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책 한 권을 읽었다.
기욤뮈소의 '그 후에'였다.
미국에서 잘 나가는 이탈리아 이민 2세대 델 아미코 변호사는
어느 날 죽음을 예견할 수 있는 메신저인 굿리치의 방문을 받게 된다.
메신저는 머잖아 상대가 죽을 거라는 건 알지만
죽어가는 이를 위해 구체적으로 뭔가를 해 줄 수는 없다.
그가 죽을 거라는 것을 통보받은 것이다.
바람둥이 남편으로부터 버림받은 델 아미코의 엄마는
오직 아들 교육을 위해 일을 가리지 않고 최선을 다해 살았다.
그녀가 상류사회 변호사의 가사 도우미로 일할 때
어린 아미코는 수영장에 빠진 그 주인 집 딸을 구해 낸 인연으로 둘이 사랑에 빠져 결혼을 하게 된다.
그가 접한 상류사회에 대한 열망과 동경은 명문법학대학교를 졸업할 동기부여가 되었고
그는 잘 나가는 변호사로 성공가도를 걷게 된다.
결혼에 반대한 장인장모에게 보란듯이....
어느날 장인과 한 판 승부를 하게 된 변호사건으로 인해
장인에게 사회적으로 치명적인 상처를 주고 장인과 사위는 멀어졌고
아내가 아이들을 맡기고 여행을 간 사이
유아돌연사증후군으로 아들을 잃은 후
아들을 잘 돌보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빠진 그는 더욱더 일에 매달리고
자식를 잃은 아내의 상처에 남편으로서 위로가 되어주지 못하게 된다.
그는 결국 이혼을 하고 지금은 장인과 한 판 승부로 받게 된 아파트에서 혼자 지내며
아이들이 태어나면 필요할 것 같아 산 SUV를 타고, 아내와 딸을 그리워하며 지내는 델 아미코 변호사.
그가 머잖아 죽을 거라는 걸 인정하고
장인 장모, 그리고 아내, 딸, 아내가 사랑하게 된 새남편에게조차 화해와 사랑을 전하며
사랑조차 포기하며 집착했던 성공을 향한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되는 작품, 그 후에.
작품에 대한 감상이 요번엔 좀 달랐다.
다른애들보다 조금 다르게 힘든 삶을 사는 아이들을 데리고 중국에 다녀온 다음날 새벽
남편과 나흘간의 부부동반 골프 모임을 위해 웨이하이를 다녀왔다.
6쌍의 부부. 은퇴후 편안한 삶을 즐기는 남편 친구들.
바쁜 일정 쪼개어 나흘의 휴가를 얻은 남편까지
우리는 좋은 잠자리에 풍성한 먹거리.... 여유로운 휴식을 취했다.
그런데, 난 그 상황이 행복하지가 않았다.
'그 후에'를 읽지만 않았어도 나았을지 모른다.
아이들을 데리고 힘든 여정을 함께하며
'조금만 더 경비를 지불해도 더 나은 환경에서 여행할텐데...'
싶어 안타까웠던 마음덕에 여행의 풍요로움이 죄처럼 마음을 무겁게 했다.
누구에게도
"우리가 조금 더 불편하게 지내고 어려운 이들에게 기부를 좀 해 주면 좋겠다. "
고 말하지 못할 그 들뜬 분위기로 인해 난 그들과 마음의 간극을 느꼈다.
"여보! 사람은 누구나 이기적일거야.
그러나 어떤 사람은 이타적인 사람도 있어.
아니, 이기적, 이타적인 마음을 동시에 가지고 살아 가며
매순간 우리는 이기적으로 살 것인지 이타적으로 살 것인지 선택해야 해.
근데 만일 우리가 오늘 죽음을 만나게 된다면
이타적으로 산 것만이 나를 평안히 눈 감게 만들것 같아.
매일 일상을 이기적으로 산 세월이 세상을 떠날 때쯤이면
더 많이 후회할 일이지 않겠어?
골프를 하더라도 그 중 십분의 일만이라도
타인에 대한 배려를 위해 쓰일 수 있는 모임을 갖자면 어떨까?"
"좋지!"
그 뿐이다.
매사에 수동적인 남편이 자신의 친구들에게 그런 제의를 할 리가 없다.
"그럼 우리만이라도..."
"그러자!"
그나마 자신만이라도 실천하겠다니 위안이 된다.
모든 일은 다 지나간다.
좋은 생각조차 시간이 지나면 잊혀진다.
봉사단체에 소속 되었다는 게 그나마 다행이다 싶어진다.
매달 잊지 않고 회비를 내고 그 회비로나마 작은 실천을 계속하게 되고
봉사할 수 있음에 감사하게 된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는 사람이 아니라 도움을 주는 사람이라는 게 위로가 된다.
티끌모아 태산이라는데 작은 실천이라도,
아니 마음을 기울이는 것만으로도 영혼의 정화가 된다.
좋은 사람이랑 따뜻한 얘기를 하며 사는 세상이 풍요롭다.
어제는
"선배님은 봉사단체에 속한 이들이 다 좋은 사람 같기만 하죠?
거기에 속한 사람들이 다른 데에서는 어떤 행동을 하는지 모르잖아요?"
하고 공박하는 이를 만났다.
사람은 누구나 희노애락애오욕을 느끼고 빨주노초파남보의 성향을 지녔다.
그럴 수도 있겠지....
언제나 착하고 선하다면 성인이나 신의 경지에 이른 것이다.
때로 불성실하고 부정직한 일을 한다해서
잠시의 선한 일조차 하기 꺼린다면 세상이 어찌 될 것인가!
완전한 인간은 없다.
잠시라도, 착하게 살 일이다.
그런 게 훌륭한 사람이 되기 위해 한걸음 내딛는 것이다.
그래야 하느님 만날 때
부끄러운 내 손바닥안에서 한 줌의 티끌이라도 보여 드릴 수 있겠다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