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출처 : 여성시대 새우를먹고싶어요
식탁 위는 금세 꽉 찼다. 붉은 떡볶이가 접시를 채우고, 유부초밥은 가지런히 줄을 맞췄다. 수제비 그릇에서는 김이 피어올라 방 안 공기를 눅진하게 데웠고, 막 쪄낸 만두는 윤이 돌았다.
둘이 먹기엔 지나치게 많은 양이었지만, 다영은 하나라도 더 보태려는 듯 음식들을 이리저리 옮겨가며 상을 채웠다.
“우리 같이 밥 먹는 거, 진짜 오랜만이다. 주은아.”
그녀는 의자에 앉아 손끝으로 식탁을 두드렸다.
잠시 후 벌떡 일어나 구석을 뒤적이더니 낡은 담요를 꺼내와 주은의 어깨에 덮었다.
“아, 춥지? 원래 추위 잘 탔잖아.”
허둥지둥 접힌 끝을 정리하다가 흘린 웃음이 공기에 퍼졌다.
다영은 다시 만두 접시를 들어 보였다.
“여기 만두 알지? 요즘엔 아침부터 줄 서야 산다더라. 내가 새벽에 갔다 왔어.”
만두를 젓가락으로 집어 주은 앞에 놓았다가 금세 몸을 돌렸다.
“아, 맞다. 너 수제비 귀신이지.”
끓고 있는 뚝배기 속에 숟가락을 저으며 김을 불었다. “아직 너무 뜨겁네.”
곧 무언가 떠오른 듯, 그녀는 부엌으로 달려가 냉장고에서 접시 하나를 꺼내왔다.
“짠! 이건 내가 만든 건 아니야. 엄마한테 부탁했어. 너 이거 좋아했잖아.”
주먹밥을 내밀며 다영은 아이처럼 들떠 웃었다. 그 순간, 주은이 낮게 말했다.
“…너 지금 뭐 하는 거야.”
짧은 말이 흘러나오자 공기가 멎었다.
주은은 손목을 움찔 들썩였다. 두 팔이 담요 아래에서 덜컥거렸지만, 줄에 단단히 묶여 꿈쩍하지 않았다. 손가락 끝이 허공을 긁듯 허망하게 떨렸다.
-
다영은 접시에 놓인 주먹밥을 그대로 움켜쥐었다
“이거, 너가 제일 좋아했잖아. 엄마가 이거 하느라 얼마나 준비한 줄 알아? 먹어 봐.”
말끝이 갈라지며 주먹밥이 주은의 입 앞에 들이닥쳤다.
주은은 고개를 세차게 돌렸다.
“이런 미친— 뭐 하는 거냐고 묻잖아!”
다영은 대답 대신 주먹밥을 억지로 밀어 넣었다. 손가락 마디가 입술 틈을 벌리려 세차게 눌렀다. 주은은 이를 악물고 버텼다. 얼굴이 뒤로 젖혀졌다.
“아, 맞아. 넌 이거 못 먹어봤겠다. 다 가져다 버렸으니까.”
다영의 시선이 허공을 훑다가, 문득 멈췄다.
“만두집 골목, 지금은 밤에도 엄청 밝더라. 그땐 깜깜했고, 난 겁에 질렸는데, 넌—”
말끝이 잘리며 만두가 그대로 주은의 입으로 쑤셔 넣어졌다. 뜨겁고 기름진 냄새가 퍼졌다. 주은은 고개를 돌리며 토해내듯 뱉었다. 턱과 목덜미가 젖었다.
“지금 언제 적 얘기를 하는 거야? 그때 내가 열다섯이었어, 열다섯! 씨—”
순간 주은의 뺨이 돌아가며 마찰음이 방 안에 울렸다.
주은은 몸을 비틀며 소리쳤다.
“이거 풀어! 풀라고! 너 진짜— 미쳤어?! 너 가만 안 둘 거야!”
목이 갈라져 말이 제대로 이어지지도 않았다.
끈이 팔목에 더 깊게 파였다. 의자가 덜컥거리며 흔들렸다.
“이거 장난이지? 장난이면 지금 그만둬. 다영아, 이거 뭐하는 짓이야, 진짜…”
그녀의 숨소리가 터질 듯 가빴다.
다영은 잠시 그대로 서 있었다.
그 소리를 다 들은 뒤에야, 아주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만 좀 해.”
조용히, 그러나 단호하게.
“밥 먹을 땐 조용히 해야지. 주은아.”
그녀는 다시 접시를 세워 올리며 낮게 중얼거렸다.
“이렇게 예쁜 상을 망치면 안 되지.”
주은의 시선이 어딘가에 걸린 듯 불안하게 머물렀다. 숨결은 고르지 못해 가슴께가 잔잔히 떨렸다. 한동안 소리가 나오지 않다가, 목구멍에서 갈라진 숨이 비집고 새어 나왔다.
“…내가 그땐 철이 없었어. 그냥— 그냥 네가 부러워서 그랬어. 너네 집은 늘 따뜻했잖아. 깨끗하고, 언제나 환영받고, 웃어주고… 나는 그러니까… 그러니까 내가 미쳐서 그랬던 거야. 진짜야.”
다영의 눈빛이 흔들렸다. 벌겋게 충혈된 눈이 번들거렸고, 마른 입술이 떨렸다.
“…아냐.”
낮게 뱉은 음성이 공기를 가르듯 갈라졌다.
“아냐… 아냐, 그런 게 아니야.”
그녀의 어깨가 들썩였다. 숨이 자꾸 끊기듯 몰아쉬어졌다.
식탁 위를 더듬더니, 펄펄 끓던 수제비 그릇을 덜컥 움켜쥐었다.
뜨거운 열이 손바닥에 달라붙었다.
피부가 타는 듯했지만 개의치 않은 채, 그대로 그릇을 들어 올렸다.
그녀의 시선은 흐려져 있었다.
눈물과 핏발이 뒤섞여, 무언가가 부서진 얼굴이었다.
그대로 주은의 치마 위로 쏟았다
“악—!”
짧은 비명이 방 안을 갈랐다.
천이 젖어 허벅지에 들러붙었다. 김이 피어올라 방 안을 메웠다.
주은은 몸을 비틀며 숨을 몰아쉬었다. 치마 끝을 움켜쥐어 젖은 천을 떼어내자, 그 아래 피부가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얇은 천 사이로 숨결 같은 증기가 뿜어져 나왔다.
주은은 헐떡이며 숨을 몰아쉬었다. 치마 끝을 움켜쥔 손에서 벗어나려 했지만, 묶인 손목이 덜컥거릴 뿐이었다.
다영은 무릎을 꿇었다. 방바닥이 삐걱거리는 소리가 작게 울렸다.
그녀의 얼굴이 허벅지에 가까워졌다. 숨결이 뜨겁게 스쳤다.
붉게 달아오른 자국 위로 입술이 조심스레 닿았다.
마치 열을 식히려는 듯, 더디고 끈적하게. 혀끝이 피부 위를 천천히 미끄러졌다.
주은의 입에서 끊긴 소리가 흘렀다.
“뭐… 하는…”
다영은 입술을 떼지 않은 채 낮게 속삭였다.
“네가 가르쳐 줬잖아. 내가 무서워하니까, 말해줬잖아. 우리 둘만의 비밀 이라고.”
말이 끝나자 방 안은 숨소리만으로 가득했다.
다영은 무릎을 꿇은 채 얼굴을 천천히 들어올렸다. 눈은 벌겋게 충혈되어 있었고, 눈물에 젖어 번들거렸다.
“…나는 기다렸어.”
낮게, 그러나 단단하게 울렸다.
“네가 말했잖아. 어른들은 다 하는 거라며. 근데 어떻게 다른 사람하고 아무렇지 않게 그럴 수 있어? 왜 손을 잡고, 왜… ”
다영의 손이 주은의 머리카락을 움켜쥐었다.
순간, 주은의 고개가 뒤로 젖혀지며 긴 숨이 새어 나왔다.
목이 휘어지고, 팽팽하게 당겨진 살결 위로 긴장감이 흘렀다.
“거짓말이었어? 전부 다?!”
주은은 얼굴을 돌려 눈을 감았다. 뺨에 눈물이 흘렀지만, 소리는 터지지 않았다.
“다 보고 있었어. 네가 어디 다니는지, 누구랑 웃는지… 나는 그래도 기다렸어.”
다영의 목소리는 울음에 젖어 허공을 찢듯 떨렸다.
방 안은 숨소리와 흐느낌만으로 가득했다. 식탁 위 음식은 이미 식어가고 있었고, 김은 허공에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주은은 한참이나 고개를 떨군 채 숨만 고르고 있었다. 긴장으로 굳어 있던 어깨가 조금씩 풀리더니, 가라앉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나는 무서웠어.”
그녀는 고개를 들지 않은 채 천천히 말을 이었다.
“네가 싫어서가 아니라… 그냥,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어.
그때는 내가 뭘 느끼는지도 잘 몰랐거든.
그냥, 너무 어려서.”
잠시 정적이 흘렀다.
그녀의 숨결이 미세하게 흔들렸고, 그 틈에서 목소리가 다시 흘러나왔다.
“그래도… 너 생각 많이 했어. 진짜야. 그냥 겁이 났을 뿐이야. 나도 상처받을까 봐, 그게 무서워서 그랬어.”
그녀의 목소리는 점점 낮아졌고, 끝부분은 거의 속삭임처럼 사라졌다.
다영은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았다.
눈물이 그렁한 채로 굳어 있었고, 그 얼굴에는 울음보다 더 복잡한 표정이 걸려 있었다.
“…정말?”
한참 만에 나온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을 만큼 작았다.
믿고 싶은 사람처럼, 확신보다 바람에 가까운 어조였다.
주은은 대답 대신, 고개를 아주 조금 끄덕였다.
다영의 손이 조심스레 주은의 손목으로 내려갔다. 얇은 끈이 손가락 사이에서 바스락거렸다. 단단히 조여 있던 매듭이 느슨해지며 서서히 풀려나갔다.
붉게 눌린 자국이 피부 위에 남았다.
주은은 손목을 들어 잠깐 바라보다가, 별다른 말 없이 무릎 위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곧 고개를 들었다.
눈빛이 흔들렸으나, 잠시 머뭇거린 뒤 다영의 얼굴을 잡아끌듯 가까이 다가갔다.
입술이 세차게 부딪혔다. 망설임도, 예고도 없었다.
다영은 눈을 크게 떴다가, 곧 눈을 감았다.
방 안은 숨소리만으로 가득 찼다. 오래 묵은 울음과 남은 분노가 서로의 입술에 얽혀 흐려졌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알 수 없었다.
방 안 공기는 조금 가라앉아 있었고, 식탁 위에 남은 것들은 이미 오래 전 온기를 잃어 있었다.
표면은 굳어 얇은 막이 앉았고, 가장자리는 어둡게 말라붙어 있었다.
그릇 위에 비친 두 사람의 그림자는 길고 희미했다.
두 사람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 젓가락을 들었다. 차갑게 굳은 것을 쪼개어 입에 넣을 때마다, 딱딱하게 부서지는 소리가 조용히 방 안에 퍼졌다. 씹히는 감촉은 건조하고 서걱거렸지만, 둘의 얼굴에는 오히려 작은 웃음이 번졌다.
눈물이 말라붙은 자국과, 아직 남은 미소가 한 자리에 겹쳐져 있었다.
방 안은 여전히 어수선했고, 테이블 위는 엉망이었으나, 두 사람의 눈빛만은 잠시 동안 평온하게 머물렀다.
-
다영은 콧노래를 부르며 장바구니를 양손에 들고 마트의 통로를 천천히 걸었다.
과일과 고기, 기름진 것들과 화려한 색감의 음식을 하나씩 담아 올렸다.
마치 잔칫상을 준비하듯, 카트는 금세 넘쳐났다.
계산을 마친 뒤, 바로 옆 공구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선반을 훑으며 몇 가지를 집어 들었고, 금속이 부딪히는 소리가 짧게 울렸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다영은 휴대전화를 꺼내 들었다.
한동안 신호음이 이어졌다가, 곧 연결되었다.
“어, 통화 괜찮지?”
짧게 숨을 고르며 웃었다.
“어제 너 얘기, 엄마한테 했어. 되게 좋아하시더라. 오랜만에 고향 왔다고 하니까, 꼭 한번 보고 싶대.”
“청첩장, 우리 엄마한테도 줘야지. 우리 집 어딘지 알지? 그대로야.”
짧은 대답이 들리자 다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응, 시간 많이 안 뺏을게. 그냥 잠깐이면 돼.”
목소리는 담담했고, 어쩐지 들뜬 기운이 묻어 있었다.
잠시 뒤, 집 안은 음식으로 가득 찼다. 크고 작은 그릇들이 줄지어 놓였다. 너무 많아 자리가 모자랄 정도였다. 방 안 공기는 기름진 향으로 눅진하게 채워졌다.
그때, 맞은편 의자에서 낮고 거친 소리가 흘러나왔다.
부스스 몸을 일으키는 기척.
다영은 손에 들린 접시를 내려놓으며 고개를 돌렸다.
“깼어?”
의자에 앉은 이는 한동안 멍하니 앞을 바라보다가, 이내 손목에 감긴 끈을 발견했다. 눈빛이 뒤집히며 온몸이 격렬하게 흔들렸다.
“뭐하는 거야? 이 미친— 이거 풀어! 풀라고!!”
쇠붙이가 덜컥거리고, 의자가 바닥을 긁는 소리가 방 안을 울렸다.
다영은 마지막 남은 접시를 식탁 위에 올려놓은 뒤, 맞은편을 향해 천천히 웃었다.
“우리 같이 밥 먹는 거, 진짜 오랜만이다. 주은아.”
첫댓글 납치한애가 기억을 계속 잊나? 둘 사이에 무슨일이 있었는지 궁금하네. 잘봤어 여시야!
해석 새댓으로 남겼어유~!! 초반부는 다영의 망상이여!
@새우를먹고싶어요 친절한 해석까지 너무 고마워 여샤! 재밌었어!!
해석을 남깁니다.
이 이야기는 다영이 실제로 납치를 실행하기 전, 머릿속에서 돌린 시뮬레이션 같은 망상이에요.
주은은 가정이 불우하고, 열등감과 질투심으로 다영을 괴롭혔던 친구였어요.
겉으론 친했지만, 그 관계는 이미 오래전부터 뒤틀린 애정과 폭력의 흔적을 품고 있습니다.
어느날 다영은 전화를 받아요. 주은이 결혼한다는 소식. 그녀는 고향에 내려와 청첩장을 돌리고 있었어요.
그순간부터 무너진 다영의 머릿속...
결핍과 집착이 폭발하여 만찬 시뮬레이션이 시작됩니다.
그녀가 차린 음식들은 모두 사랑을 재현하려는 의식이자 폭력의 도구죠
이 망상이 끝나는 순간, 다영은 현실로 돌아와요.
만찬을 위한 장을 보고, 공구점에서 범죄에 필요한 용품들을 구매해요. 그리고 집으로 주은을 유인합니다.
그 모든 망상을 이제 현실로 옮기려는 광기의 전조~~~랍니다
골목길엔 무슨 일이 있었나요
와 나는 연쇄 살인범이고 피해자를 전부 주은이라고 여기면서 반복하는줄
재밌는 해석!!! 괜히 해석 써놨나~!! 이런해석 보는것도 재밌네요
오 나도 이렇게 생각했어 재밌다!!!
헐!!! 완전 재밌어 필력 대박이다
다영이는 괴롭힘당해도 주은이를 사랑했구나
헉 ........... 너무 재밌어 ......
난 해석 있는게 훨씬 좋았어!
˗ˋˏ와ˎˊ˗ 잘 읽고 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