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간 시 전문지 [애지] 2026년 여름호
논쟁문화의 장 : 이혜선 특집
ㅡ 이혜선 연작시 「어머니의 피난일기」 15편 ㅡ
●.어머니의 피난 일기 1
ㅡ.생면도 몬한 니를 안고
육이오 동란, 말도 말거라
니를 배고 팔삭이 되어
배가 행수바구* 각떼미산 만할 때다
앞집 사는 니 고종 필회가 장고개를 넘어오며
전쟁났다! 전쟁났다!
북한놈덜 쳐들어왔다!
외치는 소리 듣고 나는
배를 안고
아직 생면도 몬한 니를 안고 털썩 주저앉았디이라
*어머니의 친정 동네.
~~~~~~~
●.어머니의 피난 일기 2
ㅡ.작은 손을 잡았다가 업었다가
제사 지내고 피란 가야 한다고 미루다가
음력 유월 그믐에 제사 모시고
7월 초에 피란 갈 채비를 했다
미숫가루 뽀사서 작은 육삭꾸에 담고
송아지 딸린 소 등에다 이불 솥을 싣고 쌀 김치를 다 실었다
그래도 우리는 그 소 덕분에 피난 짐 안지고 편히 피난갔지
그때는 삼 동네 둘러봐도 소 세 마리 보기 어려분 때라,
열한 살 된 니 언니 미수가루 든 육삭꾸 메고
여섯 살 니 작은 언니 내 손 잡고 따라 나서는데
부른 배를 안고
고 작은 손을 잡았다가 업었다가 장고개를 우찌 넘었는지,
애보개 고분이는 지 고모 찾아 가삐리고
4대 종손 너거 아부지 행여나 징용당할라 숨어숨어 가고
내 혼자 아아들 데리고 소를 몰고
고개 너머 가등이 작은집에 가니
모두 피란 떠나고 온 동네가 텅 비인게라, 사람 그림자도 없는
마당에 들어서니 그 넓은 집 안방에서
누렁이가 혼자 있다가 반갑다 꼬리치더라
그 누렁이 혼자 집을 지키다가
석 달 후 피란에서 돌아오는 식구들을 맞이하더란다
사람보다 나은 짐승이제
그 시퍼렇던 눈이 지금도 생각난다
~~~~~
●.어머니의 피난 일기 3
ㅡ숨어 숨어서 산길을 걸어
김해 땅이 안전하다 캐서 거기로 향하고 가는데
산 고개 고개를 넘어 칠원 온천내 물을 건너
숨어서 숨어서 산길을 걸어갔다
큰길로 가믄 트럭이 와서 모두 담아 실고
피란민 수용소에 보내는기 무서버서,
거기 간 사람들 돌림병 들어 말카 다 죽었다는 소리 들리고,
우리는 해 지믄 산 속에 이불 펴고 자고
해 뜨믄 일어나 솥 걸어서 밥 해먹고 이슬에 젖은
이불 대강 말려서 또 길을 떠났디이라
여름인데도 음력 칠월이라 산속은 춥은 냉기 돌고
밤에는 이슬이 뼈에 스미는기라
~~~~~
●.어머니의 피난 일기 4
ㅡ지금도 오금이 저려온다
마산 지나 창원쯤 갈 때든가
트럭 한 대가 흙바람 날리며 달려와서
니 아버지와 나는 작은 애 손을 끌고 산 속에 숨었다
니 큰 언니는 소를 몰고 앞서 가다가 부르는 소리 못 듣고 그냥 가더라
하늘에선 비행기가 빙빙 돌며 폭탄을 퍼붓고
뒤에는 트럭이 따라와 피란민 무작배기로 실고 가는데
한참 가다 뒤돌아본 니 언니, 그 와중에도
몰고 가던 소를 돌려세워 놓고 그제야 뛰어오며 엄마를 부르니
하마터면 그때 이산가족 될 뻔했다
사람이 급하믄 지 먼저 살고 봐야지 새끼도 없는기라
만약 그때 너거 언니 이자삐맀으믄
아이고, 그 세월을 우찌할고
지금도 니 언니 그때 말하면 오금이 저려온다
~~~~~
●.어머니의 피난 일기 5
ㅡ.눈두덩이 붓도록 울었다
아매 임신중독증이든가 나는 손등 발등이 통통 붓고 얼굴도 부어
뒤뚱뒤뚱 겨우 걸어서
김해 땅 진영읍 동사이에 도착했다
먼저 온 피난민들이 온 동네 득실거리고
우리는 집이 없어 한데 떠돌다가
너거 아부지 문자 속 아는 덕분에 이장집 아래채 방 한칸을 얻어 들었다
몰려든 피란민 때문에 정신 못 차리는 이장을 도와
이것저것 정리해주는 니 아버지 덕에 우리는 편키 있다가
스무날이 채 안돼 니럴 낳았디이라
난리 중에도 새 생명 불었다고 나라에서 담요도 주고 쌀도 주고
니 덕에 호강은 했다마는
바래고 바래던 5대 종손, 고추를 몬 달고 나온 니럴 보고
나는 눈두덩이 붓도록 울고 또 울었다
니 아버지 날 위로하며 이 난리 중에 목심 건져 태어난 아이니
장차 큰 일 할기라고 어린 니한테 큰 희망을 걸었더란다
~~~~~~
●.어머니의 피난 일기 6
ㅡ.집집마다 문전걸식
온 나라가 콩 볶듯이 난리가 한창이라도
낙동강이 품어주는 김해는 하늘 품이라
니는 무럭무럭 자라났다
몸조리는 해야 되고, 도와줄 손은 없고,
이웃 동네 있는 상임 할매를 모셔다가 몸조리를 하는데
보리쌀은 있는데 된장이 모자란기라
된장 사러 나갔더니 아무도 팔 거 없다고
생각다 못해 얻으러 나섰다
집집마다 문전 걸식으로 장 얻으러 왔다 하이
인심 좋은 동네 사람덜 한술 두술 모은 것이
산 것보다 더 많아서
집에 올 때까지 먹고도 남더라
~~~~~~
●.어머니의 피난 일기 7
ㅡ.목심은 질긴기라
원수놈덜 자꾸자꾸 내리와서 나라는 졸아들고
부산도 마산도 피란민 통에 몬살겄다 하고
함안 여항산에는 미군들이 하도 많이 죽어 갓뎀, 갓뎀!
각떼미산이 되어 피로 물들고,
그래도 목심은 질긴기라
조상께 추석 제사도 몬 지내고 겨우 연명하다가
원수놈덜 물러갔다! 소식 듣고
집에 갈 차비 할 때
이제는 살았구나 어깨춤이 절로 났지
~~~~~
●.어머니의 피난 일기 8
ㅡ.그립던 집을 찾아오니
전쟁 끝났다고 돌아오는데
산에도 들에도 물속에도 시체가 즐비하게 누워있어서
참혹해서 차마 눈을 몬 뜨고 걸었다
그립던 집을 찾아오니
온 동네가 잿더미로 폭삭 내려앉았더라
우뜬 집은 아직 모락모락 짐이 나기도 하고...
우리집도 웃채 아래채 고장채 모두 불타삐리고
남늪댁 아래채 오두막 한 칸을 빌려서 모두 모여
다리 오그리고 살았다. 그저 목심만 붙어있으믄 사는기라
그 좁은 방에서 조상 제사도 지내고,
모두들 죽어 나자빠지는 판에 우리는 목심 불려서 돌아왔다고
너거 종조할머니 너를 안고 치하했다
바깥마당 풀숲에다 겨우 두 칠 지난 니를 뉘어놓고
불탄 자리에 우선 사랑채를 짓는데
니는 천심으로 아는지 울지도 않고 혼자 잘 놀고 잘 자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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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피난 일기 9
ㅡ.굶지 않고 목심 건짓다고
그때는 보릿고개 넘을라카믄 굶기를 밥먹듯이 할 때라서
피란은 가야 하는데
동네 사람들 양식이 없다카이,
우리 고장(광)에 있는 나락 다 찧어서 온 동네 나눠줬다 아이가
피란가고 싶어도 쌀이 없어 몬 가는 동네 사람들과 나눠 먹자고,
피란 갔다 돌아오니 온 들판 나락이, 논도 안 매줬는데
지 혼자 잘 자라고 지 혼자 잘 익어서
황금들판이 눈이 부시더라
동네사람덜 고맙다고 너도나도 나락 가져와서
인심 좋은 행동양반* 덕분에 굶지 않고 목심 건졌다고
치사 치사 받고
우리 고장이 그득 찼디이라
*아버지의 택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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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피난 일기 10
ㅡ.날밤 새워 옷 바느질
내 시집올 때 큰 농 두 바리 그득하게 해온,
평생 동안 입고 남을 옷들을 나락섬에 넣어
한 섬은 땅에 묻고 한 섬은 대밭에 숨카 놨는데
늦게 피란 가는 사람덜 그 옷을 다 꺼내 입고 온 대밭에 흩어 놔서
비 맞아 다 썩어서 허옇게 널려 있더라
찧은 쌀도 남겨서 한 독 가득 고장에 두었는데, 돌아오니
타동네 사람들이 김치와 같이 다 먹고 없더라
다행히 묻어 논 옷 섬은 그냥 있어
그 옷을 입고 한겨울을 났단다
1936년에 막내딸 시집보낼 때
너거 외할머니가 소 한 마리 값으로 사 준 싱가 미싱도
묻어 놓은 그대로 있어서
그때는 면내에서 미싱은 구경하기 어려븐 때인지라,
난리통에 옷이 없는 삼 동네 사람들 옷 바느질 해주고
날밤을 새우며 등 너머 먼 동네 사람들 옷까지 해주고
옷 해주면 그 삯으로 밭 매주고 논 매주는 사람들 덕분에
농사를 잘 지어서
전쟁 나고 그 어려븐 시절에
밭 사고 논 사는 밑천이 됐단다
~~~~~
●.어머니의 피난 일기 11
ㅡ.집을 지어야 산다고
다행히 동네에 인민군은 안 들어왔는데
국군이 후퇴하면서 초토작전으로 동네를 다 불태워서
한 동네 한 두집 빼고는 폭삭 타버렸더라
사람들이 돌아와서 한데서 자고
하루 빨리 집을 지어야 되는데 나무가 없는기라
그때 우리 산에 왕솔들이 많았는데
밤마다 나무 베는 소리 쓰러지는 소리 들려도
너거 아부지 못 들은 척, 다 베어가라고 두었다
날은 추버오고 집이 없으니 집을 지어야 산다고,
삼동네 사람들 그때 우리 솔 안 베어간 사람 없었디이라
~~~~~
●.어머니의 피난 일기 12
ㅡ.중양절에 추석 제사
니 낳고 두 칠 지내고 팔월 스무이튿날 돌아와서
피란지에서 몬 지낸 추석제사 지낸다고
장도 제대로 안 선 평림장에 가서 제수를 마련하고
구월 구일 중양절에
좁은 오두막 방에서 제사를 모셨다
온 가족 목심 건지고 또 목심 불려서 왔다고
조상 음덕이라고 지성으로 감사드렸단다
~~~~~~
●.어머니의 피난 일기 13
ㅡ.눈 뜨고는 몬 볼레라
무섭다 무섭다 해도 총알만치 무서븐거 세상에 없는기라
전쟁 끝난 다음해던가
봉남댁 셋째 아들 삼식이하고 그 아랫집 응칠이
산에 가서 총알 몇 개 주웠다고, 마을 앞 길가에서
돌멩이로 깨고 놀다가 삼식이 배가
그만 터져삐린기라
밥통이 터져서 허연 밥이 줄줄 흘러나오다가
그 자리서 죽었지. 눈 뜨고는 몬볼레라
그 아이는 객사했다고 저거 집에도 못 들어가고
헛간에 누웠다가 이튿날 산으로 갔제
참하고 씩씩하던거로, 어설픈 전쟁놀이땜시,
저거 부모는 아들 생각나서 몬 살겠다고
얼마 안 가서 동네를 떠났는데
낯선 타지를 어떻게 떠돌고 있는지,
그런 총에다 총알 잔뜩 넣고 형제간에 동포간에 서로 쏘고
탱크까지 몰고 와서 쏘아대는 전쟁
눈앞에서 푹푹 쓰러지던 사람들과 흘러나오던 피
생각만 해도 몸써리난다
~~~~~~~~~
●.어머니의 피난 일기 14
ㅡ.우짜든지 서로 싸우지 말고
그때 총 맞고 폭탄 맞고 죽은 사람들도 불쌍하지만
남은 식구들은 얼마나 가심 타고 억울할까
그 세월은 우찌 견뎌낼까
남북으로 갈린 부모형제 친척들
다시 만날 통일이 돼야
그때 받은 상처 쪼매라도 씻고
죽은 사람들 영혼 위로해주고
두 발 뻗고 살긴데,
우짜든지 서로 싸우지 말고
잘 살아야지
남과 북, 형제간에 전쟁이 웬말이냐
세상에 없어야 될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전쟁이다!
~~~~~~~~
●.어머니의 피난 일기 15
ㅡ.나의 목숨값
올해도 생일을 맞아
어머니를 생각한다
목숨을 생각한다
숱한 목숨들 전장에서 스러지는 틈에
부른 배를 부여 안고
온몸이 퉁퉁 부어서
날아오는 총알과 폭탄을 피해
새 목숨 나를 탈 없이 낳아주신 어머니
세세생생 전쟁 없는 세상을 위해 기도하신 어머니
어머니 가시고 없는 세상에서
태어나는 새 생명, 새 세상에게
두고두고 갚아야 하는
나의 중한 목숨값!
☆☆☆☆☆☆
●.이혜선
1981년 월간 <시문학> 추천. 문학박사
ㅡ.시집: [시간의 독법], [새소리 택배](2016년 세종우수도서), [운문호일 雲門好日]등
ㅡ.시선집: [흘린 술이 반이다], [불로 끄다,물에 타오르다]
ㅡ.저서: [시가 있는 저녁], [아버지의 교육법]등
ㅡ.둔촌 이집 문학상, 윤동주 문학상, 한국예총예술문학대상 등 수상
ㅡ. 한국여성문학인회 이사장, 한국문협부이사장, 문체부 문학진홍 정책위원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