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이 서안 여행다니기 - '장안성의 시계' 서안 종루 (상편)
종루의 이사
지금의 서안 종루(钟楼)는 서안성의 동, 서, 남, 북 4대 거리가 만나는 도심에 위치하여 있고 종루의 서북쪽 맞은편에는 '형제‘ 건물인 고루(鼓楼)가 있습니다. 명나라 홍무(洪武)17년 (1384년)에 지어진 종루의 당시 위치는 현위치에서 1000미터 정도 떨어진 고루 서쪽의 영상관(迎祥观)에 있었습니다. 영상관은 당나라때 아주 유명한 도교사원 이었고 당예종(唐睿宗) 이단(李旦)이 모친의 생신을 위해 특별히 제작한 종을 설치한 곳이기도 합니다.
도시의 발전과 더불어 장안성의 끊임없는 증축으로 종루가 점차 도시의 중심지에서 벗어나게 되자 명나라 정부는 1582년에 종루를 지금의 위치로 이설했고 새로지은 기좌(基座)외의 나머지 부분은 모두 기존 종루의 부재를 그대로 옮겨사용하였다고 합니다. 종루 2층의 서쪽벽에는 이설 과정을 기술한 '종루동천가(钟楼东迁歌)' 라는 비석이 걸려져 있습니다.
종루의 종
종루의 주용도는 바로 종을 쳐서 시간을 알리는 겁니다. 매일 아침에 종소리가 울리면 4개의 성문이 열리면서 사람들의 하루 일과도 시작됩니다. 저녁 무렵은 고루의 북소리가 울리면 사람들은 성으로 돌아가고 성문은 닫히게 되는데 이것은 바로 중국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신종모고(晨钟暮鼓)의 유래입니다.
과거의 종루에서 사용하든 종은 당예종(唐睿宗) 이단(李旦)이 경운(景云)2년(711년)에 장인들께 명하여 만든 경운종(景云钟) 입니다. 무늬장식이 정교하고 소리가 우렁찬 경운종은 당나라시기 장인들의 뛰여난 종 주조 수준을 남김없이 보여주었고 현재 서안비림석각예술관(西安碑林石刻艺术馆.비림박물관)에 수장되고 있습니다.
지금 종루에 전시되고 있는 경운종은 형태, 크기, 무게, 무늬장식 등을 똑같이 만든 모조품 입니다. 경운종의 종뉴(钟纽.골이) 부분은 포뢰(蒲牢)의 형상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전설중 포뢰는 바다에서 사는 덩치가 아주 큰 동물이고 사납긴 하지만 고래를 매우 무서워 한다고 합니다. 고래가 공격하면 포뢰는 큰 소리로 울어대는데 그의 울음소리가 아주 커서 사람들은 종을 제조할때 종고리를 포뢰의 형상으로, 두드리는 당목은 고래 형태로 만들어서 종이 더욱 우렁찬 소리를 낼수있기 바란다고 합니다.
그리고 포뢰는 용왕의 9명 아들중의 하나이고 평소에 큰 소리로 외치는것을 좋아하여 종 고리를 자주 포뢰 모양으로 만들었다는 설도 있습니다.
경운종의 표면에는 도교 법규, 부귀 권세, 천상 인간(天上人间.하늘나라와 인간 세상), 현세와 미래를 대표하는 용, 봉, 학, 사자, 독뿔소(独角牛) 및 비운(飞云), 채운(彩云), 만초(蔓草) 등 무늬가 새겨져있습니다. 그 중 특별히 진귀한것은 당예종 이단이 친필로 쓴 명문(铭文) 입니다. 이단의 진적(真迹.손수 쓰거나 그린 작품)은 공자묘당비(孔子庙堂碑), 순릉비(顺陵碑) 및 경운종의 명문 3곳이 있었습니다만 공자묘당비와 순릉비는 이미 파괴되여 현재 유일하게 경운종의 명문 한곳 만 남아있습니다. 경문종에 새겨진 명문에는 도교의 현묘 및 경운종의 제작을 진술하였고 서예의 각도나 문장의 내용으로 볼때 경운종 명문은 모두 보기드문 가작에 속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