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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기를 지키신 어린 예수
누가복음 2:41-52 43 588, 591 524
우리교회는 해마다 맥추감사절을 지킵니다. 그런데 보리농사를 짖지 않는 사람들이 맥추감사절을 왜 지키는지 의문을 가질 때가 있습니다. 교회가 해마다 맥추감사절을 지키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매년 세 번 내게 절기를 지킬지라”(출2:14)고 말씀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지키라고 하신 세 절기는 ‘유월절(무교절, 고난절)’과 ‘맥추절(초실절, 오순절)’ 그리고 ‘수장절(장막절 추수절)’입니다. 이 세 절기는 하나님께서 매년 지키라고 명령하셨기 때문에 이스라엘 자손들은 지켰으며 오늘에 이르기까지 교회가 해마다 지킵니다. 그리고 세상 끝날 주님 오시는 그날까지 지켜야 할 것입니다.
이슬람교의 무슬림은 그들의 해마다 성지인 사우디아라비아에 있는 메카에서 라마단 축제를 수백만 명이 모여 ‘카바’라고 하는 탑 제단을 중심으로 빙빙 돌며 절기를 지킵니다.
흰두교는 4년에 한 번씩 쿰브 멜라 축제를 지킵니다. 갠지스강과 두 강이 만나는 삼각지가 해마다 여의도 면적의 네 배 만큼이나 될 정도의 퇴적토가 쌓여 새로운 땅이 생기는 것을 그들은 신성시하여 그곳에서 1월 9일부터 40일간 약 칠천만 명이 모여서 신성시하는 강물에 들어가서 목욕하며 즐기는 축제를 세계 불가사이 중의 하나라고 할 정도로 대단합니다.
유대인들은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절기와 규례를 지켰습니다. 아기 예수도 난지 팔 일이 되어 할례를 행하고 이름을 예수라고 지었습니다.(2:21) 앞서 세례 요한도 팔 일이 되어 할례를 행하였고 이름을 요한이라고 불렀습니다.(1:59,60)
유월절이 되었을 때 마리아와 요셉은 아기를 데리고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율법과 관례대로 산비둘기 한 쌍이나 혹은 어린 집비둘기 둘로 제사를 하려고 성전에 들어갔습니다.(2:21,27)
‘정결예식의 날’(2:22)이란 모세의 율법에 의하면 산모는 남자 아이를 낳았다면 40일, 여자 아이를 낳았다면 80일 동안 부정한 자로 규정하고 외출이나 성전 예배를 일체 금지 시겼습니다.
산모는 이 기간이 지나야 비로소 정결예식을 통해 부정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레12:1-8) 정결예식 때에 출산에 대한 감사와 헌신의 표시로 번제와, 부정을 제거하기 위한 속죄제를 드렸습니다.
마리아와 요셉도 아기 예수를 낳은 지 40일이 되는 날 정결예식을 위해 산비둘기 한 쌍으로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처음 난 남자를 하나님께 바치는 규례대로 아기 예수를 주께 바치는 제사를 드렸습니다.(2:23)
정결예식 때 드리는 제물로 양의 첫 새끼를 제물로 바쳐야 함에도 산비둘기 한 쌍을 제물로 바친 것을 보면 마리아와 요셉은 가난하게 살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어려서부터 모세의 율법대로 명절과 규례를 지켰다는 것입니다. ‘부모가 율법과 관례대로 행하였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2:27)
이러한 정결예식을 다 지키고 마리아와 요셉은 아기 예수를 데리고 다시 갈릴리 나사렛으로 돌아왔습니다. 예수는 자라며 강하여지고 지혜가 충만하며 하나님의 은혜가 그의 위에 있었습니다.(2:39,40)
유대인들의 어린 자녀 교육은 매우 엄격했습니다. 6세가 되면 세마(Shema, 신6:4-9)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로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할지니라.”는 말씀을 자녀들에게 가르치며 암송하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유대인들은 아이가 열두 살이 되면 성인식을 합니다. 지금도 유대인들은 열두 살 되는 남자 아이를 예루살렘 통곡의 벽에 데리고 와서 성인식을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가 열두 살이 되는 해에 요셉과 마리아는 유월을 지키기 위해서 어린 예수와 함께 예루살렘으로 올라갔습니다.
당시 명절 때면 각처에서 유대인들이 모여들므로 예루살렘은 사람들로 넘쳐 인산인해가 되었다고 합니다. 모두가 양이나 비둘기를 잡아 제물로 바치며 7일 동안 지켰습니다. 마리아와 요셉도 ‘그 날들을 마치고’(43)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행사를 마치고 자기 집으로 돌아갈 때 고향을 단위로 무리를 지어서 갔다고도 합니다. 남자들은 남자들끼리, 여자들은 여자들끼리 서로 이야기하며, 그리고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장난을 치며 집으로 돌아갔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이 예수는 부모와 함께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예루살렘에 머물렀습니다.
마리아와 요셉은 아이 예수가 무리 중에 함께 따라오는 줄 알고 하롯 길을 가다가 찾아보니 예수가 없다는 것을 알고 찾아 헤매며 예루살렘까지 다시 올라왔습니다.
그런데 열두 살 된 예수는 성전에서 선생들에게 묻기도 하고 듣기도 하고 있었습니다. ‘선생들’은 율법을 가르치는 연로한 랍비들입니다. 성경을 번역하고 기록하며, 율법을 토론하고 가르치는 학자들입니다.
열두 살 되는 어린아이가 선생들에게 묻기도 하고 듣기도 하는 것을 보고 모두가 다 그 지혜와 대답에 놀랍게 여겼습니다. 마리아와 요셉도 그 모든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마리아는 “아이야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하였느냐? 보라 네 아버지와 내가 근심하여 너를 찾았노라”(48)고 말했습니다. 마리아가 이렇게 말한 것은 잃은 아이 때문에 많은 근심을 하고 찾아다니다가 예수를 찾았을 때 반가움과 책망입니다.
그런데 어린 예수는 어머니에게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라고 말했습니다. 어린 예수는 자신의 부모인 마리아와 요셉에게 자신의 존재를 분명하게 나타내는 말을 했습니다.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다’는 말은 신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말입니다. 예수는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말입니다. 이 말씀은 구속사적으로 매우 중요합니다. 성전을 ‘내 아버지 집’이라고 말한 것은 하나님이 자신의 아버지가 되신다는 말입니다.
성도들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하나님께서도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내가 너희의 아버지가 되면 너희는 내 자녀라’고 말씀하셨습니다.(히1:5)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가 되십니다.
육신의 부모는 한시적입니다. 세상에 사는 동안에 부모와 자녀와의 관계가 됩니다. 죽은 후에는 더 이상 아버지도 어머니도 되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영원한 아버지가 되십니다.
그래서 아들 된 예수가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 라고 말한 것은 아들로서 아버지 집인 성전에 있는 것은 당연하다는 말입니다. 요셉은 자신을 키워준 아버지가 됩니다.
그런데 마리아와 요셉은 아들 예수가 이렇게 말한 것을 깨닫지 못했습니다.(50) 마리아와 요셉이 부모로서 이 말을 깨닫지 못했던 것은 아들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 되심을 깨닫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마리아가 처녀였을 때에 천사 가브리엘이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는 말을 들었습니다.(1:31) 그래서 예수가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라는 말을 듣고 ‘그 어머니는 이 모든 말을 마음에 두었습니다.’(2:51)
요셉도 마리아가 잉태되었다는 소문을 듣고 ‘가만히 끊고자 했을 때’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마리아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고 알려 주었음으로 알고 있었습니다.(마1:20)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셉은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알지 못했습니다. 요셉이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깨달아 알기까지는 오랜 기간에 걸렸습니다.
그리고 어린 예수는 성전을 떠나 육신의 부모인 요셉과 마리아를 따라 나사렛으로 돌아왔습니다. 성전에서 자신의 참모습을 보이신 후에 예수는 주저하지 않고 나사렛으로 돌아와서 아들로서의 마리아와 요셉을 부모로 ‘순종하여 받들어 섬겼습니다’.(51)
어린 예수는 마리아와 요셉의 돌봄을 받을 뿐 아니라 부모로 순종하며 받들어 섬겼습니다. “예수는 지혜와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스러워 가시니라”(52)는 말씀은 예수님의 성장이 육체적으로, 지적으로, 영적으로, 균형잡힌 성장을 했다는 것을 잘 가르쳐 줍니다.
30여 세가 공생애가 되기까지 예수는 신성과 인성이 완전한 조화를 이루며 마리아와 요셉의 돌봄으로 자랐습니다. 예수님은 완전한 하나님이시면서 인간의 도리를 다하는 완전한 인간으로 성장하셨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예수님은 어려서부터 모세의 모든 규례와 관례를 지켰다는 것입니다. ‘모세의 법대로’(2:22)란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가르쳐주신 율법과 규례입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지켰던 율례와 규례를 예수님도 지겼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지켰고, 예수님도 지켜 온 모든 율례와 규례를 오늘에 이르기까지 교회도 지킵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도 모세의 법대로 맥추감사절을 지키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율례와 규례를 지키라고 명령하신 것은 그만큼 잊어서는 안되는 구속사적으로 매우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국가도 해마다 지키는 행사가 있습니다. 지난 6월에 우리나라는 육이오를 기억하며 국가적으로 행사를 했습니다. 다음 달에는 광복의 날을 기억하며 광복절 행사를 합니다. 이러한 행사를 하지 않으면 육이오와 같은 비극이나, 나라를 되찾은 광복을 잊어버리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지키라고 하신 삼대 절기는 구속사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첫 번째로 지켜야 할 유월절은 애굽의 압제에서 벗어난 것을 기억하며 지키는 절기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우리가 죄악에서 구속함을 받은 것을 기억하며 지키는 절기입니다.
두 번째로 지키는 맥추감사절은 한 해의 첫 이삭을 감사하며 지키는 절기입니다. 그리고 오순절 성령 강림하심으로 교회가 세워진 것을 기억하며 지키는 절기입니다.
세 번째로 지키는 추수절은 한해 농사한 모든 곡식을 거두어 타작하여 알곡을 창고에 들인 후에 지키는 절기로서, 심판과 영원한 천국 안식을 바라보고 지키는 절기입니다.
유월절은 과거형 절기로서 죄악에서 벗어난 과거를 기억하며 지키는 절기이며, 맥추감사절은 현재형 절기로서 구속받은 성도가 성령으로 충만한 삶을 사는 것을 감사하며 지키는 절기입니다. 그리고 추수감사절은 미래형 절기로서 장차 받을 심판과 내세의 영원한 안식을 믿고 바라며 지키는 절기입니다.
이방인은 이와 같은 절기를 지키지 않았습니다. 교회 밖에 사람들은 이러한 절기를 지켜야 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인 성도는 하나님의 법대로 지켜야 합니다.
보리농사를 하지 않았을지라도 이스라엘 자손들이 해마다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지켰고, 예수님께서도 해마다 지키셨던 절기를 우리도 하나님께서 지키라고 명령하신 절기를 의미있게 지켜야 합니다. 이러한 절기를 지키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을 스스로 포기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죄사함을 받았음을 감사하며, 성령으로부터 도움을 받고 은혜롭게 사는 것을 감사하며, 미래의 영원한 안식을 믿고 바라보며 감사하며 지킵시다. 우리는 영원한 안식을 누리게 될 것을 믿고 바라보며 절기를 지킵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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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복음 설교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김시힙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