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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 실시 1주년인 2009년 7월 1일, 보건복지부 앞에서 전국요양보호사협회 주최로 열린 '요양제도 시행 1년'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요양서비스 질 개선과 요양보호사 인력 확충 문제 등을 제기하고 있다. ⓒ연합뉴스 |
노동권의 사각지대, 요양보호사…"국가 공인 파출부" 자조도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올해 4월 현재 시설 요양보호사로 일하는 사람은 4만 1154명이다(재가 요양보호사 20만 4668명, 전체 24만 5822명). 이들은 대부분 열악한 처지에 놓여 있다.
보건복지자원연구원이 2011년에 전국 97개 장기요양기관에서 일하는 요양보호사 953명을 심층 인터뷰한 자료에 따르면, 요양보호사의 절반 이상이 50대이고(50세 미만은 3분의 1에 못 미침) 90퍼센트 이상이 여성이다. 근무 교대 형태를 보면, A씨처럼 2교대를 하는 이가 42퍼센트로 가장 많았다(3교대는 32퍼센트). 시설 요양보호사의 평균 급여는 122만 원이었다. 시설 요양보호사 중 대상자나 그 가족에게 성희롱이나 성폭력을 당한 비율은 26퍼센트로 나타났다. 언어폭력과 신체폭력을 당한 비율은 각각 70퍼센트, 56퍼센트로 조사됐다.
"치매(를 앓는) 분들은 완전히 무지해요. 그분을 어떻게 하려고 그러면 막 때리고 덤비고 하니까. 한 분만 하는 게 아니잖아요. 드레싱이고 뭐 하고, 치약 해야 되고 이거 전부 다 일거수일투족을 다 봐야 되니까 보통 스트레스 받는 게 아니에요. (…) 너무 벅차요. 버거워요. (…) 우리는 막 살얼음처럼 이렇게 (…) 만날 그래요." (보건복지자원연구원 조사에 응한 요양보호사 B씨)
근골격계질환 위험에 노출된 이들도 매우 많다. 전체 요양보호사 중 98퍼센트가 어깨, 목, 허리, 무릎 통증 등 근골격계질환 증상을 호소했다. 환경미화원(79퍼센트), 병원노동자(71퍼센트), 건설노동자(67퍼센트)보다도 높은 수치다.
"어깨 이런 데 파스로 도배를 했다시피 해요. (…) 옷 갈아입을 때 서로 등 뒤로 보면 다 붙었어. 이 정도는 다 붙어 있어야 일을 해요." (보건복지자원연구원 조사에 응한 요양보호사 C씨)
또한 시설 요양보호사 중 주휴일 노동에 대한 가산 수당을 못 받고 있다고 답한 비율은 77퍼센트였다. 식사 시간을 제외하고 휴식 시간이 따로 없다고 응답한 이가 86퍼센트에 이르렀고, 휴식 장소가 별도로 있다고 답한 사람은 12퍼센트에 불과했다. 근로기준법은 이들에게 먼 나라 이야기다.
밤 근무 때 간호사나 간호조무사와 함께 일한다고 답한 비중은 절반에도 못 미쳤다(39퍼센트). 83퍼센트는 요양보호사 본연의 업무와 관계없는 시설 청소를 거의 매번 한다고 답했다. 빨래나 오물 청소를 거의 매번 한다고 답한 이는 74퍼센트였다.
여러모로 A씨는 시설 요양보호사의 표준에 가깝다.
"현대판 고려장 만든 건 시장화 정책…공공성 회복해야"
2008년 7월,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가 도입됐다. 거동이 불편해 혼자 힘으로는 생활하기 힘든 65세 이상 노인이나 치매 등을 앓고 있는 노인 가정을 요양보호사들이 돌봐주는 제도다. 요양보호사가 노인 가정을 방문하는 재가 요양보호와 요양 기관에 들어온 노인을 돌보는 시설 요양보호로 이뤄져 있다.
가족, 그중에서도 특히 여성에게 떠맡겨졌던 노인 부양 문제를 사회적으로 풀자는 취지였다. 노인 인구가 빠르게 늘어나고 자녀가 늙은 부모를 모시는 문화가 점점 사라지는 추세를 감안하면, 노인을 위한 돌봄노동의 부담을 공동체가 나눠서 진다는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의 도입은 반길 만한 일이었다. 노년을 건강하고 존엄하게 보낼 권리가 모든 사람에게 있다는 점에서도 노인장기요양보험 도입은 필요했다.
그로부터 4년.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는 "불법과 편법이 난무하는 애물단지"로 전락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요양보호사들 사이에서는 "우리는 국가 공인 파출부"라는 자조 섞인 목소리가 나온다. 시설·재가 할 것 없이 돌봄노동의 가치와 전문성을 전혀 인정받지 못하는 현실 때문이다.
이에 더해 요양보호사들은 상시적인 실업 위험에 노출돼 있다.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취득한 사람은 106만 명이 넘지만, 요양보호사로 일하는 사람은 24만 명 정도다. 복지를 확대해 안정적인 일자리를 만드는 것과는 정반대의 결과를 낳은 것이다. 요양보호사들이 시설이나 대상자들의 부당한 요구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이유 중 하나다.
문제는 요양보호사의 열악한 처우만이 아니다. 현장에서 복지를 구현하는 이들이 제대로 일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지 않으면, 그 폐해는 제도의 수혜자인 노인들에게 고스란히 전가된다. 요양보호 서비스의 질이 현격히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6월 7일, '노인장기요양보험법 개정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가 토론회를 열었다. 공대위에는 공공운수노조, 전국요양보호사협회, 한국여성단체연합 등이 참여하고 있다. 시설 요양보호사 이아무개 씨는 이 토론회에서 "현대판 고려장" 같은 상황이라며 실태를 증언했다.
"기저귀를 반으로 잘라 쓰도록 하기도 하고, 기저귀 가는 시간을 하루 몇 번으로 정해놓기도 한다. (…) 식사를 빨리 하지 못하는 어르신들의 식사 시간을 줄이기 위해 아직 씹는 것이 가능한 노인들에게조차 여러 음식을 한꺼번에 섞어 믹서에 갈아드리기도 한다. 어떤 동료는 노인 학대에 해당하는 어르신들에 대한 대우 때문에 너무 마음이 아프고 자신도 가해자라는 양심의 가책 때문에 요양원 근무를 스스로 포기하고 사직서를 내기도 한다."
요양보호 시설의 허술함이 참사로 이어지기도 했다. 2010년 11월 12일 새벽 포항의 한 사설 요양원에서 발생한 화재 사고가 대표적인 사례다. 당시 화재로 중증 치매 및 중풍 노인 10명이 숨지고 17명이 다쳤다. 이 요양원에는 화재경보기와 간이 스프링클러 같은 화재 대응 시설이 없었고, 제대로 몸을 가누지 못하는 노인들을 돌볼 인력도 충분하지 않았다.
▲ 2011년 10월 6일,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의 국정감사가 열리는 가운데 전국요양보호사협회 회원들이 집회를 열고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
"훗날 내가 요양원에 있을 걸 생각하면 기가 막힌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가 이렇게 엉망이 된 근본 원인이 정부의 시장화 정책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인프라를 충분히 준비하지 않은 상태에서 제도를 시행하려 했고, 그 간극을 메우고자 시설 확충과 인력 양성 문제를 시장에 맡기고 제도의 공공성을 뒷전으로 밀어놨다는 것이다.
최경숙 보건복지자원연구원 상임이사는 "시장화 정책이 '영세 요양기관 과잉 공급과 요양보호사 과잉 배출->이윤을 위한 과당 경쟁과 편법·불법 운영->요양보호사의 열악한 노동 조건->서비스 질 저하->노인요양보험제도의 위기'라는 악순환을 초래했다"고 비판했다.
80만 명이 넘는 요양보호사가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있는데, 정작 현장에서는 소수의 요양보호사가 많은 대상자를 돌봐야 하는 기이한 현상도 이런 구조와 관련돼 있다. 잘못 꿴 첫 단추가 상황을 점점 더 나쁘게 만들고 있는 셈이다.
공대위는 제도의 공공성을 확보하는 방향으로 법을 바꿔야 한다고 보고 있다. 그래야만 요양보호사들의 노동권도 보호하고, 노인들도 질 높은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5퍼센트를 조금 넘는 수준인 노인장기요양보험 대상자(4월 현재 29만 3837명)를 확대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대선이 치러지는 2012년, 복지 담론은 한국 사회의 화두 중 하나다. 그렇지만 현장에서 복지를 구현하는 요양보호사와 혜택을 누려야 할 노인들에게는 먼 이야기다. 시설 요양보호사 A씨는 최근 정치권의 복지 논의에 대해 "빈 수레"라고 평했다. 이런 상황에서, 6월 7일 토론회에서 실태를 증언한 요양보호사 이 씨의 다음 말은 한국 사회가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나 자신이 등급 받은 노인이 되어 지금 제가 돌보는 노인들과 같은 열악한 대접을 받으며 요양원에 있을 것을 생각하면 너무 막막하고 또한 기가 막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