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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의 로마 항해와 유라굴로 광풍
사도행전 27:1~26
오늘 본문 말씀은 사도 바울이 베스도 총독과 아그립바 왕 앞에서의 심문을 끝으로 로마의 황제 네로 앞에서 최종 재판을 하는 것이 확정됨으로 사도 바울이 로마로 이송되는 과정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가 로마로 가는 항해 가운데 유라굴로 광풍에 휩싸여서 15일 동안 지중해를 떠도는 내용이 나옵니다. 이렇게 유라굴로라는 지중해의 계절풍으로 인하여 사도 바울이 탄 배가 장기간 표류하는 이 사건은 여러 가지 영적 교훈을 담고 있습니다. 그러면 함께 차례로 이 본문 말씀을 읽어가면서 우리에게 주는 영적 교훈을 살펴보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첫째로, 사도 바울 곁에 수종자로 나선 두 명의 헌신자들이 있었습니다.
사도행전 27:1~2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우리가 배를 타고 이달리야로 가기로 작정되매 바울과 다른 죄수 몇 사람을 아구스도 대의 백부장 율리오란 사람에게 맡기니 아시아 해변 각처로 가려 하는 아드라뭇데노 배에 우리가 올라 항해할새 마게도냐의 데살로니가 사람 아리스다고도 함께 하니라”
여기서 보니 사도 바울이 로마 황제의 판결을 받으려고 죄수로서 이송될 때에 그와 함께 배에 사도행전의 저자 의사 누가와 데살로니가 사람 아리스다고가 함께 타고 가는 것을 보게 됩니다. 누가와 아리스다고가 사도 바울과 함께 배에 타고 갈 수 있었던 것은 당시에 로마의 법 규정에 죄수일지라도 그의 종들 곧 죄수의 노예라고 등록을 하면 죄수와 함께 배에 탈 수 있었다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의사 누가와 아리스다고는 사도 바울의 종, 사도 바울의 노예로 자기를 기꺼이 내어줌으로써 죄수로서 고생하는 사도 바울을 돌보아주려고 그렇게 자기를 낮추고 헌신하였음을 보게 됩니다. 골로새서 4:10 말씀에서도 보면 사도 바울이 로마 감옥에 있을 때 그의 편지에 쓰기를
“나와 함께 갇힌 아리스다고와”
라고 하였으니, 아리스다고는 사도 바울이 로마에 도착하여 감옥에서 수감되어 있는 동안에도 거의 사도 바울 곁에 그의 종의 신분으로서 함께 감옥에 갇혀 있듯이 감옥을 들락거리면서 사도 바울을 섬겼던 것을 보게 됩니다. 계속하여 그가 자신을 사도 바울의 종이라고 로마 감옥 책임자들에게 밝혀서 사도 바울을 계속 곁에서 도와주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복음을 위하여, 주님의 나라를 위하여 하나님의 종 사도 바울을 위하여 이처럼 자신을 낮추어 종과 노예로 섬긴 의사 누가와 아리스다고를 하나님께서 귀하게 여기시고 복과 은혜를 주실 것입니다.
마태복음 10:41,42 말씀에 보면 우리 주님께서 이르시기를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요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작은 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누가와 아리스다고는 복음을 위하여 이렇게 자기를 희생하여 섬김의 수고를 다했으니, 주님께서도 그들의 겸손과 섬김의 수고를 따라 참으로 지극히 복된 은혜와 영광으로 갚아주실 줄 믿습니다. 우리도 주님의 이름과 복음을 위하여 기꺼이 자기를 낮추어 섬김의 수고를 즐겁게 행하는 성도들이 됩시다.
둘째로, 사도 바울의 항해에 맞바람이 쳐서 항해가 어려웠습니다.
3절로부터 8절까지 함께 읽겠습니다.
“이튿날 시돈에 대니 율리오가 바울을 친절히 대하여 친구들에게 가서 대접 받기를 허락하더니 또 거기서 우리가 떠나가다가 맞바람을 피하여 구브로 해안을 의지하여 항해하여 길리기아와 밤빌리아 바다를 건너 루기아의 무라 시에 이르러 거기서 백부장이 이달리야로 가려 하는 알렉산드리아 배를 만나 우리를 오르게 하니 배가 더디가 여러 날만에 간신히 니도 맞은편에 이르러 풍세가 더 허락하지 아니하므로 살모네 앞을 지나 그레데 해안을 바람막이로 항해하여 간신히 그 연안을 지나 미항이라는 곳에 이르니 라새아시에서 가깝더라”
바울 및 여러 죄수들을 인솔하는 책임자인 로마 군대의 백부장 율리오는 상식적이고 책임감이 있는 군인이었습니다. 그는 가이사랴에 있는 이달리야 부대에 속한 지휘자로서 바울에 대한 소문을 들어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바울을 다른 죄수들과 달리 처음부터 친절하게 대하여 항해 이튿날에 시돈 항구에 들렀을 때에는 시돈 항구에 있는 믿음의 형제들에게 가서 대접을 받을 수 있도록 허락해주기도 하였습니다. 그 다음 날 또 다시 배를 타고 항해를 했는데 그 때가 겨울이 가까워져서 북동풍이 점점 거세질 때였습니다. 그래서 선장은 구브로 해안 곧 키프로스 섬의 남쪽 해안을 지나서 튀르키예 서남단 항구인 무라 항구에 도착하였는데, 거기서 로마로 출발하는 알렉산드리아 배를 만나 그 배로 갈아타게 되었습니다.
당시 알렉산드리아의 곡물선은 로마의 식량을 대주는 중요 보급로 역할을 했기 때문에 거의 관용 어선과 같았습니다. 그래서 로마의 군대 지휘관 율리오는 그 배에 타서 그 배를 최종 지휘할 권세를 가졌습니다. 백부장은 알렉산드리아에서 로마로 곡물을 수송하는 배에 자기가 관리하는 죄수들을 태우고 로마로 계속 항해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시기가 점점 겨울로 접어들기 때문에 북동풍이 불어서 배가 앞으로 나아갈 수 없어서 배는 맞바람으로 며칠이나 걸려서 지중해의 중앙에 있는 그레데 섬 곧 크레타의 미항이라는 항구에 간신히 기착을 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명을 받아 로마로 가는 사도 바울의 항해 길에도 이처럼 맞바람이 점점 거세게 불어오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시편 34:19 말씀에서도 이르기를
“의인은 고난이 많으나 여호와께서 그의 모든 고난에서 건지시는도다”
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사명에 따라 순종하여 산다고 해서 그 인생 항해에 언제나 순풍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역풍이 불어닥쳐 그 가는 앞길이 험난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신앙으로 산다 해도 우리 인생의 여정에 시련의 맞바람이 불어와서 힘겨운 항해를 할 경우가 있음을 기억하고 낙심하지 말고 더욱 힘을 내야 하겠습니다.
셋째로, 백부장이 사도 바울의 경고의 말보다 선장과 선주의 말을 들었습니다.
9절로부터 12절까지 함께 읽겠습니다.
“여러 날이 걸려 금식하는 절기가 이미 지났으므로 항해하기가 위태한지라 바울이 그들을 권하여 말하되 여러분이여 내가 보니 이번 항해가 하물과 배만 아니라 우리 생명에도 타격과 많은 손해를 끼치리라 하되 백부장이 선장과 선주의 말을 바울의 말보다 더 믿더라 그 항구가 겨울을 지내기에 불편하므로 거기서 떠나 아무쪼록 뵈닉스에 가서 겨울을 지내자 하는 자가 더 많으니 뵈닉스는 그레데 항구라 한쪽은 서남을, 한쪽은 서북을 향하였더라”
항해가 길어지므로 인하여 시간이 흘러 금식하는 절기가 이미 지났습니다. 금식하는 절기는 바로 유대인 종교력으로 대속죄일로서 가을 추수 때에 맞이하는 절기입니다. 그러므로 이 때는 겨울이 가까워오고 있는 계절로서 북동풍 태풍이 지중해의 뱃길을 위협하는 시기가 가까워진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탄 배는 그레데 섬의 동쪽 항구인 미항에서 이번 겨울을 나야 안전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 동안 여러번 지중해 바다를 건너는 선교 여행을 해왔던 경험 있는 분이고 또 늘 하나님께 기도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이렇게 바람이 거세지는 가운데 항해를 계속하면 배가 큰 변을 당할 것을 직감하였습니다. 그래서 백부장과 선주와 선장이 얘기 나누는 때에 그들을 만나 자기의 뜻을 전달했습니다.
“여러분이여 내가 보니 이번 항해가 하물과 배만 아니라 우리 생명에도 타격과 많은 손해가 끼치리라 그러니 이곳 미항에서 이번 겨울을 나고 겨울 태풍이 잠잠해지는 봄에 로마로 가는 것이 안전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 배의 선장과 선주와 그 배에 화물을 싣고 가서 로마에 가서 팔아 장사하여 큰 이득을 남기려는 여러 장삿꾼들은 로마에 속히 도착하는 것이 지연되면 자기들의 이익이 줄어들 것이 염려되어서 조바심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배의 지휘관인 백부장에게 어서 항해하자고 재촉하곤 했습니다. 그리고 그 섬에서 겨울을 나더라도 이 좁은 항구에서 지내지 말고 좀 크고 넓은 항구인 그레데의 서쪽 항구인 뵈닉스 항에 가서 겨울을 지내자고 말했습니다. 결국 백부장은 종교인인 사도 바울의 말보다는 경험 많은 선장과 선주의 말을 더 믿고 그 말을 따르기로 결정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결정의 결과는 우리가 알다시피 큰 낭패와 손해와 위험으로 내몰리고 말았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배울 점은 분명합니다. 미래의 모든 일은 우리의 경험과 인간의 직관에 의하여서만 결정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미래의 모든 일을 다 미리 알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그리고 아무리 경험이 많고 아무리 많은 정보를 축적해놓았다 하더라도 미래는 사람이 결코 다 알 수 없는 미지의 영역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다 알고 계시고 세상의 모든 일을 그의 주권과 선하신 뜻을 따라 행하시는 만물의 대주재이신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나누며 그 인도하심에 대하여 물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의 행사를 깨달아 아는 하나님의 사람의 의견과 뜻을 무시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그 백부장과 선장 선주의 모임에서 발언한 내용을 보면 매우 강력한 예언적 메시지가 담겨 있고, 그 경고는 실제로 그대로 이루어졌음을 보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하나님의 뜻을 묻고 행하고 하나님의 뜻을 알기까지 함부로 조급하게 어떤 일을 시도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야보고서 4:12~16 말씀을 마음에 새깁시다.
“들으라 너희 중에 말하기를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어떤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년을 머물며 장사하여 이익을 보리라 하는 자들아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너희가 도리어 말하기를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이나 저것을 하리라 할 것이거늘 이제도 너희가 허탄한 자랑을 하니 그러한 자랑은 다 악한 것이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자기의 경험과 계산을 믿고 자만하여 자기의 사업 계획을 거창하게 세우고 많은 이익을 얻을 것이라고 함부로 자랑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도리어 내일 일을 우리가 알지 못하고 자신이 연약한 육신과 지혜의 한계를 가진 존재임을 명심하고서 주님의 뜻이면 이런 저런 일을 할 수 있겠다고 생각하고서 주님의 뜻을 알기를 힘쓰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항상 하나님의 사람의 조언을 귀히 여기고 어떤 일을 일을 계획하고 행할 때에 먼저 하나님의 뜻을 묻고 그 뜻을 깨닫는 충분한 기도의 시간을 갖기를 힘써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어떤 일이 자기의 바람대로 이루어졌다 하여도 그것이 자기의 지혜와 능력과 수완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되었음을 알고 허탄한 인간 자랑을 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넷째로, 출항한 배가 유라굴로 광풍에 떠밀려 바다를 떠돌며 죽음의 위기를 맞이했습니다.
13절로부터 20절까지 함께 읽겠습니다.
“남풍이 순하게 불매 그들이 뜻을 이룬 줄 알고 닻을 감아 그레데 해변을 끼고 항해하더니 얼마 안 되어 섬 가운데로부터 유라굴로라는 광풍이 크게 일어나니 배가 밀려 바람을 맞추어 갈 수 없어 가는 대로 두고 쫓겨가다가 가우다라는 작은 섬 아래로 지나 간신히 거루를 잡아 끌어 올리고 줄을 가지고 선체를 둘러 감고 스르디스에 걸릴까 두려워하여 연장을 내리고 그냥 쫓겨가더니 우리가 풍랑으로 심히 애쓰다가 이튿날 사공들이 짐을 바다에 풀어 버리고 사흘째 되는 날에 배의 기구를 그들의 손으로 내버리니라 여러 날 동안 해도 별도 보이지 아니하고 큰 풍랑이 그대로 있으매 구원의 여망마저 없어졌더라”
미항에서 머물던 어느날 따뜻한 남풍이 불어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남쪽 아프리카에서 따스한 바람이 불어오자 배에 탄 선장과 선주와 하물을 실고 온 장삿꾼들은 환호하면서 배를 어서 출발시키자고 서둘렀습니다. 사람들은 남풍이 계속 불어주기만 한다면 배를 그레데 서쪽 항구 뵈닉스로 이동시키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대로 곧장 로마까지 항해를 이어갈 기세였습니다. 그렇게 배는 닻을 끌어올린 후 선원들이 돛을 높게 활짝 돛을 펴서 바람을 맞아서 서쪽 지중해 바다를 향하여 힘차게 항해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항해를 시작한 지 얼마 안되어 갑자기 바람이 바뀌고 말았습니다. 그레데 섬 한 가운데서 광풍이 크게 일어나 배를 밀어 붙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는 겨울 계절풍인 유라굴로 태풍이 불어오기 시작된 것입니다. 엄청난 바람과 높이 출렁거리는 파도 속에서 배는 마치 한 조각 나뭇잎처럼 바람 부는 대로 쫓겨가기 시작하였습니다. 온 하늘이 시커멓고 비 바람은 가혹하게 밀어 닥치고 바다는 모든 것을 뒤집고 배를 집어 삼킬 듯 달려들고 뒤들어놓았습니다. 이렇게 하다가는 큰 일 날 것 같아서 배에 달고 다니던 거룻배도 간신히 끌어올리고 태풍이 잠잠하기를 기다리는데 아무리 해도 그칠 기세가 없고 풍랑이 거칠게 밀어붙이니 배가 모래톱에 걸려 유령선이 될까봐 선원들은 이튿날부터 배에 있는 것들을 다 버리기 시작합니다. 먼저 장삿꾼들이 가져온 짐들을 바다에 버리기 시작합니다. 중량이 가벼워야 배가 가라앉지 않을 것이니 먼저 곡물들을 바다에 버리기 시작합니다. 곡물 상인들은 가슴이 아프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목숨이 더 중요하니까 어쩔 도리 없습니다. 그 다음에는 배의 각종 기구들도 선원들이 바다에 던져버립니다. 배의 기구들이 없으면 선원들은 항해를 제대로 할 수 없는데도 그것마저 버릴 만큼 그들의 생존 자체가 위태롭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도 풍랑이 계속되고 낮의 해도 보이지 않고 밤에 달과 별도 보이지 않는 캄캄함이 계속되니 사람들은 이제 절망 속에서 여기 저기 쓰러져버립니다.
유라굴로 태풍의 출현은 그 배에 탄 백부장과 선장과 선원과 장사꾼들과 죄수들과 군인들 모두에게 닥친 절대 위기였습니다. 이것은 인간의 모든 힘과 지혜와 경험들을 뛰어넘는 한계 상황이었습니다. 그 무엇으로도 그 거대한 태풍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이 인간 자신들에게 없음을 절감할 수밖에 없는 시련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네 인생 항해 길에도 예상치 않게 이러한 유라굴로 광풍과 맞닥뜨릴 때가 있는 것입니다. 인간의 힘과 지혜와 능력을 훨씬 뛰어넘는 시련이 우리를 압도하여 우리에게는 아무 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없을 때가 있습니다. 내게 있는 것들을 다 내버려야 되는 상황이 닥칠 수 있습니다. 내게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들, 내 인생의 미래와 행복을 담보할 수 있는 것들이라는 것들을 다 포기하고 버려야 하는 거대한 시련이 인생살이 속에 닥쳐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순간을 맞이해야 사람은 비로소 겸손해지게 됩니다. 모든 계급장을 다 떼놓게 됩니다. 자기 자신을 지탱해온 것들이 믿을 만한 것이 못된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하여 절대 절망의 그 순간에 비로소 하나님의 존재를 찾게 되고, 하나님에게 구원을 요청하게 되고, 하나님의 사람의 소중함을 알게 됩니다.
이렇듯 우리의 인생의 항해 길에서 유라굴로 태풍을 만나게 될 수 있음을 기억하고, 항상 자신을 쳐서 하나님을 인정하고 그를 의지하는 자가 됩시다. 지중해 바다처럼 예측 불허인 세상 속에서 인간의 이성과 경험의 돛만 가지고 항해할 수 없음을 인정하고, 항상 믿음의 돛을 높이 쳐들고 하나님의 섭리의 손길에 자신을 맡겨드립시다. 그렇게 늘 하나님께 기도하는 중에 하나님의 성령 바람에 이끌려서 남은 인생의 여정을 믿음으로 항해하는 복된 순례자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다섯째로, 사도 바울이 사람들에게 안심할 수 있도록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줍니다.
21절로부터 26절까지 함께 읽도록 하겠습니다.
“여러 사람이 오래 먹지 먹지 못하였으매 바울이 가운데 서서 말하되 여러분이여 내 말을 듣고 그레데에서 떠나지 아니하여 이 타격과 손상을 면하였더라면 좋을 뻔하였느니라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이제는 안심하라 너희 중 아무도 생명에는 아무런 손상이 없고 오직 배뿐이리라 내가 속한 바 곧 내가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그런즉 우리가 반드시 한 섬에 걸리리라 하더라”
아마도 항해한 지 열사흘째쯤 되는 날인 것 같습니다. 배 안에서 여기 저기 지치고 먹지 못하여 힘없이 널부러져 있는 사람들은 눈에 초점이 없습니다. 밤과 낮이 얼마나 지났는지도 모를 만큼 태풍 속에 갇혀 이리 저리 바람 부는 대로 바다를 떠돈 지 오래이기 때문에 그들은 이제 그들은 이제 죽을 일만 남은 것처럼 절망감에 휩싸여 드러누워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천사 같은 얼굴을 한 환한 얼굴을 한 사도 바울이 그들 중 한가운데 서서 이렇게 확신에 차서 말을 하는 것입니다. 먼저 그들에게 맨 처음에 자기 말대로 미항이라는 항구에서 출항하지 않았다면 이 피해가 없었을 것이 분명하다고 말함으로써 그의 말이 옳았음을 상기시켜 주었습니다. 그러나 이어서 이제 안심하라면서 아무도 생명에는 손상이 없을 것이고 배만 잃을 것이라고 말해주었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어젯밤에 하나님의 사자가 그 곁에 서서 이르기를,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라고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반드시 그에게 하신 말씀하신 대로 해주실 것이니 그들 모두 안심하라고 힘있게 격려한 것입니다. 할렐루야.
모두가 절망할 수밖에 없는 그 길고 캄캄한 위기의 시간에 여기 홀로 얼굴에 환한 희망과 용기를 가지고 모든 사람들을 격려하며 아무 걱정하지 말라고 안심하라고 말하는 사도 바울이 나타납니다. 미래에 대하여 처음 출항할 때에도 미리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아 경고했던 사도 바울은 또 다시 그 절망으로 가득찬 배 안에서 일어나 이제 미래를 향하여 밝은 미래를 선포합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로마의 가이사 황제 앞에 서게 될 것이라는 것과 그 배에 있는 모든 사람들 이백칠십육 명이 한 사람도 죽지 않고 다 목숨을 건지게 될 것이라고 하신 약속을 지켜주실 것이라고 전해준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 캄캄한 배 안에 절망감에 짓눌렸던 사람들은 이제 살 소망을 갖게 되고 용기를 가지고 음식을 조금씩 먹기도 시작하면서 희망을 품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여전히 바다에는 풍랑이 거칠고 비바람 소리가 뱃전을 휘몰아치고 배는 이리 저리 흔들리고 밤인지 낮인지 분별할 수 없이 캄캄함이 계속되고 지금 여기가 어딘지도 짐작조차 못하는 상황이지만, 사명을 붙들고 온 하나님의 사람이자 기도의 사람이었던 사도 바울은 마침내 하나님의 분명한 말씀을 들었고 그 말씀을 반드시 하나님께서 지키실 줄을 믿었기에 그 심령에 놀라운 평안과 담대함이 넘쳤고 그 곁에 있는 사람들 모두에게도 동일한 평안과 확신을 심어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 배에 있는 사람들이 절망에서 벗어나 살 소망을 갖고 고난을 견딜 수 있게 해주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아무리 캄캄한 인생의 고난의 터널을 만나 힘들고 어려운 씨름을 할지라도 사도 바울처럼 자기가 감당해야 할 사명의 소중함을 기억하면서 그 사명을 이루기 위하여 달려가는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반드시 그 고난을 통과할 수 있도록 도와주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주님을 섬기며 그가 우리에게 주신 소중한 사명들 교회를 섬기며 가정을 잘 지키고 가꾸며 복음을 전하여 사랑하는 가족, 이웃, 친구, 동료들을 구원하며, 내게 주신 은사와 달란트를 가지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겠다는 귀한 사명을 반드시 이루겠다고 결심하고 이 사명을 이루려고 온 힘을 기울입시다. 그러면 주님께서 반드시 우리를 도와주실 것이요 모든 고난을 다 감당하여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주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또한 고난 중에도 늘 기도하는 자가 됩시다. 사도 바울은 그 유라굴로 폭풍 중에 배가 이리 저리 구르며 파선당할 위기를 만났을지라도 언제나처럼 기도함으로써 하나님께 매달렸습니다. 그러므로 마침내 폭풍 중에 헤맨지 열사흘째 날 밤에 기도하는 중에 밤중에 그 곁에 여호와의 사자가 그 곁에 나타나 서서 말씀하시고 약속의 말씀을 분명히 전해주셨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고난 중에 부르짖는 주의 백성들의 기도를 반드시 들어주십니다. 요나도 그 지중해 한 가운데 큰 물고기 뱃속에 갇힌 지 사흘째 간절히 기도했을 때에 응답해주시고 하나님께서 물고기를 명하여 그를 육지에 토하여 내도록 도와주셨지 않습니까?
예수님의 제자들도 갈릴리 바다에서 예수님을 배에 태우고 항해하는 중에 예수님께서 배의 뒤편에 베개를 하고 누워 자고 계시는데, 갑자기 폭풍이 몰려와서 배가 뒤집힐 때에 예수님께 달려와서 흔들어 깨우면서 주님의 도움을 긴급히 간청하였습니다. 그러자 주님이 일어나서 “잠잠하라. 고요하라”하고 명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물결이 즉시 멈춰 잔잔해졌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하나님은 고난 중에 부르짖는 자기 백성의 기도를 결코 외면하지 않으심을 믿고 고난이 깊고 그 날이 길고 오래고 아무리 해도 외적으로는 좋아질 여망이 전혀 없을지라도 하나님을 믿고 계속 기도하기를 그치지 맙시다. 반드시 하나님의 때에 응답해주실 것이요 약속해주실 것이요 놀랍게 기이하게 응답해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로마서 12:12 말씀에
“소망 중에 즐거워하고 환난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며”
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그가 가르쳐주었던 이 교훈대로 그가 행하였더니 그 지중해 바다의 유라굴로 폭풍우에서 마침내 주님의 약속의 말씀을 받아서 그 말씀으로 안심을 얻고 그 배의 모든 사람들의 절망의 마음에 소망으로 채워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이여, 오늘날 유라굴로 폭풍에 휩싸인 듯한 세상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낙심하고 절망하고 슬퍼하고 여기 저기 널부러져 있는 이 때에 우리들은 사도 바울처럼 용기를 심어주고 안심하도록 격려할 수 있는 귀한 영적 지도자들이 됩시다. 우리가 사도 바울처럼 사명을 붙들고 살아가며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도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쓸 때에 주님은 우리의 앞길을 인도해주실 것입니다. 유라굴로 같은 광풍을 만날지라도 그 광풍 중에서도 하나님은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 광풍 중에 넘어진 자들까지도 우리에게 맡겨주시어 그들도 함께 살게 해주실 것입니다. 지금도 우리의 항해 길에 하나님의 섭리로 우리 인생의 배에 동승한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우리가 길잡이가 되고 희망을 주고 안심을 주는 이 시대의 일꾼들이 되기를 주님은 바라십니다. 이를 위하여 하나님의 사명을 늘 붙들며 고난 중에 인내하며 기도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늘 품고 다른 이들을 사랑하며 살리고자 힘쓰는 귀한 사랑의 사람들이 됩시다. 그리할 때에 만사의 주재이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하여 우리에게 맡긴 많은 사람들로 함께 인생의 광풍을 이기고 평화와 안식의 항구로 인도해주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