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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러시아의 여성 팝 밴드 '콤비나치야(Комбинация)'의 히트곡 '아메리칸 보이(1991)'. 아무 희망도 없는 러시아를 떠나 미국으로 가서 성공하고 싶다는 여성이 화자이다. 이 노래가 나온 연도를 생각하면 더더욱.
미국 외의 국가에서 살고 있는 외국인들이 기회의 땅(The Land of Opportunity) 미국으로 이민 간다면[2] 자신들의 꿈을 이룰 수 있을 거라는 희망섞인 미래를 꿈꾸는 것. 대부분 이민자의 본국에서 불우한 삶이 미국에서 노력으로 보상받는다는 시나리오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현실은 시궁창이라, 실제로 미국에서 성공하는 사람이 나오는 만큼 미국에서의 생활에 실패하는 사람도 많다. 미국도 결국 사람 사는 땅이라서 여러가지 사회 문제가 존재하며, 생면부지 외국인이 무작정 건너와서 잘 적응할 만큼 작은 문제도 역시 아니다. 게다가 현재는 미국에서 합법적인 이민자 신분을 가지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 수준으로 어렵다.
그 때문에 여러가지 문화매체에서는 이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대세다. 대부 시리즈, 세일즈맨의 죽음, 스카페이스, 왓치맨,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맥스 페인, 마피아 시리즈, GTA 시리즈[3]도 은근히 비꼰다. 그리고 실제로도 이룬 사람이 별로 없다. 2008년 경제위기 이후 실물 경제 가 작살나고 여러모로 예전보다 살기 팍팍해진 21세기 현대 미국에서는 미국인들 본인들이 나서서 냉소를 표하는 경우도 많다.
이를 비꼰 농담으로는 이런 것이 있다.
넌 지금 아메리칸 드림을 꾸고 있는 거야. 일어나.(You're dreaming American Dream now. Get/Wake up.)
The American Dream is a dream because you have to be asleep to believe it.
이와 비슷하면서도 미묘하게 다른 캘리포니아 드림(California Dream, 캘리포니'안' 드림이 아니다)도 있다. 골드 러시를 통해 성공의 땅으로 각광받던(대이주, 서부극, 목동들의 도시 등등) 캘리포니아의 이미지가 현대에도 성공의 땅으로 인식된 것. 그 탓인지 아메리칸 드림에 비하면 보다 긍정적인 면이 강하며, 아시아계 사람들에게는 교포들이 이미 터를 닦아놓은 덕분에 확률이 높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막상 파고들어 보면 이 쪽도 현실은 시궁창격인 면이 보이기도 해서...2. 배경[편집]
과거 20세기 초, 테일러에 의해 T/M 연구에 기초한 과학적 관리론이 주창되면서, 그리고 포디즘[4]이 나타나면서 미국의 자본주의는 황금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어떻게 효율적으로 자본주의 프로세스를 진행할 것인가" 의 문제에 천착한 결과, 미국인들은 생산절차에 조금만 체계화, 효율화를 기하기만 해도 생산성이 엄청나게 증가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여기에 헨리 포드가 컨베이어 벨트를 도입하자 생산성은 무려 350배에 가깝게 폭증했다.
이와 같은 사회상 속에서, 경영자들은 새롭게 나타난 경영학의 통찰에 기댈 수 있었다. 이들은 모든 성과기준을 최고의 생산성에 맞게 재조정했고, 이에 미달하면 태업으로 간주했으며, 이를 초과하면 성과급을 지급하기로 했다. 경영자들은 또한 노동조합들과의 협상에서도 조금 더 유연해질 수 있었는데, 생산성이 충분히 높아졌으므로 노동시간을 감소하기로 합의할 수 있었고, 마찬가지 이유로 임금의 5배에 가까운 인상까지도 합의할 수 있었다. 관리가 화두가 되는 시대이다 보니 회사마다 전문화된 관리부서가 출현했고, 결국 중간 관리자라는 새로운 사람들이 나타났다. 한편, 빠방한 임금에다 성과급까지 제시되자, 노동자들은 "가혹하게 굴리긴 하지만 그만큼 돈을 주는구나, 열심히만 일하면 나도 부자가 될 수 있겠구나" 라는 희망을 보기 시작했다. 이처럼, 이 무렵부터 현실은 카를 마르크스의 메시지로부터 조금씩 어긋나기 시작했다.
전후, 관료제와 포디즘을 통해 극도로 단순해진 업무는 저숙련 노동자들을 매료시켰다. 생산공정이 단순화되어 근로의 진입장벽이 철폐되자, 못 배우고 못난 사람이라도 성실하기만 하면 적어도 빌어먹지는 않고 살 수 있었다. 관료제를 통해 정년이 보장되고 미래가 확실해지자 사람들은 당장 눈앞의 먹고 살 걱정에서 벗어나서 점차 자신의 인생을 길게 바라보기 시작했다. 전세계의 수많은 이민 희망자들이 미국을 대안으로서 주목하기 시작한 것도 대략 이 무렵부터라고.
평생직장이라는 개념,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는 개념은 곧 금융 시스템을 급속하게 발전시켰다. 예전이라면 엄두도 내지 못했을 비싼 물건들, 그리고 주택까지도 할부로 구입하거나 담보대출을 받는 것이 가능해졌다. 이 모든 것들은 "지금 내가 일하고 있는 것처럼, 1년 후에도, 10년 후에도 똑같은 직장에서 당연히 일하고 있을 것" 이라는 인식이 사회적으로 가득했기에 가능했다.
먹고사니즘에서 벗어나서 허리를 편 미국인들은 본격적으로 삶을 즐길 방법을 찾게 되었다. 빠듯하던 지갑이 넉넉해지고 근로시간이 단축되면서 가족과 함께할 시간이 늘어나자, 미국인들은 "여가" 라는 새로운 개념을 발견하게 되었다. 여행이 대중화되고 관광업이라는 개념이 대두되면서, 출장서비스, 위락, 유흥 등 각종 3차 서비스업까지 함께 연쇄적으로 출현하였다. 이만한 소비능력과 소비심리를 갖춘 사람들에게 생산자들은 자신의 상품이나 서비스를 어필할 필요가 있었고 이것은 다시 TV 광고의 폭증으로 이어졌으며 이는 거대한 내수시장과 결합하여 방송사들에게 막대한 수입을 안겨주었으며 막대한 광고료에서 얻은 재원으로 고액의 제작비가 드는 프로그램을 만들었고 이들 프로그램이 해외에 수출됨으로써 문화에 있어서 미국의 영향력을 크게 넓혀주는 역할을 하였다. 이것은 다시 말하자면 곧 라디오와 텔레비전을 기초로 하는 대중문화의 폭발적인 발전이었다.
이 모든 것들은 결과적으로 대량생산에 걸맞는 대량소비를 이끌었고 그만한 소비능력을 갖춘 새로운 사회계층, "중산층" 이 나타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실제로 당시 중산층에 대한 세간의 인식은 다음과 같았는데, 아메리칸 드림이 무엇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하얀 울타리로 두른 앞뜰과 뒤뜰이 있고, 자가용과 차고가 딸린, 교외의 어느 2층짜리 주택을 할부로 사서, 한 손에는 햄버거와 한 손에는 맥주를 들고, 자녀와 함께 흑백 TV 앞 소파에 앉아서 야구 경기를 응원하는 사람들"
물론 소비가 소비를 부추기는 방식으로는 한계에 도달할 수밖에 없었고, 대량생산 대량소비의 사회구조는 다시 소비자의 선택권을 보장하고 상품의 종류를 다양화하는 방식으로 변해 갔다. 그러나 이 때의 미래에 대한 예측성과 계층이동의 양호함, 그리고 터질 듯한 자유와 기회의 보장은 전세계의 수많은 이민 희망자들에게는 매혹적인 조건일 수밖에 없었고, 이것은 곧 미국에만 가면 나도 저렇게 잘 살 수 있을 것이라는 아메리칸 드림으로 고착되었다.
3. 아메리칸 드림의 현실
3.1. 부정적인 모습
The reason they call it the American Dream is because you have to be asleep to believe it.
아메리칸 드림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꿈 속에서나 믿을 수 있기 때문이지.
- 조지 칼린
어디서든 자기가 노력하기 나름이라지만, 외국에서의 성공이란 것은 반쯤 운인데다 이민자라면 영어 문제, 학력 문제 등으로 인해 사회적 불이익을 받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더더욱 노력하지 않으면 시궁창이 된다. 정말 그 이민자가 능력적으로든 금전적으로든 대단하지 않으면 성공은커녕 식당이나 차리거나 남의 부하로 평생 노동하는게 대부분. 심지어 자국에서 엘리트 취급 받던 인물들이 무작정 미국에 건너와서는 육체노동자가 되는[5] 경우도 상당히 많다. 미국 드라마 등에 보면 가끔 나오는 동유럽 대학 교수 출신 청소부나 건물 관리인 등이 농담이 아니다.[6]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을 꿈꾸며 미국 땅을 밟았다가 마이너리그만 전전하는 경우도 심심찮게 보인다. 현재까지 한국인 선수가 아메리칸 드림을 노리고 메이저리그 팀과 국제 아마추어 계약을 맺은 사례는 총 49번인데, 이 중 실제로 메이저리그에서 한 경기라도 뛰어본 선수는 12명 밖에 없다. 이들 중 대다수가 고교-대학 시절 두각을 나타냈던 유망주였는데 75%가 메이저리그 땅을 아예 밟아보지도 못하고 마이너에서만 구르다 한국으로 돌아왔고 데뷔한 12명 중에서도 데뷔만 하고 별다른 족적 없이 돌아온 경우가 또 절반이다. 메이저리그 선수로 일단 들어갔다고 하면 적어도 야구계에선 최고의 엘리트 집단이며 또한 의사 등의 전문직과 비교해서도 결코 꿀리지 않고 엄청난 돈과 명예를 얻을 정도로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는 대상이지만 마이너리그 선수라 그러면 그냥 청소부나 세탁소 알바, 마트 알바 수준이며, 죽어라고 운동을 해도 기회를 얻지 못하다가 30대 초반쯤 돼서 메이저 문이 닫히면 해외진출이라도 하지 않는 한[7] 인생이 진짜로 허공에 떠버린다.
이민은 아니지만 그래도 미국 물 10년간 먹었다는 박찬호도 초반에는 죽을 고생을 다했다. 동양인 즉 황색인종에 대한 인종차별이 극심하던 시절 마이너리그에서 청소부나 마트 알바 수준의 급여를 받고 연습구만 던지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의 박찬호는 국회의원과 재산을 비교해도 5등 안[8]에 들 정도로 부자가 되었지만 마이너리그 시절은 저랬다.
특히 미국에서의 삶이 무조건 좋고 화려하기만 할 것이라 생각하는 것도 문제다. 이것은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것에 가까운데, 미국도 화려한 대도시의 삶이 있는가 하면 한국의 시골 깡촌 그 이상에 가까운 곳도 많다. 또한 지역에 따라서는 아직도 인종차별 의식이 있거나, 외지인에 좋은 인식이 존재하지 않는 경우도 있기에 이민자가 도움을 받기는커녕 배척받고 차별당하는 경우도 없지는 않다. 분명히 미국이 이민자들에 의해 발전한 것은 사실이나, 자국에서 사고치고 도망쳐서 미국에 온 이민자나[9] , 미국에 적응할 생각 없이 자신들만의 후진적인 삶의 방식을 고집하다가 현지인들과 충돌을 일으키는 경우도 많기에 이민자들을 보는 눈이 언제나 곱기만 한 것은 아니다.
또 한 가지 고려해야 할 점은 무엇인가 하면, 미국 행정부와 정부기관들의 눈에 이민자는 미국인이 아닌데 미국에 얹혀 단물을 빨아먹는 놈들 그 이상 이하도 아니다.[10][11] 미국에 취업 이민, 유학생 등으로 가본 사람들은 알 수 있지만, 미국 입국과 출국시마다, 비자를 갱신할 때마다, 이민국에 접촉 할 때마다 불법취업이나 불법이민을 시도하지 않을까 매의 눈으로 살펴보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이것도 당연한게 미국이라는 나라가 보장하는 자유와 권리, 각종혜택 등은 세금으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아무나 받아주진 않고 또한 불법취업이나 불법이민은 상당한 중범죄로 취급된다.
합법적으로 들어온 사람들도 이런 취급인데, 정말 뒤가 구린 구석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이라면 더한 취급을 받음을 알 수 있다. 이때문에 미국에만 가면 무언가 풀리리라 예상하고 무작정 건너갔다가 적응은 적응대로 못하고 돈은 돈대로 못 벌고 다시 돌아오는 사람들도 많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아메리칸 드림이 결국 독이 되는 셈.
여행가 이지상이 캄보디아에서 우연히 만난 현지인과 이야기를 하니 그는 유달리 피부가 검은 탓에 여기서도 차별받았는데 그의 꿈은 미국에 가서 성공하는 것이었다. 미국에선 흑인이 많으니 자신도 그다지 거부감이 없을 것이라고 말하던 그에게 미국도 다녀온 이지상은 현실은 안 그렇다고 말해줘도 그는 그 꿈을 깨기가 싫은 듯 들은 척도 안했다고 한다. 몇 해 뒤에 다시 캄보디아를 가서 그 사람에 대하여 수소문해봤더니, 어찌 미국으로 갔다는 이야길 들었으나 나중에 불법 입국으로 체포되어 추방당하여 캄보디아에서 그동안 애써 모은 돈을 모두 날리고 엄청난 빚을 져서 빚쟁이들에게 끌려갔다고 한다. 행방은 모르겠고 단지 사람들은 빚쟁이들에게 끌려가 족쇄를 채우고 하루종일 막노동에 시달리는 노예 노동자가 되었을 것이라고…. 아메리칸 드림을 위하여 많은 나라에서 빚을 지는게 많기에 이런 일도 흔하다고 한다.
최근에는 미국은 2008년 세계금융위기 이후 경기가 어렵고 특히 외국인이 양질의 일자리를 얻기 매우 어려워진 반면, 오히려 남미나 아시아 국가들은 경제 성장으로 일자리가 늘어난 경우가 많아졌다.[12] 남미와 아시아의 가난한 나라들이 아메리칸 드림 이민자의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 나라들로부터의 이민이 줄거나, 미국으로 이민을 왔다가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워서 역이민하는 경우가 늘어나며 아메리칸 드림이 한풀 꺾였다는 시각도 있다. 유학생들도 졸업 후 미국에서 취업을 하거나 영주권을 취득하지 않고 귀국하는 사람이 늘어나는 추세다.
경제위기 이후 미국에서도 아메리카 드림보다 자신의 성공 가능성에 대해 회의감을 가지는 사람들이 매우 많아졌다. 때문에 과거 정부는 신경을 끄라는 작은 정부, 자유지상주의, 신자유주의에 대한 지지와 달리 국가에서 일자리, 산업 부흥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강한 정부, 사회주의를 지지하는 사람들도 많아진 상황.
3.2. 긍정적인 모습
이런 단점에도 불구하고, 아메리칸 드림이란 말이 꾸준히 나오는 것은 놀랍게도 미국이 세계 여러 나라 중에선 여전히 이민자에게 관대하고 열려있으며 차별이 적은 나라이기 때문인데, 미국은 자유, 평등, 정의를 매우 중요시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미국은 지연, 학연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로운데, 전국이 고루 발달되어 있는 편인데다가 대부분의 직군에서는 어느 학교를 나왔냐 하는 사실이 그렇게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고, 그보다 개인의 능력이나 학과를 더 중시한다. 물론 미국에도 WASP(백인, 앵글로 색슨, 개신교)라는 단어로 대표되는, 소위 내지인, 내국인이라고 불리는 무리가 존재하지만, 동아시아, 유럽에 비하면 여전히 외지인들에게 열려있는 나라라고 볼 수 있다. 단순히 단기간 취업을 하여 돈을 벌려는 것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미국인으로서 살려는 마음이 있고 미국에서의 법과 질서에 잘 따르면 영주권이나 시민권을 얻는 방법도 예상 외로 많이 존재한다. 물론 이 배경에는 미국은 국가 태생 자체가 이민자들이 세운 국가다보니, 미국이 외국으로부터 한 명이라도 더 재능있고 사회에 보탬이 되는 인재를 받아들이려는 목적이 있는 것으로, 실제로 고학력자일수록, 재력이 있을수록 미국에 살기 쉽다.
실제 아메리칸 드림의 사례를 보면 정말 아무것도 없는 이민자나 이민자의 후손이 성공적인 삶을 사는 경우를 볼 수 있다.대표적인 경우가 바로 미국 대통령에 오른 버락 후세인 오바마. 미국에서 차별을 받아온 흑인이, 그것도 아프리카 케냐에서 온 아버지 밑에서 아무런 지원도 받지 못하고 자란 인물이 뛰어난 인재들이 있다는 컬럼비아 대학교와 하버드 로스쿨을 졸업하고 이후 법조계에서 활약하다가 마침내 국가원수 대통령까지 되었다.
다만 맨손으로 시작한 1세대 이민이 중상류층 이상으로 올라가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데, 이것은 보통 이민 1세대는 성인이 되고도 한참 뒤에 오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2세대의 경우 법대나 의대, 공대 등 대학에 진학한 뒤 좋은 직장을 잡아 꿈을 이룰 수 있다. 하지만 이공계와 같이 비교적 성과 기준이 객관적인 것이 아닌 정치인, 경영인, 판사, 검사, 변호사 등과 같은 분야에서는 비백인에 대한 편견이 벽으로 작용한다. 아시안 로스쿨 졸업자들이 타고난 미국 국적자임에도 아시안에 대한 편견의 벽에 막혀 기회를 얻지 못해, 결국 이민자 상대의 판사, 검사, 변호사를 하게 되는 것이 괜히 그런 것이 아니다. 백인들이 기회를 아예 안 주니까 어쩔 수 없이 같은 이민자 혹은 아시아계 상대로만 전문직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미국은 소위 말하는 낙하산 인사가 합법이다. 이미 터를 잡아 친척, 부모 친구에 빵빵한 인맥이 있는 백인 학생이 누구 누구 추천의 리퍼럴을 들이밀 경우 비백인은 백인들 쪽으로 뻗어둔 확실하고 빵빵한 인맥 보장이 하나라도 없는 한 아예 고용에서부터 밀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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