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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달이의 축구이야기] 오! 한국수비여, 한국수비여! 2005.3.28. 월요일 |
2006 독일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2차전, 한국과 사우디의 경기를 앞둔 26일 새벽 1시경, 요즘 독도 문제로 일본에 대한 감정이 새롭게 움트고 있는 시점에서 이란이 일본을 상대로 2:1의 승리를 거두는 기분 좋은 장면을 목격하였습니다. 이렇게 대리만족을 느끼는 저 자신이 조금은 한심하게 느껴졌지만 그래도 일본의 패배 장면은 저의 몸속에서 '엔도르핀'을 쏟게 만들더군요.
이제 한국 팀이 '사우디'를 이기기만 한다면 봄날의 상큼한 꽃 향기와 같은 황홀한 꿈나라가 될 듯! 한국선수와 사우디 선수는 서로 악수를 하고 경기시작 휘슬에 맞춰 분주히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전반 3분 서로 땀도 채 나지 않은 시각.
사실 경기 시작 전, 한국 팀의 원정경기이지만 그래도 사우디를 상대로 무난한 경기는 펼치지 않을까 모두가 예상했습니다. 축구전문게시판과 언론들도 지난 쿠웨이트 전에서 경직되었던 모습과는 달리, 승리에 대한 자신감이 넘쳤고 여유로워 보였습니다. 사우디와 역대 전적 11전 3승 5무 3패로 서로 팽팽한 전적을 보이고 있지만, 사우디는 최근 아시안컵과 걸프컵에서 예전의 날카로운 모습은 찾을 수 없었습니다.
물론 한국의 경우도 사우디와 다를 바 없이 2002년 월드컵 이후로 방황을 거듭 하였지만 지난 쿠웨이트 전에서 한국 특유의 무서운 압박이 서서히 살아남이 보여, 최소한 사우디보다는 좋은 경기를 펼치지 않을까 예상했던 것이죠. 그리고 지난 해 성남일화가 아시아클럽 참피언스리그 결승 1차전에서, 현 사우디 대표팀의 핵심선수 6명이 포진한 사실상 '준 대표팀'이라 말할 수도 있는 <알 이타하드>팀을 상대로 사우디 원정경기에서 좋은 경기력을 보여준 바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사우디 지역에서의 원정경기는 어느 정도 부담감이 덜하게 느껴졌던 이유도 있었습니다. 물론 성남일화가 2차전 홈경기에서 대패하여 결국 우승의 문턱에서 좌절은 했지만 말이죠.
독일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2차전 사우디와의 경기 전반 3분, 한국의 왼쪽 수비수 박재홍선수가 사우디의 측면공격수에게 너무 어이없이 무너지는 장면이 펼쳐졌고 이것이 '황홀한 꿈나라'가 아닌 '지옥 같은 악몽'으로 들어서는 신호탄이 됩니다.
전반 초반, 사우디의 거센 압박에 한국이 밀립니다. 볼 점유율에서 보듯이 7:3으로 한국이 압도적으로 밀리는 형세라, 한국선수들은 물론 경기를 지켜보는 팬들까지도 당혹스럽게 만듭니다. 그러나 '중동킬러'라는 닉네임을 가지고 있는 이동국이 한국의 분위기를 조금씩 살려 나갑니다. 그는 경기 초반, 한국의 미드필드가 사우디선수들에게 밀리고 있을 시점에 미드필드 지역까지 적극적으로 내려와 '중원쟁탈전'에 한 몫을 담당해 주었고, 좌우측 측면으로 활발한 공간침투마저 보여줍니다. 초반 '분위기메이커'는 당연 이동국이었습니다. 그의 적극적인 몸놀림으로 위축되었던 한국분위기가 조금씩 살아납니다.
전반 4분 경, 설기현의 크로스를 받은 이동국의 날카로운 중거리 슛! 전반 7분 경, 김남일의 공간패스로 이어진 이동국의 공간 침투! 그리고 전반 8분 경, 그의 발에서 결정적인 장면으로 이어지는데....
스포츠 경기를 분석할 때, '만약' 이란 단어를 쓰는 것만큼 바보 같은 짓은 없습니다. 그러나 '만약!' 이 장면에서 이동국이 완벽하게 결정을 지어 주었다면 한국의 운명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라는 바보 같은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중동과의 22경기에서 16골이라는 폭발적인 기록을 보여준 이동국이였기에 '중동킬러'라는 그의 닉네임에 걸맞은 결과를 기대하였던지라 아쉬움이 더 합니다.
전반 초반에 사우디의 거센 압박에 한국선수들이 당황했으나 중반으로 들어서면서 이동국과 미들진의 활발한 움직임이 살아나면서 어느 정도 대등한 경기력을 보여줍니다. 오히려 한국 팀이 더 좋은 장면들을 만들어 나가며 한국 측의 페이스로 돌아서는 듯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한국팀의 상승 분위기에 찬물을 붓는 이들이 있었는데 다름 아닌 한국의 최후방 수비진이었습니다. 제가 국민학교시절, 지금은 초등학교죠, 3학년 때였던가... 처음으로 서커스라는 것을 보게 되었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 높은 기둥 사이로 외줄만을 연결한 채 그곳에서 자전거를 타시는 분이었습니다.
그때는 너무 아슬아슬해서 차마 눈을 뜨고 보지 못했었는데, 사우디경기를 보면서 갑자기 그 시절이 생각나더군요. 사우디전의 한국수비가 거의 '서커스' 데요.
저는 유상철이 넘어졌을 때 사우디 선수의 반칙이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주변에 있던 한국수비수들도 같은 생각을 했던 것 같구요. 그러나 리플레이 장면을 다시 보니 사우디선수의 반칙이 아니라, 몸이 따라가지 못했던 유상철이 제 풀에 넘어진 장면이었습니다. 심판의 휘슬이 울리기 전엔 나머지 선수들은 최선을 다했어야 했는데 주춤거리는 모습이 좋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박재홍 선수의 위치선정에도 큰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여러분들 '청기백기 게임'을 아십니까? "청기 올리고 백기 내리고..." 순발력을 요구하는 게임입니다. 만약 한국의 모든 축구선수들을 모아 놓고 이 게임을 했을 때 가장 뒤에서 버벅거릴 선수 3명을 뽑으라면 저는 주저 없이 박재홍, 유상철, 박동혁 선수라고 말할 것입니다.
사우디와의 경기에서 위 선수들의 반응 속도는 거의 영화 '매트릭스'를 방불케 하였는데, 사우디 선수가 어떤 행위를 했을 때 이 '매트릭스 3형제'는 2초 후, 혹은 3초 후에서야 반응을 나타내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후반 25분, 본프레레 감독은 최후방 수비라인에 박재홍과 박동혁만을 남기며 공격지향적인 포메이션으로 승부수를 띄웁니다. 그러나 결과론적으로 이것은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는데, 막상 한국 선수들이 공격적으로 포진했지만 공격의 빈도나 흐름에서 이전보다 크게 개선되지 못하였습니다. 오히려 '매트릭스 형제'의 수비라인이 더욱 불안해져 사우디 공격을 막아내느라 더 분주해졌고, 결국 후반 30분 경 박동혁의 반칙으로 페널티킥을 허용하여 0:2로 오히려 스코어가 더 벌어지고 맙니다.
경기 후 마지막의 이 포메이션 변화를 두고 축구팬들로부터 많은 논란이 되었는데 "본프레레 감독님! 히딩크 흉내 내십니까?" 라는 비난들과, 이 경기로 모든 것이 결정되는 토너먼트도 아니고 아직 남은 경기들이 즐비한 리그전이기에 설사 0:1로 지더라도 최소한 추가실점을 허용하지 않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 옳지 않으냐는 측면의 의견들도 줄 지었습니다.
물론 이 모두가 결과론적인 질책과 평가들이지만, 결코 부인 할 수 없는 것은 본프레레 감독의 작전은 그저 무의미한 헛수로 돌아갔다는 것입니다. 후반 초반 이천수의 날카로운 프리킥에 이은 박동혁의 멋진 헤딩슛과 후반 끝무렵 박지성이 한 문전에서의 터닝슛 등 간헐적인 공격들이 있었습니다만.. 결국 한국대표팀은 사우디의 수비를 뚫지 못한 채 0:2로 완패하고 말았습니다.
막상 한국팀이 좌우측 측면이 막혔을 때 해답을 찾기가 힘듭니다. 사우디가 측면수비에 비중을 두었던지라 중앙에선 조금 엷은 감이 있었지만, 한국 팀은 중앙에서 해법을 찾으려 하지 않았고 고집스럽게 측면 쪽으로 정면 돌파하려 하였습니다. 그러나 사우디의 '측면밀집수비'에 시종일관 말려들고 말았는데, 설기현과 이천수의 활약이 거의 보이지 않았던 것도 사우디 전술에 막혔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천수의 경우는 여전히 컨디션이 밑바닥이였구요.
이 경기에서 측면 돌파에 이은 한국의 공격은 90분 통틀어 정말 몇 번 되지 않았는데, 전술에서도 한국팀은 사우디에게 보기 좋게 당했습니다.
코엘료 감독은 베트남에게 충격의 패배를 당한 적이 있습니다. 이 경기를 살펴보면, 한국이 베트남을 상대로 30~40회의 슈팅을 날렸고 골대를 4번이나 맞추는 너무도 불운한 경기 내용이었습니다. 그런데 베트남은 단 한 차례의 공격만을 하였지만 그것이 어이없게도 한국 골문을 흔듭니다. 결국 베트남은 한국에게 믿을 수 없는 패배를 안겨주었습니다.
이 경기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물론 경기 결과만을 두고 선수들과 감독을 향해 비난을 할 수 있으나 사실 이런 경기를 두고 그들을 질타하기는 조금 힘듭니다. 골대를 4번이나 맞추는 경기를 두고 더 이상 무슨 할 말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사우디와의 경기에선 경기내용에서, 전술에서, 결과에서, 완전히 완패를 당했습니다.
경기는 이길 수도 질 수도 있습니다. 항상 우리 팀이 승리하리라는 생각을 가진 분들은 아마 없을 것입니다. 당연히 사우디에게도 질 수 있는 것이지요. 그런데 왜! 많은 전문가들과 팬들이 이렇게 흥분을 하며 '화'를 내고 있는 것일까요? 단순히 경기에 졌다는 이유 때문일까요? 결코 이것 때문만이 아닙니다. 오만전 패배와 베트남전 패배에서도 냉정함을 잃지 않으려 했던 '축구전문게시판'의 필진들조차 감독과 기술위원을 향해 비난을 퍼붓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한국 팀의 수비단점은 이미 오래 전부터 드러났었고, 그것에 대한 대안들이 지난 해부터 많은 분들에 의해서 제시되었지만, 본프레레 감독과 기술위원들은 개선의 노력을 보여 주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결국 그 불안 요소가 사우디 전에서 곪아 터졌던 것이구요.
중앙수비에서 깃털처럼 가벼운 움직임을 보여주었던 '유경렬'을 외면하고, 이미 노쇠의 길을 걷고 있고, 시종일관 둔한 움직임만을 보여준 유상철을 기용한 감독의 고집을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 대표 팀뿐만이 아니라 국내 프로축구리그에서도 한결같이 불안한 수비를 보여준 박재홍 선수를 한결같이 기용하는 본프레레 감독의 그 한결같은 옹고집을 저는 전혀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 박재홍 선수가 한국의 현실이고 그 대안이 없다구요?
- 이정수(인천 유나이티드) -
80년생. 청소년대표와 동아시아 대표를 거쳤고 어릴 적부터 프로 1년차까지 줄곳 공격수로 활약하다 GS구단 조광래 감독에 의해서 수비수로 전향하게 됩니다. 프로에서 공격수로서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지만 지난해 인천구단주의 눈에 띄어 2004년 K리그 후반기, 인천의 수비수로 큰 활약을 펼치게 됩니다. 뛰어난 스피드와 대인 마크를 겸비하였고, 고공에서의 헤딩능력 또한 탁월합니다. 터프함과 스피드를 갖추고 있어 덩치가 큰 공격수는 물론 스피드가 뛰어난 윙 플레이어마저 그를 쉽게 무너뜨리지 못합니다. 인천에서 왼쪽 수비는 물론 오른쪽 수비도 충분히 소화하는데, 그로 인하여 '노지심' 이상헌이 후보로 밀리는가 하면, 왼쪽 수비의 터줏대감이었던 김학철마저 자신의 왼쪽 자리를 이정수에게 내어주고 맙니다. 이정수가 공격수 출신인지라 탁월한 개인기마저 갖추고 있어 최후방 수비지역에서 최전방 공격까지 거침없는 그의 오버래핑을 보면 전율마저 느껴집니다. 그는 멀티플레이어로도 충분한 자질을 보여주어 한국 제1의 수비형 미드필드가 될 것이라는 평가도 있습니다. 2004 K리그 전반기 인천이 꼴지를 했지만, 후반기 4위로 도약 할 수 있었던 것도 이정수의 활약이 큰 부분을 차지했습니다. 또 하나의 장점은 체력이 뛰어나다는 것! 공수양면으로 줄기차게 뛰어다녀도 그가 지쳐하는 모습을 찾을 수 없는데, 그의 플레이와 체력은 토탈사커에서 가장 알맞은 선수입니다. 만약 히딩크가 그를 보았다면 그를 대표선수로서 일순위로 기용했을 것이라 확신합니다. 그는 한국의 측면수비는 물론 수비형 미드필드로서 최고의 유망주라고 생각합니다. |
- 곽희주(수원삼성) -
81년생. 2002 올림픽 상비군. 그는 이정수처럼 화려한 면은 없지만, 그의 가장 큰 장점은 누구보다도 안정된 수비를 보여준다는 것! 매 경기마다 실수를 범하는 모 선수와는 차원이 다르다는 것! 수원은 지난 해 K리그에서 철벽의 수비를 보여주었는데 그 중심에는 무사와 곽희주가 있었습니다. 좌측 측면에서의 곽희주의 성실한 수비는 박지성의 모습을 연상하게 하는데 묵묵히 뛰어다니지만 거대한 산처럼 느껴지는 선수가 바로 곽희주입니다. 그는 2004년 수원의 36경기 중 34경기를 선발 출장했습니다. 수원 선수 중 최다출장 기록입니다. 이것은 곧 차범근 감독이 이 선수에 대한 믿음이 얼마나 큰 것인가를 대변해 주는 부분이고, "곽희주는 수원 수비의 핵이다" 라며 서슴없이 말하기까지 합니다. 수원이 지난해 안정된 수비력을 자랑하며 당당히 K리그 우승을 차지하였고 그 안정된 수비의 중심에는 곽희주가 있었습니다. |
제가 오늘 선수 이름을 거론하며 노골적으로 비난을 가했습니다. 이런 행위가 선수 당사자에게 얼마나 가혹한 일이지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이름이 거론된 선수들의 앞날을 위해서라도 그들이 먼저 한국 프로리그에서 경쟁력을 갖춘 모습을 보여 준 후에, 대표팀 기용에 대하여 논하는 것이 순서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누구나 오류를 범할 수 있고 잘못된 판단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오류와 잘못된 판단을, 알면서도 고치지 않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본프레레 감독이 귀국 후 기자들에게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나의 전술에는 문제가 없었다 단지 선수들의 정신력에 문제가 있었다"
딴지 축구전문우원
강봉수(bsoo72@paran.com)
첫댓글 토론장에도 하나 올렸는데...못보신 분들을 위해서 ^^
좋은 게시물이네요. 스크랩 해갈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