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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9 장
智慧와 어리석음
1 智慧가 그의 집을 짓고 일곱 기둥을 다듬고
2 짐승을 잡으며 葡萄酒를 混合하여 床을 갖추고
3 自己의 女종을 보내어 城中 높은 곳에서 불러 이르기를
Wisdom has built her house; she has hewn her seven pillars.
She has slaughtered her beasts; she has mixed her wine; she has also set her table.
She has sent out her young women to call from the highest places in the town,
Sapientia ædificavit sibi domum : excidit columnas septem.
Immolavit victimas suas, miscuit vinum, et proposuit mensam suam.
Misit ancillas suas ut vocarent ad arcem et ad mœnia civitatis.
Ἡ σοφία οἰκοδόμησεν ἑαυτῇ οἶκον, καὶ ὑπήρεισεν στύλους ἑπτά·
ἔσφαξεν τὰ ἑαυτῆς θύματα, ἐκέρασεν εἰς κρατῆρα τὸν ἑαυτῆς οἶνον, καὶ ἡτοιμάσατο τὴν ἑαυτῆς τράπεζαν·
ἀπέστειλεν τοὺς ἑαυτῆς δούλους, συγκαλοῦσα μετὰ ὑψηλοῦ κηρύγματος ἐπὶ κρατῆρα, λέγουσα
4 어리석은 者는 이리로 돌이키라 또 智慧 없는 者에게 이르기를
5 너는 와서 내 食物을 먹으며 내 混合한 葡萄酒를 마시고
6 어리석음을 버리고 生命을 얻으라 明哲의 길을 行하라 하느니라
“Whoever is simple, let him turn in here!” To him who lacks sense she says,
“Come, eat of my bread and drink of the wine I have mixed.
Leave your simple ways, and live, and walk in the way of insight.”
Si quis est parvulus, veniat ad me. Et insipientibus locuta est :
Venite, comedite panem meum, et bibite vinum quod miscui vobis.
Relinquite infantiam, et vivite, et ambulate per vias prudentiæ.
Ὅς ἐστιν ἄφρων, ἐκκλινάτω πρὸς μέ· καὶ τοῖς ἐνδεέσι φρενῶν εἶπεν
Ἔλθατε, φάγετε τῶν ἐμῶν ἄρτων, καὶ πίετε οἶνον ὃν ἐκέρασα ὑμῖν·
ἀπολείπετε ἀφροσύνην, ἵνα εἰς τὸν αἰῶνα βασιλεύσητε, καὶ ζητήσατε φρόνησιν, καὶ κατορθώσατε ἐν γνώσει σύνεσιν.
지혜께서 사람들을 부르고 음식과 포도주가 풍성한 잔치를 베푸는 모습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왕의 잔치가 연상된다. 지혜께서 어리석고 미련한 자들을 당신의 연회에 초대하시듯이, 왕은 자신의 잔치를 거부한 자들 대신에 종들을 방방곡곡으로 보내어 초대받지 못했었던 사람들이라도 빈부귀천을 가리지 않고 끌어모은다. 지혜께서 베푸시는 음식은 원문에서는 빵/떡으로 표현되었기 때문에 여기에서의 음식과 포도주는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하신 유월절 만찬에서 제정하신 떡과 포도주를 나누는 성찬을 예표하는 듯 하다. 성찬을 비롯하여 복음과 신앙을 위한 교회의 모든 예식들은 세속 집단의 예식들에 비해서 꾸밈없이 간검소하기 때문에 육체의 시선과 감각을 만족시킬만한 것들은 찾아보기 어렵다. 또한 교회에서 선포되는 복음의 가르침들은 세속적인 영화 드라마 소설 연극 등의 이야기들에 비해서 어떤 극적인 긴장감이 덜하고 평이하기 때문에 오랜시간 집중하기 어려워 한다. 세속 음악들은 청각을 비롯한 사람의 감정을 최대한 자극하는 반면에 교회 음악들의 곡조는 서정적이거나 평이하거나 심지어 무겁기까지 하다. 이런 이유들로 인해서 사람들은 자기들의 육적인 감각을 충족시켜주지 않는 지혜의 만찬에 스스로 오려고 하지 않으며 설령 어떤 계기로 인해서 초대를 받았다 하더라도 금세 싫증을 내고 떠나버리기 마련이다. 교회 예식을 번폐스럽고 불편햏하며 아무 유익도 누리지 못하면서도 여전히 교회에 남아있는 위선자들은 교회에서 만나는 인간관계나, 교회 직분을 이용한 모종의 물질적인 이득을 노리고 남아있는 것에 불과하다. 그런 교회의 위선자들은 나중에 왕에게서 받은 예복을 팔아치우고 자기가 만든 가짜 예복을 입었다가 왕에게 들켜서 바깥 어두운 곳으로 쫓겨난 자들처럼 주님께로부터 모르는 자라 외면 받으며 영원히 타는 불못에 던져지게 된다.
7 倨慢한 者를 懲戒하는 者는 도리어 凌辱을 받고 惡한 者를 責望하는 者는 도리어 欠이 잡히느니라
Whoever corrects a scoffer gets himself abuse, and he who reproves a wicked man incurs injury.
Qui erudit derisorem, ipse injuriam sibi facit, et qui arguit impium, sibi maculam generat.
Ὁ παιδεύων κακοὺς λήμψεται ἑαυτῷ ἀτιμίαν· ἐλέγχων δὲ τὸν ἀσεβῆ μωμήσεται ἑαυτόν.
8 倨慢한 者를 責望하지 말라 그가 너를 미워할까 두려우니라 智慧 있는 이를 責望하라 그가 너를 사랑하리라
Do not reprove a scoffer, or he will hate you; reprove a wise man, and he will love you.
Noli arguere derisorem, ne oderit te ; argue sapientem, et diliget te.
μὴ ἔλεγχε κακούς, ἵνα μὴ μισῶσίν σε· ἔλεγχε σοφόν, καὶ ἀγαπήσει σε.
거만한 자는 공공연히 교회와 복음을 대적하고 비방하는 자들과, 교회를 표방하는 반성경적인 이단들과, 교회의 정당한 복음 사역과 치리를 따르지 않고 거부하는 교회 구성원들을 의미한다. 거만한 자들을 징계책망 한다는 것은 베드로 사도가 경고한 바와 같이 한 두 번 복음으로 훈계한 것을 넘어서 불필요한 신앙논쟁을 벌임으로써 거만자에게서 비방과 조롱과 욕이나 들어먹고 감정만 상하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거만자가 교회 구성원인 경우에는 적법한 권징의 절차를 따르는 것이 필요하지만 교회 권징의 범위를 넘어서서 혼자서 그 거만자를 어떻게 해보려는 노력은 득보다는 실이 더 많게 마련이다. 심지어 교회의 거만자가 교회의 중요 직분을 차지하고 있는 경우에는 음해를 받고 반대로 쫓겨나게 되는 경우도 있다. 교회의 거만자를 마주치지 않을수는 없겠지만 할수 있는대로 마주치지 않는 것이 내 신앙에 유익하다.
교회와 복음과 신앙과도 무관하고 자기 능력으로도 어찌할 수 없는, 자기와는 그다지 영향도 상관도 없는 일에 괜시리 지나친 오지랖을 부려서 조언한답시고 참견하는 것도 거만자를 징계책망 하려는 것과 같다. 국내외 정치경제사회 문제들에 지나치게 갑론을박을 벌이는 것, 사회적인 이슈와 문제들에 지나치게 분노감정에 빠져드는 것, 온라인 상에 올라온 사적인 게시물들에 대해 사사건건 간섭하여 논쟁을 벌이는 것, 다른 사람의 실수나 잘못을 가지고 일부러 트집잡고 시비를 거는 것 등은 내 신앙에 하등 도움도 유익도 주지 않는 무익한 짓들이다. 물론 국가와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아무 감정없이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일들이 있기는 하지만, 개인이 어찌할 수 없는 문제나 재난과 재앙들은 주님께서 이 나라와 특별히 교회를 징벌하시는 섭리로 받아들이고 잠잠히 묵묵히 기도하며 주님의 긍휼을 소망하며 참아내는 것이 필요하다.
9 智慧 있는 이에게 敎訓을 더하라 그가 더욱 智慧로워질 것이요 義로운 사람을 가르치라 그의 學識이 더하리라
Give instruction to a wise man, and he will be still wiser; teach a righteous man, and he will increase in learning.
Da sapienti occasionem, et addetur ei sapientia ; doce justum, et festinabit accipere.
δίδου σοφῷ ἀφορμήν, καὶ σοφώτερος ἔσται· γνώριζε δικαίῳ, καὶ προσθήσει τοῦ δέχεσθαι.
지혜롭고 의로운 사람은 주님의 말씀을 알고 행하는 성도들을 의미한다. 이를 위해서는 주님의 말씀을 알고자 하는 지성적인 의지와 순종하고자 하는 행위적인 의지가 동반되어야 한다. 지성적인 의지만 있고 행위적인 의지가 없다면 죽은 믿음이므로 그는 성도가 아니라 미련하고 불의한 자에 불과하다. 반면에 자기는 행위의 의지가 있으므로 더이상의 성경지식은 필요하지 않다고 하는 것 또한 성도가 아니라 미련하고 불의한 자의 자기합리화에 불과하다. 성도는 이 땅을 살아가는 동안 완전한 신앙을 이룰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죽는 그 순간까지 성경에 대해 더 많이 알고자 하고 더 많이 행하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며 실천해 나간다.
교회의 복음 설교는 남녀노소 빈부귀천을 따지지 않는 청중들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가급적 대부분이 이해할 수 있는 쉽고 평이한 내용을 전하는 것이 맞다. 그러나 좀 더 넓고 깊은 내용을 가르치는 것은 그만큼 교인들 중에서도 이를 소화하기에 적합한 사람들을 선별하는 것이 중요하다. 아무리 말씀에 대한 열정이 크다고 해도 남들보다 타고난 지성이 부족하면 심도있는 성경공부에는 적합하지 않다. 아무리 타고난 지성이 탁월하다 하더라도 가르치는 목사의 권위를 존중하지 않는 자도 적합하지 않다.
교회의 정규편성된 성경공부로도 감당하지 못할만큼 성경에 탁월한 성도가 있다면 목사가 개인교습을 해준다거나 신학교수와의 연계를 통해서 개별적으로 특별한 성경공부를 시켜주는 것도 필요하다. 왜냐하면 그렇게 특출나게 성경에 탁월한 성도는 정규 신학과정을 거친 것이 아니라 자기 나름대로의 개인적인 학습을 거쳐서 이룬 것이기 때문에 자칫하면 독선과 아집에 빠질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주님의 복음에 지혜롭고 의로운 성품은 특별히 교회의 직분인들에게 더욱 해당요구되는 것이다. 교회의 직분인을 세울 때에는 그의 사회적 지위나 영향력이 아니라 오로지 신앙수준으로 기준을 삼아야 한다. 신앙수준이란 얼마나 성경을 올바르게 해박하게 알고 있는지와 얼마나 성경을 아는대로 행하며 실천하고 있는지를 의미한다. 때문에 교회는 특별히 직분별 성경공부가 마련실행 되어야 한다.
10 여호와를 敬畏하는 것이 智慧의 根本이요 거룩하신 분을 아는 것이 明哲이니라
The fear of JEHOVAH is the beginning of wisdom, and the knowledge of the Holy One is insight.
Principium sapientiæ timor JEHOVAH, et scientia sanctorum prudentia.
ἀρχὴ σοφίας φόβος ΙΕΗΩΟΥΑ, καὶ βουλὴ ἁγίων σύνεσις· τὸ γὰρ γνῶναι νόμον διανοίας ἐστὶν ἀγαθῆς.
거룩하신 그리스도 여호와를 알고 경외한다는 것은 사람이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보혜사이신 성령 하나님께서 그의 영에 내주하셔서 감동시키심으로써만 가능한 일이다. 성령을 받지 못한 세속자들은 이 가르침을 들으면 콧방귀를 뀌며 조소하지만, 성령을 받은 성도들은 이 가르침을 통해서 과연 그러하다 하면서 인정수긍 하게 된다. 그러나 이 땅에서 거룩하신 그리스도 여호와를 알고 경외한다는 것은 탄탄대로가 아니라 온갖 훼방과 고난이 가득한 좁고 협착한 길이기 때문에 마치 성령을 받은 것처럼 위장한 교회의 위선자들은 조금 가는 척 하다가 힘들면 바로 돌아서서 두번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어떤 위선자들은 교회에는 형식적으로 붙어 있으면서도 신앙의 좁고 협착한 길을 한발짝 벗어나 넓고 평탄한 길을 평행선처럼 일평생 따라간다. 반면에 성령을 받은 성도들은 좁고 협착한 복음의 길을 가면서 점점 힘들어진다 하더라도 성령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견고히 인내하며 신앙이 장성숙하여 나아갈 수 있게 된다.
11 나 智慧로 말미암아 네 날이 많아질 것이요 네 生命의 해가 네게 더하리라
For by me your days will be multiplied, and years will be added to your life.
Per me enim multiplicabuntur dies tui, et addentur tibi anni vitæ.
τούτῳ γὰρ τῷ τρόπῳ πολὺν ζήσεις χρόνον, καὶ προστεθήσεταί σοι ἔτη ζωῆς σου.
일시적으로 교회에 머물었던 위선자들이나 형식적으로는 교회에 일평생 머물었던 위선자들의 마지막은 영원한 형벌이나, 일평생 거룩하신 그리스도 여호와를 알고 경외하는 좁고 협착한 길을 나아간 성도들의 마지막은 영광의 영생이다. 영원한 형벌을 선택하는 것이 최악으로 어리석고 미련한 짓이고, 영원한 영광의 생명을 선택하는 것이 최고로 지혜롭고 명철한 것이다.
12 네가 萬一 智慧로우면 그 智慧가 네게 有益할 것이나 네가 萬一 倨慢하면 너 홀로 害를 當하리라
If you are wise, you are wise for yourself; if you scoff, you alone will bear it.
Si sapiens fueris, tibimetipsi eris ; si autem illusor, solus portabis malum.
υἱέ, ἐὰν σοφὸς γένῃ σεαυτῷ, σοφὸς ἔσῃ καὶ τοῖς πλησίον· ἐὰν δὲ κακὸς ἀποβῇς, μόνος ἂν ἀντλήσεις κακά. [1] ὃς ἐρείδεται ἐπὶ ψεύδεσιν, οὗτος ποιμαίνει ἀνέμους, ὁ δ᾽ αὐτὸς διώξεται ὄρνεα πετόμενα· [2] ἀπέλιπεν γὰρ ὁδοὺς τοῦ ἑαυτοῦ ἀμπελῶνος, τοὺς δὲ ἄξονας τοῦ ἰδίου γεωργίου πεπλάνηται· [3] διαπορεύεται δὲ δι᾽ ἀνύδρου ἐρήμου καὶ γῆν διατεταγμένην ἐν διψώδεσιν, συνάγει δὲ χερσὶν ἀκαρπίαν.
사람은 스스로 주님과 그분의 지혜를 추구획득 할 수 없고 오로지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 하나님께서 그의 영에 내주하심으로써만 가능하다. 그런데 성도가 주님과 그분의 지혜를 추구획득하는 방식은 아무것도 안하고 가만히 있어도 성령께서 알아서 부어주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심령이 주님과 그분의 지혜를 바라고 소망하며 간구하게 하는 방식으로 하게 하신다. 또한 사람이 본성적으로 싫어하고 꺼려하는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는 것도 거부하지 않고 도리어 자원하는 심령으로 기꺼이 받아들여 따르는 방식으로 주님과 그분의 지혜를 추구획득 하게 하신다. 때문에 주님의 지혜를 얻으라는 훈계를 꾸준히 지속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성도됨의 증거와 표징이라고 볼 수 있다.
교회의 위선자들은 표면적으로는 교회 구성원이기도 하고 교회의 주요 직분과 봉사를 맡기도 하지만 그들의 신앙원리는 주님과 그분의 지혜의 원리가 아니라 다분히 세속적인 방식을 추구한다. 모든 세속적인 방식이 반성경적인 것은 아니지만서도 성경의 원리를 최우선에 두는 것이 아니라 세속의 원리를 최우선으로 둔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인 것이다. 자기 방식이 성경의 원리와 상충될 때 성도들은 자기 방식을 내려놓고 성경의 원리를 따르려고 하지만 위선자들은 교묘하게 성경의 원리를 비틀고 왜곡시켜서 자기 방식을 고수한다. 아무리 교회에서 목사 장로 집사 등의 직분을 맡고 수십년 교회 구성원으로 있다고 해도 그가 위선자라면 주님 앞에서 거만한 자로 판결을 받고 주님께로부터 알지 못한다는 부인을 들으며 바깥 어두운 곳으로 쫓겨나 울며불며 이를 갈게 될 뿐이다.
13 미련한 계집이 떠들며 어리석어서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14 自己 집 門에 앉으며 城邑 높은 곳에 있는 자리에 앉아서
15 自己 길을 바로 가는 行人들을 불러 이르되
The woman Folly is loud; she is seductive and knows nothing.
She sits at the door of her house; she takes a seat on the highest places of the town,
calling to those who pass by, who are going straight on their way,
Mulier stulta et clamosa, plenaque illecebris, et nihil omnino sciens,
sedit in foribus domus suæ, super sellam in excelso urbis loco,
ut vocaret transeuntes per viam, et pergentes itinere suo :
Γυνὴ ἄφρων καὶ θρασεῖα ἐνδεὴς ψωμοῦ γίνεται, ἣ οὐκ ἐπίσταται αἰσχύνην·
ἐκάθισεν ἐπὶ θύραις τοῦ ἑαυτῆς οἴκου ἐπὶ δίφρου, ἐμφανῶς ἐν πλατείαις
προσκαλουμένη τοὺς παριόντας καὶ κατευθύνοντας ἐν ταῖς ὁδοῖς αὐτῶν
미련한 계집은 주님과 복음과 교회를 대적하는 모든 것으로서 특별히 거짓 교회를 의미한다. 요한 사도의 계시록에서는 주님께서 경고하신 바 발람과 이세벨과 니골라 당이 이에 해당되고 예언적으로는 용이 세운 두 짐승을 올라탄 큰 음녀 바벨론을 의미한다. 미련한 계집인 거짓 교회의 목적은 주님의 지혜를 대적하는 것이기 때문에 지혜가 선포하고 사람들을 모으는 방식을 그대로 흉내내는데, 이는 마귀가 그리스도 하나님의 방식을 자기 나름대로 이리저리 흉내내는 것을 본받은 것이다. 주님의 지혜는 광야에 거하면서 선포하기 때문에 겉으로는 볼품이 없으나 참된 보화를 가지고 있다. 반면에 미련한 계집인 거짓 교회는 용의 짐승의 후원을 받기 때문에 온갖 화려웅장한 것들로 치장하여 사람들을 현혹시킨다. 주님의 지혜는 성도건 아니건 상관없이 누구든지 초청하여 지혜의 유익을 주시고자 하나, 주님의 지혜를 대적하는 미련한 계집인 거짓 교회는 주님의 지혜로 가고자 하는 사람들의 발길을 돌리려고 부르짖는다.
16 어리석은 者는 이리로 돌이키라 또 智慧 없는 者에게 이르기를
17 도둑질한 물이 달고 몰래 먹는 떡이 맛이 있다 하는도다
“Whoever is simple, let him turn in here!” And to him who lacks sense she says,
“Stolen water is sweet, and bread eaten in secret is pleasant.”
qui est parvulus declinet ad me. Et vecordi locuta est :
Aquæ furtivæ dulciores sunt, et panis absconditus suavior.
Ὅς ἐστιν ὑμῶν ἀφρονέστατος, ἐκκλινάτω πρὸς μέ· ἐνδεέσι δὲ φρονήσεως παρακελεύομαι λέγουσα
Ἄρτων κρυφίων ἡδέως ἅψασθε, καὶ ὕδατος κλοπῆς γλυκεροῦ.
주님께는 당신의 지혜가 없는 자들이 미련하고 어리석은 자들이나, 주님을 대적하는 미련한 계집인 거짓 교회에게는 주님의 지혜를 가진 교회와 성도들이 어리석은 자들로 여겨진다. 미련한 계집이 도둑질을 조장하듯이 거짓 교회는 성경과 복음과 교회를 빙자하여 은근교묘하게 우상숭배와 간음과 도적질과 거짓증언 등의 불법과 불의와 범죄를 조장한다. 이러한 죄를 조장하고도 누구든지 마음으로 가볍게 회개만 하면 죄용서를 받는다고 안심시킨다. 자기들이 이런 죄를 저지르고도 자기들은 이미 하나님께 회개했고 자기들을 판단하실 분은 오직 하나님 밖에 없다며 뻔뻔하게 나온다. 남에게 끼친 피해는 단 일원도 배상하지 않으면서도 스스로 죄용서를 받았다는 자신감에 빠져있다. 기독교인이라면 당연히 정치투쟁에 나서야 한다며 자기들의 정치이념과 반대되는 국가지도자와 정부를 향해 스스럼없이 저주와 비방과 조롱과 악담을 퍼부으며 그들을 세우신 주님의 권세를 모독한다. 자기 신앙으로는 성경의 창조를 버릴 수 없고 자기 과학적 지성으로는 진화를 버릴 수 없으므로 하나님께서 진화의 방식으로 세상을 창조하셨다고 현혹한다. 복음 시대에는 성도 개개인이 성령께서 내주하시는 참된 성전이므로 더 이상의 물리적인 교회는 필요하지 않다는 교회 무용론으로 게으른 사람들을 현혹한다. 바울 사도가 한시적으로 잠깐 교회에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장막을 손수 만들며 생계를 꾸린 특별하고 예외적인 사례 하나를 가지고 마치 보편적인 원리인냥 받아들여 가난한 목사는 목회와 생계 활동을 병행해도 무방하다고 호도한다.
18 오직 그 어리석은 者는 죽은 者들이 거기 있는 것과 그의 客들이 스올 깊은 곳에 있는 것을 알지 못하느니라
But he does not know that the dead are there, that her guests are in the depths of Sheol.
Et ignoravit quod ibi sint gigantes, et in profundis inferni convivæ ejus.
ὁ δὲ οὐκ οἶδεν ὅτι γηγενεῖς παρ᾽ αὐτῇ ὄλλυνται, καὶ ἐπὶ πέτευρον ᾅδου συναντᾷ. [1] ἀλλὰ ἀποπήδησον, μὴ χρονίσῃς ἐν τῷ τόπῳ, μηδὲ ἐπιστήσῃς τὸ σὸν ὄμμα πρὸς αὐτήν· οὕτως γὰρ διαβήσῃ ὕδωρ ἀλλότριον· [2] ἀπὸ δὲ ὕδατος ἀλλοτρίου ἀπόσχου, καὶ ἀπὸ πηγῆς ἀλλοτρίας μὴ πίῃς, [3] ἵνα πολὺν ζήσῃς χρόνον, προστεθῇ δέ σοι ἔτη ζωῆς.
주님의 지혜에게로 오려다가 미련한 계집의 외침을 듣고 발길을 돌린 자들과, 주님의 지혜의 초청을 받고 왔으면서도 미련한 계집의 외침을 듣고 그리로 가버린 자들은 스스로 주님과 그분의 지혜를 저버리고 그분의 의의 예복을 벗어버리며 미련한 계집이 찍어주는 짐승과 사람의 표를 이마와 손에 받았으므로 두 번 다시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하고 영원한 멸망에 이르게 될 뿐이다. 미련한 계집인 거짓 교회는 주님께서 다시 오시기 전까지는 용의 짐승을 올라타서 하나님의 두 증인을 죽이기까지 세속적인 권세를 누리지만, 참된 교회와 성도인 하나님의 두 증인이 삼 일 만에 주님의 부르심을 받아 부활승천 한 후에는 도리어 짐승에게 버림받아 죽임을 당하여 살이 찢겨 먹히고 불살라지는 처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된다. 거짓 교회인 큰 음녀 바벨론에게 속했던 유력한 자들은 용과 짐승과 거짓 선지자들에게서 나오는 개구리 같이 더러운 세 영들의 꾀임을 받아 아마겟돈에 모여서 하늘의 군대를 상대로 전면전을 벌이다가 몰살을 당해 들짐승과 날짐승들의 먹이가 된다. 큰 음녀 바벨론에게 속했던 빈천한 자들은 유력한 자들이 몰살을 당한 천년이 지나 무저갱에서 잠깐 풀려난 용에게 미혹되어 이 땅에 남아있는 교회의 흔적들을 훼파하려는 순간에 만물의 형질을 풀어버리는 하늘에서 내리는 불에 비참하게 타죽어버린다.