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미술 의 특징과 그 대표작품
이집트 미술이 왕을 위한 미술이었다면 그리스는 인간 개인을 위한 미술, 하지만 중세 미술은 신을 중심으로 하는 미술이었다.
천년 가까운 세월 동안 회화에는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하지만 이 천년 동안 서양 중세 미술을 하나로 요약할 수 있는 키워드는 신과 기독교 신앙이었다. 물론 예외는 있지만 일반적으로 회화는 글을 읽지 못하는 일반인들에게 하나님의 가르침을 전달하기 위한 시각적 보조물로, 건축은 하나님의 집인 교회를 지상에 건설하기 위한 수단으로 발달해 갔다. 그리고 이런 수단을 표현하는 방법은 시기별로 각각 차이가 있는 양식으로 변화했다.
초기 기독교의 미술은 우상 숭배가 금지되어 있었기 때문에 예수의 모습을 직접적으로 그릴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양치기나 동물들을 상징적으로 그리는 수밖에 없었다. 이후 비잔틴 제국의 교회를 장식한 그림들은 주로 모자이크화로 돌, 유리, 조가비 등 각종 재료의 조그만 조각으로 무늬나 회화를 구성하여 건축물 또는 공예품 표면에 접착제로 붙인 것을 말한다. 그리고 이 방법은 입체감이나 미세한 뉘앙스까지 표현하기는 힘들지만, 비잔틴적인 추상 세계를 표현하는 데 적합했다. 특히 이 표현 양식은 무엇보다도 색채의 효과가 중시되어 3차원적인 표현에서 입체감이나 원근 표현은 되도록 피하려 하였다는 점이 특징이다.
로마네스크는 기원전 1000년경부터 1200년경 사이에 유럽 전역에 걸쳐 유행한 기독교 미술 양식이며, 12세기 중엽부터 14세기에 이르기까지는 고딕양식의 기독교 미술이 유행했다. 고딕 회화의 대표적인 것은 스테인드글라스로 여러 빛깔의 유리 조각이 창문 전체를 종교적 화상으로 메운 아름다움과 그것을 통해 들어오는 광선의 영롱함으로 성당 안을 종교적인 경건함으로 채우게 했다.
기독교가 박해를 받았던 시기로부터 비잔틴, 로마네스크, 고딕 양식에 이르기까지 미술양식은 많은 변화를 꾀했다. 그리고 이 모든 미술의 특징은 신 중심이라는 것이다. 인간의 개성이나 인간을 그린 것은 이 시대에 무의미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중세 말에 이런 양식에 대한 각성이 여기저기에서 일어났다. 그 후 지오토를 비롯한 화가들이 중세의 평면적인 회화를 현실을 실감나게 표현하는 표현 기법을 개발하기 시작했고, 소재나 주제에 대한 관심도 점차 인간적이고 주변 현실로 옮겨가는 움직임이 일었다.
-대표작
중세시대 미술의 대표적인 화가라 하면 미켈란젤로와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들 수 있다.
(미켈란젤로)

<피에타>
피에타는 죽은 예수를 안고 있는 성모 조각상으로 추기경이 주문한 것이다. 계약서에는 “살아있는 어떤 화가도 흉내낼 수 없을 만큼 뛰어난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조건이 명시되어 있었는데, 이 후 종교조각사에서 이 조각상을 능가하는 것이 거의 없을 정도여서 그는 이 계약을 훌륭하게 지켰다고 한다. 또한 이 작품은 유일하게 그의 싸인이 성모의 옷자락에 있는 데, 그 이유는 이렇게 완벽한 작품을 완성하는 일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스스로가 강조한 것이라고 한다.

<최후의 심판>
1536년부터 약 6년동안 쉬지 않고 매달려 완성한 작품으로 미술에 대한, 삶에 대한 그의 철학이 담겨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작품이다. 하나님을 근육질의 젊은 남자로, 그리고 그 주변에는 벌거벗은 인간들로 그린 것을 놓고, 미켈란젤로의 종교적 도덕심은 공격을 받았다.
성인이 들고 있는 인간 가죽에는 미켈란젤로의 자화상이 그려져 있는 데, 이는 그가 얼마나 많은 고민을 하고 있었는 지를 알게 해준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자화상>
루이 12세의 궁중 화가로서 화가 뿐만 아니라 여러가지 분야에 두루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천재 화가 겸 과학자로 최후의 만찬, 모나리자 등 우리가 알고 있는 많은 작품들을 남겼으며, 그에 관 한 연구는 지금도 계속 되고 있다.

<비트루비우스적 인체비례>
비트루비우스가 신전 건축의 규준을 설명하는 기록 중에 "인체는 비례의 모범형이다. 왜냐하면 팔과 다리를 뻗음으로서
완벽한 기하 형태인 정방형과 원에 딱 들어맞기 때문이다."
“이처럼 자연이 낸 인체의 중심은 배꼽이다. 등을 대고 누워서 팔 다리를 뻗은 다음 컴퍼스 중심을 배꼽에 맞추고 원을 돌리면
두 팔의 손가락 끝과 두 발의 발가락 끝이 원에 붙는다 정사각형으로도 된다. 사람 키를 발바닥에서 정수리까지 잰 길이는
두 팔을 가로 벌린 너비와 같기 때문이다.” 라고 했던 말은 르네상스 미술 시대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소위 <비트루비우스적 인간>이라 불리는 인체상은 레오나르도 다 빈치 이전에도 나타났지만 위의 레오나르도 다 빈치 그림으로 인해 비트루비우스는 명성이 높아졌다
위의 그림은 예술이라기 보다는 과학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