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서와 단식을 일삼는 엘리트 노인의
인지장애
대학교수로 오래 강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치셨던 어르신의 치매는 좀 특이합니다.
연세는
높으신데 화장실도 스스로 다니시고
식사도 하시고 보행이 자유롭습니다.
노인성 난청으로
청력을 상실하신것 외에
건강이 비교적 좋은 분입니다.
난청이라 대화는 어렵지만
전화 통화도 어느 정도 가능합니다. 이관을 통해
가까이서 말하는 음성은 듣지 못해도
사람은
골전도 기능이 있기 때문에
수화기를 귀에 대고 들으면 뼈로 전달되는
진동으로 알아들으시는 듯
필요한 통화는 하십니다.
이어폰을 끼고 방송은 잘 듣습니다.
그러나
자연스러운 대화는 불가능 합니다. 가까이에선 큰 소리로 얘기하면
입모양이나 느낌으로
알아들으시는 정도 입니다.
나이 드시면
안 그래도 남의 이야기는 잘 안 듣고
본인
주장만 고집하기 십상인데 귀가 안 들리시니
본인의 세계는 더 견고하고
타협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세상의 모든 질서와 안녕과 룰은
자신이 지킴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지적하고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하시는 분이고
평생을 그렇게 살아오셔서
병원장에게
병원 행정 의료 전반에 걸쳐
보고를 받으려고 합니다. 자신이 지적한 모든 사항을
다른 사람이 아닌 병원장이
자신에게 결과를
보고서 형태로 가져 오라고 하니
본인은
환자가 아닌
이사장 신분으로 착각하고 계시는 겁니다.
더 특이한 것은
이분이
투서를 수시로 한다는 것입니다. 치매일 수도 있고
일종의 망상인데
현실과 구분이 안 되는 것입니다.
강당에서
수 천 명 학생을 놓고 강의하고 있었는데
깨어보니 병원이라며 낮잠을 자다 깨어 어리둥절해 하면서
왜 자신이
이곳에 있는지 납득을 못합니다.
자신의 재산을 노리고
감금을 했다며 화를 내고 병원에 가두어 두는 것은 직권남용이라며
한 사람을
지목해서 자르라고 합니다.
간병인도
마음에 들지 않으니 내보내라고 하고
아랫것들 하고 상대하기 싫고 원장하고만
얘기하겠다고 불러오라고 합니다.
어지간하면 치매 어르신의
별별 행태에 익숙해 있어서
그러려니 하는데 이분은
자신의 요구가 안 받아 들여지면
내용증명을 보내고 단식투쟁을 합니다.
커피나 간식, 약은 먹지만
밥은 안 먹겠다고 버팁니다. 그러면서
누룽지 끓인 숭늉을
가져오라고 요구하기도 합니다.
연세 높은
어른이라 기운이 쇠할까봐
링거를 놓으려고 했더니 링거는
밥과 같은 역할을 하기 때문에
안 맞겠다고 강력하게 거절합니다.
간식은 조금 드신다고 해도
환자가 식사를 거부하는 것은 병원으로서는
심각한 문제라 보호자에게 연락했더니 아들이
"아버지 굶게 놔두라"고 한답니다.
집에 있을 때도
수차례
단식투쟁을 하고 엉뚱한 망상에
가족들이 시달렸다는 것입니다.
치매와 동반한 망상은
그 사람이 살아온 삶의 경험들이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어떤 할머니는
할아버지를 그리워하십니다. 할아버지는 10년 전에 돌아가셨는데
할아버지가 살아 계신 듯 여기십니다.
모든 사람들은
누구나 간통을 저지른 다고 생각하고
끝없이
타인의 불륜에고통 받기도 합니다.
모든 사람들을
간난년이고 간난놈이라고 욕합니다.
도둑을 잡느라고 애쓰는 분도 있고 장구를 두드리는 모습으로
벽이나 사물함을
박자를 맞춰 두드리기도 합니다.
배변에 집착하고
노래 부르는 일에 열심인 어른도 있습니다. 그런데
투서에 집중하는 분은 처음으로 경험했습니다.
간호사일은
간호부장님께 투서하고
의사일은
원장님께 투서하고 간병인들의 일도 투서합니다.
그분은
망상에 의한 투서이지만
그 옛날에 남을 가르치던 지식인이라 육하원칙에 맞고
본 듯이 당한 듯이 꾸며내기 때문에 힘든 것입니다.
상담실장이
직권을 남용했으니 사표를 받아라. 간병인이
나를 학대했으니 내보내라 나는 강의 중인데
누가 나를 이곳으로 대려 왔느냐
나를 시기 질투하던 모 교수의 소행으로 보인다.
철저하게 수사해 달라 이러시는 겁니다.
말이나 행동으로 하는 치매와는 다르게
문서로 보내고 어느 땐
외부 안과 진료를 핑계로 나가
우체국에 가서 내용증명으로 보냅니다.
아마
경찰서니 보사부니 구청이니 시청이니
안 보내는 곳이 없을 듯합니다.
투서를 받은 관공서에서는
아무리 연세 높은
치매어른이 보낸 것이라고 해도 내용이 그럴듯하고 책임소재가 있으니
확인을 안 할 수 없겠지요.
아들 이야기로는
이분이
젊어서부터 법적으로 따지고
해결하는 일을 즐겨했다고 하면서
누구 이야기도 듣지 않고
고집이 워낙 센 분이라고 하는 군요.
대소변을 받아내는
원시적인
형태의 인지장애가 아니라
투서로 사람들을 괴롭히는
처음 보는 치매입니다.
더하여
금식까지 하니
노인병원이 무슨 정치판도 아니고
곤란한 일입니다.
문제는
앞으로 이런 유형의
치매가 많이 나타나지 않을까?
저부터도
글 쓰는 병이 있으니
나이 들어서 치매가 온다고 해도 뭔가
온전치 않은 글을 계속 쓰게 될까봐
더럭 겁이 나기도 합니다.
읽고 쓰는 일을 계속하면
치매가
걸리지 않거나 늦춰질 수 있다는 말에 좋아했는데
지식인 치매 어르신의 사례를 보면서
그도 아닌 것을 봅니다. 본인의 삶의 경험과 주특기가
무의식중에 남을 괴롭히는
무기가 되기 때문입니다.
마음과 몸이
곱게 늙어가야 하는데 걱정입니다.
by/순이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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