 별개처럼 되어 있는데서 그 원인이 있습니다. 그래서 교단(교회)의 신학의 정체성과 신학교의 신학의 정체성이 일치되어 있지를 않습니다. 신학교(신학대학원)에서 신학자인 교수를 통해서 바른 신학을 배웠을지라도 교단이 갖고 있는 신학은 교회성장과 목회성공의 비결 속에 묻혀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나라의 실정에서 개혁주의 신학은 몇 몇 교수들에 의해서 학교에서만 가르쳐져 학생들에게 상속되고 있다고 볼 수 있고, 교단에서는 개혁주의 신학과 신앙은 상실되어 있으면서 몇 몇 목사들에 의해서 교회에 상속되고 있다고 할 것입니다.
이런 상태에서 신학을 공부한 졸업생은 큰 고민에 있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교회가 처한 현실적인 상황에서는 교단의 필요성을 가지면서도 신학과 신앙의 정체성에서는 교단과 함께 연합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때 우리나라는 철저하게 교단에 의해서 교회에 시무하는 목사의 운명이 결정되며, 교회(신자와 재산)는 교단의 소유 개념이 됩니다. 그래서 개교회를 교단이 맡아 있는 셈이 됩니다. 그래서 목사와 신자가 아무리 성경적인 바른 신앙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교단의 예배모범과 법을 따르는 것이 되지 않는다면 제명과 면직, 교회 탈퇴 등이 자행됩니다.
그러나 성경의 원리에 의한 개혁교회의 정치 원리는 개교회의 머리는 그리스도이시며, 따라서 그리스도만이 개교회를 다스리신다는 것입니다. 당회, 노회, 총회는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섬기는 것으로 존재해야 합니다. 개교회가 다른 교회를 간섭하고 지배할 수 없습니다. 이는 당회와 노회와 총회와의 관계에서도 그러해야 합니다.
개혁주의 교회의 신학과 신앙은 계대성을 띱니다. 이는 개혁주의 교회의 신학과 신앙은 상속의 개념을 가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교회가 교회로부터 물려받는 것이 아니라, 모든 신자가 말씀의 증거인 설교를 통해서 각각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받는 것입니다. 교회는 다만 그 교회를 이루고 있는 신자가 하늘에 계신 아버지로부터 받은 신앙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신학은 그 신앙을 받은 자 중에서 가르치는 은사로서 교수의 직임을 수행하는 자에 의해서 전해집니다. 그 기관이 신학을 교회로부터 위탁받은 신학교(신학대학원)이기에 개혁주의 교회의 신학과 신앙의 계대성은 첫째는 교회를 통해서 하나님의 은혜가 전달되는 말씀이 증거되는 것이며, 둘째는 신학교(신학대학원)의 가르침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개혁주의 신학과 신앙에 서 있는 어느 학교에서 어느 교수를 통해서 사사를 받았느냐는 것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목사나 신학생이나 어느 교단에 속해 있든지 간에 중요한 것은 할 수만 있으면 개혁주의 신학과 신앙에 서 있는 교단이어야 할 것이나 우리나라 교단의 실정에서는 교단이 어느 개인의 신학과 신앙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개혁주의 신학과 신앙에 서 있는 개교회이며, 또한 그 교회가 신학을 위탁할 수 있는 신뢰 있는 학교입니다. 그래서 개교회의 목사는 신자를 바른 신학과 신앙으로 인도하여야 하며, 성도를 학교에 위탁한다면 바르게 배울 수 있도록 지지하고 지원하여야 합니다.
Ⅵ.결 론
지금까지의 기술을 통해서 개혁주의에 대한 이해와 함께 역사적 개혁주의 교회를 통해서 교회가 갖는 개혁이란 것이 어떤 것인지에 대한 설명과 개혁주의 교회의 신학과 신앙도 살펴보면서 이것이 계속해서 이어질 수 있기 위해서 교회에서 하나님 말씀의 증거와 신학교(신학대학원)에서 신학의 가르침이 계대성을 띠고 바르게 행해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말하고자 하였습니다. 바라기는, 본 글을 통해서 신학을 공부하는 분들이나 목회하시는 분들이 신학만 하고 목회만 잘하면 된다는 인본주의적 발상의 생각에서 벗어나 주님의 교회를 바르게 이루며 섬길 수 있기 위해서 개혁주의 교회, 개혁주의 신학, 개혁주의 신앙을 중요하게 여기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
잘 나가는 자동차를 타구설랑,.온 도시를 헤집고 다녀봐도,..텅빈 마음은 ,..그 무엇으로 채울수가 없더이다!!~~설렁거리는 자전거를 타구설랑,..한적한 시골길을 매끄럽게 달려보셔요!!~널찍한 자연속에서 펼쳐지는,..아름다운 풍경을 만끽할수 있다면,..우리는 `축복`속에서 사는거우다!!~~믿음의 사람들은 묵묵하게스리 그 길을 갑니다!!~누가 뭐라해도 그 길외에는 다른길이 없음을 알기때문 이우다!!~
정야베스님 때문에 이쪽 분야에 관심을 가져야할 시기가 온 것 같습니다.~~~^^ 지난 주말에 형님과 같이 대화를 하면서 만약 하나님이 그 쪽을 생각해보라고 하신다면 나갈것이다라고 선언했는데.... 야베스님이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글로 불을 지펴주시는 군요~~~ 에고고 고생~~시작~~~^^* 덕분에 감사드립니다^^
어느 한분야에서 오래도록 있다보면,..눈이 떠 지더이다!!~세상일도 이러 하거늘,..하물며,..그 높으신 분의 은혜를 깨닫는 데에는 더 말해서 무엇하겠습니까??..이제 한 귀퉁이를 부여잡고 있는 ,..우리들을 볼라치면 초라하기 그지 없습니다!!~~그래도 우짭니까?..자꾸만 한길로만 가라구 하시는 `그 높으신 분의 음성`이 우리를 재촉하지 않나요??!!~...세상사람들은 자꾸만 넓은길로 나아 갑니다!!...그러나 믿는 우리들은 계속 `좁은길`을 가게 됩니다!!~이걸 아는이가 그리 많지 않으오다!!~~고생을 `복`이라고 하시니,..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짖굳더이다!!~~물론 관심가져 주심에 감사를 드립니다!!~
첫댓글 어쩌다,..길을 가다보면,..생각지도 않은 `은혜`를 맛보게 됩니다!!!....도깨비 방망이 식으로 믿어왔던 나에게,.. `바른신앙`이 무엇인지?..생각할수 있는 기회를 주신,..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설마 직접 다 쓰신것은 아닐테죠? ㅎㅎ 좋은 참고 되었습니다.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 ,..그분의 `지팡이`가 우리를 ,..늘 평안케 하여도,..음침한 골짜기로 내달리는 우리의 모습에,..저으기 놀랩니다!!!..닉 네임이 퍽 마음에 드네요!!~~좋은 만남이 되기를 소원해 봅니다!!~
글쓴이 이천우 님이라고 위에 써있네욤 ^^
개혁주의 글들이 더 많이 올라오면 좋겠습니다. 은혜롭습니다.
잘 나가는 자동차를 타구설랑,.온 도시를 헤집고 다녀봐도,..텅빈 마음은 ,..그 무엇으로 채울수가 없더이다!!~~설렁거리는 자전거를 타구설랑,..한적한 시골길을 매끄럽게 달려보셔요!!~널찍한 자연속에서 펼쳐지는,..아름다운 풍경을 만끽할수 있다면,..우리는 `축복`속에서 사는거우다!!~~믿음의 사람들은 묵묵하게스리 그 길을 갑니다!!~누가 뭐라해도 그 길외에는 다른길이 없음을 알기때문 이우다!!~
정야베스님 때문에 이쪽 분야에 관심을 가져야할 시기가 온 것 같습니다.~~~^^ 지난 주말에 형님과 같이 대화를 하면서 만약 하나님이 그 쪽을 생각해보라고 하신다면 나갈것이다라고 선언했는데.... 야베스님이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글로 불을 지펴주시는 군요~~~ 에고고 고생~~시작~~~^^* 덕분에 감사드립니다^^
어느 한분야에서 오래도록 있다보면,..눈이 떠 지더이다!!~세상일도 이러 하거늘,..하물며,..그 높으신 분의 은혜를 깨닫는 데에는 더 말해서 무엇하겠습니까??..이제 한 귀퉁이를 부여잡고 있는 ,..우리들을 볼라치면 초라하기 그지 없습니다!!~~그래도 우짭니까?..자꾸만 한길로만 가라구 하시는 `그 높으신 분의 음성`이 우리를 재촉하지 않나요??!!~...세상사람들은 자꾸만 넓은길로 나아 갑니다!!...그러나 믿는 우리들은 계속 `좁은길`을 가게 됩니다!!~이걸 아는이가 그리 많지 않으오다!!~~고생을 `복`이라고 하시니,..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짖굳더이다!!~~물론 관심가져 주심에 감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