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게임은 못하지만 지휘는 할 수 있다!
이 일은 제가 소대장 시절 있었던 일입니다.
당시 영내 BOQ(장교숙소/부사관숙소는 BEQ)에서 스페셜포스라는 온라인 FPS게임이 유행을 했는데, 주로 (일찍 퇴근하던) 본부중대장을 비롯한 간부들이 모두 즐기고 있었지요.
다른 온라인 게임들에는 매우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군대지만, FPS에는 한없이 관대해지는 경향이 있어서 스포의 인기는 부사관들이 주임원사의 공격도 피할 수 있는 몇 안되는 간부들의 안식처였죠.
당시 저는 소대숙청(...)을 진행 중이라 항상 퇴근이 늦는데다 FPS에 약해서 즐기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같은 방을 쓰는 본부중대장이 언제나 하고 있어서 늦게 퇴근하거나 순찰을 할 때도 BOQ내 간부들이 방문을 열어놓고 소리를 지르며 전투에 몰입하는 모습은 자주 보아왔지요.
그러던 어느날,
본부중대장이 토요일 저녁에 다른 대대 간부들과 식사를 하고 들어오는 장면을 목격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야기를 하던 도중에 재미있는 사건(...)
본부중대장을 비롯, 대대 간부 4명은 그 일이 일어난 날도 즐겁게 사단 클랜(..)에 모여 경쟁관계인 옆사단 클랜(...)과 클전을 뛰었습니다. 전적은 6전 2승 4패. 지휘는 그 중에서 그나마 계급이 높던 게임 계급 중령이던 본부중대장이 맡았습니다.
하지만 전투를 하다보면 자기 전투에 집중하느라 지휘를 잘 하지는 못했지요.
그렇게 그날도 패배했고, 게임이 끝나기 전에 옆사단 클랜원이 말한,
"니들은 경계도 못하고 게임도 못하냐~"는 소리에 깊은 빡침을 느껴 채팅으로 클랜원들과 반성회를 했답니다. 그러던 중 게임 계급 소위고 평소에 금요일과 토요일에만 접속해서 게임하면서, 정작 컨트롤은 잘 못해서 죽기만하던 사람이 갑자기 채팅으로
"내가 지휘하면 다 이기겠다, 이건 지휘를 못해서 진거임!"
이라고 채팅을 치자 본부중대장은 열이 뻗쳐,
"그럼 직접 해보세요" 라고 말하고 지휘를 맡김.
그 다음날인 토요일 저녁, 클랜전을 뛰었답니다. 그 소위는 지휘를 맡고 얼마 지나지 않아 평소처럼 금방 죽고(...) 채팅으로 지휘를 하기 시작했는데, 마치 적의 움직임을 다 아는 듯 미리 팀원들에게 가라고 지정한 포인트마다 적들이 들어와 압도적 스코어차로 우리사단 클랜이 이겼음.
놀란 사람들이 그 다음주도, 그 다다음주도 지휘를 맡으라고 말해서 지휘를 했는데, 연전연승을 거뒀답니다. 게임은 제대로 못하는 사람이 포인트 짚고 타이밍을 기가막히게 찝어내는 모습에 다들 '아, 저사람은 게임은 좀 못해도 지휘능력이 되는구나'라고만 생각했지요.
그렇게 5연승을 내리 지휘한 후, 클랜전이 끝난 금요일 밤 9시 40분 경, 갑자기 그 지휘한 사람이 "야 기분도 좋은데 내가 밥살테니 다들 나와~!"라고 채팅을 쳤답니다.
금요일 밤 10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 영내 간부들은 눈치가 보여서 나갈 수가 없다고 아쉽다고 입을 다시는 채팅을 했고, 토요일 낮이나 그런 때 만나는게 좋겠다고 말하고 있었지요. 그 사람이 나오지 못하는 이유를 묻자 우리 본부중대장이
"우리 대대는 밤 10시 이후로는 영내간부는 외출을 못합니다"
라고 당시 우리 대대 내부 규정을 말했답니다. 10명 중에 4명이 우리 대대원이라 이대로 모임은 파토가 나고 시간을 다시 잡는게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연승해서 고양된 기분은 아쉬웠지만..
잠시 후,
대대 당직사령이 BOQ로 이상한 표정을 지은 채로 내려왔습니다(...)
그때 제가 당직사령을 맞이하러 나갔지요.
"본부중대장 있냐?"
"예, 단결! 방안에 있습니다."
"나오라고 해... 어 나왔네, 야 본부"
제 뒤에 방안에서 막 추즐구레한 모습(...)의 본부중대장이 자기를 찾는 소리에 나와 섰습니다.
"아, 과장님 이 시간에 어쩐 일이십니까?
"야, 3대대장님이 너하고 관계자가 3명 더 있다고 잠시 후에 위병소로 나오라는데 뭔일있냐?"
"예??!?"
제 뒤에 있던 본부중대장은 당황했습니다.
관계자 3명? 잠시 고민하다가 화들짝 놀라 당직사령에게 잠시만 기다려달라고 한 본부중대장은 방안에 들어가 채팅을 했습니다. 채팅방에서는 '지금 연락 갔지? 나 곧 갈테니까 기다려'라고 채팅창에 쳐져있는 글씨만 있었답니다.
놀란 본부중대장은 스포하는 간부들을 휘몰아 위병소에 주섬주섬 모여있었고, 잠시 후 3대대장 레토나가 대대로 들어와 그들을 모두 태워갔습니다(...).
나중에 들어보니, 금요일 밤과 토요일 밤에만 오던 그 게임 소위는 3대대장님이셨고(...!), 3대대장님은 특수전사령부에서 시가전(...)을 전문으로 하던 모 부대의 팀장으로 근무하다가 전방대대장으로 온 후, 금요일 저녁과 토요일 저녁엔 할일이 없어서 이 게임을 하게 된거였답니다.
그제야 다들 왜 게임을 잘못하는데 지휘는 완벽하게 하는지 깨달았고, 군 생활이 게임에도 도움이 된다는걸 깨달은 간부들이 군생활을 더 열심히하게 되었다는 훈훈한 이야기(...)
덧: 그들은 그 다음날 새벽 4시에 술에 꽐라가 되어 위병소에 버려졌(...)습니다.
덧2: 옆사단 클랜은 그 이후로 그분이 휴가를 나가 참여하지 못한 한 번을 빼고 우리 사단에 전패했고, 그 이후 해당 사단에서 폭력사건이 터져 우리 사단 클랜원들이 게임에서 손가락도 못대니까 부대원들이나 패고다닌다고 손가락질하며 놀렸습니다(...)
출처:
http://karlsruhe.egloos.com/m/3110545
첫댓글 미용사 자격증 없어도 바리깡질만 잘하면 되는거....
(지니 말머리가 없어요)
감사!
군대용어가 많아서 명확하게는 잘 모르겠지만 알고보니 높은분(?) 지휘경험 많은분 이런거죠?
대대장이면 보통 중령인데 군생활을 20년은 하신 분들이라고 생각하심 됩니다.
이분 글 너무 재밌어요 ㅎㅎㅎㅋㅋㅋㅋㅋㅋㅋㅋㅋ링크타고 가서 다른 글 보는 거 추천
요약 : 군인들끼리 총겜함. 사단 대 사단으로 붙는데 우리 사단은 맨날 짐. 맨날 제일 먼저 죽는 군인1 "이건 지휘가 잘못된거다" 여지껏 지휘하던 군인2 빡쳐서 당신이 해보라함. 그래서 군인1이 지휘해봤는데 역시나 제일 먼저 죽었지만 채팅으로 지휘는 기가 맥히게 함. 그담부터 매주 이 군인1이 지휘함. 연전연승. 어느날 또 군인들이 모여서 겜하기로 했는데 인원 몇이 소속돼있는 대대는 10시이후 외출이 안되서 겜 파토남. 근데 갑자기 대대에 그 겜하던 인원들 밖으로 모이라는 지시 떨어짐. 알고보니 군인1이 짱높은 계급이었던것.. 그래서 즐겁게 겜하고 술마시고 끗났다는 얘기
(제가 군 시스템을 몰라서 틀릴수도)
수정하자면 외출이 안되서 겜이 파토난게 아님. 겜이기고 나서 기분이 좋아 지휘하던 사람이 술사겠다고 나오라고 했는데 짬밥 안되는 다른 장교들은 10시 이후에는 부대 밖에 못나감. 근데 지휘했던 사람이 알고보니 대대장이라 짬밥이 되는 것.(이게 가장 큰 반전)그래서 세명을 태우러 자신의 군용차량(대대장급 이상 지휘관은 자신의 전용 차량이 있음.)을 가지고 와서 태워갔고 술을 먹인 후 새벽에 꽐라가된 3명을 위병소에 버리고 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