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교리 아카데미]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는 그리스도인 그리스도인, 사도로 파견된 사람 사회교리는 사람들의 행동 지표 교회는 사회에 무관심하지 않아
발행일2016-09-04 [제3010호, 4면]
일러스트 조영남
그리스도인은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루카 9,2)하라는 사명을 받고 예수님께로부터 세상 속으로 파견된 사람, 곧 주님의 사도입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느님 나라는 저 멀리 하늘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숨결이 묻어나는 이 땅 가까이 있음을 함께 사는 이들에게 선포하라는 사명 때문에, 세상 속 깊이 온 삶을 던지는 사도입니다.
하느님 나라를 선포한다는 것은 재물 권력 온갖 잡신이 아니라, 생명·사랑·정의·평화의 하느님만이 참 하느님이심을 장엄하게 드러내는 것입니다. 하느님 나라를 선포한다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환상을 심어주는 것이 아니라, 감추어진 소중한 실체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하느님 나라를 선포한다는 것은 이기심이라는 두꺼운 벽에 둘러싸여 있던 하느님의 모습을 닮은 사람의 선한 본성, 곧 사랑과 정의를 다시금 깨우는 것입니다.
하느님 나라를 선포한다는 것은 치열한 경쟁 끝에 획득한 승리의 환희가 아니라, 내 것 네 것 가르지 않는 소박한 나눔이 주는 잃어버린 참 기쁨을 되찾아 주는 것입니다. 하느님 나라를 선포한다는 것은 때로는 거짓과 불의마저 양식으로 삼아 더 높은 곳에 오르려는 헛된 노력을 아끼지 않는 소유와 권력의 노예로서의 껍데기를 벗어던지고, 섬김과 헌신의 참사람이 되라고 일깨우는 것입니다.
하느님 나라를 선포한다는 것은 한 사람 한 사람이 새사람이 되고, 보잘것없는 새사람들이 모이고 모여 차가운 이 세상의 딱딱한 껍질을 깨뜨려 감춰져있는 듯 희미한 하느님 나라를 빛처럼 환히 드러내자고 초대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님께로부터 하느님 나라 선포의 사명을 받은 거룩하고 소중한 존재입니다. 그러기에 미리 맛 본 하느님 나라를 마음에 담고 함께할 사람들과의 벅찬 만남을 희망하며 세상 속으로 힘차게 나아가야 합니다.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는 가슴 벅차면서도 때로는 힘겨운 여정에서 사회교리는 든든한 길잡이가 됩니다. 사회교리는 “사람들의 행동에 지표가 되는 데 목적을 둔 교리”(사회적 관심, 41항)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적지 않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사회교리는 때로는 낯설고 때로는 부차적이고 때로는 거북한 무엇으로 여겨집니다. 더 나아가 “신앙과 교회를 사적이고 개인적인 영역으로 축소하려는 경향”(복음의 기쁨, 64항)을 지닌 그리스도인들은 사회교리에 대하여 뿌리 깊은 반감을 드러내기도 합니다. 바로 이러한 사람들에게 교회는 다음과 같이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교회는 사회에서 결정되고 이루어지고 겪는 일들에 무관심하지 않다. 교회는 사회생활의 도덕적 특징, 곧 진정으로 인간적이고 교화적인 측면에 관심을 기울인다. 사회 그리고 이와 함께 정치, 경제, 노동, 법률, 문화는 세속적인 지상의 실재에 불과한 것이 아니고, 따라서 구원 메시지와 구원 경륜과 무관하지 않다. 사실, 사회와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것은 인간과 관계가 있다. 사회는 교회가 따라 걸어야 하는 일차적이고 근본적인 길인 인간으로 구성되기 때문이다.”(간추린 사회 교리, 62항)
교회의 가르침을 마음 깊이 새기고, 이 땅에 하느님 나라를 일구는 데 헌신하시는 믿음의 벗님들과 함께 “교회를 통하여 현대인들 안에 울려 퍼지는 복음”(간추린 사회교리, 63항)인 사회교리를 통해 사람들과 세상에 대한 이야기를 앞으로 차근차근 나누고 싶습니다.
지난 호까지 「사회교리 아카데미」 집필에 노고를 아끼지 않으신 이동화 신부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상지종 신부(의정부교구 파주 교하본당 주임·8지구장)
1999년 사제품을 받았으며, 의정부교구 파주 교하본당 주임 및 8지구장으로 사목하고 있다. 또, 의정부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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