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장(風葬) 외 1편
고광헌
나, 쓰지 말아야 할
시 쓰고
달뜬 북촌 한옥마을
담벼락 아래
관광객들 엷은 웃음 자박자박하다
불어오는 바람
살아서 살 다 내준 할머니
살 없는 남편, 중증환자 태운
휠체어에 이끌려간다
구부러진 시간의 더께
웃음 없는 생,
저, 식물성 소통이 무섭다
늦은 오후
윤보선 고택 젖은 담 아래
늙어 독오른 능소화
표정없이 피었다 진다
나, 쓰기 싫은
시 기어코 쓰고 말았다
자화상
―해성으로부터
콩나물을 보는 날이면
노랗게 편도선이 부어올랐다
겨울이 오고
벌겋게 쓰러지던 산비탈 넘어
어지럼증 몰고 와 놀던 햇빛
밤 되면 불덩어리 어린 몸속에 숨어들어
불붙은 짚더미로 피어올랐다
자지러지던 숨결
처음 보는 시의 말들
목젖 위로 탱탱하게 부어오른 머릿속에서
덩달아 큰북을 쳐댔다
문풍지에 코를 대고 자던 밤
산에 오르다 갇혀버린 큰형님
몰래 내려와 마루에 쌓인 눈까지 쓸었나
창호지 스치는 빗자루 소리에
겨우 눈 뜨는 유년이었다
어머니의 아랫목에서
검은 보자기 둘러쓰고 자란 콩나물만큼
기어코 편도선도
반쪽 복숭아로 부풀어 오르고
담벼락 허물 벗고 내려간 구렁이 한 마리
목 안에 들어왔을 때
불덩어리 속에서 성큼성큼 키 커버렸다
시인이란 세상의 문풍지
겨울이 몇 치씩 앓아눕는 밤이 되니
오늘 또
어김없이 시의 편도선 부어오른다
─계간 『시에』 2012년 가을호
고광헌
전북 정읍 출생. 1983년 『시인』, 광주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신중산층교실에서』, 『시간은 무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