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0월 13일
본문 : 마21:12-17
제목 : 온전하게 하셨나이다
오늘 본문 말씀에는 숨기고 싶은 우리의 부끄럽고 그릇된 신앙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읽을 때의 불편함은 우리를 겸손하게 하며, 성령님의 도우심과 인도하심은 우리를 회개하게 하십니다. 성경 속의 믿음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고 있으면 우리의 얼굴이 떠오릅니다. 마치 거울 속의 나를 보는 듯합니다. 그리고 낯선 세상 한가운데에서 길을 잃고 울고 있는 어린아이처럼 우리의 마음도 괴로워집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제자처럼 늘 믿음이 좋을 것만 같았지만 어느새 우리의 비전과 영혼을 세상에 묻은 채 세상 사람들보다 더 세상 사람같이 변해버린 우리의 자화상을 보는 것 같아서 마음이 아픕니다.
가장 먼저 신앙이 변질된 인류를 생각해봅시다. 창세기 앞부분에는 그들이 마귀의 꾐에 빠져 선악과를 먹고 하나님을 피해 숨는 개탄스러운 장면이 나옵니다. 그들은 몹시 두려웠고 자기들이 알몸인 것을 깨닫고 매우 부끄러웠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찾으시는 사랑의 아버지 하나님을 피해 큰 나무 뒤에 숨어 하나님과 자기들의 얼굴을 가렸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계실 때에도 아담과 하와처럼 회칠한 무덤과 같이 외식하는 자들이 주님의 면전에서 활개를 쳤습니다. 안타깝게도 그들의 모습 속에서 끊임없이 우리가 보입니다. 그들은 주도권을 갖고 그들의 세상을 움직였습니다. 그들에게는 이 세상을 움직이는 힘의 논리와 그것을 움직이는 돈의 법칙이 하나님보다도 더 높고 절대적인 가치였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저버린 자들의 세상 속에서 그분의 자리에 앉아 세상을 조종하던 사람은 다름 아닌 돈의 노예가 된 종교지도자들이었습니다. 대제사장, 서기관, 성전 관리자들은 모두 한통속이 되어 성전의 참 주인이시며 믿음의 주체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향해 분노했으며, 그분을 대적하고 저주하며 그분의 가르침의 흔적들을 지우는 데 급급했습니다. 그 기득권자들에게서 우리의 모습이 보임을 고백합니다. 결국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 지음 받은 성도들이 거하며 예배드리는 성전, 즉 하나님의 나라와 주님의 임재를 가시적으로 보여주는 참으로 고귀한 성전에서 하나님의 은혜가 떠나버렸습니다. 그리고 외식만 남은 그 자리에 마귀가 들어와 자기를 하나님처럼 높이며 외식하는 자들을 이용하여 성전을 사탄의 놀이터로 만들었습니다. 이 얼마나 개탄스럽고 수치스러우며 한심한 사태입니까? 사탄 마귀의 비웃음거리와 놀이터가 되어버린 성전이라니 정말 기가 막힙니다. 이러한 상황을 만든 죄인들, 즉 허물 많은 종교지도자들과 그들의 비호 속에 이익을 나누며 육신의 터전을 차린 상인들의 모습 속에 주님의 눈물이 보이지 않으십니까? 우리는 무서워하고 두려워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영혼이 오늘 본문 말씀의 배경인 거대한 불신으로 타락한 도시처럼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염려하고 근신하며 지켜야 합니다. 그들의 삶이 죄로 가득찼던 까닭은 첫째도 둘째도 성전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잃어버린 채 자기들의 이익을 창출하는 것이 하나님의 참뜻이라고 거짓 선전, 선동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뼈아픈 말씀으로 스케치하듯 그려서 우리에게 보여주고 계십니다.
오늘 본문 말씀의 배경은 이렇습니다. 예루살렘에 들어가신 주님께서는 아버지의 전으로 급히 발걸음을 옮기셨습니다. 그런데 아버지의 은혜를 사모하며 아버지께 기도와 간구로 영광을 돌리시려던 예수님 앞에 참담한 광경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주님의 모진 가르치심을 받아야 할 어리석은 자들이 마치 길가의 가로수처럼 길게 자리잡은 것을 보신 주님께서는 시리도록 아픈 마음으로 그곳을 정화하기로 작정하셨습니다. 그런 다음 그들을 바라보셨습니다. 안타깝게도 그들에게는 회개할 수 있는 가난한 심령도, 애통하는 신앙도 없었습니다. 주님께서는 그런 그들에게 성전의 참 주인이 누구신지 친히 알려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하나님께 얼마나 큰 죄를 저지르고 있는지 적나라하게 지적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다급하고 큰 목소리로 그들에게 회개를 촉구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깨닫지 못했습니다. 주님께서는 그들이 같은 죄를 반복하지 못하도록 단호히 내보내셨고, 그들의 믿음 없는 자리가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큰 죄인지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보여주시기 위해 그들의 의자를 엎으셨습니다. 그리고 큰 소리로 외치셨습니다. 마21:13 "기록된 바(시56:7)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성전의 참 주인은 예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진정한 뜻은 오직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가르침을 통해서만 온전하게 깨달을 수 있다는 사실을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거하실 집은 '기도하는 집'입니다. 기도란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깨닫고 자기 육신의 소욕이 아닌 그분의 뜻에 따라 참된 진리와 은혜를 구하는 신자가 되게 해 달라고 간구하며 겸손하게 그분의 은혜를 구하는 믿음의 행위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진리와는 정 반대로 하나님이 아닌 나의 뜻대로 되는 것이 축복의 삶이라고 생각했던 그들은 백성들 위에서 군림하며 그릇된 본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들은 아는 것이 없어 두려움으로 믿음 생활하는 백성들에게 돈을 요구하며 그것을 신앙의 표현이라고 속였습니다. 영적 사기꾼과 같은 그들에게 속은 백성들은 성전에서 돈을 내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들은 그것이 옳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기도하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그들은 행복했습니다. 제사를 담당하는 제사장들의 전대가 두둑해졌기 때문입니다. 물건을 팔아 이익을 남기는 자들은 자기들에게 자리를 배당해준 제사장들과 이익을 나눠야만 했습니다. 종교지도자들이 부요하게 되는 세상의 물질 법칙이 성전 안에 자리를 잡았고 실제로 적용되어 성전 안과 밖에서 실행되었습니다. 성전 안에서는 썩어 악취가 진동하는 제물과 같이 부패한 자들의 타락한 종교행위가 날마다 이루어졌습니다. 돈을 주인으로 섬기는 우매한 그들은 대제사장으로부터 장사할 수 있는 자리를 매수하여 하나님 앞에서 불의한 부를 착취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그들을 질타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도 이런 죄에 빠질 수 있습니다. 그들에게 진리를 외치셨던 예수님의 질타를 우리도 받을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이 질책의 말씀을 받아야 합니다. 마21:13 "너희는 하나님의 성전을 강도의 소굴(렘7:11)로 만드는도다."
예수님께서 성전을 영적으로 정화하시자 그제야 맹인과 다리를 저는 자들이 주님께 나아왔습니다. 주님께서는 그들을 기쁨으로 고쳐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마치 성가대가 찬양하듯 아이들이 '호산나(우리를 구원하소서) 다윗의 자손이여'라고 주님을 찬미했습니다. '다윗의 자손'이란 다윗 왕의 혈통(유다지파)으로 오신 예수님께서 영원한 하나님나라의 왕이심을 선포하는 표현입니다. 그런 다음 주님께서는 아이들을 보고 노하는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을 말씀으로 가르치셨습니다. 마21:16 "어린 아기와 젖먹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찬미를 온전하게 하셨나이다(시8:2) 함을 너희가 읽어본 일이 없느냐?" 그리고 성을 떠나 베다니로 가셨습니다. 옹알이를 하는 어린 아기와 젖먹이들은 무능하지만 주님께서 참으로 사랑하시는 아이들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나라의 일꾼으로 성장할 밀알과 같은 존재들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아기들도 우리 주 예수님의 십자가의 구속하심을 통해서만 구원을 받습니다. 그러나 아기들의 성장을 위해서는 반드시 부모가 필요한 것처럼 우리에게도 하나님 아버지의 돌보심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더 이상 헛똑똑이로 살지 맙시다. 죄만 낳을 뿐입니다. 아이가 됩시다. 가난하고 아픈 자가 됩시다. 왜냐하면 그래야만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고 사랑하며, 오직 그분께만 소망을 두고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참된 행복입니다. 이것이 천국에 소망을 두고 사는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이제 우리가 참 성전이 됩시다.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에 참예한 신자들입니다. 강도의 소굴이 아닌 진정 하나님의 영이 충만하게 임하시는 교회가 되어 영과 육이 아파서 고생하는 자들과 눈이 보이지 않아서 길을 잃은 이들을 품어주고, 먼저 그들을 찾아가서 우리의 어깨와 등을 빌려주고 함께 기도하며, 그들의 손을 잡고 일으켜 주님의 참된 제자의 길을 함께 걸어가는 하나님의 지체들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